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9호 | 200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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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쳐업계 최초의 노동조합 결성, 그 사회적 의미 -- 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 결성의 의미 --

편집부
1. 한 벤처기업가의 경제칼럼

지난 4월 25일 한겨레신문에는 한 벤처기업가의 경제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노동법과 벤처'.주장의 요지는 벤처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은 꿈과 이상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긴밀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며, 벤처에서 기업의 가치는 투입된 자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아이디어와 비젼에 가격을 매김으로서 결정되며 그 가치의 분배는 스톡옵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업가는 벤처경제에서는 생산직의 굴뚝산업에서 고질적으로 경험화는 집단간 대결이 없으며, 벤처노동자들은 시간외 초과노동을 즐기며(!), 6,000여개의 벤처기업에는 노동조합이 없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기업가는 중요한 하나의 사실(!)을 진술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다. '만약 노사관계 실정법이 벤처기업에 엄격하게 적용된다면 모든 벤처기업의 대표자들은 위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벤처기업에 대한 노사관계법 적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 특성에 맞는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칼럼의 제목이 '노동법과 벤처'인 이유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요즈음 모든 언론 매체를 도배하고 있는 벤처경제에서 전통적인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과연 사라지고 있는가? 지식기반경제와 벤처경제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는가? 과연 벤처경제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를 거역하는 낡은 주장에 불과한가? 그리고 결국 이러한 질문은 지식기반경제와 디지털경제, 벤처경제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 한 벤처기업 노동조합의 사례

우리는 지난 4월경 멀티데이타시스템이라는 소규모의 벤처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수차례 단체교섭이 진행되었지만 협상이 결렬되고 쟁의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멀티데이타시스템노동조합(이하 멀티노조)은 지난 2월 14일 벤처업계에서는 최초로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멀티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수습 3개월 40만원선, 수습을 마치면 55만원, 입사 2년차 65만원선이며 이중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정도이었다. 시간외수당 및 휴일수당, 기타 법정수당도 전혀 받지 못했으며, 연월차도 없었다. 일상적인 연장근로가 관행으로 굳어져 '10시 불퇴', '월요일에 출근해서 토요일에 퇴근'하는 극도의 초과노동과 저임금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반노동자적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설립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부정당하고 거부되는 것이 우리의 벤처 현실이다. 노동조합 결성 직후, 멀티노조는 2월 21일 1차 교섭부터 4월 24일 10차 교섭까지 사측과 교섭을 진행해 왔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되고 말았다. 이것은 8차까지 사측과 노조측 교섭위원의 합의사항을 전면 백지화시키면서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돌변한 사장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결국 멀티노조는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4월 27일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전체 조합원(조합가입대상 17명-조합원 14명-병역특례자 9명)의 70%가 병역특례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4월 28일 '병역특례업체 철회신청'을 하여 노조 자체를 말살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노조측은 '병역특례업체 철회신청'은 부당노동행위라고 규정하며, 5월 1일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쟁의 돌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의 부당성은 현재 기업의 경영과 영업상태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20억원에 이르는 신규투자를 받고 사무실을 확장 이전한 사실을 보더라도 명백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멀티노조의 사례가 단순한 한 소규모 사업장의 쟁의과정이 아니라 벤처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이라고 생각한다. 위 경제칼럼에서 언급한 '모든 벤처기업가들이 노사관계법을 위반한 위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역으로 보면, 멀티노조가 처해있는 현실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례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벤처자본에게 멀티노조의 존재는 인정될 수 없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시켜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벤처노동자들에게 멀티노조는 잊혀지고 있었던 노동자의 권리를 일깨우는 하나의 희망인 것이다.

3. 벤처논리의 위선과 허위

멀티미디어시스템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벤처자본은 코스닥 상장과 스톡옵션을 빌미로, 벤처 노동자들에게 초과노동과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다. 벤처업계에서의 시간외노동과 저임금을 통한 노동자 착취는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심각한 실정이지만, 자본은 코스닥 상장과 스톡옵션이라는 미래의 기대가치를 심어줌으로서 노동자를 통제하고 규율하고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99년 10월 중소기업청에서 발간한 '벤처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고 있는 벤처기업은 전체 벤처기업의 8.3%에 지나지 않고, 벤처기업의 평균임금은 일반 중소기업의 평균임금보다 낮고 대기업의 60%에 해당하고, 이직률은 대기업의 17배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달에 6,70만원의 월급에 일주일에 한두번 집에 들어가는 벤처노동자들의 현실은 우리가 흑백필름을 통해 가끔 보게되는 6,70년대 소위 '마찌꼬바'로 불리웠던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를게 없다고 하더라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4. 멀티노조 사례의 사회적 의미

첫째. Y이론 운운하면서, 벤처기업은 집단간 대결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벤처기업 자본의 시각이지 결코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시각은 아니라는 점. 오히려 멀티데이터시스템 사례가 보여주듯이 벤처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자마자 벤처기업가들은 현재의 굴뚝산업 사장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낡은 노사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둘째. 코스닥 상장이니 스톡옵션이니 하면서 밤샘작업과 시간외 노동 그리고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는 벤처업계의 산업문화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길들이기 위한 수단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투신사 부실화, 주식시장의 불안정화, 금융화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톡옵션, 우리사주제도는 노동자를 투기집단화시키면서 노동자의 권리의식과 계급의식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셋째, 멀티노조의 설립은 벤처업계의 수많은 미조직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인식하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사례로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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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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