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74호 | 200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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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비정규직은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아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투쟁의 의미와 과제

편집부
1월 29일 서울, 경기, 부산본부의 상경을 시작으로 한통 계약직 노조의 5차 상경투쟁이 시작되었다. 12월 13일 총파업을 시작한 이래 어느덧 해를 넘기고 20년만의 강추위를 버티면서, 55일째의 장기투쟁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통 계약직 노조는 스물 아홉의 청년 조합원이 노숙투쟁을 하다 반신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면서 연초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적지 않은 대오가 동절기에 장기투쟁을 벌이고있다는 점만이 아니다. 이번 한통투쟁은 현 구조조정 및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문서나 사례보다도 명명백백하고 상세한 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설립과정에서부터 이번 투쟁의 경과 및 노조의 요구안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우리 투쟁의 현재와 미래는 한통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하고있다.

노동자 밑의 노동자들, 그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다

한국통신에는 전문계약사원, 일반계약사원, 임시계약사원, 파견사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114 전화번호 안내, 꽃배달 써비스 등에는 파견사원이 주로 있고, 전화가설, 선로 보수, 유지, 시험실 등에는 일반계약사원이 근무하고 있다. 계약직노동자의 임금은 IMF 이후 매년 삭감당해 현재 85만원 정도이며 , 114의 경우 45만원의 저임금에 혹사당하고 있다. 이들은 동종의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의 1/2도 못되는 임금을 받는다. 이는 아무리 오래 근속을 해도 재계약의 반복으로 정규직과 같은 호봉승급분의 임금인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직과 임금체계 자체가 달라 포괄임금방식 즉 정액제에 의한 급여 지급으로 연월차수당, 초과근무수당 등의 수당과 상여금조차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법정공휴일 조차 무급휴일로 되어 있어 연차수당은 고사하고 연차휴가 한번 쉴 수가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렇게 설날, 추석, 노동절을 제외한 모든 국경일에 수당없이 근무하고 일요일 근무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주당 56시간 이상 근무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을 계약직 노동자들이 감수해왔던 것은 장기간 근속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사측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 한달에 100만원 안팎으로 받곤 못 살아요. 우리가 카드빚 내면서까지 여기 남았던 건 정규직 된다는 것 하나만 믿고 그랬죠. 실제로 이제까지 그래왔으니까요."
" 정규직 사원이라고 나이 어린 놈이 욕 해대는도 참았어요. 다 직영사원 될 걸 바라고 참은 거죠"

지금까지 거의 자동적으로 계약갱신이 이루어진 것도 계약직들의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했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언제 재계약이 이루어졌는지, 어떤 조건으로 이루어졌는지 제대로 모른다. 도장을 사측에서 가지고 있으면서 때가 되면 알아서 도장찍고 재계약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10년 이상 되풀이되어 왔기에 '한국통신밥'을 먹는다는 인식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과 열악한 조건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노동조합 추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더욱이 한국통신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건설이 진행되었다.

생색내기식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자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분사, 아웃소싱, 분할매각 등을 추진 중인 한국통신은 기획예산처이 정한 2월말의 시한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명예퇴직시키고 계약직 7,000여명을 계약해지하는 한편 올초부터 전화가설, 선로보수 유지 등의 대민서비스 업무를 도급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미 한국통신측은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 시나리오에 입각하여 작년 5, 6월경부터 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 조치를 남발했다. 이때 회사쪽에서 들이댄 근거는 '계약직은 2년 이상 초과 근무할 수 없다'는 계약직 관리지침 제11조 제7항.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림 3개월 내지 1년 단위로 본인도 잘 모르는 사이 재계약이 관행적으로 이뤄어져온 한국통신에서, 이 조항은 제정 당시부터 사문화되어 있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따라서 이제 와서 이 조항을 들먹이는 것은 해고의 정당한 근거가 전혀 될 수 없었다. "관행적으로 계약갱신이 계속 되었다면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본다"는 대법원 판례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통신의 행태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계약직 노동자들을 혹사해오다가 구조조정 1순위로 계약직 노동자를 대량해고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한국통신 계약직의 경우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구조조정에 반대했음에도 한국통신은 계약직 노조를 교섭 상대방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계약직에 대한 칼끝을 놓지 않았다.
만만한 계약직부터 짜른다는 한통의 구조조정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숫자 맞추기식 생색내기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준비되지 않은 도급업체로 인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도급의 경우 초기 비용이 기존에 비해 수배가 들어간다고 한다. 공기업 비효율의 근본적인 요인인 낙하산 인사, 지배구조 등에 대해서는 칼을 대지 않은 채, 인원 자르기, 그것도 기능직 우선 자르기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4만명 중 3000명, 비정규직 1만 2000명 중 6000명을 자르는 등 인원감축 이외에 다른 개혁 조치는 하나도 없는 지침이 버젓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통신은 쟁의행위기간 중 도급전환금지를 위반하면서 도급전환을 강행하고 장기간 재계약해온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하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골을 넘는 구조조정 반대투쟁

