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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85호 | 200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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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은 계속된다

한계에 처한 미국의 점령정책

사회진보연대
지난 10월 15일부터 이라크 전역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안은 10월 25일(현지시간) 78.6%의 찬성(21.4%의 반대)으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들이 극단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즉각적인 환영의사를 밝혔지만 제헌 국민투표의 성사가 곧바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더욱 높다.

종교적/종족적 갈등을 조장하는 미국의 점령정책

이번 투표결과는 외형상으로 본다면 찬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라크 민중들로부터 별로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전체 투표율은 2/3에 못미치는 63%를 기록했다는 점(따라서 이라크인의 과반수는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비록 헌법 부결 요건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3개 주에서 반대표가 과반수 이상이었다는 점, 가장 중요하게는 종교적/종족적 분할 속에서 이번 헌법은 ‘제헌’에 미달하는 사실상의 임시헌법에 불과하다.
애초 지난 2월 이라크에서는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을 실시했으나 이는 수니파의 불참(수니파들의 주요 거주지역인 안바르주의 경우 투표율은 불과 2%였다)으로 대표성이 결여되었고, 5월에 구성된 헌법제정위원회와 헌법제정단에서 이번 헌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연방제를 둘러싼 수니파와 시아파/쿠르드족의 갈등은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북부 쿠르드족과 시아파들이 주로 거주하는 남부는 유전지대, 관광자원 등을 포함하고 있어 재정과 유전관할에 대해 지방정부의 폭넓은 재량을 요구하는 반면 이를 사실상 ‘분열행위’로 규정하는 수니파들은 중앙정부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 형국이며, 시아파/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의회와 과도정부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년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다시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하여 이번 헌법안은 사실상 올 12월 15일 총선과 대통령 선출에 국한되는 임시헌법이 될 공산이 크다(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배제된 수니파들의 반발은 보다 극렬한 형태로 표출될 것이다).
이번 투표결과는 수니파(20%)와, 시아파+쿠르드족(60% + 20%)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라크의 종교적/종족적 분할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인 대립이 이처럼 종교적/종족적 계선(界線)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이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분할통치 방식을 구사한 데 따른 결과이다. 사실상 미국이 운영했던 연합군임시행정처(CPA)에서 과도통치위원회(과도정부)로 행정권을 이양할 당시,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이라는 협소한 프리즘으로 이라크 사회의 복합적인 세력들을 재단하고 이에 따라 내각구성 비율을 정한 것이다(시아파 13, 수니파 5, 쿠르드 5, 투르크멘 1).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에 따른 자리배분은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어 부총리 4명 중 3명은 각각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에게 돌아가고, 장관직은 시아파 16, 쿠르드 7, 수니파 6, 기독교 1, 투르크멘 1 등으로 분배되었다. 미국과 미국이 후원하는 망명인사들은 CPA 시절부터, 과도통치위원회, 임시정부를 구성하면서 시아, 수니, 쿠르드의 인구 비율에 비례하는 정치적 틀을 마련하려는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수니 = 바트당 = 후세인 충성파’로 동일시하면서 수니파가 주변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종교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결집하게 함으로써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집단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수반하게 된다. 이를 빌미로 미국은 이라크에서 자신들의 주둔과 개입의 불가피성을 강변한다.

여전히 계속되는 미국의 군사작전

이라크에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날 미군이 사망자수는 이미 2,000명을 넘었으며 지난달까지 일주일 200건 이하였던 저항세력의 공격은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번 달 들어 400건으로 늘어났다. 또한 국민투표가 통과된 지 불과 이틀 후에 발생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무장충돌로 21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지는 등 여전히 이라크는 전쟁 중이다. 미 국방부는 저항세력에 의해 2만 6천명이 2004년 1월 이후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도 연합군에 의한 인명피해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지난해 의학잡지 『랜싯』의 추산으로는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의 점령기간 동안 사망한 이라크인은 무려 10만 명이다).
상당수의 이라크인들은 저항세력의 (미/영) 연합국에 대한 무장공격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45%)(영국군 점령 하의 마이산주에서는 65%에 이른다), 연합군의 주둔을 강력히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82%). 반면 단지 1% 미만의 이라크인들만이 연합군이 치안향상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67%의 이라크인들은 점령으로 치안이 더 불안해졌다고 느끼고 있다(『데일리 텔레그래프』 10월 25일). 서방의 주류 미디어는 이러한 불안은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테러 때문이라고 보겠지만 실상 이라크인들의 시각은 그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해 팔루자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그 일부만이 외부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미군의 이라크인 대량학살과 고문과 학대는 완전히 이라크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6월 터키에서 열린 이라크국제전범재판에서의 증언에서 낱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군들이 저항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집을 급습하여 … 남성들에게 협의가 있다면 그들을 가둔 채로 집을 폭파해 버린다. 그리고 여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이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하나 이브라임의 증언), “점령 때문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점에 없이 검문이 강화되고 있다”(이만 카흐마스의 증언) 지난 9월에는 미군 4천명과 이라크군 6천명을 동원하여 탈 아파르를 봉쇄, 초토화하였고 불과 며칠 전인 11월 1일 미군 1천명은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동원하여 북서부 알사드 지역에 대한 공격을 단행, 40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미국이 국민투표의 성공을 자축하는 동안, 여전히 미국의 군사작전에 의해 무수한 이라크인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생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군수산업

