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3호 | 2007.02.16
‘비판적 지지’,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창조한국미래구상과 민중운동 대선 구상 비판
물에 빠진 미친개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야 한다. 오늘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딱 그 꼴이다. 그런데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물에서 꺼내줘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자들이 있다. 아니, 푸닥거리를 해서라도 저 타락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유령을 몇 번이고 되살려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자들이 있다. 차마 작금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자는 말은 못 꺼내지만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반수구 국민후보’를 주창하는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이하 ‘미래구상’)이 하나요, 이와는 다소 거리를 두면서도 ‘반보수대연합 전선 강화’와 ‘진보세력의 동반 성장’을 획책하는 기회주의 세력이 둘이다.
미래구상의 기만과 위선
물론 이들에게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 한나라당 ‘빅 3’에 대한 지지율 합계가 무려 75%에 달하고 당 지지율만 놓고 보더라도 50%를 상회하는 일방적인 판세가 그려지고 있다. 반면 대통령 국정운영과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도는 공히 10%대에 머물러 있고, 그마저도 사분오열된 판국이다. 도처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로 상징되는 친미반북․개발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어떠한가. 범여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는 상승하기는커녕 2004년 총선을 정점으로 줄곧 퇴보와 정체에 빠진 상태다. 게다가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이념적 급진성’으로 인해 현하의 정세 속에서 진보개혁세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제3의 대안이 되기는 힘들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후보를 추대하고 신보수주의의 시대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옹립하겠다는 ‘반수구 국민후보’의 실체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평화공존과 신자유주의 반대가 자격요건인데, 정작 미래구상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면면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트너를 자임한 정치적․행정적 NGO의 상층부이거나 곡학아세로 일관한 얼치기 ‘진보학자’일 따름이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반대해야 한다는 전제도 모순투성이다. 그러니 열린우리당 잔류파나 탈당신당파가 이들의 제안에 쌍수를 들며 환호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이들이 통합신당의 기치로 표방한 ‘평화미래개혁세력의 통합’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평화통일에 투철한 점으로 보자면 민주노동당 후보를 앞설 후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문에 대해서도 이들은 즉답을 회피한 채 열린우리당(또는 통합신당)이나 민주노동당과의 정치공학적 통합이 아닌 미래구상의 독자행보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상정하는 독자행보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인가? 일단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선정책생산-(후후보선출)-범진보개혁세력경선-(연정?)의 시나리오다. 말하자면,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정책단을 형성한 뒤 자신들이 직접 독자 후보를 내지 않더라도 분화된 여권 내 개혁세력과 민주노동당을 아우르는 범진보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거간꾼 역할 또는 정책연합까지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는 ‘반한나라당’이지 범진보개혁세력의 통합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민중운동’ 진영은 부차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개혁의 떡고물로 각종 수혜를 누려온 자신들의 지위가 한나라당 집권 이후 박탈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노동당과 ‘민중운동’ 진영이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을 유연하게 확장하지 않는다면 선거연합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래구상의 취약한 주체적 조건도 스스로의 구상을 제약하는 요인이기는 마찬가지다. 언론과 정치권에 기생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일부 명망가들이 단기간에 기존의 정치세력을 견인할 만큼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다. 혹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경우 소위 파당적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로 ‘격하’되거나 ‘도덕적 우위’를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시민운동의 생리도 크게 작용하여 미래구상 자체가 좌초할 여지조차 있다. 이는 결국 ‘반수구 국민후보’를 옹립하겠다는 미래구상의 행보가 열린우리당의 ‘합의이혼 후 헤쳐 모여’ 시나리오에 강하게 결박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가령 중도실용신당과 중도개혁신당, ‘재선그룹+민주당+국민중심당 신당’, 잔류 열린우리당 등 3~4개로 분화된 범여권이 올 8~9월까지 경쟁구도를 조성한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각의 신당이 미래구상 자신을 포함한 외부의 유력인사․시민사회단체․전문가그룹을 영입하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대선 직전 오픈 프라이머리(100% 국민경선제)를 통해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게 된다면? 미래구상으로서는 ‘지지할 수 있고 당선 가능한’ 반한나라당 국민후보 연합에 동참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000년 낙천낙선운동이나 2002년 대선, 2004년 탄핵 반대 정국에서 위력을 발휘한 반보수 네거티브 캠페인이 다시 한 번 부상할 것이다.
