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75호 | 200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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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동시간 단축 깃발은 내려져야 한다 !

복수노조 전면허용 쟁취와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을 주장하며

편집부
2001년 2월 9일 노사정위원회는 2002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어 있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5년 더 연기하기로 하는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되어 곧바로 입법화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의 5년간 유예. 자본측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만면의 웃음을 감추고 있으며, 이같은 반노동자적 폭거에 동참한 한국노총은 오히려 재정난을 겪는 신생노조가 크게 환영하고 있다는 망발을 내뱃으며 어용 노총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떨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즉각 "정부의 주5일근무제 도입 약속 파기와 복수노조 금지 부활 방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조직력을 동원해 투쟁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복수노조 금지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유예와 맞바뀌어지고 노동시간단축에 부수한 노동조건후퇴가 논란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한 민주노조운동진영의 투쟁방향과 정세인식에 결코 작지않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다.

복수노조 허용 유예는 노동법 개악의 신호탄일 뿐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이번 노사정위에서 한국노총과 정부가 합의해버린 '복수노조 허용 5년유예'는 우리모두의 전력을 기울려 즉각 철회되어야할 반노동자적 폭거임을 짚고가야할 것이다. 아직도 유령노조와 어용노조 때문에 구조조정의 칼날앞에서도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고, 전체 노동자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으로 인해 목에 칼을 드리우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노조 금지라는 노동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투쟁하고, 5년을 기다렸는데 이제 막 무덤속으로 사라져가는 이 악법이 저 2월 9일의 더러운 거래를 통해 부활되는 것을 그냥 앉아서 바라볼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수노조 유예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판단에는 이같은 당위적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이것이 다가온 일련의 노동법 개악의 첫 신호탄으로서 의미를 띠고 있다는 또다른 정세적 판단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실상 올해 예정되어 있는 노동법 개악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제도화할 수 있는 노동관계법령의 총체적 정비의 수준을 담을 전망이다. 그리고 이 논의는 정권과 자본의 강력한 주도력 아래에서 복수노조-전임자임금지급금지를 한 축으로 하고, 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개악을 다른 한 축으로 한, 맞교환으로 정리되었다. 그 첫 번째 고리를 푼 것이 바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의 동시유예이다. 이는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해 주었을 경우 발생하는 파업권, 단체교섭권 등 분쟁의 요소를 미루고 넘어가겠다는 자본의 의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이는 단지 노동법 개악의 한 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유예를 필두로 하여, 앞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근로기준법 상 유휴급제의 폐지를 포함하는 임금체계, 고용, 모성보호의 개악이 굴비 엮듯이 줄줄이 엮어서 개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의 동시유예라는 양상으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의 개악이 마치 맞교환되는 양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지금의 양상이고 보면, 이러한 현실적인 경향은 기우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사태를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싶다.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유예의 맞교환 가능성은 1월말부터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단지 성명서를 발표했을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안하고 있는지 민주노총은 ILO에 제소를 검토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어떠한 적극적인 투쟁계획을 내오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노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총 또한 금속과 공공연맹 등의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반길 수 있는 노동조합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의 가입을 막고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투쟁 대열에 함께하기 위해 먼길 달려온 계약직 노동자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한 사람들이 누구냔 말인가. 결국, 민주노총의 지금과 같은 태도는 민주노총이 이미 합법화된 마당에 대기업 노조를 거스르면서 기업 단위 복수노조를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확인시켜 주는 일인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조건

상황이 이러한데도 민주노총은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줄기차게 노동시간 단축에 목을 메고 있다. 지난 노사정위에서 복수노조 허용유예가 결정되기 직전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주5일 근무제의 조속한 도입을 또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기업단위 복수노조를 유예할 만큼 노동시간 단축이 의미있는 것인가?
2000년 10월 23일 노사정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노사정은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실노동 시간을 연간 2,000시간 이내로 줄이고, 관련 임금, 휴일 휴가 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합의문의 핵심은 바로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기준에 걸맞도록 관련 노동시간, 임금, 휴일 휴가제도를 개악"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정권과 자본은 이전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를 연동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종래 '노동시간 단축'을 결사 거부해왔던 경총은 지난 6월, 월차휴가 및 생리휴가 폐지, 가산수당 50%에서 25%로 인하, 연차휴가 축소, 유급주휴일 폐지, 근로시간제 탄력화 도모, 근로시간 및 휴일 휴가 비적용범위 확대, 법정 노동시간 단축 실시시기 유예기간 설정 등의 7가지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같은 시도를 드러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노동연구원과 노동부도 경총의 요구안을 거의 수용한 내용의 노동시간 단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의 맥락은 일자리 나누기나 탈산업사회 속에서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선전하는 일부 노동진영 및 학계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또한, 8시간 노동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제기되어온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시간 단축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권과 자본의 주도력 속에서 기업경쟁력의 확보와 노동유연성의 제고를 위해 탄력적 노동시간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것은 맞교환이 아니며, 이 논의의 전체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로 방향이 맞춰져 있다. 즉,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정권과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한 논의구도속에 포섭되는 것이 지금의 양상인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깃발을 내려라!