무엇보다 이라크인들이 느끼는 불만의 근저에는 후세인을 축출한 이후 오히려 민중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점령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이라크에서 의회가 구성되고 과도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사실상 이라크에 대한 통치는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데, ‘테러세력의 소탕’에 초점을 맞추는 점령정책은 이라크의 재건과정에서 핵심적인 민중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전보다 훨씬 후퇴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라크 경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난관 중의 하나는 후세인 정권 시절 이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서방 각국으로부터 조달한 막대한 액수의 외채이다. 1,20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외채에 대해 지난 해 채권국들의 비공식 협의체인 파리클럽은 80%를 탕감하는 전제조건으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과 이에 대한 IMF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세웠다. 여기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사실상 이라크의 모든 부문의 산업에 대해 외국인 투자의 제한을 철폐하는 것으로서 이미 CPA 시절 법령 39조를 통해 보장된 바 있다. 후세인의 축출은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선전하면서도 독재정권의 전쟁비용으로 충당된 부채를 이라크 민중에게 전가하는 것은 형용모순일 뿐더러 부당하다. 더욱이 외채를 부분적으로 탕감하는 조건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관철하려는 데서 미국이 강조하는 이라크의 재건이란 초민족적 자본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권의 재분배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인들의 노동과 보건, 기타 공공 서비스의 질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전쟁 이전 10.5%였던 실업률은 2004년 현재 18.4%에 달하고 있으며, 생후 5개월에서 6살 이하의 어린이 중 43% 이상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월 12일 발표된 유엔개발계획(UNDP)과 이라크 과도정부의 공동조사).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공식적인 통계보다 훨씬 심각한데 이라크국제전범재판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 실업률은 80%에 달하고 남성들의 경제능력이 완전 상실된 가운데 여성들의 경제적 수단으로서 성매매가 권장되는 있다(하나 이브라임의 증언). 게다가 석유와 전기, 물의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라크 정부는 지난 5월 석유와 전기에 대한 보조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한 이라크인은 편지에서 “모든 게 날마다 나빠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라크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날마다 사람들은 곧 이 나라를 빠져나갈 생각에 빠져든다. … 이것이 미국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자유와 민주주의다”라고 말한다(www.zmag.org 5/31). 이러한 이라크의 피폐한 상황은 과도정부가 각종 보조금을 중단하고, 특히 석유산업을 사유화하려는 가운데 앞으로 별로 나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석유가 매장된 이라크의 유전은 이제 이라크의 공유재산으로서가 아니라 미점령당국과 결탁한 초국적 오일자본의 ‘황금시장’으로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날이 악화되는 민중의 생활상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군수자본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그리고 이라크 침략전쟁과 저항세력과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공방을 거듭하면서 록히드 마틴,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 등 대표적인 군수업체들은 매출액과 이익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이중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은 2001년 이후 3년 동안 무려 50% 매출이 늘었다). 이뿐만 아니라 “육해공의 안전보장”을 내세우며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민간 경비회사는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냉전이 끝난 이후 각국이 병력을 줄이면서 군사업무를 외주화하면서 등장한 민간 경비회사는 현재 전세계에 100여 개가 ‘성업 중’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로 무기관리, 요인경호, 물자수송, 시설경호, 식량공급 등의 활동을 담당하는 이들은 일당 1,000달러를 받으며 새롭게 등장한 ‘치안시장’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들 용병은 무려 2만 명으로서 미군에 이어 사실상 ‘제2의 무장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미국의 점령정책은 실업과 빈곤 속의 이라크 민중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군수업체와 경비회사에게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점령정책의 실패: 내전의 가능성

이라크는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민병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향후 서로의 정치적 갈등을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종교적/종족적 구성의 다양함 그 자체가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의 충분조건은 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장기주둔과 정치/군사적 역할을 옹호하는 논리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수도 있다(‘내전의 예방자’로서의 미군). 이라크의 정세에서 내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점령정책 및 그 실패 속에서만 현실화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경찰과 정규군이 종족적/종교적 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아파와 쿠르드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는 수니파에 적대적인 무장단체로부터 충원되고 있다. 일례로 7월 바그다드의 한 병원을 시아파로 구성된 경찰 특공대가 습격하여 13명을 연행했는데 이 중 10명이 싸늘한 시신으로 되어 돌아왔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의 미군 지휘관들은 예전 임시정부 고위관료들과 연계된 민병대에 자금을 제공하고, 이들을 훈련시켜왔다(이들은 저항세력을 색출하는 데 이라크군 및 미군과 협력하며 지난 2월 총선의 진행에 일익을 담당했다). 현재 과도정부를 주도하고 있는 시아파의 최대정당 이라크혁명최고평의회(SCIR)는 바드르여단이라는 민병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과 임시정부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수니파는 각종 무장단체를 결성하며 미군과 경찰, 군대에 대한 저항을 주도하고 있으며 상당수 폭탄테러는 이미 시아파를 겨냥하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장악하려는 쿠르드족은 민병조직 페슈메르가를 거느리고 있어 앞으로 헌법의 개정과정에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한, 각각의 지역의 경계 설정 문제, 유전관할문제, 舊바트당 인사들에 대한 배제 여부 등을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갈등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종교적/종족적 분할에 따른 군사적 대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공산이 크다.
‘재건’되지 않고 있는 이라크의 경제, 연합군에 대한 이라크 민중의 일반적인 불만과 적대감, 향후 이라크 국가의 상을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저항세력의 공세와 늘어가는 미군 사상자들은 2년 전의 ‘종전선언’을 무색케 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점령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자이툰 부대를 1,000 감축하는 선에서 이라크 파병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는 데 급급할 뿐 아직도 이라크 점령이 침략적이고 압제적이라는 점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려고 한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전쟁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오도되고 기만적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지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파병을 감행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전혀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이라크 민중들 스스로가 외국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가? 미군과 외국군의 도움이 없으면 이라크가 훨씬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발상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논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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