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1호 | 2000.05.16

기획 연재 - 불안정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평가 4

편집부
◇ 불안정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평가 4 ◇

(3) 고용관계의 은폐의 경우 : 계약 노동자의 조직화

ꋫ 전국 애니메이션 노동조합

전국에 약 20000여 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있고 이 중 18000여 명 정도가 서울 강남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60%이상을 수주받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수출국이다. 그러나 절반 정도가 법정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구조인데다가 극소수의 정규직(각 회사의 총감독, 동화감독들)을 제외한 절대다수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즉 일이 있으면 회사 감독들의 인맥을 통해 모여서 일하고 일한 만큼 돈을 받는 도급계약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국내에는 약 150여개의 애니메이션 업체가 있고, 500-1000명 까지의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인프로라는 20여개의 대규모 회사를 중심으로 2차, 3차까지 하청으로 계열화되어 있다. 이 하청회사들은 아웃프로라고 불리는데 2차하청 회사의 경우 150여명-200명 정도의 크기이고, 3차하청 아래로는 영세사업장의 수준이다. 인프로 역시도 외국애니메이션 영화사들의 하청업체인데, 이들 1차 하청업체가 수주받은 돈의 절반 이상을 챙기는 구조.이다.
외국업체들의 휴가기간에는 국내업체들에게 비수기가 되는데 정규적인 임금보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노동자의 경우 이 기간에 절대적인 생계곤란에 시달리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이 가불을 하는데, 가불한 돈은 돈으로 갚은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갚아야 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면 비정규 계약직이라지만 실제로는 한 회사에 10년-15년씩 계속 묶여있게 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의 경우 이직의 문제를 가지고 회사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99년 7월 30일 노조가 출범했는데 99년 11월 당시 150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애니메이션노조는 확대되는 분회와 조합원들에 대해 보험회사직원 관리방식을 도입해서 조합원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즉, 분회에 소속된 조합원이 다른 업체로 이직한다 해도 본조에서 그 자료를 그대로 다른 업체로 옮겨주는 방식 고민하고 있다. 99년 11월 당시 노동조합은 애니메이션 제작자 협회와 인프로 20여개 회사에 단체교섭을 제기했지만, 협회에서는 단사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적 없다고 주장하고 단사에서는 “우리 회사에는 노조원이 없다, 노조원 명단을 공개하라”라고 요구하여 난항에 부딪쳤다. 한편 노동조합은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측에 대해 퇴직금 지급 소송을 위임받아 승리한 바 있으며, 퇴직금 미지급에 대하여 집단소송을 진행 하는 중이다.
조직화의 난점이 있다면 애니메이터들이 노동자 의식보다는 예술가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악한 현실과 가혹한 착취를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웃프로의 경우 하청계약해지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는 인프로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인프로 회사에서 우선적으로 임단협을 쟁취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분회역시 단협이 가능할 정도의 규모를 가진 인프로 회사들을 중심으로 조직할 계획이다.

