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4호 | 200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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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제위기사태를 보며

편집부
주가 폭락, 환율 급등, 반도체 가격 급락, 유가 상승, 동남아 통화불안, 한빛은행 부정대출, 동방금고-금감원 사건…, 최종부도는 막았지만 10월30일 1차부도 냈던 현대건설, 31일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아건설과 역시 오늘 내일하고 있는 쌍용등 이른바 ‘부실 빅3’문제등등… 한국경제는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기는커녕 이제 막 또다른 터널의 입구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러나 막상 지난 IMF사태 이후 "1년반만 참고 개혁을 추진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는 아랑곳하지않던 김대중정부는 개혁정책에 대한 재벌의 저항과 한나라당의 정치공세, 잇단 공직자 관련 부정부패 사건으로 자신의 정책기조마저 잃고 우왕좌왕 표류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개선과 노벨평화상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의 정쟁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이나 동방금고 정현준 사건과 같은 권력형 비리사건에의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됬고, 이는 개혁정책 추진력의 약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반민중성에 더하여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놓고 있는 꼴이다. 이에따라 올해내로 마무리 짓겠다던 금융,기업,공공,노동부문의 2단계 구조개혁은 모두 하나같이 단기적 안정화 대책과 시장중심 개혁원칙간의 동요와 혼란속에서 표류하고 있으며, 특히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핵심인 재벌개혁은 재벌과의 거듭된 타협으로인해 실종된지 오래다. 가히 김대중 정부와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 그 이하로 표류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비판(?)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자들은 다름아닌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현 경제위기의 3대 공적(公敵)으로 전투적 노동조합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재벌, 그리고 개혁의지를 잃은 안이한 경제관료를 꼽는다. 즉 경제를 살리기위한 대전제이며 공익(公益)인 구조조정 개혁에 대해 이들 3대 공적들이 자신들의 사익(私益)을 앞세워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 덜 신축화된 노동시장을 사수하고있으며, 기업지배구조개선작업과 과감한 금융·공공개혁을 미루게 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상실, 급기야 대외신인도 하락과 주가폭락 -> 기업, 금융 부실 가중 -> 경제위기 재연으로까지 사태를 몰고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라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일뿐임은 분명하다. 또한 구조조정 개혁의 미비가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말은 지난 1차구조조정이 지금의 위기로 결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책임한 순환론 이상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말하는 시장의 신뢰란 자본시장 투자자들의 투기의욕을 뜻하는 것으로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한다는 것은 현 위기가 금융자본이 야기한 경제적 불안정화로부터 한층 확대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은폐·망각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보수주의적 시장근본주의자들

김대중 정부에 대한 힘실어주기 또는 비판적(?) 지지의 뜻으로 개혁의 지속과 시장신뢰 회복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일정하게 구분되는 보수주의적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비판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 전투적인 공격성이 돋보인다. 이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국가, 정부정책실패'를 거론한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핵심인 재벌개혁과 생산적 복지, 공적자금과 관치금융은 물론이려니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금융지주회사, 예금부분보장제까지도 모두 정부가 스스로 천명한 시장중심 개혁에 반하는 위기재연의 원인들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말로만 시장중심을 외칠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경제로부터 과감히 손을 떼어 시장기능을 회복시키는데 일조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시장퇴출과 부분별한 해외매각과 같은 일들은 어떤 가치판단이나 정책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시장상황에따른 결과일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모토에 대해서까지 정치적 문제를 시장문제에 개입시키려한다고 비판하기도한다. 하지만 물론 이같은 시장근본주의가 현실적인 세력이나 체계적인 경제정책적 입장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비단 경제정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뿐더러 워낙 극단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이 때때로 김대중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배세력내 반대파인 한나라당 혹은 재벌과 심심치 않게 조우함으로써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신자유주의의 상대적 진보성과 정책적 실현가능성을 부각시키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왜곡시키는 복병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와관련하여 최근에 노사정 위원회에서 이루어진 노동시간단축 합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둘러싼 허구적인 쟁점을 양산하여, 이것이 마치 고용창출 효과를 통한 고용안정의 진보적인 대안인것처럼 꾸미고 정작 근로자파견제나 정리해고와 같은 노동악법들의 유지 또는 재개악하고자하는 의도는 없었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재벌과 경제위기

