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2호 | 2008.03.06
흔들리는 이명박 정권과 한반도 대운하
대운하와 이명박의 경제정책에 맞선 연대와 운동의 확장이 필요하다!
최근 각종 언론의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 파문과 새정부 장관인사 문제 등 일련의 사태로 인해 갓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올해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유가와 곡물가 등 각종 원자재가격 상승, 미 경제의 성장 둔화 등 세계경제의 악재가 계속되고 있어 경제 성장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입지가 정권 초기에도 탄탄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새정부는 지난 1, 2월 큰 논란이 되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전면화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등장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본다면 한반도 대운하 계획 추진의 가부여부를 섣부르게 판단할 근거는 부족하다. 우리가 본 바대로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를 한나라당 경선이나 대선 등 부정적 여론이 자신의 입지를 흔들 때에는 침묵하다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등장할 때나 새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던 인수위 시기 등 자신이 주도권을 휘두를 수 있을 때는 어김없이 전면에 내세웠다. 그만큼 대운하에 대한 이명박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국면에서 대운하에 대한 전면적인 논쟁과 투쟁이 예상된다. 건설과 토목 자본을 배경으로 자수성가한 자신의 입지를 서울시장 재직시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개편으로 확인 받았다면, 대통령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로 기억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대운하의 반면교사 : 뉴올리언스와 플로리다
여기저기서 보도한 바대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먼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 영산강을 잇는 호남운하, 금강을 잇는 충청운하 등을 개발하고 통일 후에는 북한에도 5개의 운하를 건설한다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남한의 12개 노선 약 2,100km와 북한의 5개 노선 약 1,000km 등 총 17개 노선 약 3,100km에 달하는 거대한 운하가 만들어진다. 이 중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이다. 말 그대로 남한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물길을 내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무모한 사업을 하겠다는 이유로 내세운 것이 내륙주운을 통한 물류비용의 절감, 운하사업 기간 동안의 일자리 창출, 내륙지역의 개발 등이다.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얼마 전에는 운하를 통해 환경 개선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추진측은 경부운하 사업에만 들어가는 재원을 약 15조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의 절반은 민자 유치로 충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하천 준설로 나오는 골재를 팔아서 충당이 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경부운하를 이명박 임기 내에 완공하기 위해서 한반도대운하 특별법을 총선이 끝난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올해 말에 착공에 들어가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대운하가 과연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까?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운하가 수송의 주요 수단이었고, 그 후로도 물동량 중 운하의 비중이 상당한 미국의 두 사례는 한반도 대운하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공식적인 사망자 1800여명, 이재민 150만여명을 기록한 뉴올리언스의 재앙이 대표적이다. 일부 개발업자의 로비로 뉴올리언스와 멕시코 만을 직선으로 잇는 미스터고 운하가 1965년에 완공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수 개발업자들은 구불구불한 미시시피강 대신에 직선 운하가 경제적이라고 고집했다. 하지만 건설기간 동안의 일자리 창출 외에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실제 환경 파괴의 영향은 훨씬 컸다. 운하로 인해 해수가 유입되면서 인해 주변 습지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야생동물이 사라졌다. 해안의 완충지 역할을 하던 습지를 잃은 것은 허리케인의 피해에 도시를 맨몸뚱이로 내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엄청난 피해는 미스터고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다. 결국 카트리나 이후 운하 폐쇄가 결정되었고 주위의 습지를 복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뉴올리언스의 경우가 비극적이라면, 2007년 CNN이 발표한 “거대하고, 괴상하고, 쓸모없는 국가사업”에 2위로 선정된 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의 경우는 희극적이다. 이 사업은 19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일자리창출을 목적으로 착공되었지만 건설비용과 수자원 교란 문제로 곧 중지되었다가, 1964년 선거를 앞두고 플로리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케네디가 사업을 재개했다. 당시 터무니없는 경제성이 논란이 되자 이번에는 국토 개조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괴망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환경운동의 반대로 1971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에는 그 상태로 20년을 방치되다가 1991년에서야 사업 자체가 취소되었다.
