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대한 단호한 반대 없는 대국회 협상을 비판한다
노동자운동, 무엇을 혁신하고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기간제 사유제한과 기간제한, 파견 대상업무와 기간 후 고용보장 등 핵심 쟁점을 남긴 채 지난 12월 9일 0시 30분경 산회, 13일부터 시작될 임시국회로 회기를 연장했다. 이로써 현재 기간제법 4조 '기간제근로자의 사용' 본문 중 기간으로 할 것인지 사유제한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과 연계조항, 제 8조의 차별적 처우의 부분과 연계조항, 파견법 5조 근로자파견대상 업무의 문구 조정, 파견법 6조3 고용의무에서 고용의무와 고용의제 등의 쟁점이 남게 되었다.
한편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정기국회 12월 8일 오전 기간제 사유제한 사유를 종전 4가지에서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확대하는 수정안을 제시하며 막판 합의를 시도했다.
-출산 육아 또는 질병 부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휴직 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그 업무를 대신할 필요가 있는 경우
-학업, 직업훈련 등을 이수함에 따라 그 이수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와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의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수출 주문의 예외적 급증이 발생한 경우
-기업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
-안전조치를 위한 긴급한 작업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밖에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강조는 원안에 제시된 4개 사유-인용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즉각 단병호 의원안을 환영하는 성명을 제출하고 이를 노동계 최종안으로 추인했다.
무원칙적인 협상과 양보교섭의 문제점
그런데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은 당초 원안의 입법취지인 사유제한 원칙을 심각히 훼손한 양보안이다. 가령 수정안은 '수출 주문의 예외적 급증이 발생한 경우', '기업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를 추가조항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자본이 시장상황(경기변동, 주문량 변화)에 따라 노동력을 신축화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사유제한의 예외를 확대해서라도 사유제한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양보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쳐 원안의 문제의식이 사장될 위험이 크다. 원내 역관계의 열세를 이유로 비정규직 철폐는 고사하고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라는 당초 입장에서도 대폭 후퇴, 개악의 수준을 둘러싼 수세적 협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양보안이 수용될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현재까지 진행된 노사교섭·원내협상 과정은 비정규 권리 입법으로 정식화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입장을 사실상 방기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요청으로 이목희 의원이 주선(!)한 11월 노사대표자회의 교섭을 진행하면서 당초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안을 제시하면서까지 ‘노동계 안‘에 집착했다. 국회 일정에 앞서 11월 30일까지 진행된 노사대표자 교섭 과정에서 이미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기간제와 파견제와 관련 대폭 후퇴된 안을 제출한바 있다. [첫째, 기간제와 관련하여 ‘사용사유 제한‘ 및 최장 1년까지 ‘사용기간 제한‘이 아니라 ‘1년+1년‘으로 되어 있고, 둘째, 파견법 철폐 및 직업안정법을 통한 간접고용 규제가 아니라 현행 파견법 유지로 되어 있고, 셋째, 원청 등 사용사업주의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책임 확대가 아니라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책임 명문화로 되어 있고, 넷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법상 근로자개념의 확대가 아니라 노동3권 보장으로 되어 있다.] 이른바 ‘1년+1년안‘은 사실상 2년까지 기간제고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안으로서,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제한‘이라는 권리입법요구안을 포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 최종안이라는 파견법 현행 유지와 맞물려, 현실에서는 "기간제 2년-파견제 2년-기간제 2년..."으로 비정규직의 확산과 남용을 부추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둘째, 파견제와 관련하여 "파견법 철폐-직업안정법 등 강화를 통한 직접고용 원칙의 확립"이라는 권리입법 요구는 제대로 주장되지 않았고, 현행 파견법 유지에 급급했다. 게다가 ‘파견허용업종 열거‘(포지티브 방식)라는 현행 파견법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허용업종을 노사합의 및 의견수렴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여지마저 주었다.
