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학생 연대
프랑스의 반 CPE투쟁
우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
2월 7일 40만에 이르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한 달이 넘게 프랑스 전역이 노동자, 학생시위로 들끓고 있다. 사안의 핵심은 우파정부인 드빌팽 내각이 ‘CPE’라 불리는 새로운 고용계약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CPE는 불어로 ‘Contrat Premiere Embauche’의 약자로서 ‘최초고용계약’을 의미한다. 그 내용은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최초 고용 2년간 특별한 사유나 설명 없이도 노동자를 자유로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6일 이 법안이 발의되자 이 법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대학생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며 대학생들의 시위에 노동자들이 동조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월 7일 시위에는 프랑스 전국 주요 도시에서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3월 8일에는 학생들이 68혁명의 상징인 파리 소르본 대학을 점거했고, 전국 84개 대학 가운데 60여개 대학 이상에서 동맹휴업이나 점거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3월 13일, 3월 16일에도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고 거리에서는 공화국기동대(CRS)가 최루탄과 물대포, 곤봉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번 시위에는 고등학생들까지 대거 가세하고 있다.
3월 18일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노동계, 학부모, 야당까지 결집하여 전국적으로 150만, 파리에서 35만이 참여한 시위가 전개되었고 시위조직들은 48시간 안에 CPE를 철회하라는 최후통첩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는 3월 28일로 파업을 선언했다. 시위대들은 “우리는 크리넥스(휴지)가 아니다”, “CPE는 착취와 불안정 계약”, “시라크와 드빌팽은 끝났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CPE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CPE가 실시되면 사용자들이 언제든지 청년노동자들을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23일에는 시위가 더욱 격렬해져 곳곳이 불에 탔으며 일부 지역은 치안불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사태의 원인
이번 시위와 파업사태가 CPE 도입을 계기로 촉발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파 정부 하에서 이제까지 계속되어 온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자 권리에 대한 공격, 사회보장의 후퇴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자.
첫째,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다. 프랑스는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해 왔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해서 2006년 1월 9.6%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 4월 이후 조금씩 하락하던 실업률이 올해 1월 다시 반등되어서 드빌팽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실효성 자체도 의문시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더욱 심각해서 18살~25살 사이의 실업률은 23%에 이르며, 빈곤지역의 청년실업률은 40~50%에 달한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에 프랑스 전역을 불태웠던 이민자 2세들의 반란도 인종차별과 실업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 소요사태였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불만이 높은 터에 청년고용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조치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둘째, 정부가 노동 불안정화를 불러올 조치들을 연이어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CPE 도입은 드빌팽 총리가 계획하는 3단계 실업대책의 두 번째라고 한다. 이미 작년에 그 첫 조치로서 20인 미만 기업에 대해 신규 직원을 2년간 수습을 거쳐 고용할 수 있게 하는 CNE(신고용계약)이 도입되었다. 이는 CPE와 같은 내용이다. 다음 조치는 올해 내에 고용계약 체계 전반을 개편하는 것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고용계약(CDI)과 기간을 정한 고용계약(CDD)를 합쳐서 유연한 단일 고용계약 체계 만든다는 계획이다. 노동계가 들고 일어난 이유도 CPE가 나중에는 청년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셋째, 우파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인민의 사회적 권리를 계속 공격하는 것이다. 예컨대 1994년 청년층의 최저임금안을 삭감하는 최저임금안(CIP) 추진은 수십 만 학생시위로 좌절되었다. 2003년에는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에 대해 납입기간을 늘리고 수급액수를 낮추는 연금개악을 추진하여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2004년에는 교육장관이 대학재정 자율화 계획을 추진하다가 학생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계획이 무산되었다. 2005년에는 주35시간근로제의 조건이 완화됐고 연장근로 허용도 연 180시간에서 220시간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공공부문 사유화 추진 역시 계속적인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는 최근 2005년 5월의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 부결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유럽연합 헌법조약을 부결시키기 위한 캠페인에 아탁을 비롯한 사회운동, 여성운동, 프랑스공산당,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 노동총동맹(CGT) 등이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2007년 대선을 앞둔 드빌팽 총리가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CPE를 추진한 것도 반발을 확대시킨 요인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만들면 수치상의 실업률이 내려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헌법상의 조항을 이용하여 하원에서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경제 불황 상태가 초래한 사회적 위기와 불안, 이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프랑스의 봉기적 전통과 맞물려 68년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와 파업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위한 진통인가, 신자유주의의 실패인가
