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5호 | 2008.07.02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와 동아시아 비핵화
6자회담 2단계 합의와 한미일동맹의 위선
2008년 6월 26일 북한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2007.10.3.)에서 명기한 핵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 중국에 제출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45일 내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7일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냉각탑 폭파 행사를 세계에 공개했다. 이에 따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합의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는 낙관적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미국은 2007년 2단계 합의 이후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북한-시리아 핵협력설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두 문제는 중국에 제출된 핵 신고서가 아닌 북미 양국 간 비공개 합의의사록을 통해 처리 원칙과 절차를 정리하기로 북미가 합의했으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다음 3단계에서 북한의 핵물질과 핵무기(핵폭발장치)의 반출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무엇일지도 불투명하다. 따라서 핵 신고서 검증 절차,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북한-시리아 핵 협력 의혹의 해소, 그리고 3단계 조치라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9.19 공동성명의 이행 문제는 전체 마라톤 코스 중 약 10km 이정표에 도달한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와 2단계 조치
부시정부의 등장 이후 북미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부시정부는 반테러전쟁을 거치며 매파 개입으로 대북노선을 전환했다. 즉 북한과의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북한에 실질적 타격을 가하고, 나아가 북한의 정권교체나 체제전환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2002년 10월 중대사건이 발생했다. 켈리 대통령특사가 방북 후에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시인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 11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중유지원을 중단했고, 12월 북한은 핵동결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2003년 1월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성명을 발표했다. 2003년 8월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이 개시되고 2005년 9월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의 포기”를 포함해 6개항으로 구성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2005년 2월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발표하고, 2006년 10월 핵실험 실시를 공개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2007년 2월 13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2.13 합의문)가 발표되었다. 합의문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병렬적으로 취할 조치를 명시했다. 즉 북한은 영변핵시설을 폐쇄(shutdown), 봉인하고 IAEA 요원이 복귀하도록 초청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단을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 일본은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6자회담 참가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에 협력하고 특히 60일 내에 중유 5만 톤 지원을 위한 첫 번째 운송을 시작한다. 또한 합의문은 다음 단계에서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현존하는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를 이행하고, 참가국들은 초기 5만 톤을 포함하여 도합 10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2.13 합의는2007년 6월 방코델타아시아 동결자산이 북한계좌로 송금되고, 7월 중유 5만 톤이 북한에 도착되면서 단계적으로 이행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 10월 3일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10.3 합의)가 발표되었다. 2단계 조치는 1단계 조치의 연속으로 각국이 취할 행동을 명시했다. 즉 북한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완료하고 또한 같은 날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하며 핵물질과 핵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재확인한다,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에 관한 공약을 완수한다, 일본은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 중유 100만 톤 상당의 지원을 제공한다. 즉 1단계 초기조치가 북한 핵시설의 폐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단계는 핵시설의 불능화와 모든 핵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신고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관한 미국 측 주장의 의문점
10.3 합의는 2단계 조치의 완료시점을 2007년 12월 말로 설정했지만, 실제로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서는 2007년 6월 26일에 제출되었다.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첫 번째는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HEP) 의혹이다. 2007년 12월 워싱턴포스트지는 북한이 미국에게 전달한 알루미늄관 샘플에서 핵농축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한 반면, 북한은 2008년 1월 이러한 의혹이 사실무근임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 인사들을 수입 알루미늄관 이용 군사시설에 참관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이 알루미늄관을 우라늄 농축에 사용했다면 왜 샘플을 미국이 전달했냐는 문제가 남는다. 하나의 추측은 미국의 장비가 북한보다 훨씬 더 예민하기 때문에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도 매우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있다. 독립적인 기관의 검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샘플이 검증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전달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시리아 핵이전 의혹이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6일 새벽 전투기들을 시리아에 침투시켜 북동부 사막지대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도 시리아 영공을 침범한 배경과 공격 목표물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조금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언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공습 목표물이 북한의 인력과 기술 지원으로 건설되던 핵 시설이라는 의혹을 연이어 제기했다. 10월 1일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공습한 것이 사용하지 않던 일반 군사시설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은 2007년 9월 18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을 부인했다. 2008년 4월까지 미국정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4월 24일 중앙정보국(CIA)은 비공개 의회브리핑을 열어서 시리아 핵의혹 시설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반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핵시설이라고 한다면 방공포의 방어 없이 방치했겠느냐. 사막의 공개된 장소에서 위성에 노출된 핵시설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또한 무스타파 주미 시리아대사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거짓 정보를 제시했던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리아는 의혹 해소를 위해 UN 사찰단 방문에 합의했고, 6월 22-24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시리아를 방문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공습한 군사시설이 핵시설인지 여부나 북한이 이를 지원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다. 만약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면 공습 후 7개월 간 미국이 왜 공개하지 않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남는다. 첫째, 미국은 UN 안보이사회 구성원으로써 다른 국가가 핵확산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증거를 발견하면 이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IAEA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시리아 핵의혹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둘째, 이스라엘이 이웃 주권국가를 공습하는 것이나, 미국이 이를 승인한 것은 당연히 규탄 받아 마땅한 초법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IAEA와 NPT를 무시했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과 검증 방안
핵 신고서 제출이 늦어진 세 번째 이유는 플루토늄 신고 방식과 검증문제다. 10.3 합의에서 명기한 모든 핵의 신고에는 원칙적으로 플루토늄 총량, 핵무기 기수, 핵실험 시설, 핵확산 기록, 검증방안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6월 26일 제출한 핵 신고서에는 플루토늄 추출량, 플루토늄 사용처(핵실험과 핵무기 제조 등),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 핵시설 목록, 우라늄 재고 총량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플루토늄 추출량에 관해서 북한은 44kg이라고 신고했다고 한다 (6월 29일 일본 교도통신). 이는 2007년 11월 북미회동에서 북한이 전달한 30.8kg보다 훨씬 늘어난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5-8개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약 35-60kg 확보한 것으로 추정해왔다. 따라서 검증 절차가 순탄하게 이뤄질지, 실제로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특히 난제는 1992년 이전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 여부를 검증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점에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기술발전에 따라 현장 접근만 보장된다면 북한 핵활동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플루토늄 사용처도 신고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수량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추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핵 신고서에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와 제원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북한 핵무기와 3단계 조치
부시대통령은 북한의 핵신고는 핵폐기 절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에 필요한 시간인) 향후 45일간 북한의 신고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이뤄질 것이며,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핵신고서 검증절차 때문에 미래를 속단할 수 없으나, 다만 이것이 원만하게 마무리될 때를 가정하여 3단계의 핵심 쟁점을 검토할 수 있다.