급기야 한국노총의 ‘이탈(?)‘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의 ‘배신(?)‘으로 공조파기를 선언하긴 했지만, 이미 민주노총의 태도는 국가(정권과 국회)와 자본에 대항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었다. 물론 민주노총 비대위로서는 비리사태 여파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 대중의 사기가 여느 때보다 저하되었다는 것을 이유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조직화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전에 교섭팀이 중심이 되어 양보안을 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국회 투쟁의 문제점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운동이 국회 일정에 따라 좌지우지, 부화뇌동, 일희일비하는 맹목과 악습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말 민주노총은 비정규 관련 법안 국회 일정이 연기된다는 소문이 흘러나오자마자 투쟁을 축소시키면서 다음 국회에서 권리입법 쟁취투쟁을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법안처리를 강행하자 이수호 집행부는 투쟁만으로 비정규법안을 막아낼 수 없으니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5월 초까지 진행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되고 법안 처리가 국회일정상 유보되자 ‘개악법안 완전 폐기‘와 ‘권리 입법 쟁취‘의 문제의식마저 덩달아 연기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주체 형성과 문제의식의 대중적 확장 과정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사정 교섭과 국회일정만 바라보고 있는 사이 결사적으로 투쟁을 진행하고 있던 대오의 투쟁은 오히려 부차화 되었다. 비정규 관련 개악 법안을 저지하고 권리입법을 쟁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노동자 대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면 이런 현상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시작된 총파업, 아니 국회 앞 투쟁의 한계는 명확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협상력 강화를 목표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국회일정에 종속되어 대중동원 중심으로 고착화되고 때때로 강력한 투쟁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 전락한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와 정권에 대한 전면적 반대를 장려하는 전략보다는 원내 협상력의 객관적 한계를 빌미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호소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국회 일정에 따라 연맹·지역·단위사업장 별로 동원 일정을 조정하는 문제로 전락한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헌신적으로 상경집중투쟁을 조직한 노동자대중의 국회 앞 투쟁은 법안 협상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원외‘투쟁으로 격하된다. 결국 노동자 투쟁의 역동성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협상 과정에 종속되기 일쑤고 이는 때때로 국회에서 노동자 투쟁의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에 대해 과대 망상하는 효과를 조장한다.
또 투쟁의 성격 자체가 국회에 상정된 법안을 저지 또는 통과시키는데 한정되다보니 전선의 확장이라는 문제의식이 사장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공통의 사태인식에 근거하여 정치적 단결을 도모해야 할 연대투쟁은 대개 대회 일정을 조율하는 수준에서 급급히 처리되고 소위 시민사회단체와의 공동행보는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하기 위해 실리적으로 선택되곤 한다. 심지어 ‘노동계의 단일한 입장‘을 위해 한국노총과도 무원칙적으로 연대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산별노조 이행 과정에서 노조의 대자본·대정부 협상력 강화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 확대를 목적으로 제기되는 한국노총과의 공동행보는 이번 투쟁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민주노총의 발목을 붙잡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최근 고(故)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투쟁 과정에 노동자 대오가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상황 논리로 치환될 수 없는 우리 운동의 근본적인 반성을 요하는 지점이다. 민생을 파탄낸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거하다 경찰 폭력에 의해 타살 당한 열사를 기리는 투쟁이 어찌 농민들만의 문제겠는가. 오히려 노동의 불안정화로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 대오가, 수많은 비정규열사를 가슴에 묻어야했던 노동자 대오가 적극적으로 열사투쟁을 영유해서 광범위한 민중 연대 투쟁을 제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의 인민주의적 통치와 노동자운동의 위기
1998년 이후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갈지(之) 자‘ 행보에서부터 최근의 ‘사회적 교섭과 투쟁 병행 전략‘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운동 전반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와 자본의 ‘제약‘이라는 부분을 사고하지 못하는 맹목을 공유한다. 환언하면 노동자운동은 개혁세력과 일정한 타협을 통해 개량의 성취가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개별 민족국가가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화폐관리와 노동력관리가 무능력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별 민족국가는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좌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겪는다.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지지하는 국제기구들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런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행정·기술관료들의 영향력도 증가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 의사결정권과 정책적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정당체계 또는 대의제 자체가 식물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기존의 정당은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대신 ‘정책정당‘을 표방하며 중도우파·중도 좌파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최근 열린우리당의 강령 개정안에서 드러난 ‘우향우‘는 단적인 사례다), 이념을 통해 대중의 참여를 조직하지 못하게 된 정당들은 각종 여론 조작적 기제에 호소한다.
