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9호 | 200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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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전력노조의 직권조인 사태는 민중에 대한 배신이다 !

편집부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보수적 노동자들의 온상으로만 여겨지던 전력노동조합에서 파업을 결의했다. 그들은 정권과의 어떠한 타협안도 거부하며, 오로지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의 철회만을 요구했다. 사상 초유의 전력대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파업의 엄청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정부정책의 철회를 위해서라면 파업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의지였다. 전국의 1만6천여명의 노동자들이-나이트 교대근무자를 포함한다면 대다수의 조합원들이- 중노위 마지막 조정기간이던 지난 23일, 난생 처음 맞이하는 투쟁의 밤을 지새웠다. 조정기간은 연기되었고, 허탈한 마음에도 다시 29일을 기다렸다. 삼세판이라더니 법에도 없는 중노위 특별조정기간 4일이 주어졌다. 이제 노동조합도 정부에게도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3일, 두 번의 파업 유보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위협과 사측의 온갖 회유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대오가 본사 강당에 집결해가기 시작했다. 발전지부 조합원들을 주축으로 4천여명이 집결했으며, 3-4000여명의 대오가 투어파업을 준비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밤 10시경 텔레비젼 화면을 스쳐간 파업철회 속보! 조합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분노의 외침이 이어졌다. 조합원들의 동요에 시급히 중앙노동위원회를 빠져나온 지도부의 모습에서 마지막 희망은 좌초되었다. 위원장의 길고 긴 서두, 그리고 지도부들의 횡설수설에서 이미 파업은, 아니 2만4천 조합원들의 파업의 의지는 몇몇의 지도부에 의해 꺾였음을 실감했다. 다시 중노위로 도망쳐가 기어이 합의도 아닌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전력노동자들의, 아니 전노동자들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참히 뭉개버린 그 노예서약서와도 같은 '노동조합의 결단서'가 채택되었다.

'성실히 합의하며, 노력한다'라는 일관된(?) 언급이외의 그 어떠한 내용도 담지 않고 있는 합의서와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반대가 아닌 대안세력으로, 노사정 협력적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는 결단서에 우리는 기가막힐 따름이다. 언제 정부와 자본이 성실히 합의하고 노력한다고 밝히지 않은 적이 있는가? 직선제, 민주집행부의 이름을 팔아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어용'노조의 직권조인을 전력노동자들은, 1천3백만 노동자들은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인정할 수 없다.

IMF 3년을 채운 한국사회의 현실은 경제위기와 이 위기의 극복책으로 신성화되다시피한 구조조정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저항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성격은 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각 영역에서의 투쟁의 촉발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구조조정 정책의 전면적 철회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각 영역별, 사안별, 시기별 투쟁으로 분산되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당위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열세로 인해 주춤거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내 4대 구조조정의 완결을 내건 정권의 공략에 대항해 공공부문을 필두로 한 양노총의 연대투쟁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대전선의 확장은 정권과 자본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도한 양노총의 연대전선은 자체적으로도 한계점을 지니고 있으며, 더구나 정권과 자본의 강력한 의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도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전력지도부의 '대형사고'는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양노총의 연대가 단순히 협상력의 증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니 협상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라도 전제되어야 할 현 정권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양노총간의,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 내부적으도 판단이 상이했으며, 목표가 불분명했다. 즉, 구조조정의 전면적 철회와 정권에 대한 명확한 반대라는 목표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투쟁의 연대고리를 형성하며, 전면적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부재했으며, 내용적으로도 구조조정에 대한 일정한 용인과 노사정 파트너쉽 형성을 통한 일정한 타협의 여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시기 양노총의 연대는 선언식 총파업 선포, 총파업에 대한 일정 조정 정도에 머무르며, 이 조차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노총의 연대를 주도적으로 제기했던 공공연대는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 관치경영분쇄,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 중앙노사교섭기구 쟁취 등 4대요구안을 동일하게 제출할 수 있었던 공공부문 노조의 공통된 지반에 기인했으나, 공공부문과 여타의 노동조합 부문과의 연대지점을 형성하지 못한 채 양노총의 실질적 연대를 끌어내지 못했다. 더구나, 24일, 29일, 12월 4일로 파업을 지속적으로 연기했던 전력의 상황이나, 양노총의 5일 연대투쟁과 8일의 총파업, 도시철도, 건설, 금융 등의 총파업 결의가 어떻게 공조하며 투쟁을 이끌어갈 것인가가 아니라 일정을 어떻게 맞추느냐로 계속 고민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전선은 개별적으로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특히 전력의 경우도 이후의 투쟁일정과도, 투쟁의 대오와도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권의 강수에 맞서 일정한 선도투쟁과 희생을 감당하기에는 부담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력을 필두로 시작된 공공연대와 양노총의 전선은, 향후 구조조정을 둘러싼 힘의 결집 정도와 자신감을 결정지을 수 있었던 이 전선은, 구조조정 정책의 방향과 수위, 속도를 결정할 수 있었던 이 전선은, 자본과 정권의 강고한 연대에 파열구조차 내지 못한 채 '기싸움'의 초반에서 밀리고 말았다.

전력노동조합의, 아니 전력노조 지도부의 철저한 굴복의 결과는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 구조조정의 완결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이의 관철을 위한 공략의 대상을 분명히 한 채 진행되고 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에 요구했던 구조조정 동의서와 전력노조 지도부가 작성했던 '결단서' 등은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철저히 봉쇄하고,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지연의 책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며, 그 어떠한 저항의 흐름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부터 떠들썩한 언론의 공세는 이후의 노동자들의 모든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으며, 특히 4대부문 구조조정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자 할 것이다.

전력노동조합원들은 지도부의 직권조인을 거부하고, 당장 이 썩어빠진 어용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 정권과 자본과 어용노조가 짜고치는 사기판을 뒤엎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사수 투쟁이라는 그야말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양대노총은 생존권 쟁취와 구조조정 저지, 김대중정권 반대의 기치아래 시급히 전열을 정비해나가야 한다. 이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자본의 위기 상황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간의 한치의 타협도 허용하지않는다.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이 사유화를 수용하고, 구조조정 동의서를 쓰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위기를 지연시켜내기 위한 끝없는 구조조정과 치욕적인 복종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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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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