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12호 | 2006.05.26

최저임금투쟁,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저임금-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2006년 최저임금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 시대, 최저임금투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최저임금이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고, 운동주체들이 최저임금투쟁의 필요성에 대해 각인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최저임금투쟁은 최저임금을 사실상 자신의 최고임금으로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저임금이 일반화되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후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자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의 소득수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이 최저임금투쟁 촉발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이 저임금 노동자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조직화 노력을 기울인 것도 최저임금투쟁의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최저임금투쟁은 시작단계에서부터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이라는 의미가 강조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임금인상 투쟁은 경우에 따라 전통적 의미의 임금인상 투쟁이 가지는 의미를 훨씬 초과한다.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노동유연화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노동자 일반의 생존권 보장투쟁이라는 의미가 있다. 나아가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절박한 요구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노동자의 삶에 미친 파괴적 효과들을 적극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투쟁이다.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최저임금투쟁이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최저임금투쟁의 소극적 의미로서 노동자들의 생존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제기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공동 임금인상 투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투쟁의 적극적 의미로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촉진하고 빈곤을 구조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저임금-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현실화라는 당면 목표는 불안정 노동과 빈곤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를 철폐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이기에 우리에게 최저임금투쟁을 점차 저임금-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이라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가 지속적으로 부여될 수밖에 없다.

2005년 최저임금현실화 집회에 참가한 청소용역 노동자. 2005년 최저임금위원회는 2005년 9월 부터 12월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으로 시급 3100원, 9.2% 인상률을 결정했다. 이는 40시간 기준 월 647,900원, 44시간 기준 월 700,600원이다.
[출처: <참세상>]


저임금 노동자에게 대안이 될 수 없는 최저임금제도

한국에서 최저임금제도는 1960년대 이후부터 국회에서 여러 차례 최저임금의 법제화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국제경쟁력의 약화와 고용증대에 대한 악영향을 이유로 미뤄지다가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어 1988년부터 시행되었다. 최저임금제도는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가가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임금의 최저선을 법-제도적 강제를 통해 확보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에 대해 고려할 때는 제도 자체의 존재 여부나 원칙적인 기능보다는 그 제도가 실제로 확보하는 수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즉 매년 결정되는 법정 최저임금의 수준이 노동자들의 생계를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인지, 법정 최저임금이 모든 저임금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적용대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은 노-사가 참여하는 임금위원회 방식이고, 법정 최저임금의 수준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1년 단위로 산정하도록 최저임금법에 정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위원 각 9인,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 있어서는 노·사위원이 동수인 관계로 노동부가 추천하여 대통령이 위촉하는 공익위원이 실질적 결정권한을 행사한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지표는 최저임금법에 명시되어 있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및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최저임금법 4조 1항)이지만, 현실에서는 인상률에 대한 공익위원들의 ‘정치적 고려’가 실질적인 결정 기준으로 기능하고, 이 같은 준거지표들은 사장된다. 뿐만 아니라 공익위원들은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드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법정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노동자의 생계수준과 관련된 지표들보다는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중소·영세기업의 경영부담으로 인한 경기침체나 고용의 감소가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결과로 강조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정부의 정책적 지향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최저임금의 시장적 성격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과정에서 경제성장률, 고용에 미치는 영향, 소득분배율 등을 최저임금 준거지표에 추가하려고 했는데. 이는 최저임금의 시장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이 같은 조건들 속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법정 최저임금의 인상률이 결정되어 왔다. 최저임금 수준을 생계비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통계청의 실태생계비와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의 29세 이하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2004년 기준 최저임금은 전 가구 생계비 대비 21.1%, 단신 가구 생계비 대비 51.2%에 그치고 있다. 최저임금의 절대수준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매년 최저임금의 인상률이 명목임금 인상률에 못 미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최저임금이 소득분배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그 인상률이 명목임금 인상률을 계속 상회해야 하고, 실질임금 유지선(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을 고려한)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최저임금제도는 최저임금 적용에 있어서도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5년 8월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3,100원에 못 미치는 노동자가 전체의 11.6%인 173만 명으로 추산된 바 있다. 여기에는 최저임금 위반업체 노동자를 포함해 최저임금 적용제외 대상인 장애인, 감시·단속적 근로자, 수습 근로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상시 1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전 사업장에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최저임금법은 광범위한 적용제외 대상을 규정하고 있어, 다수의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밖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적용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데, 2005년 8월 기준 국내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의 규모는 약 59만 6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의 존재까지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법의 적용에 제외되고 있는 노동자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이처럼 최저임금제도가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최저임금의 수준, 최저임금의 적용 등에서 한계를 노정하는 것은 제도의 존재 목적이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빈곤문제에 대한 해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국가체계 속에 존재하는 최저임금제도는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실업, 빈곤 등의 위기징후 폭발을 억제하는 등 사회의 위기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주된 존재 목적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최저임금제도라는 정책적 수단을 통해 저임금과 빈곤의 심화가 노동자에 대해 가지는 파괴적 효과를 적절히 은폐하거나, 약간 정도 상쇄하면서 위기를 우회하는 이득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으며, 저임금 문제 해결의 유의미한 경로로 기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6년 최저임금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2007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1차 전원회의가 지난 4월 28일에 열렸다. 본격적인 최저임금 협상은 2차 전원회의가 예정되어 있는 6월 9일부터 시작된다. 이에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현실화와 최저임금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안을 마련하고 이를 쟁취하기 위한 6월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이 올해 목표하는 최저임금의 수준은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인 878,000원이다. 최저임금제도 개선에 관련해서는 최저임금의 사회적 기준 마련과 택시노동자 등 최저임금 적용대상 확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전반적으로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최저임금투쟁이 준비되고 있는 모양새다.
관성화 되고 있는 최저임금투쟁의 질적 변화를 위해, 올해 최저임금투쟁이 구체적으로 목적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몇 가지 정리해보자. 첫째,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이 노동자 내부의 분절화와 '바닥을 향한 경쟁'을 극복하고, 최저임금을 매개로 연대를 활성화하여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성장하는 주요한 경로와 계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투쟁은 최저임금의 문제를 직접적인 적용 대상인 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의 문제임을 부각시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업장 내부로만 집중되었던 노동자운동의 역량을 의식적으로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투쟁은 투쟁의 요구를 임금인상폭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단과 민중생존권의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투쟁으로 전선을 끊임없이 확대해야 한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저임금을 확대재생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의제로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최저임금투쟁의 핵심대오 역할을 해온 여성연맹 소속 도시철도 청소용역노동자들이 최근 도시철도공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연일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투쟁은 도시철도공사가 청소용역업체들의 3년 계약기간이 만료됨을 악용해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인력 감축과 파트타임 전환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고, 노동자의 저임금을 구조화하는 다중적 착취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이 투쟁은 최저임금투쟁이 투쟁의제를 다양화하고 전선을 확장하는 데 유의미한 정세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올해 최저임금투쟁은 그동안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위원회 협상구조에 의존해왔던 기존의 관성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간접고용의 저임금 구조, 여성 직종/직무 분리의 문제 등에 대해 적극 폭로하면서 이 투쟁에 적극 연대할 필요가 있다.
주제어
노동
태그
노동유연화 임금 고용 실업 고용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