한통계약직의 투쟁은 현시기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깊은 골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는 규약상 계약직의 조합원 자격이 있었음에도 가입을 거부하였으며, 못받아줄거면 빨리 규약 개정해서 복수노조 조항에 안걸리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도 않았다. "정규직 직원들은 계약직들이 힘을 갖으면 자신들이 약해진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어느 정규직 노동자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의지가 전혀 없었다. 결국 정규직 노조의 파업 당시 연대집회를 하러 전국에서 상경한 계약직 노조의 연대발언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에 대한 계약직노동자의 배신감은 "당신들도 천년만년 정규직일까보냐"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철저히 계약직을 배제한 채 진행된 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분사를 전면 중지한다'는 잠정합의안에서 후퇴하여 '민영화 추진은 노사가 동수로 구성되는 구조조정특위에서 협의한다'는 포괄적인 안으로 후퇴한 채 합의하였다. 그러나 한통 정규직 노조는 정부와 자본에 의한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핵심이 '분사와 민영화'이며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 공통의 이해관계임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정규직 노조와 한통의 잠정합의안 중 '분사의 전면 중지'에 대해 정부가 가장 반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정부 구조조정 정책의 양대 축은 정리해고, 분사, 도급화를 통한 인력감축과 민영화이다. 기획예산처에서 정한 2월말 구조조정 완료 시한 때문에 한통은 집단적인 반발을 무릎쓰고 6000명을 한꺼번에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원, 한통처럼 "정부 지침이니 어쩔 수 없다"며 아예 단체교섭 자체를 거부하거나 원자력 병원처럼 인력감원 부진을 이유로 예산이 삭감되어 임금이 체불되는 것이 현재 공공부문 투쟁의 상황이다. 기획예산처는 인력감축을 기정사실화하고 감축대상 인력의 인건비 469억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방향의 구조조정을 올 상반기에 더욱 강하게 추진할 전망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생각으로는 노동자에게 겨눠진 구조조정의 칼날을 막아낼 수 없다. 분사와 도급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투쟁이 없다면 정규직또한 계속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은 자명하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핵심이 분사와 민영화인 한 계약직을 희생양으로 내세워도 정규직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한통 계약직노조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4차 상경투쟁때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갖추고 5차 투쟁에 나서기로 하였다. 한통 계약직의 대량해고와 도급화 문제가 한통 사용자가 아닌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의해 장기화하고 있음을 집중 지적할 방침이다. 한통 정규직 노조의 사례는 올 상반기 보다 가속적으로 진행될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답해준다. 이미 우리는 아시아 자동차, 한라중공업 그리고 한통 사례에서 비정규직을 제물로 노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정규직 노조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것은 계속될 구조조정에 대항할 투쟁의 동력을 깎아먹는 것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구조조정 앞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없이 노동자의 고용은 불안정해지므로 이들간의 공통의 요구를 설정하고 공동투쟁을 조직화해내야 한다.

구조조정 반대 투쟁의 선봉을 위하여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의 완강한 파업투쟁을 통해서조차 쟁취하지 못했던 '분사반대-도급반대'의 과제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양어깨에 고스란히 짊어지워졌다. 일자리 없이 2달째 벌이는 투쟁은 한달 85만원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노동자에겐 너무나 힘겨운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지침'이라는 이유로 한국통신 사측의 책임회피는 완강하기만하다. 그러나 한통 계약직 노조의 투쟁은 '외주용역화를 통한 비정규직 양산과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의 지속/확산을 막기위한 대표적이고 결정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개별 비정규직 노조의 고립된 투쟁을 넘어서 용역 외주화 방식의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서 인식되어야하고, 이를 위한 노동자 민중진영의 연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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