IMF가 터지고 난 직후,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저지와 정리해고 철폐를 슬로건으로 하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섰다. 그러나, 1998년과 1999년을 경과하면서 고용안정 쟁취 와 '임금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였고, 이 요구는 다시 노동조건 개악없는 주5일노동제 와 사회대개혁(사회적 안전망 확충)의 요구로 수정되었다. 임금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에서 노동조건 개악없는 주5일 노동제 로의 선회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임금삭감없는'에 노동진영의 투쟁의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단위사업장에서 정리해고 분쇄와 실질임금 보전을 위한 투쟁이 동반되지 않았고, 민주노총의 전국적 대응이 형성되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양보교섭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임금삭감없는'이라는 조건은 사실상 수식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노동법 개정 논의의 주도력은 자본과 정권에게 넘어갔고, 그에 따라 민주노총의 요구도 끌려가는 양상이었다. '임금삭감없는' 에서 '노동조건 개악없는'으로의 수정은 이 역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노동시간단축 에서 주5일노동제 로의 선회 역시 그 본래의 의미조차 후퇴한 것으로 법정노동시간단축을 토요일 휴무제로 대체하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게다가 2000년 들어서 이러한 요구마저 제도개선 투쟁으로 제한되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논리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노동불안정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창출효과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축된 노동시간은 실질임금이 보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규직에게는 또 다른 노동을 강제하게 되고(multi-job) 정규직이 비운 노동시간을 비정규직이 이를 대신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은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타격하기 위한 전술도 아니며, 정리해고제의 현실적 대안이 아닌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제조건을 충족해주는 자본의 요구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전선이 붕괴된 현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저지 투쟁의 핵심 전선으로 구축해야 하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정면으로 외면하는 것을 의미했다. 1999-2000년의 투쟁 속에서도 노동시간 단축 요구 와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지키기의 수세적 차원에서 제기된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확산 및 노동조건 저하에 대해 침묵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더 이상 현장의 동력을 조직하고 유지할 수 없는 전술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있다. 도대체 현장에서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인해 각개격파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으로 어떻게 현장의 동력을 조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구조조정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혹은 일자리지키기 라는 목표로 시작된 노동시간단축은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확산 및 노동조건의 전반적 후퇴 속에서 이미 무력화된 지 오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상시화되는 현실에서 구조조정 반대 와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깃발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복수노조 전면허용과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으로 나아가자!

현재 정권과 자본 주도하에 있는 노동법 개정 논의를 완전히 뒤엎고, 노동자의 정세 주도력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동력이 조직되어야 하고 이에 기반한 강력한 노동자 투쟁이 전제될 때라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매개가 되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이나 주5일노동제가 아니라 복수노조의 전면허용 및 교섭권 쟁취와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이어야 할 것이다.
복수노조 금지는 지금 당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다수를 이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을 막는 장애물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이 어렵사리 쟁취한 노동조합도 사실상 복수노조 금지에 갇혀 사측과 제대로 된 교섭한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인 것이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를 포함하여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건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사측은 사실상 교섭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투쟁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아우르는 노동자들의 통일과 단결, 노동권의 쟁취에서 찾아야 하며,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전면허용,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철폐, 노동법 개악저지를 통해 정권과 자본에 정면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조직과 교섭권 완전쟁취, 어용노조와 유령노조에 맞선 복수노조 쟁취투쟁을 통해 지금의 정세를 반전시켜 나가자! 이를 통해 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개악이라는 노동법 개악정세를 반전시켜 나가고 현장동력과 총파업 전선을 다시 복원시켜 나아가자.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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