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71호 | 200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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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과 명동성당 거점 농성의 의미

편집부
한통노조, 파업에 돌입하다

한국통신노동조합이 12월 18일 09시 45분을 기점으로 파업을 선언하고 명동성당 거점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12월 17일 오후 3시 서울역에 모여, 명동성당으로 집결한 대오는 오늘(12월 20일)로써 4일간의 피눈물나는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예년보다 따뜻했던 겨울 날씨는 공교롭게도 투쟁에 들어가는 그날 밤부터 내리기시작한 겨울비로 살을 에일듯이 메서워졌다. 한편 사측은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노동조합과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을 되풀이했고,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파업상황을 전하기는커녕 농성-파업참여대오 규모를 축소왜곡보도하며 적반하장격으로 공권력의 강력한 대응만을 주문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6000여명으로 시작했던 대오는 파업돌입 시점부터 계속 늘어나 18일 오후에는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도 거의 1만5천으로 늘어갔다. 그리고 명동성당에 결집한 노동자들 이외에도 7-8000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 지침에 따라 업무를 거부하고 있다. 그야말로 명동성당은 두 발 딛고 설 곳조차 없이 한국통신 노동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텐트와 시멘트 바닥의 냉기로부터 최소한이나마 방어할 깔판의 반입조차도 불허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작용을 해결할 간이화장실 반입을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하루를 싸우고, 명동성당 측을 설득해 쟁취한 깔판과 비닐은 몰아치는 혹한에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고, 5개의 간이화장실 앞엔 발을 동동구르는 수십명의 조합원들의 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정부와 경찰이 핑계거리 삼고 있는 명동성당 측의 입장이라는 것이, 21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축하 미사와 크리스마스 미사 준비를 위한 명동성당의 '미화'라는 이야기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본적인 인권마져 철저히 짓밟히고 있는 시점에서 '평화상 경축 미사'라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며 통탄할 일인가! 그러나 이러한 몰상식적이고 비인간적 상황에서도 파업의 대오를 지켜가는 노동자들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예 비닐을 뒤짚어쓰고 누워버린 대오의 모습에서 죽음까지 불사를 듯한 오기와 투지가 전해오고 있다. 20일 오전 노사간의 잠정합의 발표로 인해 일순 술렁거리던 대오는 노동자들 기만하고 있는 정부와 사측의 조인 거부로 인해 다시 파업대오를 정비해갔다.

한국통신, 구조조정의 모범?

한국통신 노조는 크게 세 가지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 첫째, 강제명예퇴직(인력감축)·일방적 구조조정 중단으로, 1) 명예퇴직 시행 일방공고 사과 및 시한연장 중지(단협 위반) 2) 퇴직위로 성금 모금 강요행위 중지(근로기준법 위반) 3) 전화가설, 고장접수 등 전화운용 도급화 반대 4) 콜센타, OMC, TMC, PMC, 집중화계획 반대이다. 둘째, 한국통신 완전민영화 반대로 1) '전기통신사업법' 개악 반대 2) 외국인 소유한도 49% 확대 반대 3) 가입자망 공동이용제도·번호이동성·사전선택제·전기통신설비의 제공·사업의 겸업금지조항 등 독소조항을 반대한다. 셋째, 2000년 단체 교섭시 '인위적 인력감축은 없다'고 밝혔던 노사합의 사항을 즉각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현재 3000여명이 넘는 명예퇴직 방침을 통해, 이미 1100여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7000여명에 이르는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부사원을 표적삼아 퇴직을 강요하며, 부당전직·대기발령 등 각종 불법을 서슴없이 자행해왔던 것이다. 더욱이 인력 풀제라는 가장 유연하고 반노동자적 제도를 도입해 3000명이 아닌 3만명의 노동자라도 손쉽게 잘라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제도를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3년 동안 1만2천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야 했고, 분사와 아웃소싱 등을 통해 사유화 정책은 실질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각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 정책은 멈출 줄 모르고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3000명에 이은 인력풀제, 분사와 아웃소싱은 거의 전 노동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나라는 명령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그 동안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모범으로 '칭송'받아왔던 한국통신의 상황은 바로 구조조정 정책의 실체,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해 너무나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금번의 투쟁에서 보여지고 있는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는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골고루 갖춘 상황에서도 이들이 묵묵히 버티고 있는 저 '오기'가 '투지'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바로 생존권 쟁취를 위한 처절한 의지이며, 자본과 정권의 파렴치한 구조조정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강고한 결의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빚어내고 있는 이 모순적 상황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얼마 전 너무나도 굴욕적으로 파업을 철회해야만 했던 전력노동자들의 모습에서도, 그리고 농민·빈민을 비롯한 각 영역에서 분출하고 있는 생존권 투쟁속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철폐의 의지는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확산의 과정은 더불어 투쟁요구의 상승과 연대전선의 확장을 요구한다는 사실 역시 체험해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의 역공은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구조조정의 당위성으로 연결시키며,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 투쟁에 전가시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정책을 통해 구사되고 있다. 또한 대우와 전력에 강요한 동의서, 결단서 등은 노동자들의 사전적 굴종과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개된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강위력한 구조조정에 일정한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더구나 하반기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모색된 공공연대, 양노총의 연대전선이 전력과 철도의 합의로 후퇴되었고,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의 의미가 심각히 훼손된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생존에 대한 처절한 의지가 대중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통 노동자 투쟁의 의미와 과제