프랑스 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좁게 보면 CPE법안에 대한 반대투쟁이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우파정부에 대한 반대투쟁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각국 정부나 기업, 우파 정치세력들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한편에서는 덴마크 사례를 들며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많은 금전적 보상을 주는 소위 ‘유연안정성(flexecurity)’을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계와 학생, 좌파 정치세력들은 “고용불안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없고 CPE는 오히려 고용불안을 가중시켜 노동자 보호를 약화시키고 결국 실업률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청년실업, 공적 사회서비스 후퇴, 노동 불안정화 등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추가 보수 없이 노동시간을 38.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려는 정부에 맞서 공공노조(Ver.di)가 6주간 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자본의 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불러온 재앙이자, 전체 민중의 권리와 삶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노동자 착취에 기반하여 거대한 부를 금융자산가 계급으로 이전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 체제의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2005년 한 해 프랑스 다국적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이 840억 유로나 되는데, CPE를 도입하는 것은 더 큰 이익을 기업들에게 안겨주려는 정치인들의 사기”라는 어느 프랑스 학생의 말에서 이러한 분노를 읽을 수 있다. 덴마크 사례도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엄청난 재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적은 인구, 비교적 안정된 사회상황 등 사회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힘들다. 또한 이는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유연성과 안정성 사이의 줄타기일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가능성 여부가 의문시된다. 따라서 반CPE 투쟁은 보수 세력들이 얘기하는 ‘개혁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명백히 신자유의의 실패를 나타내는 것이다.
소수 기득권 지키기인가, 다수 민중의 요구인가
또한 이번 사태는 종종 68혁명과 비교된다. 대규모 학생시위로 불붙은 전 국민적인 투쟁, 소르본 대학 점거 등은 68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보수언론에서는 68혁명이 긍정적이고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시위는 부정적이고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68혁명을 왜곡하여 현재 시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는데 이용한다. 예컨대 독일 <슈피겔>은 “68혁명은 기득권과 구질서에 맞서 싸운 것인데 지금은 기득권을 보호해 달라며 싸우고 있다”고 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68세대는 부모세대의 자기만족에 도전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려한 반면, 지금 학생들은 특권을 즐기기 위해 현상유지를 원한다.”면서 프랑스의 투쟁을 애써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 선동은 프랑스 투쟁의 의미를 축소시켜 투쟁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68혁명이 자본주의 기성체제에 대한 반란이었듯이 현재 프랑스의 투쟁 역시 더 나은 삶과 권리를 위해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며, 자본과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다수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CPE에 대한 반대 여론이 2/3를 넘는 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프랑스 시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프랑스 정부도 노동유연성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국내에서도 비정규직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하고, 민주노총 파업 예고도 시대착오라고 경고한다. 프랑스 사태의 원인은 복지병폐, 고용 과보호라며 노조가 기득권을 고수하는 것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보수언론의 공격 역시, CPE와 유사한 비정규직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투쟁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간취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것이고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대해 프랑스처럼 강력한 대중저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CPE 투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지난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비정규 법안은 신자유주의 자본과 정치세력들이 1천5백만 전체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노동자 학살법안’이다. 기간제(계약제)는 사용사유 제한이 없어 모든 업종에서 전면 자유화되고 2년 이내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파견노동은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도 추가하여 정부가 자의적으로 파견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게 하였으며, 파견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용의무만을 규정하여 사용자가 과태료만 내고 끝날 수 있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러한 악법이 통과된다면 사용자는 2년 내에서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쓰다가 버리는 권리를 갖게 되고, 노동자는 2년을 주기로 무한정 착취당하는 노예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CPE 역시 최초 고용 2년 내에 해고를 자유화하는 것이어서 국내의 기간제법과 유사하다. 오히려 기간제법은 연령제한이 없어서 CPE에 비해 훨씬 더 기간제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사용 사유제한’이 이미 시행 중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소위 ‘비정규보호법’은 CPE에 비할 수 없는 악법이며 프랑스보다 더한 투쟁이 벌어져서 심판받아 마땅하다.