이러한 운하들은 충분히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가 막대한 건설비용만 남기고 중단되었다. 이를 복구하는 일에 더 큰 비용과 노력이 든다는 것도 문제지만, 한번 파괴된 자연이 그대로 복구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 와중의 비용과 고통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전가된 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대운하의 정치적 배후와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
이러한 사례 외에도 여러 학자, 언론, 사회단체가 대운하의 문제점을 물류량, 비용평가, 환경파괴, 외국의 선례 등으로 다양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여론수렴을 충분히 해서, 토론을 해서, 결국은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운하 건설의 근거로 처음에는 물류를 통한 경제성을 내세우더니, 21세기 형 관광으로서의 운하를 주장하고 급기야는 운하를 통한 환경개선까지 들먹이기 시작했다. 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계속 바뀌는 것은 대운하를 추진한다는 전제 하에 몇 가지 근거를 끼워 맞추고 있다는 혐의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명박이 대운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이명박은 전국적 개발정책을 통해서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민심과 표를 사는 후견주의는 민중에게 고성장과 복지의 혜택을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세계경제의 반주변부 지역에서 광범히 하게 작동하는 정치행태이다. 한국에서 선거 때면 대규모 국책사업이 기획되던 맥락이 대표적인데, 1987년 대선에서 전북 표를 얻기 위해 노태우에 의해서 기획된 새만금 간척사업이 큰 논란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표 논리에 따라 20년을 끌었고, 이명박에 이르러 “두바이 프로젝트”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계속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전국적인 개발 사업으로 5년간 103조원이라는 토지배상금을 시중에 풀었고, 이 돈이 부동산과 주식 투기로 이어졌음을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실물적인 성장이 부진하고, 성장의 혜택이 민중에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 상승을 통해 일부 중산층과 자산계층에게 수탈적인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정권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대운하 계획도 처음에는 경부운하를 중심으로 추진되다가 타 지역을 의식하여 호남운하 등으로 확대되었던 과정을 볼 수 있다. 사업의 실제 효과와 상관없이 벌써부터 운하 예정지 주변의 땅값이 치솟았는데, 떡고물이 조금이라도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국 각 지역의 토호와 일부 주민들은 이미 대운하를 중심으로 이명박 정권과 자신의 이해를 연계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상황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심각한 불안정성, 유가와 곡물가격 폭등으로 상당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획기적인 경제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을 향한 대중들에 열망을 어떻게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명박 정권은 한편으로 대운하와 같은 상징적인 이벤트 사업과 토목사업을 통한 단기적 경기부양책을 펴고, 다른 한편에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책임지울 다양한 적수들을 만들 것이다. 지금은 그 적을 노무현 정권의 과오로 돌리고 있지만, 총선이후 새정권이 본격 가동되면 예고된 바대로 공기업과 공공부문, 그리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이명박은 경제성장 세력 대 경제 발목잡기 세력이라는 구도를 형성하고, 후자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려고 시도할 것이 예상된다. 또 이것만으로 대중의 불만을 적절히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사소하지만 상징적인 파퓰리즘 정책을 동반할 것이다. 최근 물가불안의 대책으로 제시되는 휴대폰 요금 인하, 유류세 인하, 전기료 인하 등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본질에 대한 투쟁으로
결국 대운하에는 이명박의 신념, 일정한 정치적 효과, 파퓰리즘 경제 정책의 다양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운하를 단일 의제로 한 대응은 전문가들의 논쟁으로 귀결되거나 환경운동의 외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중들이 이에 개입하지 못해서 이명박 정부가 의도하는 식의 구도 형성을 용이하게 한다. 일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운하에 국한된 찬반구도가 형성될 때 이명박이 설정하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세력”에 그들이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반대의 편향으로 대운하에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정세적인 대중운동 속에서 무기력한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이명박 정권와 정세에 대한 면밀한 분석 속에서 어떤 입장과 운동을 만들 것인지가 문제이다. 대운하로 야기될 한반도 생태계 파괴가 신자유주의 개발세력에 의해 추진되는 민중의 삶 파괴의 한 측면이라면, 대운하 반대 투쟁은 신자유주의 개발세력 자체에 대한 투쟁의 흐름 속에서 연대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공기업 매각과 사유화, 교육ㆍ의료ㆍ물에 대한 시장화, 기후변화에 대한 시장주의적 대처, 비정규직 양산과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 사회서비스 시장화와 여성노동자 착취 등 신자유주의에서 지속되고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가속화되는 민중에 대한 공격의 맥락에서 대운하를 사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 속에서 신자유주의와 이명박 정권에 맞선 연대와 운동을 확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