ꋫ 재능교육교사노조

재능교육교사노조의 설립과 단체협약 체결은 10만을 넘는 방문교육 학습지업체 노동자들의 조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학습지 업체의 경우 80년대 말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하자, 고용형태를 대부분 ‘위탁계약직’으로 전환(재능교육의 경우 91년 노조설립을 막기위해 일방적으로 ‘정사원제’를 폐지하고 ‘계약제’ 도입)하여, 현재 위탁계약직이 정규직의 3~5배정도에 달할 정도이고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업계 1위인 대교의 경우, 88년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으나 회사측의 탄압으로 휴면노조화 했다가 98년 다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노동조합 결성 초기 6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회사측의 극악한 탄압으로 현재 3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또한 재능교육도 89년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가 휴면노조화됐고, 99년 6월 노동조합이 다시 결성되었다.
재능교육교사노조 결성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정규직으로 조직되어 있는 재능교육노조의 파업투쟁이었다. 재능교육은 97년 276억원, 98년 234억원이라는 높은 당기 순이익을 올리면서도 IMF를 핑계로 2년간 임금 동결, 승진․승급 동결, 격주휴무제 폐지, 상여금 삭감 등 근로조건은 악화시켰다. 이에 99년 6월 재능교육노조가 재결성되어 임금인상과 노동조합 활동보장, 조합원 자격인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위탁계약직인 학습지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연대하였고 마침내 11월 7일 재능교육교사노조를 결성하였다.
교사노조결성 초기의 쟁점은 위탁계약직 학습지교사들이 과연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근로자’인가의 여부였다. 학습지교사들은 형식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정시출근, 업무보고, 업무일지작성 등 출퇴근시간을 통제받고, 구체적인 업무수행에 있어서도 회사에서 정한 규칙과 지시사항을 이행하도록 강제받고, 관리구역과 관리과목의 양도 회사에 의해 지정받는 등 엄격한 노무지휘를 받고 있다. 게다가 교사 1인당 150만원씩의 관리예치금을 강요하고 휴회(학습지 회원이 탈퇴하는 것)시에는 무조건 일정액을 공제하도록 하는 부당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처럼 학습지교사들이 위탁계약의 허울 아래 엄청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9년 11월 7월 재능교육교사노조가 설립된 후 노동부는 노조설립필증교부를 부당하게 지연시켰다. 노동부의 방해와 사측의 악랄한 노조탄압에도 교사노조는 흔들리지 않고 법외노조로 남는 한이 있어도 투쟁을 통해 노조를 사수한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마침내 32일간의 파업 끝에 99년 12월 31일 회사측과 잠정합의한 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친 결과 1,200여 명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여해 71%의 찬성으로 투쟁을 마무리하였다.
타결된 안의 내용은, 먼저 노조활동과 관련하여 ▲조합의 가입, 탈퇴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회사는 노동조합 활동에 부당한 간섭이나 불이익 처분을 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은 단체행동을 억제한다 ▲조합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조합가입원 3500명 기준의 전임자 7명으로 한다 ▲조합원의 교육은 관리시간 외로 행함을 원칙으로 하고 월 2시간을 상호 협의 하에 진행할 수 있다. ▲전임자는 주 40시간의 노조활동을 보장한다.(추후 협의) ▲상호간의 민․형사상의 소송 및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쟁의행위에 따른 상호 추가적인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단, 소송에 관련된 비용 약 600만원은 회사가 부담한다는 등이다.
다음 제도개선과 관련하여 ▲관리예치금제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였으며, 그 간 휴회제도에 의해 퇴사시 손실이 컸으나 휴회제도가 없어짐으로 인해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게 되었다. ▲휴회제도는 그간 무조건 휴회(회원이 그만두는 것)가 발생하면 관리 선생에게 그 책임을 물어 수당에서 공제하였으나, 앞으로는 선생의 과실이 명백할 경우에만 임금에서 제하기로 하여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였다. ▲위탁계약서는 이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해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또 파업기간 발생한 휴회에 대해서는 2000.3월까지 회사와 교사가 복구에 최선을 기울여 나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9명의 해고자는 복직이 되었고 그 피해처리는 회사가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평가>

◦ 이른바 위탁계약 노동의 경우 고용형태상으로는 독립된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형식적으로는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위탁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예를 들면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캐디, 소사장제의 노동자 등)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근기법상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노동3권을 향유하는 주체로서는 인정된다.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개념이 근기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탄력적인 개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와 같은 부당한 ‘근로자’개념을 정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이들이 스스로 단결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길인 것이다.
◦ 그런데 위탁계약 노동자들의 경우 스스로가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무의 성질 자체가 개개인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그만큼 자본의 책임이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형태인 것이다) ‘경쟁’과 ‘실적’에 포섭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직이 잦고 개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연대의식을 갖기도 어렵다. 이들이 해당 업종에서 ‘노동자’라는 인식이 희박하고 이직이 잦다는 점, 그럼에도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다는 점에 착목하여 또 다른 정체성을 조직화의 매개로 활용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일례로 이들을 여성노동조합으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불안정노동자들 내부의 서로 다른 정체성들에 착목하여 다양한 조직적 실험들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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