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83호 | 200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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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출범의 의의

전비연 출범은 비정규직 운동의 분수령이자, 민주노조 운동의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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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820만 시대’와 전비연의 출범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비정규직 820만 시대’를 맞이한 한국사회의 척박한 노동현실을 바꿔보고자 힘을 집중하고 있다. 하반기를 맞아 비정규직 투쟁이 연일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전국에서 사내하청 및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덤프연대 파업, 오는 21일 레미콘 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찬반투표 가결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하반기 정세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물연대, 건설운송노조, 현대차비정규직노조, 각 지역 일반노조 등 50여 곳의 비정규직 노조가 참여하는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이하 전비연)가 지난 10월 16일 출범하였다. 비정규직노조의 연대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 결성된 지 2년여만의 일이다. 전비연은 이날 출범선언문을 통해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모아내고 전국적인 공동투쟁의 구현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정되어 있는 올 하반기 비정규직 투쟁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분쇄, 비정규직 권리입법 쟁취,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비정규직 노조들의 공동대응과 공동투쟁을 적극 전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전비연의 지난 궤적과 이후 과제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위사업장 차원의 현안 투쟁을 통해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적 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략과 노동유연화 정책으로부터 나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의 시정이라는 소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하지만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노동유연화를 관철시키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러하기에 대부분의 경우 개별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과 투쟁에 대해 정부와 자본은 상식 밖의 극심한 탄압을 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섭의 당사자로 용인하지조차 않는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결성과 동시에 온갖 탄압을 받게 되고 계약해지 되어 사업장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같은 조건 하에서 자연스레 비정규노조는 서로의 투쟁에 품앗이로 연대하였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게 되었다.
2003년 9월 3일, 전국 원․하청 노동자 연대한마당에서 10여 개 비정규직노조가 간담회를 갖고 비정규직노조 연대체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리고 9월 27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에서 17개 노조 대표자들이 모여 비정규직 노조 연대체의 초보적 형태인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하 전비연(준))을 결성한다. 전비연(준)은 결성 이후 2년여 동안 이용석, 박일수, 류기혁, 김동윤 등 많은 비정규 노동열사를 마주했으며 열사정국 때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변자로서 노동자운동 안팎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특히 작년 박일수 열사투쟁 때 현대중공업노조가 보여준 반노동자적 행태와 관련해 전비연(준)이 벌인 현대중공업노조 제명운동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외면으로 일관했던 많은 정규직 노조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전비연(준)은 갈수록 치열한 양상을 보이던 개별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에도 적극 지원하고 연대에 나섰다. 작년에 있었던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조의 총파업투쟁과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에 대한 전비연(준) 차원의 지원/엄호, 그리고 올해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노조 탄압에 맞서 벌였던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 등은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이 전국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투쟁의 특질을 감안했을 때 매우 의미 있는 실천들이었다.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대응 / 공동투쟁이라는 전비연의 이후 발전방향을 보여준 사례들이기도 하다. 한편 전비연(준) 자체가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느슨한 연대체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대표체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전비연(준)이 비정규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과정에서 보여준 선도적인 투쟁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작년 9월에 있었던 열린우리당 의장실 점거농성, 11월에 있었던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집단 삭발과 국회 안 타워크레인 농성, 올해 있었던 민주노총 총파업투쟁 조직을 위한 전국 순회투쟁 등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문제의 당사자이자 투쟁의 주체임을 사회 전반에 각인시켰고, 비정규노동법 개악 문제를 안일하게 사고했던 운동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얼마 전 해소되었지만, 100여 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비정규 개악안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사회적 연대전선 역시 전비연(준)의 선도적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이처럼 지난 2년 동안 전비연(준)이 걸어온 발자취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성과들을 조심스레 엮어 준비위원회를 탈피하고 본 조직 출범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전비연의 출범이 곧 비정규직 운동의 정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악전고투를 거듭해 온 비정규직 운동이 그간의 한계들을 뛰어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데 있어 전비연의 출범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에 전비연이 본 조직 출범에도 불구하고 몇몇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선도적 실천에 의존하는 등 준비위원회 기간의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오랜 숙원이었던 비정규직 운동의 조직적 강화와 대중운동적 발전은 또다시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참가조직의 규모와 요구되는 역할에 비해 집행력은 턱없이 부족하며, 각급 비정규직노조가 벌이고 있는 투쟁을 진두지휘할 능력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며 그것이 바로 비정규직운동의 현주소와 같다”는 전비연의 고백이 보여주듯 전비연이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높다. 수년간의 처절한 투쟁과 지난 2년 간의 준비위원회 기간을 통해 본 조직 출범까지 이르렀다지만 이에 대해 간부급까지의 동의와 결의만 있을 뿐, 대중적 동의와 결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지역별 연대체 건설과 활성화 역시 미진한 상태이고, 특히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문제와 각 사안별 투쟁들을 전국적 전선으로 모아내기 위한 연대지향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 등은 전비연에게 있어 사활이 걸려있는 과제다.
이렇듯 전비연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에 남아있는 길이 더욱 멀고 험난하다. 비정규직 운동 발전이라는 장구한 과정에서 전비연이 담당할 조직적 강화와 대중운동적 발전이라는 중요한 임무는 노동자운동을 비롯해 사회운동 전체가 함께 짊어질 몫이다. 전비연의 출범, 우리는 그 자체만으로 낙관을 가지기보다는 이것을 계기로 전비연의 이후 행보와 발을 맞추며 비정규직 운동의 발전에 복무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임무와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특히 지난 8월 ‘비정규 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해소된 이후 현재까지 큰 공백으로 남아있는 비정규직 운동을 사회 전반에서 지원하고 엄호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전선의 복원은 시급한 문제이다.

전비연 출범은 민주노조 운동의 전환점이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사태 관련 일련의 흐름들은 갈등양상을 띄고는 있지만, 모처럼 민주노조 운동 혁신에 관해 각급 단위들이 중지를 모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민주노조 운동의 퇴행으로 인한 홍역을 호되게 치르고 있는 민주노총의 이후 행보는 현재 민주노조 운동이 가지고 있는 자정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혁신을 위한 부단한 노력만이 지금의 위기적 상황을 희망으로 반전시킬 유일한 방도이다. 전비연의 출범은 그 과정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수년간 참혹한 현실과 처절한 투쟁과정, 그리고 숱한 패배를 통해 연대지향적 운동을 온 몸으로 체득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이한 고용형태와 지역적 차이, 자본의 노동 위계화 전략을 뛰어넘어 스스로 연대지향적 운동을 만들어가고자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무력감을 경험했던 기존 노동자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뿐만 아니라 이후 전비연이 만들어 갈 비정규 운동의 성장과 발전은 민주노조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는 각종 비리와 퇴행으로 얼룩진 민주노조 운동을 아래로부터 혁신하고,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비리와 퇴행을 열사의 이름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운동’이며 우리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범’을 창출할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가진 실력만큼 솔직히 발언할 것이고, 발언한 만큼 반드시 책임을 질 것이다.” 전비연의 출범선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같은 비장한 각오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민주노조 운동의 현실에 배경을 두고 있음을 잊지 말자. 전비연의 출범과 민주노총의 현 사태를 전환점으로 아래로부터 혁신의 기운을 북돋는 데 다같이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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