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38호 | 2006.12.29

쓰디쓴 패배를 교훈삼아 계급주체 형성과 계급적 단결로!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의 평가와 교훈

사회진보연대
[출처: 참세상]


‘비정규직 보호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국회 통과

노동자운동이 수 년 간 맞서 싸워왔던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이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말았다.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공세가 일단락되었음을 뜻한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 및 금융 구조개편과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유연화는 지난 10년 간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다. 거듭되는 노동법개악은 이러한 노동유연화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외환위기와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 극복전략으로 '노동유연화'와 '노사정 합의주의'를 전면적으로 내세웠고, 그 이전에는 개별 자본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노동유연화 전략을 국가의 노동정책으로 전면화 시켰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필두로 상시적 인력조정을 뒷받침하는 법제도를 완비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요구에 따라 주5일제 근로기준법 개악,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등이 이어졌다.
뒤이어 노무현 정부는 노동유연화를 위한 비정규직 확대와 비정규직의 기간노동력화라는 기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이라는 불안요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줄곧 몰두해왔고,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은 그 산물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한국노총과 일부 시민운동 진영의 지지와 합의 속에서 제도화가 이루어졌기에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그럴듯한 외피까지 둘렀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주요 언론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해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마련됐다면서 일제히 환영했고,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서는 노사상생과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에 무게를 실어 보도했다.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는 제도화 이후 시행과정에서 가지게 될 정치적 부담마저 상당부분 덜어낸 셈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이를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희대의 악법 ‘날치기’로 규정하고, 이들 법안의 무력화 및 재개정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의 중심에 서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투쟁의 과정에서 시종일관 힘의 부족, 전략의 부재, 제도권의 높은 장벽 등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분간 패배의 후과로서 조직 내부의 불협화음과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연장선상에 놓였던 ‘비정규직 보호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투쟁은 노동자계급의 완패로 끝났다.


가감없이 드러난 노동자운동 위기징후

투쟁전술 상의 오류나 투쟁 지도부의 의지 부족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투쟁의 패배는 노동자운동의 근본적 위기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근본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지난 10년 간 노동 불안정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동안 노동자운동은 계급주체 형성에 거듭 실패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란 다시 말해 노동 불안정화를 뜻한다. 이는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 및 빈곤을 의미할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 내 분할과 위계, 경쟁이 심화됨을 뜻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와 자본은 의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더욱 세세하게 분할하고 이들 간의 위계를 강화하며, 노동자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의 속성은 노동자들의 의식과 행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형성을 결정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리해고제로 대표되는 고용 파괴를 노동자계급이 집단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의 집단성이 급격히 해체되었다. 대다수의 노동조합이 정규직들의 임금인상과 단체협상 체결에만 힘을 쏟고, 결과적으로 그 고통을 자본이 비정규직에 전가하도록 방조해왔다는 사실은 노동자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분리전략에 조응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단지 방어해야 할 외부의 공격인 것만이 아니라 이미 노동자계급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고, 이는 기층 노동조합들의 전략적 행위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계급주체 형성의 어려움은 연대와 헌신성을 필요로 하는 파업전술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계급에게 중요한 일인 줄 알지만 스스로는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이른바 ‘무임승차’ 경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실리주의 속으로 잔뜩 움츠러든 조합원들을 총파업 투쟁에 동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로 표현되는 지배계급의 포섭전략에 일관되고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계급적 단결의 조건과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훼손해 왔다. 1990년 중반까지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운동을 배제하고 탄압했지, 협상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았다. 1996년에 이르러 민주노총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노동자운동은 노·사·정 3자 대화의 한 축을 구성했는데,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하기위한 기제에 불과했다.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자운동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도 이 같은 포섭전략은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대표자회의’, ‘노사정 실무협의’ 등으로 옮겨져 지속되어왔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초벌논의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루어졌고, 입법 과정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실무협의 등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국회일정과 노사정 교섭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맴돌았고, 국회일정과 노사정 교섭을 벗어난 운동의 기획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논란을 가중했던 교섭전략(노사정 대표자회의 참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을 통한 원내전술 등) 역시 국가와 자본의 노동자운동 포섭전략 내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고, 투쟁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자 대중과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위의 분리, ‘불안정노동 철폐’에서 ‘비정규직 차별 해소’로의 의제 후퇴, 총파업 투쟁이 국회 일정에 따라 연맹·지역·단위사업장 별로 동원 일정을 조정하는 문제로 전락하는 문제 등은 이 같은 포섭전략 내에서 우왕좌왕 했던 노동자운동이 맞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결과였다. 이 같은 국가와 자본의 포섭전략에 조응하는 방식의 교섭전략의 가장 큰 맹점은 노동자 대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정치쟁점화 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폭을 협소하게 만든다는 것이며, 이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주체 형성과 단결을 저해하는 결정적 제약으로 작용해, 투쟁동력 유실과 형식적 파업투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쓰라린 패배를 교훈삼아 계급주체 형성과 계급적 단결로

2007년에도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일반화, 차별과 배제의 확산으로 인해 노동자 대중의 최소한의 삶의 기반마저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지배계급은 사회통합의 당위성을 내세워,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해 경제발전의 적으로 몰아세우며 탄압하고, 양극화 담론을 활용해 조직된 노동자들의 양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을 국가와 자본의 ‘하위파트너’로 만들기 위한 대화틀 강요, 제도화 작업 등도 계속될 것이다. 한편 노동법 개악 이후를 준비하는 자본의 대응이 무척 발 빠르다. 은행권에서는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서 ‘독립직군제’를 실시하면서 고용은 안정되지만 차별을 영구화하는 제도를 도입해 나가고 있다. 무기계약 노동자가 된다 하더라도 승진도 없고 성과급제로 운영하면서 계속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나마 나중에는 도급화 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또한 차별시정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외주·용역화를 통한 간접고용 확대가 대세가 될 전망도 점쳐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점으로 한 고용의 문제는 단순히 법적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의 조직형태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이 벌이는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강제하는 노동계급 내부의 경쟁과 분열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어렵게 하고 있어, 비정규직과 고용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분할선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남성과 여성 등의 분할선을 타고 불균등한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법 개악 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고용'과 ‘차별’의 문제로 제도 개선의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 및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응하는 것은 자칫 투쟁주체의 공백을 부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점을 형성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향후 투쟁의 방향은 전면적 불안정노동 철폐 공동투쟁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자본이 나누어 놓은 노동자계급 내 배타적 구획을 무력화하고, 계급적 주체 형성과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불안정노동 철폐를 목표로 단결하는 길밖에 없다. 구조조정 저지투쟁, 임단협 투쟁, 노동법 개정투쟁을 분리하는 것은 투쟁이 강화되는 것을 스스로 제한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기만적 노사정 합의주의, 노사 협조주의 등 국가와 자본의 적극적 포섭전략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 참가여부뿐만 아니라 생존권적 요구를 노사정 합의주의 아래 제한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제약하는 모든 실리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단호히 단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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