이런 정치의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인민주의적인 통치전략이 강화된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인민주의 지도자들은 기존 정치가, 이익집단(노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경제적 엘리트 등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기존 제도의 부패를 일소할 것을 약속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말미암아 민중의 삶의 위기는 심화된다. 아울러 위기에 처한 민중들의 반란을 제거하기 위해 국경과 도시내부의 경계선은 군대와 경찰 폭력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위험계급‘을 방어하기 위해 새로운 전쟁기술이 창안되고 예방전쟁이 정당화되는 한편 사회적 저항을 범죄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민중에 대한 군경의 폭력은 증가 일로에 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수혜를 약속하면서 대중을 실리주의적·지역주의적으로 동원하고 있으며(‘사회통합‘), 각종 위원회를 남발함으로써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동반한다(‘국가의 일부로서 NGO‘). 한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면서 정당의 사당(私黨)화를 꾀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배제하며 노동자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을 일방적으로 종용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이 원인이라며 기존의 노조를 공격하거나 도리어 정규직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노무현 정권 하에서 개량에 집착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기보다는 일부 상층노동자를 포섭하고 대다수 노동대중과 전투적 부위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것은 필연적이다.
혁신 없이 투쟁 없다
이번 투쟁과정에서도 확인되듯이 노동자운동은 겉으로는 ‘정권 퇴진‘이라는 급진적 구호를 선동하면서도 실제로는 국가 및 자본과 교섭하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엄밀히 말하면 민주노총은 전농이 제안한 정권 퇴진 구호를 공식 채택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협상력 부재와 민주노총의 대중동원의 어려움이 줄곧 양보 협상의 알리바이가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며 이는 결국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지체를 표상하면서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지향하는 최소한의 실리도 불가능할 뿐더러 향후 투쟁의 근거조차 남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주어진 일정에 급급해 문제의 원인에 대해 침묵하고 맹목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 아니라 다시 혁신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단지 노조 운동 내부의 정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서는 전반적인 태세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또는 비정규 권리 보장 입법과 같은 법제화 시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 걸친 ‘사회적 노동의 재조직화‘가 수반되어야 하며 이것이 현재의 구조와 체계의 일정한 변혁을 우회하고서는 불가능하다면, 결국 문제의 출발점은 “민생파탄! 살인만행! 노무현 정권 퇴진!”의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정기국회 12월 8일 오전 기간제 사유제한 사유를 종전 4가지에서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확대하는 수정안을 제시하며 막판 합의를 시도했다.
-출산 육아 또는 질병 부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휴직 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그 업무를 대신할 필요가 있는 경우
-학업, 직업훈련 등을 이수함에 따라 그 이수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와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의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수출 주문의 예외적 급증이 발생한 경우
-기업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
-안전조치를 위한 긴급한 작업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밖에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강조는 원안에 제시된 4개 사유-인용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즉각 단병호 의원안을 환영하는 성명을 제출하고 이를 노동계 최종안으로 추인했다.