프랑스 반CPE 투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전체 노동자, 미래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전 국민들에게 노예로서 살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과 저항이 가능하고,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모든 민중이 연대하여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권이나 제도 세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투쟁으로 나서고 행동으로 요구를 말하는 것이 정치적인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다.
향후 전망
“100만이 부족하면 200만을 모으겠다.”는 프랑스 학생 대표의 말처럼, 노동계 파업투쟁과 연대하는 3월 28일은 이전보다 훨씬 대규모 투쟁이 전개되었다. 70여개 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지속되고 있고 1,000여개 고등학교에서 행동이 진행되었다. ‘검은 화요일(마르디 누아르)’라 불린 3월 28일 파업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파업에 나서 500만 명이 참여했다고 노동계는 밝혔다. 주요 교통수단이 정지되었고, 관공서와 병원이 문을 닫는 등 국가기능 마비사태가 발생하였으며 파리를 비롯한 200여개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노학연대 시위가 개최되었다. 이번 파업이 ‘총파업’은 아니었다고 하는 바, 이후 파업사태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다급해진 드빌팽 총리가 대화를 하자고 나섰지만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CPE를 철회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저항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우파정부가 결정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은 30일에 기차역과 주요 도로를 점거하겠다고 밝혔으며 4월 4일에도 시위를 벌이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완전한 CPE 철회와 승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동자 총파업이 관건이며 거리시위와 대학점거가 파업과 결합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2월 7일 40만에 이르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한 달이 넘게 프랑스 전역이 노동자, 학생시위로 들끓고 있다. 사안의 핵심은 우파정부인 드빌팽 내각이 ‘CPE’라 불리는 새로운 고용계약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CPE는 불어로 ‘Contrat Premiere Embauche’의 약자로서 ‘최초고용계약’을 의미한다. 그 내용은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최초 고용 2년간 특별한 사유나 설명 없이도 노동자를 자유로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6일 이 법안이 발의되자 이 법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대학생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며 대학생들의 시위에 노동자들이 동조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월 7일 시위에는 프랑스 전국 주요 도시에서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3월 8일에는 학생들이 68혁명의 상징인 파리 소르본 대학을 점거했고, 전국 84개 대학 가운데 60여개 대학 이상에서 동맹휴업이나 점거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3월 13일, 3월 16일에도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고 거리에서는 공화국기동대(CRS)가 최루탄과 물대포, 곤봉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번 시위에는 고등학생들까지 대거 가세하고 있다.
3월 18일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노동계, 학부모, 야당까지 결집하여 전국적으로 150만, 파리에서 35만이 참여한 시위가 전개되었고 시위조직들은 48시간 안에 CPE를 철회하라는 최후통첩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는 3월 28일로 파업을 선언했다. 시위대들은 “우리는 크리넥스(휴지)가 아니다”, “CPE는 착취와 불안정 계약”, “시라크와 드빌팽은 끝났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CPE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CPE가 실시되면 사용자들이 언제든지 청년노동자들을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23일에는 시위가 더욱 격렬해져 곳곳이 불에 탔으며 일부 지역은 치안불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사태의 원인
이번 시위와 파업사태가 CPE 도입을 계기로 촉발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파 정부 하에서 이제까지 계속되어 온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자 권리에 대한 공격, 사회보장의 후퇴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자.