한나라당과 재벌은 IMF쇼크를 불러온 재벌지배체제의 양대 정통으로서 흔히 수구세력이라고 지칭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자신의 과제로 하며, 과거 재벌지배체제로의 복귀를 과제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을 단순히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수구세력이라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생각컨데 한나라당과 재벌이야말로 김대중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보다 철저한 시행을 책임질 지배세력내 유일한 대안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재벌의 요구는 김대중 정부가 요구하는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이나 지주회사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그같은 자기재편의 주도권과 속도 및 강도 조절에 따른 이득을 더 크게 확보할 수 있도록해달라는 것이다. 97·98 공황 직후 재벌은 '원인없는 위기의 원인'으로서 만인에게 지탄받았고,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는 그 실내용과는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넘어서는 징벌적 개혁의 외양을 띠고 진행되었었다. 하지만 재벌개혁 거품은 자칫 재벌지배 '체제의 위기'로 전화될 개연성이 높은 위기상황을 재벌기업의 위기와 책임정도로 진정시키기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였거나 가장이였으며, 그 저변은 재벌의 금융화와 그것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합의로 채워져있었다.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저하경향에 대한 반작용요인을 구축함으로써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고자하는 신자유주의는 본래 기존의 기득권과 지배구조를 바꾸어내기 위한 정책개혁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의 신자유주의는 곧 재벌지배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낼 것인가를 그 핵심으로한다 할 것이다. 냉전체제아래에서 한반도가 가지고있던 지정학적 정치군사적 특성의 산물로서 등장한 재벌지배체제는 미국이 자신의 시장을 역으로 열고 반공 개발독재를 지원하는 소위 '역개방정책'에 의해 탄생/강화되었다. 하지만 1973·79년 공황과 냉전해체를 거치며 이같은 조건이 바뀌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재벌지배체제의 위기는 이미 예정되어있던 것이다. 이같은 재벌지배체제의 위기에 대응하기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노력은 멀리보면 아직 냉전이 지속되고있던 1979년 박정희 개발독재 정부에 의해 추진시도된 바 있는 '경제 안정화 종합시책'과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시도를 출발점으로 하여, 80년대초 전두환 정부의 관치금융·재벌 개혁시도,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수출경쟁력 강화, 산업구조조정, 세계화 정책으로 이어지는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군사정권과 김영삼 정부의 이같은 시도들은 때로는 정치적 이유로 때로는 재벌의 강력한 저항과 3저호황에 의한 낙관으로 모두 실패하게됬지만,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단지 '50년만의 정권교체'가 가져다준 전혀 새로운 (민주)개혁은 아닌 것이다. 다만 세계 어느곳보다 냉전의 첨예한 갈등지역이였으며 그만큼 뒤늦게 냉전 해체의 과정을 겪고있는 한반도의 특성상, 냉전시대 자본주의 체제유지·발전의 반주변부적 명제였던 '종속적인 수출지향적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로의 종속적 편입'이라는 전환은 그만큼의 드라마틱한 전환과 그만큼의 연속성을 가질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란 곧 IMF쇼크를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이어지게끔하는 '정치적 쇼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으로도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97·98년 공황이 한보나 기아사태를 계기로 표출된 재벌지배체제의 위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99년의 대우사태와 2000년 현대사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97·98년 공황의 2국면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수출지향형 반공·발전주의가 낳은 재벌지배체제가 '신흥 선진조국'의 약속은커녕 97·98년 공황으로 결과했다면,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위기극복'은 고사하고 최악의 민중생활의 파탄과 재차 삼차로 이어질 공황에 대한 확신만을 남기고 있다.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지식정보화에서는 선진국을 따라 잡자'는 김대중의 호기어린 구호는 재벌아닌 재벌인 동방금고 정현준 사건에서 보여주듯 한낱 몽상이거나 치밀한 사기극이 아닌가. 김대중 정부와 자본에게는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악순환을 끝낼 수 있는 힘도 의지도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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