무원칙적인 협상과 양보교섭의 문제점
그런데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은 당초 원안의 입법취지인 사유제한 원칙을 심각히 훼손한 양보안이다. 가령 수정안은 '수출 주문의 예외적 급증이 발생한 경우', '기업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를 추가조항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자본이 시장상황(경기변동, 주문량 변화)에 따라 노동력을 신축화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사유제한의 예외를 확대해서라도 사유제한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양보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쳐 원안의 문제의식이 사장될 위험이 크다. 원내 역관계의 열세를 이유로 비정규직 철폐는 고사하고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라는 당초 입장에서도 대폭 후퇴, 개악의 수준을 둘러싼 수세적 협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양보안이 수용될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현재까지 진행된 노사교섭·원내협상 과정은 비정규 권리 입법으로 정식화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입장을 사실상 방기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요청으로 이목희 의원이 주선(!)한 11월 노사대표자회의 교섭을 진행하면서 당초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안을 제시하면서까지 ‘노동계 안‘에 집착했다. 국회 일정에 앞서 11월 30일까지 진행된 노사대표자 교섭 과정에서 이미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기간제와 파견제와 관련 대폭 후퇴된 안을 제출한바 있다. [첫째, 기간제와 관련하여 ‘사용사유 제한‘ 및 최장 1년까지 ‘사용기간 제한‘이 아니라 ‘1년+1년‘으로 되어 있고, 둘째, 파견법 철폐 및 직업안정법을 통한 간접고용 규제가 아니라 현행 파견법 유지로 되어 있고, 셋째, 원청 등 사용사업주의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책임 확대가 아니라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책임 명문화로 되어 있고, 넷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법상 근로자개념의 확대가 아니라 노동3권 보장으로 되어 있다.] 이른바 ‘1년+1년안‘은 사실상 2년까지 기간제고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안으로서,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제한‘이라는 권리입법요구안을 포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 최종안이라는 파견법 현행 유지와 맞물려, 현실에서는 "기간제 2년-파견제 2년-기간제 2년..."으로 비정규직의 확산과 남용을 부추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둘째, 파견제와 관련하여 "파견법 철폐-직업안정법 등 강화를 통한 직접고용 원칙의 확립"이라는 권리입법 요구는 제대로 주장되지 않았고, 현행 파견법 유지에 급급했다. 게다가 ‘파견허용업종 열거‘(포지티브 방식)라는 현행 파견법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허용업종을 노사합의 및 의견수렴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여지마저 주었다.
급기야 한국노총의 ‘이탈(?)‘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의 ‘배신(?)‘으로 공조파기를 선언하긴 했지만, 이미 민주노총의 태도는 국가(정권과 국회)와 자본에 대항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었다. 물론 민주노총 비대위로서는 비리사태 여파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 대중의 사기가 여느 때보다 저하되었다는 것을 이유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조직화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전에 교섭팀이 중심이 되어 양보안을 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국회 투쟁의 문제점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운동이 국회 일정에 따라 좌지우지, 부화뇌동, 일희일비하는 맹목과 악습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말 민주노총은 비정규 관련 법안 국회 일정이 연기된다는 소문이 흘러나오자마자 투쟁을 축소시키면서 다음 국회에서 권리입법 쟁취투쟁을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법안처리를 강행하자 이수호 집행부는 투쟁만으로 비정규법안을 막아낼 수 없으니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5월 초까지 진행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되고 법안 처리가 국회일정상 유보되자 ‘개악법안 완전 폐기‘와 ‘권리 입법 쟁취‘의 문제의식마저 덩달아 연기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주체 형성과 문제의식의 대중적 확장 과정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사정 교섭과 국회일정만 바라보고 있는 사이 결사적으로 투쟁을 진행하고 있던 대오의 투쟁은 오히려 부차화 되었다. 비정규 관련 개악 법안을 저지하고 권리입법을 쟁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노동자 대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면 이런 현상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시작된 총파업, 아니 국회 앞 투쟁의 한계는 명확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협상력 강화를 목표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국회일정에 종속되어 대중동원 중심으로 고착화되고 때때로 강력한 투쟁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 전락한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와 정권에 대한 전면적 반대를 장려하는 전략보다는 원내 협상력의 객관적 한계를 빌미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호소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국회 일정에 따라 연맹·지역·단위사업장 별로 동원 일정을 조정하는 문제로 전락한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헌신적으로 상경집중투쟁을 조직한 노동자대중의 국회 앞 투쟁은 법안 협상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원외‘투쟁으로 격하된다. 결국 노동자 투쟁의 역동성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협상 과정에 종속되기 일쑤고 이는 때때로 국회에서 노동자 투쟁의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에 대해 과대 망상하는 효과를 조장한다.
