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74호 | 2007.12.06

득표율의 덫을 넘어 사회운동의 재건으로

2007년 대선과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2007년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1996~97년 IMF 외환위기를 집권의 발판으로 삼아 등장한 ‘개혁세력’이 지지기반을 잃고 붕괴한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올해 대선을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놓고 대결하는 장으로 만들 것처럼 떠들어왔다. 그러나 선거 일정이 본격화된 지금까지도 부정․부패․비리에 대한 폭로전과 진실공방, 무원칙한 합종연횡이 이른바 대선 정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사실만 밝혀지면 한 방에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폭로전에 열을 올리는 대통합민주신당, 실용적 담론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며 밑도 끝도 없는 정권교체만을 외치는 한나라당 할 것 없이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환멸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결 양상은, 누가 당선되더라도 지배세력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겠나 하는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듯 대선을 통해 표출되는 지배정치의 위기를 목격하면서도, 운동 진영이 의미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이 3%를 간신히 넘긴다는 사실은 그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지배 세력이 내놓은 신자유주의 금융․군사 세계화가 지난 10년 동안 민중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위기를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진영 전반이 이를 넘어서는 대안적 전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대중들의 다양한 투쟁들이 분출해 왔지만, 이러한 투쟁들이 정치적․조직적으로 결집하지 못한 채, 선거를 계기로 오히려 위축되어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활동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 문제다.



