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8호 | 2000.04.25

기획 연재 4 - 실업 노동자 조직화의 관점과 계획

편집부
(편집자주) 정부와 자본은 대량실업과 구조적 실업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마치 지나간 과거의 일인 것처럼 은근슬쩍 넘겨버릴려고 한다. 이에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화두이자 고민지점인 실업문제에 대해 '사회진보연대 실업운동정책모임'에서 4차례에 걸쳐 기획시리즈를 연재할 예정이다.
실업은 어제의 문제가 아닌 오늘 우리의 문제이며, 이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대중적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내일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기획연재 4>
실업 노동자 조직화의 관점과 계획

1998-1999년 사회적 주목을 끌던 대량실업의 문제가 수치상의 실업률 하락과 함께 정치적 논의의 대상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러한 표면적 양상 이면에, 실업을 유지·강화시키고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키는 사회적 구조 변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게다가 미봉적인 방식으로 실업률을 억제해오던 정부의 2000년 실업대책이 대부분 총선 이전에 집중됨으로 인해, 향후 실업의 확산과 실업노동자의 고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지속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및 비정규화, 공공근로의 축소 및 폐지, 자활보호 대상자의 특별생계비 지급 중단, 파견노동자의 파견기간 종결 등과 같은 요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관리주의적' 조직화 논리의 한계
정부는 실업에 대한 근원적 대책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벤쳐 창업 지원, 지식기반 산업 중심의 직업훈련 등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대책은 불안정 노동의 확산으로 실업을 해결하거나 혹은 '지식'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허무맹랑한 대책에 불과하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대책 아닌 대책이 낳을 빈곤의 확산과 사회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른바 '생산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실업관리 정책은 보편적 복지권, 즉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사회적 복지라는 원리와는 상충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선별적 시혜의 원리에 기반해서, 실업 노동대중을 분할하고 관리하는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배제와 포섭'의 논리를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 민간실업운동단체들이 정부의 실업노동자 관리 정책의 '민간 전달자'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할도 수월한 것이 아니며, 언제나 정부와의 일정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그 본질적 성격만을 보자면, 정부와 일선 현장 사이의 갈등과 질적인 차이가 없다. 즉, '관리주의'는 언제나 정부와 민간단체 사이의 정책과 재원동원을 둘러싼 '갈등 속의 협력', '협력 속의 갈등'을 통해서 관철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의 기본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정부와의 교섭 ▶ 실업자 관리 기금 및 독점적 교섭권 확보 ▶ 구제사업을 통한 실업자 조직화 + 네트워크확보와 전달체계 효율화 ▶ 정부와의 교섭 및 압력행사(로비 등) ▶ 더 많은 기금과 교섭권 확보". 이러한 '더 많은 교섭을 통한 더 많은 조직화'라는 외형적 호순환은 기실 다단계 판매가 전국민을 피라미드로 조직할 수 없는 것처럼 내적 한계를 가진다. 기실 이러한 시각은 실업운동이 결국 계급적, 대중적 세력관계의 문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논리는 '실업'을 제거하지 못하고, 빈곤의 재생산과 악순환으로부터 빈곤층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실업노동자는 언제나 최소생계만 유지하면 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기존의 실업 운동이 실업 노동자 대중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를 통한 재정확충' 중심의 '어설픈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는 이러한 한계를 더욱 부추기면서, 실업 운동 단체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실업노동자 조직화의 관점
우리가 주장하는 실업노동자의 사회운동은 "실업"의 원인을 제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노동의 권리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직화의 첫 번째 원칙으로 실업노동대중의 자주성에 근거한 대중 투쟁과 그를 통한 연대의 확장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실업노동대중운동의 특수성과 결합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노동운동과 달리 기초적 조직화를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업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정서적 안정감'과 '피해의식의 극복'을 위한 상담 및 토론 -- 그것은 결국 실업이 개인의 무능이나 실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고 권리의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을 필요로 한다. 둘째, 실업 노동자의 생계를 최소한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적 조직화는 '생계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업 제거'를 위한 대중적 운동의 토대 구축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보편적 복지권에 입각해서 실업대중의 자주적 요구를 모아 나가는 과정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직화의 관점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초적 조직화 ▶ 자주적 요구에 기반한 대중투쟁 ▶ 연대투쟁 속에서 자주성과 연대성의 고양 ▶ 활동 및 조직화 조건 확장과 정치적 요구 확장 ▶ 대중투쟁"의 도식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와의 교섭이나 이를 통한 재원확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교섭이나 양보가 활동의 목적은 아니며, 대중운동에 근거해서 활용가능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조직화의 관점을 가질 때, 실업운동은 하나의 사회운동이 될 수 있다.

사회운동을 향하여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실업 운동은 이제 하나의 기로에 서 있다. 하반기에 예정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기존 실업운동의 존립근거를 상당 부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 운동은 기존의 활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기존 운동의 성과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실업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조직화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운동이 나름의 모범과 전형을 낳으면서 미약하나마 안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계는 이러한 조직적 틀이 부분적으로 '실업 노동자에 대한 관리'의 양상과 단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문제는 어떻게 조직화의 성과를 보다 자주적인 사회운동으로 전화시켜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운동이 보다 적극적인 대중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지난해의 기초적 조직화에 근거해서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대중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특히 노동운동 진영의 5월 투쟁이 이러한 요구들과 결합될 수 있기 위해, 민주노총과 여타 실업노동자 운동 조직들이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현재 축소되고 있는 '공공근로축소'에 반대하는 투쟁의 고리를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적 투쟁은 '실업 노동자의 자주적 권리'를 인정받고 자주적인 조직 건설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실업 운동이 사회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부문적 요구'를 넘어 전사회적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그 중 핵심적인 문제는 '자본의 금융화'라 할 수 있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의 투기적 축적은 불안정 노동과 실업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해외 금융자본에 대한 예속과 전사회적 불평등과 기생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실업운동은 '일자리 창출'의 요구를 금융화에 대한 반대와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금융소득 과세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은 그러한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으로서 실업운동이 전사회적인 핵심적 쟁점에 대한 투쟁을 통해 전국민적 지지와 정당성을 획득하는 작업이다.

실업 문제는 '일자리'의 문제
누구나 공감하듯이, 실업의 문제는 결국 '일자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 처방은 사뭇 다르다. 정부는 향후에 더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고 공언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벤쳐 창업', '지식기반 산업'과 '전체근로자의 지식근로자화'를 통해 실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도 크지 않으며, 그나마 창출되는 일자리도 불안정한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조업 일자리 자체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붐과 같이 금융화를 통한 부의 축적이 자본재생산에 핵심에 놓여지면서 제조업 일자리 자체가 지속적으로 압박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화는 사회적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의 원인인 것이다. 둘째, 제조업의 일자리 압박 속에서 일련의 비생산적 서비스 부문이 증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안정적인 고용관행이 존재하지 않으며, 게다가 많은 경우 인격적인 종속을 그 특징으로 한다. 셋째, 임금이나 노동조건에서 더욱 악화된 일자리들이 전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나마도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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