또 투쟁의 성격 자체가 국회에 상정된 법안을 저지 또는 통과시키는데 한정되다보니 전선의 확장이라는 문제의식이 사장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공통의 사태인식에 근거하여 정치적 단결을 도모해야 할 연대투쟁은 대개 대회 일정을 조율하는 수준에서 급급히 처리되고 소위 시민사회단체와의 공동행보는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하기 위해 실리적으로 선택되곤 한다. 심지어 ‘노동계의 단일한 입장‘을 위해 한국노총과도 무원칙적으로 연대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산별노조 이행 과정에서 노조의 대자본·대정부 협상력 강화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 확대를 목적으로 제기되는 한국노총과의 공동행보는 이번 투쟁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민주노총의 발목을 붙잡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최근 고(故)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투쟁 과정에 노동자 대오가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상황 논리로 치환될 수 없는 우리 운동의 근본적인 반성을 요하는 지점이다. 민생을 파탄낸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거하다 경찰 폭력에 의해 타살 당한 열사를 기리는 투쟁이 어찌 농민들만의 문제겠는가. 오히려 노동의 불안정화로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 대오가, 수많은 비정규열사를 가슴에 묻어야했던 노동자 대오가 적극적으로 열사투쟁을 영유해서 광범위한 민중 연대 투쟁을 제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의 인민주의적 통치와 노동자운동의 위기
1998년 이후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갈지(之) 자‘ 행보에서부터 최근의 ‘사회적 교섭과 투쟁 병행 전략‘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운동 전반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와 자본의 ‘제약‘이라는 부분을 사고하지 못하는 맹목을 공유한다. 환언하면 노동자운동은 개혁세력과 일정한 타협을 통해 개량의 성취가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개별 민족국가가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화폐관리와 노동력관리가 무능력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별 민족국가는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좌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겪는다.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지지하는 국제기구들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런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행정·기술관료들의 영향력도 증가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 의사결정권과 정책적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정당체계 또는 대의제 자체가 식물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기존의 정당은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대신 ‘정책정당‘을 표방하며 중도우파·중도 좌파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최근 열린우리당의 강령 개정안에서 드러난 ‘우향우‘는 단적인 사례다), 이념을 통해 대중의 참여를 조직하지 못하게 된 정당들은 각종 여론 조작적 기제에 호소한다.
이런 정치의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인민주의적인 통치전략이 강화된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인민주의 지도자들은 기존 정치가, 이익집단(노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경제적 엘리트 등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기존 제도의 부패를 일소할 것을 약속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말미암아 민중의 삶의 위기는 심화된다. 아울러 위기에 처한 민중들의 반란을 제거하기 위해 국경과 도시내부의 경계선은 군대와 경찰 폭력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위험계급‘을 방어하기 위해 새로운 전쟁기술이 창안되고 예방전쟁이 정당화되는 한편 사회적 저항을 범죄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민중에 대한 군경의 폭력은 증가 일로에 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수혜를 약속하면서 대중을 실리주의적·지역주의적으로 동원하고 있으며(‘사회통합‘), 각종 위원회를 남발함으로써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동반한다(‘국가의 일부로서 NGO‘). 한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면서 정당의 사당(私黨)화를 꾀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배제하며 노동자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을 일방적으로 종용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이 원인이라며 기존의 노조를 공격하거나 도리어 정규직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노무현 정권 하에서 개량에 집착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기보다는 일부 상층노동자를 포섭하고 대다수 노동대중과 전투적 부위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것은 필연적이다.
혁신 없이 투쟁 없다
이번 투쟁과정에서도 확인되듯이 노동자운동은 겉으로는 ‘정권 퇴진‘이라는 급진적 구호를 선동하면서도 실제로는 국가 및 자본과 교섭하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엄밀히 말하면 민주노총은 전농이 제안한 정권 퇴진 구호를 공식 채택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협상력 부재와 민주노총의 대중동원의 어려움이 줄곧 양보 협상의 알리바이가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며 이는 결국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지체를 표상하면서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지향하는 최소한의 실리도 불가능할 뿐더러 향후 투쟁의 근거조차 남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주어진 일정에 급급해 문제의 원인에 대해 침묵하고 맹목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 아니라 다시 혁신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단지 노조 운동 내부의 정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서는 전반적인 태세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또는 비정규 권리 보장 입법과 같은 법제화 시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 걸친 ‘사회적 노동의 재조직화‘가 수반되어야 하며 이것이 현재의 구조와 체계의 일정한 변혁을 우회하고서는 불가능하다면, 결국 문제의 출발점은 “민생파탄! 살인만행! 노무현 정권 퇴진!”의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