첫째,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다. 프랑스는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해 왔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해서 2006년 1월 9.6%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 4월 이후 조금씩 하락하던 실업률이 올해 1월 다시 반등되어서 드빌팽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실효성 자체도 의문시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더욱 심각해서 18살~25살 사이의 실업률은 23%에 이르며, 빈곤지역의 청년실업률은 40~50%에 달한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에 프랑스 전역을 불태웠던 이민자 2세들의 반란도 인종차별과 실업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 소요사태였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불만이 높은 터에 청년고용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조치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둘째, 정부가 노동 불안정화를 불러올 조치들을 연이어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CPE 도입은 드빌팽 총리가 계획하는 3단계 실업대책의 두 번째라고 한다. 이미 작년에 그 첫 조치로서 20인 미만 기업에 대해 신규 직원을 2년간 수습을 거쳐 고용할 수 있게 하는 CNE(신고용계약)이 도입되었다. 이는 CPE와 같은 내용이다. 다음 조치는 올해 내에 고용계약 체계 전반을 개편하는 것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고용계약(CDI)과 기간을 정한 고용계약(CDD)를 합쳐서 유연한 단일 고용계약 체계 만든다는 계획이다. 노동계가 들고 일어난 이유도 CPE가 나중에는 청년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셋째, 우파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인민의 사회적 권리를 계속 공격하는 것이다. 예컨대 1994년 청년층의 최저임금안을 삭감하는 최저임금안(CIP) 추진은 수십 만 학생시위로 좌절되었다. 2003년에는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에 대해 납입기간을 늘리고 수급액수를 낮추는 연금개악을 추진하여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2004년에는 교육장관이 대학재정 자율화 계획을 추진하다가 학생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계획이 무산되었다. 2005년에는 주35시간근로제의 조건이 완화됐고 연장근로 허용도 연 180시간에서 220시간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공공부문 사유화 추진 역시 계속적인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는 최근 2005년 5월의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 부결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유럽연합 헌법조약을 부결시키기 위한 캠페인에 아탁을 비롯한 사회운동, 여성운동, 프랑스공산당,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 노동총동맹(CGT) 등이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2007년 대선을 앞둔 드빌팽 총리가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CPE를 추진한 것도 반발을 확대시킨 요인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만들면 수치상의 실업률이 내려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헌법상의 조항을 이용하여 하원에서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경제 불황 상태가 초래한 사회적 위기와 불안, 이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프랑스의 봉기적 전통과 맞물려 68년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와 파업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위한 진통인가, 신자유주의의 실패인가
프랑스 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좁게 보면 CPE법안에 대한 반대투쟁이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우파정부에 대한 반대투쟁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각국 정부나 기업, 우파 정치세력들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한편에서는 덴마크 사례를 들며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많은 금전적 보상을 주는 소위 ‘유연안정성(flexecurity)’을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계와 학생, 좌파 정치세력들은 “고용불안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없고 CPE는 오히려 고용불안을 가중시켜 노동자 보호를 약화시키고 결국 실업률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청년실업, 공적 사회서비스 후퇴, 노동 불안정화 등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추가 보수 없이 노동시간을 38.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려는 정부에 맞서 공공노조(Ver.di)가 6주간 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자본의 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불러온 재앙이자, 전체 민중의 권리와 삶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노동자 착취에 기반하여 거대한 부를 금융자산가 계급으로 이전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 체제의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2005년 한 해 프랑스 다국적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이 840억 유로나 되는데, CPE를 도입하는 것은 더 큰 이익을 기업들에게 안겨주려는 정치인들의 사기”라는 어느 프랑스 학생의 말에서 이러한 분노를 읽을 수 있다. 덴마크 사례도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엄청난 재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적은 인구, 비교적 안정된 사회상황 등 사회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힘들다. 또한 이는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유연성과 안정성 사이의 줄타기일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가능성 여부가 의문시된다. 따라서 반CPE 투쟁은 보수 세력들이 얘기하는 ‘개혁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명백히 신자유의의 실패를 나타내는 것이다.
