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3호 | 2006.06.02
이주자들에 대한 선별과 배제, 『외국인 정책 기본방향』을 비판한다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 모든 이주자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근대 민주주의의 ‘경계’ : ‘국민’이 아닌, 따라서 ‘인간 이하’의 ‘인간’인 이주노동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8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은 의미가 없다. 현행법상 범죄자가 아님에도 폭력적인 단속과 억류, 구금이 버젓이 자행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등록 체류자가 속해 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이 인정되지 않고,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년 가까이 감금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성과 천부의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국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민’이 아니고 따라서 권리가 없으며 결국 인간 이하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경계’이다. ‘경계’ 밖에서는 심지어 민주주의 이전의 시대보다 더한 폭력이 경계 ‘밖’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된다.
이런 대한민국의 정부가 최근 외국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며 나섰다. 지난 5월 26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17개 관계부처 장관, 7명의 민간위원이 참석한 제1회 외국인정책회의를 개최하여 『외국인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이하 기본방향)를 심의, 확정하였다. 『기본방향』은 외국인 정책의 새로운 비전으로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열린사회 구현”을 천명하고, 통제와 관리가 아니라 인권존중과 사회통합을 정책의 중심에 두겠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확대하는” “역사적 진보”를 이루는 자리로 의미를 부여했다.
『기본방향』은 외국인 중에서 중국동포와 결혼이민자, 외국인 여성, 외국인근로자, 난민을 정부의 대책마련이 필요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처우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동포와 결혼이민자에 대한 대책을 제외한 나머지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 나머지 부분에서의 대책들로 제시된 것은 난민인정 신청기간의 상한을 폐지한다거나, 고용허가제 관련 절차의 간소화,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단속의 법적 근거의 마련과 내부 모니터링의 강화, 공무원의 통보의무 규정의 완화 등인데 이는 현행 제도를 간소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중국동포와 결혼이민자가 핵심적인 권리 구제 대상으로 제시되었는가? 이는 단지 실용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구상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중국동포 방문취업제 : 저임금 이주노동력에 대한 인종주의적 관리 정책
『기본방향』은 중국동포들에 대해 1회 입국 시 3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5년 유효의 복수사증을 발급하여 방문과 취업이 동시에 가능한 방문취업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방문취업제는 비록 제한된 업종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사업장 이동까지도 허용하는 것으로 이주노조와 민주노총에서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제시해 온 노동허가제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99년 재외동포들의 국내 방문, 체류와 취업을 대폭 보장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이 제정될 당시 중국동포와 구소련동포들은 외교상의 문제로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001년 해당 법률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며 2003년 해당 동포들로 범위가 확대되었지만 시행령이나 출입국관리법에서 재외동포법 상의 권리의 적용을 차단하여 동포 간 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정부는 누가 보아도 명명백백한 차별을 노동시장에서의 국내 노동력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해왔다. 고용허가제를 비판하고 노동허가제를 요구하는 이주운동진영의 의견을 묵살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따라서 동포들에 대한 방문취업제의 도입은 동포 간 차별의 해소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라는 정부의 논리는 기만적이다. 동포와 동포아닌 이주자들의 노동권을 제약한 근거가 동일하다면 당연히 권리의 확대가 재외동포들에게만 한정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문취업제의 도입을 단순히 차별해소 조치로 볼 수는 없다. 이는 저임금 단순 노동력으로서 이주노동력에 대한 국내 자본의 수요를 중국동포를 중심으로 충당해 나갈 것이고 현존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동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선별적으로 합법화하겠다는 새로운 이주노동력 도입 및 관리 정책이다. 국내 자본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동포라는 혈연적 관계,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쉽게 관리될 수 있는 재외동포로 충당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동포 이주자들은 동포라는 허울 속에 한민족이지만 한국의 국민은 아닌 ‘유사국민’이라는 차별적인 지위 속에서 또 다른 배제와 불평등을 맞닥뜨릴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좋은 예다. 일본은 저임금 이주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주로 닛케이진(日系人), 즉 재외 일본인들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들은 동포라는 허울 속에서 동포 아닌 이주노동자들과 동일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결혼 이민자 지원 대책 :가족과 이권유지를 위해 이주여성을 도구화
『기본방향』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대상은 결혼이민자와 그 2세들이다. 『기본방향』은 국제결혼이 급증함에 따라 결혼 이민자의 정착 어려움과 그 2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문제 해소를 위하여 결혼이민자의 출신국가별 네트워크 구축, 혼인파탄 귀책사유에 대한 입증책임 완화(여성단체 확인서로 입증서류 대체), 사회복지․의료 서비스 확충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동포 방문취업제에 비해서 그리 획기적인 대책은 제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4월 달에 결혼 이민자에 대한 지원대책을 내 놓는 등 최근 정부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방향』을 포함하여 정부의 지원대책은 정확히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이주여성, 가족의 재생산 나아가 민족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주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인간으로 이 땅에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과 민족의 혈통을 이어 가기 때문에 일정한 권리가 부여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주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 밖에서는 한국 땅에서 ‘시민’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결혼과정과 생활에서의 모든 폭력과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 있다. 『기본방향』은 혼인파탄 귀책사유에 대한 이주여성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이혼이 곧 모든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조치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결혼이민자에 대한 정책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한 대응으로 적정한 인구수준의 유지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은 여성, 인간이 아니라 민족의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서 간주되고 도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한에서 제한적인 권리가 보장될 뿐이다.
민족과 인종의 분할선을 넘어 이주자들의 제한 없는 권리를 옹호하자
이제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외국인 정책의 핵심적 대상이 왜 중국동포와 결혼이민자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확장”하는 정책이 결코 아니다. 국내 자본의 저임금 노동력 수요의 충족과 적정한 인구수준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이주자들을 민족과 가족이라는 틀 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시도이다. 국민이 아닌 사람들 중 국민이라는 정체성 속으로 포섭 가능한 일부를 이른바 ‘유사국민’으로 ‘이등시민’으로 선별적으로 포섭하고 통합하겠다는 것이 이들이 이야기하는 다문화사회, 사회통합의 방향이다. ‘유사국민’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경계 저편으로 폭력과 무권리의 상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설령 ‘유사국민’으로 포섭된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국가가 요구하는 정체성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이들은 경계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혼 이민자들의 경우 가족이라는 제도 틀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불법적 신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 식민지 국민들에 대한 통합정책을 모태로 탄생한 프랑스의 사회통합 정책이 어떻게 내적인 배제와 차별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지, 방리유에서 최근 벌어진 이주자들의 소요사태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진정 '다문화사회', '외국인'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열린사회를 위해서는 권리의 주체로서의 시민의 자격을 민족적, 인종적 소속으로 제한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과 강제추방을 즉각 중단하고 이들을 합법화하는 한편,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포함한 노동권을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동포들에 대한 방문취업제가 실행되면 2006년 3월 기준 법무부 통계 상 전체 미등록 체류자의 약 20%에 해당하는 36,562명의 동포 미등록 체류자의 수가 상당수 줄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 적발시 방문취업제의 대상자 선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며 자진귀국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미등록 체류자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면 남은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동포 아닌 미등록 체류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동포들에 대한 방문취업제의 도입은 동포가 아닌 이주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지만 역으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합법화와 노동허가제의 도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전면 합법화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운동진영은 물론 전체 사회운동 진영의 단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여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러한 흐름은 이주운동진영 내부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경계는 배제된 자들이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 정치의 주체로, 권리의 주체로 형성되었을 때만 확대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이는 단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는 투쟁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경계를 확장하는 투쟁이요, “모든 인간이 시민이고 권리의 주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현하는 모든 시민들의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