민중운동의 대선 구상, 위험한 줄타기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보민중진영’의 결집을 도모하여 대 수구보수 전선으로 이번 대선을 치른다는 구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이번 대선을 ‘범한나라당’ 대 ‘범민주노동당’ 대결 구도로 가져간다는 권영길 원내 대표의 의정 연설에서도 재차 확인되는바, 범개혁세력의 분화로 발생한 균열과 공백을 잠식하고 나아가 이탈 세력을 포섭한다는 소위 ‘진보개혁 대표선수 교체론’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범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헤게모니를 대체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장기적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응당 두 가지 전제, 즉 노동자 운동을 비롯한 급진적 대중운동의 실존과 함께,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내적 성장이라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은 작년을 거치며 사실상 무장 해제된 상태며, 현재로선 이를 역전시킬 마땅한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민주노동당도 ‘당내 사상운동의 부재와 종파적 분열’, ‘거대한 소수전략의 실패’, ‘울산 진보정치의 좌절’ 등으로 한자리수 지지율에 머무른 채 위기적 정체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현행 당원직선제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진단 하에, 당원 외에 민주노총과 전농 등 대중조직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별도의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외연 확장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세력의 성장과 반보수대연합 전선의 강화라는 이중적 과제 속에서 미래구상 식의 반보수 정치캠페인과 절충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느끼고 있다. 물론 이는 다른 한편으로 범개혁세력과 동반 몰락을 경험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내적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 술 더 떠서, 민주노동당은 가능하기만 하다면 미래구상과 같은 기회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제휴를 통해 ‘상황의 지대’를 확보한다는 식의 정치공학적 발상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미래구상과 같은 정치적 시민운동의 동반 성장을 통해 반보수대연합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조희연 교수의 ‘진보개혁세력 헤게모니 창출론’도 이를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미래구상을 주도하는 정대화 교수나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합을 사고하는 조희연 교수는 세계사회포럼의 국내판 프로세스로서 한국사회포럼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결국 개혁세력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단절을 우회한 채, 중도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에 편승하면서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주도성을 통해 그 좌익을 형성하려는 시도로서, 자유주의의 좌익적 판본에 불과한 ‘진보주의’일 따름이다. 여기서 민주화 세력 또는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하는 하나의 억설로서 소위 ‘87년 체제’는 그들이 주장하듯 ‘정치적 민주화’가 결코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7년의 성과는 노태우의 반동과 1991년의 국내외적 계급투쟁의 패배로 인해 심각한 단절을 경험했으며 오히려 군부세력과 지역주의에 기생한 양대 문민정권의 등장은 그전부터 추진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을 창출하는 계기였다.
이런 형세에서 한국진보연대(준)은 이러한 프로세스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반보수대연합’의 관념에 경도된 이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1997년 IMF 범국본 이후 어렵사리 유지되어온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비극적 소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범개혁세력의 통합이 가시화되는 동시에 반보수대연합의 현실성이 제기된다면, 민주노동당의 외형적 성장과 노무현 정권의 몰락의 여파로 다소 수줍게 잠복해있던 예의 그 ‘비판적 지지론’은 언제고 다시 상황을 압도할지 모른다.
민중운동 대선 대응,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대선이 민중운동의 단결과 전진을 도모하기보다 분열과 후퇴를 조장하는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구상이나 ‘진보개혁 대표선수 교체론’과 같은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나 널뛰듯 오르내리는 지지율에 따라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일삼는 한국 정치의 인민주의적 토양을 고려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수구보수의 귀환’을 주문처럼 읊조리며 공포를 환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현 정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함께 민중의 단결을 도모할 현실적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대중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급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창출해야 한다. 1987년 이래 민중운동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비판적 지지론’은 물론이거니와 민중운동의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