소수 기득권 지키기인가, 다수 민중의 요구인가
또한 이번 사태는 종종 68혁명과 비교된다. 대규모 학생시위로 불붙은 전 국민적인 투쟁, 소르본 대학 점거 등은 68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보수언론에서는 68혁명이 긍정적이고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시위는 부정적이고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68혁명을 왜곡하여 현재 시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는데 이용한다. 예컨대 독일 <슈피겔>은 “68혁명은 기득권과 구질서에 맞서 싸운 것인데 지금은 기득권을 보호해 달라며 싸우고 있다”고 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68세대는 부모세대의 자기만족에 도전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려한 반면, 지금 학생들은 특권을 즐기기 위해 현상유지를 원한다.”면서 프랑스의 투쟁을 애써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 선동은 프랑스 투쟁의 의미를 축소시켜 투쟁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68혁명이 자본주의 기성체제에 대한 반란이었듯이 현재 프랑스의 투쟁 역시 더 나은 삶과 권리를 위해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며, 자본과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다수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CPE에 대한 반대 여론이 2/3를 넘는 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프랑스 시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프랑스 정부도 노동유연성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국내에서도 비정규직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하고, 민주노총 파업 예고도 시대착오라고 경고한다. 프랑스 사태의 원인은 복지병폐, 고용 과보호라며 노조가 기득권을 고수하는 것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보수언론의 공격 역시, CPE와 유사한 비정규직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투쟁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간취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것이고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대해 프랑스처럼 강력한 대중저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CPE 투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지난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비정규 법안은 신자유주의 자본과 정치세력들이 1천5백만 전체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노동자 학살법안’이다. 기간제(계약제)는 사용사유 제한이 없어 모든 업종에서 전면 자유화되고 2년 이내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파견노동은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도 추가하여 정부가 자의적으로 파견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게 하였으며, 파견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용의무만을 규정하여 사용자가 과태료만 내고 끝날 수 있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러한 악법이 통과된다면 사용자는 2년 내에서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쓰다가 버리는 권리를 갖게 되고, 노동자는 2년을 주기로 무한정 착취당하는 노예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CPE 역시 최초 고용 2년 내에 해고를 자유화하는 것이어서 국내의 기간제법과 유사하다. 오히려 기간제법은 연령제한이 없어서 CPE에 비해 훨씬 더 기간제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사용 사유제한’이 이미 시행 중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소위 ‘비정규보호법’은 CPE에 비할 수 없는 악법이며 프랑스보다 더한 투쟁이 벌어져서 심판받아 마땅하다.
프랑스 반CPE 투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전체 노동자, 미래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전 국민들에게 노예로서 살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과 저항이 가능하고,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모든 민중이 연대하여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권이나 제도 세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투쟁으로 나서고 행동으로 요구를 말하는 것이 정치적인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다.
향후 전망
“100만이 부족하면 200만을 모으겠다.”는 프랑스 학생 대표의 말처럼, 노동계 파업투쟁과 연대하는 3월 28일은 이전보다 훨씬 대규모 투쟁이 전개되었다. 70여개 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지속되고 있고 1,000여개 고등학교에서 행동이 진행되었다. ‘검은 화요일(마르디 누아르)’라 불린 3월 28일 파업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파업에 나서 500만 명이 참여했다고 노동계는 밝혔다. 주요 교통수단이 정지되었고, 관공서와 병원이 문을 닫는 등 국가기능 마비사태가 발생하였으며 파리를 비롯한 200여개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노학연대 시위가 개최되었다. 이번 파업이 ‘총파업’은 아니었다고 하는 바, 이후 파업사태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다급해진 드빌팽 총리가 대화를 하자고 나섰지만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CPE를 철회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저항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우파정부가 결정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은 30일에 기차역과 주요 도로를 점거하겠다고 밝혔으며 4월 4일에도 시위를 벌이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완전한 CPE 철회와 승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동자 총파업이 관건이며 거리시위와 대학점거가 파업과 결합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