그러나, 한국통신 투쟁의 과정에서 역시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목에 칼이 들어와있는 상황에서, 함께 생존권 쟁취를 위해 더욱 투쟁의 결의를 다져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계약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을 실업자로 내모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강고한 연대만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정규직으로서 자기 보전에만 연연한다면 결국 자신들이 제일 먼저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전락되어나갈 말 것이다. 19일 저녁 7시 민주노총 집회에 700여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함께 투쟁하기 위해 전국에서 상경했다. 그러나 한국통신 노조는 '조합원들의 정서'를 문제삼아 그들을 내몰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철저히 자기비판되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재의 투쟁의 의미는 물론 중요하지만,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망각한 투쟁이라면 얼마가지 못하는 한계적 투쟁일 뿐이다.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이간을 부추기는 자본과 정권에 농락당하는 투쟁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까지 노사간의 잠정합의의 내용은 대략, 1) 명예퇴직·희망퇴직 신청 건은 현 시점에서 종료한다. 향후, 명예퇴직/희망퇴직 시행은 노사합의 후 시행한다. 2) 사측이 발표하고 문서 시행한 인력 풀제를 전면 철회한다. 3) 한국통신공사 민영화 추진은 노사 대표자를 포함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협의 시행한다. 특별위원회는 노사동수로 구성한다. 4) 사측이 추진해온 명예퇴직/희망퇴직자 위로금 지급을 위한 성금 모금은 중단한다. 5) 회사 분할·분사·구조조정은 '구조조정 특별위원회'에서 협의 시행한다. 114 안내, 선로 유지 보수, 콜센타 통합 및 전화가설업무 분사화 방침의 시행은 중단한다. 5) 보수제도 개선사항은 2000. 12.월 중 해결한다등이다. 정부와 사측, 그리고 노동조합과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사측과 정부의 농간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금번의 투쟁의 의미를 어느 정도의 협상안에 머물렀느냐, 어디까지 얻어냈냐에 둘 수 없다. 물론 한국통신 사유화와 구조조정 정책의 완전한 철회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그 만큼의 승리와 그 만큼의 진전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노동운동이 처한 이 열악하고 엄혹한 정세에서 시작된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파업과 파업의 사수 자체가 정세적으로 중요한 '계기'를 만들고 있다. 한국통신 노동조합을 포함한 공공연맹, 공공연대, 그리고 양노총은 금번의 투쟁의 성과에 대해 각인해나가야 한다. 하반기 주춤거리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2만여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일정정도의 물꼬를 터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노동자들의 분노와 생존에 대한 처절한 위기감을 드러내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차분하게 그러나 시급하게 새로운 전선을 복구해내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은 이제 더 이상 총파업 일정을 맞추고 협상력 증대를 위한 것이 아닌 '구조조정의 전면적 철회와 정권에 대한 명확한 반대'라는 기본 전제를 세우면서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실업노동자들의 강고한 연대라는 관점에서, 기층 민중과의 연대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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