정세분석을 대신한 정치공학적 산술

역사적으로 대선이나 총선을 계기로 제기된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는 부르주아 정당들과 구별되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변자를 (혹은 지도력을) 대중적으로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운동 진영의 정치적․조직적 구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혹은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로 모아졌다. 이를 둘러싼 논의는 민주노동당의 창당으로 한 순환을 마감한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와 함께 선거 시기 운동진영의 활동은 선거를 매개로 대중투쟁을 고양하고 운동진영의 정치적 전망을 공동으로 세워낸다는 ‘선거투쟁’이라기보다는 진보정당의 영향력 확대, 혹은 집권 전략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특히 올해는 대선에 대한 운동진영의 방침을 둘러싼 논의에서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원내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민주노동당의 존재가 이전과는 다른 규정력을 발휘했다. 민주노동당 내부 후보 경선방식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진보대연합’ 추진을 위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운동진영의 대선 방침에 관한 논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기존의 성과를 어떻게 방어하고 또 확대할 것인가라는 제한된 논점으로 진행되었다. 당내 후보 경선은 의정활동을 통해 쌓은 대중적 명망성을 바탕으로 대선 본판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가 모든 기준을 압도했고, 대선 시기 운동진영의 공동 대응 계획으로 제출된 ‘진보대연합’ 방침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존의 지지를 재차 확인하고 그 외연을 보다 확대하여 그 성과를 재창당으로 연결하여 집권의 발판을 다진다는 것이었다.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에 걸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의 심화와 이에 동반된 인민주의의 발호로 인한 정치의 실종이라는 현실 속에서 운동진영에 던져진 과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전망과 사회운동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논쟁을 활발히 전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는 민중들의 삶의 위기와 정치의 실종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리주의적 경향 아래서 단결과 연대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 운동이 혁신을 꾀하는 가운데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으로 비롯된 운동진영의 대선 대응 논의는 이러한 과정과 결합하지 못한 채 정치공학적 산술이 무엇보다 앞에 나섰다.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기반의 급속한 붕괴를 틈타 민주노동당이 개혁세력을 대체하여 보수-진보의 대립구도를 주도할 수 있다는, 현실 분석에 근거를 두지 않은 낙관적 전망이 선거 전략을 뒷받침했다. “민주노동당 발 정계개편”이라고도 칭해진 이른바 ‘진보대연합’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선거 방침은 ‘새진보연대’, ‘한국사회당’ 등 민주노동당 외부에 형성된 정치세력과의 선거연합-후보단일화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었을 뿐 신자유주의에 맞서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이 결집을 도모하고 정치적 구심을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결국 이 구상은 대선을 계기로 운동진영의 합력을 창출하는 대중적 논의의 장을 열지 못한 채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진보대연합의 실현’이라는 방침을 제안하고 주장했던 당내 여러 세력들이 각기 다른 근거와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외연 확대와 재창당’이라는 다분히 정당적 이해를 넘지 못했던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어떤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외연을 확대할 것인지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따름이었다. 이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기존의 지지층을 지키면서 그 보다 ‘오른쪽’으로 지지 기반을 확대함으로써 외연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후보 확정 직후 현충원을 방문하여 “체제에 대한 똘레랑스”, “총부리 겨누는 대립을 넘어 화해와 통일로” 운운하고, 뒤 이어 중소기업협동조합을 방문하여 “민주노동당은 반 기업정당이 아니다”를 역설했던 권영길 후보의 행보와, 한국노총의 노사관계로드맵 야합을 비판했다가 민주노동당을 정책 연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한국노총의 언급에 공문을 통해 비판 발언을 사과했던 문성현 대표의 행보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을 높이고 외연을 확대한다는 목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대안적 전망의 형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자율적 대중운동의 재개라는 과제와 괴리된다. 결국 이러한 전략이 기존에 형성된 지지층으로부터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한 편, 목표한 지지기반의 외연 확대라는 결과도 얻지 못하면서 선거와 사회운동의 분리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반신자유주의를 대신한 진보주의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기존의 성과를 바탕으로 몰락한 개혁세력을 대신하여 보수진영과 대립구도를 주도한다는 전략은 권영길 선본의 정책․공약으로 연결된다. 그 근간을 이루는 기조는 현재 민중이 겪고 있는 곤궁함과 삶의 불안정함을 책임질 진보적인 정책 대안을, 보수 세력이 내놓은 경제 성장 신화와 차별되게 제시하는 한 편, 6자회담 재개-평화협정 체결 논의와 남북정상회담-남북경협 확대를 바탕으로 평화와 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으로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핵심 공약으로 제시된 ‘서민친구(7.9) 경제’는 고용창출과 경제안정을 최고 목표로 하되 그 성과가 보수 세력의 비전과 다르게 서민 경제 끌어올리기, 소득격차 줄이기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밝히기를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그 재정구조와 법제도의 골간을 유지하는 조건에서 실현가능한 제도개혁안”으로 제출된 여타의 대선공약과 구별되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한 후 새롭게 건설할 국가의 비전”으로 제출된 ‘코리아 연방 공화국’은 당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후 핵심슬로건이 아닌 주요 공약으로 위상이 변경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원내 진출, 의정활동을 통한 대중적 인지도라는 성과를 출발점으로 하여 보수 세력과 대척점을 이루는 주요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점한다는 목표와 부합하는 정책들이다. 한국 경제의 장기 불황이라는 위기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속하는 것 외에는 체계적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진정한 쟁점은 가려진 채, 각 세력이 ‘경제성장을 이끌 책임 있는 세력’, ‘한반도 평화체제의 완성과 남북 경협 확대를 주도할 세력’으로 자신을 표상하며 허구적으로 대립하는 구도 안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력 또한 이들이 설치한 논점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출하기를 주문받는다. 또한 선거 전반을 지배하는 여론조사와 각 정치세력의 이념과 정책에 관한 토론과 논쟁이 아닌 후보 간 지지율 경쟁을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중계해 대는 언론은, 지배 세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무조건적 반대’로 몰아세우며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서민에게’, ‘평화통일을 넘어 코리아 연방공화국으로’와 같은 형태로 제출된 민주노동당의 정책 공약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지배 세력과는 차별성을 드러내면서도 집권 가능성이 있는 세력으로서의 표상을 획득하려는 시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확인되다시피 개혁세력의 몰락의 후과는 민주노동당을 거점으로 하는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좌파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공격하는 보수적 선동과 성장주의가 안정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흡수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잇는 개혁세력이 97년 이래 경제위기의 고통 아래 형성된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전환하는 데에 활용해 왔던 보수-개혁 대립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만개한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로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표 과정으로서 정치가 위기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하여 개혁세력의 공백을 ‘진보주의’를 통해 장악한다는 전략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결여한 의지의 표현일 따름이다.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확보하고 이를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지양하고자 나설 때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를 넘어서는 민중의 정치적 전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지배계급이 설치해 놓은 논쟁 구도 안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표상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틀을 깨고 지배 계급 스스로도 대안이 없는 위기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이를 지양하기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그러한 행동에 동참하면서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내는 것이다.
주제어
정치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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