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5호 | 2000.04.04

기획 연재 2 -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편집부
<기획연재 2>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실업운동의 관점에서 본 2000년 투쟁과제-

◇ '실업'의 폭발에서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으로
경제위기극복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대통령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빈부격차의 확대가 어느때보다 심각하고,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눈에 띄게 낮아졌지만, 실업의 구조는 더욱 악화되어서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그도 아니면 장기실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한국이나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하는 보고서에도, 현재의 상황이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 폐해로 각인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IMF이후 사회적 화두가 '실업'이었다면 이제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문제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나 5월 총파업을 앞둔 노동운동진영이나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바꿔말하자면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강조한다고 해서 더 진보적인 것은 아닌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 원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제출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 민주노총과 실업단체들의 대응에 대한 평가
그렇다면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인식과 대응은 어떠한가?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민주노총의 2000년 3대요구일 것이다. 민주노총은 "주5일근무(주40시간제)실시" "구조조정 중단과 단체협약·임금 원상회복" "조세개혁과 사회보장예산 확대"를 3대요구로 내걸고 있다.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구조조정 2년여동안 훼손돼왔던 임금과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사회보장의 확대를 통해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제출한 투쟁과제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현재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위해 싸우고 이미 실업자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이다. 이런 발상은 노동자와 실업자를 분리하여 관리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논리에 쉽게 포섭될 수 있을 뿐아니라, 실업을 양산하는 근본원인인 구조조정에 대한 인정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인 '임금인상'에 대해 국가와 자본은 "임금이 올라가면 실업자도 늘어난다"는 논리고 맞서고 있는데, 이런 논리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취업자와 실업자가 함께 '안정적인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실업의 문제를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로 가두려는 사고는 취업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의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한편 실업의 구조화와 빈곤의 확산에 대한 실업단체들의 인식과 대응에서도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2000년 실업단체들의 화두는 아마도 '자활사업'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 할 수 있다. 정부실업대책의 골격이 실업예산의 삭감과 실업자들의 자활(다른 말로 하면 자구책 강구)지원으로 잡히면서, 실업단체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자활후견기관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는가로 맞추어지고 있다. 이는 자활후견기관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재정적 지원여부가 결정되고, 재정적 지원 없이 실업자 대상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업단체들의 활동의 중심이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따내기 위한 프로젝트와 사업추진으로 옮겨가게 되고, 나아가 실업단체들의 위상이 정부실업대책의 효율적인 전달벨트로 격하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같다. 저소득 장기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실업단체들의 재정적 곤란과 고충을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실업단체들의 활동역량을 계속적으로 갉아먹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즉 실업단체들의 활동이 실업자들의 자주적 요구에 기반하여 투쟁을 끊임없이 활성화시켜내는 방향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원에 끌려 다니면서 실업자들을 일방적인 시혜의 대상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실업단체들을 정부에 매달리게 만드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조직하자
민주노총과 실업단체들의 대응방식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은 '빈곤'의 문제를 '시혜적 복지'의 문제로 대체해 버리는 관점에 있다. 지금시기 빈곤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조정 자체에 있다. 지금시기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우리의 요구는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 창출" "실업과 불안정노동을 확산하는 구조조정 반대"로 맞추어져야 한다.
1998-99년에 걸쳐 진행된 실업자들의 초기적 조직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리고 정부 실업대책에 대한 비판적 개입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에는 대중투쟁의 조건을 준비해 가도록 하자. '안정적 노동'과 '실업자들의 자주적 권리 보장'을 중심으로 실업운동의 조직적 확장과 연대의 확대를 이루어내자. 이번 노동절에서부터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가 함께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반대하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내자.
주제어
노동 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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