미국은 3단계에서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넘어서 북한이 과거에 생산한 핵물질과 핵무기(핵폭발장치)를 북한 땅에서 반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관한 북한의 생각은 무엇인가? 현재 미국 인사들은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그들은 북한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비공식 핵국가 지위, 비공식 핵국가인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핵물질과 핵무기의 반출과 같이 완전한 핵폐기가 비가역적 조치라고 한다면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비가역적 조치를 취해야하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같은 수준의 정치적 조치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조치이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확고하고도 철저한 체제보호 약속, 예를 들어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비가역적 조치가 의제로 제출되어야 북한이 3단계 협상에 적극 임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대북 경제지원과 체제보장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3단계 협상의 성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와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미국이 경제제재 완화에 돌함으로써 이것이 북한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이 취할 조치는 상징성이 있지만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미미하다. 우선 1974년 무역법에 포함된 잭슨-배닉 수정조항은 ‘이민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비시장경제국가에 대해서는 최혜국 지위(정상적 교역관계)와 국책금융기관의 신용공여(수출입은행의 수출신용과 해외민간투자공사의 투자보증)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 대통령이 잭슨-배닉 수정조항의 적용 유보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제로 북한의 대미무역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미국이 북미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항구적 정상교역관계의 지위를 부여하고, 개발도상국 일반에 적용하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의 허용해야 무역관계가 현실화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이 북한에 적용하는 고관세율은 정상교역관계, 일반특혜관세의 지위에 있는 국가에 적용되는 저관세율보다 2~10배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무역협정 체결은 의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며 훨씬 복잡한 절차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미 의회의 일부 의원들이 인권, 종교의 자유 등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이슈들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상교역관계 지위 부여를 반대한다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또한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분석이 있다. 과거 북한은 1997년 4월과 2000년 8월 아시아개발은행 가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최대 지분보유국인 일본과 미국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서 가입심사도 없이 거부되었다. 또한 북한은 IMF와 세계은행에 대해 공식적인 가입 의사 표명은 하지 않았으나 비공식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세계은행은 중저소득 개발도상국에 개발자금을 공급하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최빈국에 대해 IBRD보다 더 장기 저리로 개발자금을 공급하는 국제개발협회(IDA)로 구성되어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자금지원제도도 세계은행과 유사한데 IBRD 차관과 비슷한 일반재원 융자제도와 IDA 차관과 비슷한 아시아개발기금 차관이 있다. 그런데 IBRD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IMF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IBRD에 가입하면 IDA에 가입할 수 있다. IMF는 가입 희망국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북한이 테러지원국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무조건 반대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북한의 가입이 불가능했다. IMF 가입국 의무는 IMF 협정문 4조에서 명시한 ‘안정적인 환율제도의 유지’, 8조와 14조에 명시한 ‘경상지금에 대한 제한 철폐’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면 각종 통계제출, 빈곤축서전략문서 작성, IMF와의 정기적인 정책협의를 거쳐야 한다. 국제금융기구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바탕을 둔 개혁개방 프로그램을 양허성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차관 도입보다는 양자 간 자금지원 쪽에 관심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6자회담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선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적성국교역법 대상 지정 해제를 계기로 북미대화나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북한이 경제회생을 도모하길 바라는 소박한 기대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미국이 10.3 합의 이후 북한의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이나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을 유포하는 행태는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거짓으로 확산시켰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특히 미국 언론은 9.11 이후 군사외교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을 빌어 각종 의혹을 분명한 증거 제시도 없이 마구 대중에게 쏟아 내고 있다. 무방비로 노출된 대중은 객관적 증거를 찾기보다는 언론이 흘리는 각종 의혹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그처럼 강한 확신을 거듭 주장하면서도 분명한 근거 제출의 의무를 고의로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과 미국의 승인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강대국의 초법적 행위라는 사실은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둘째, 6자회담 합의가 북한의 비핵화 달성에 유익한 경로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틀 자체는 동아시아의 진정한 핵 폐기에 아무런 구실도 못한다. 현재 북한 핵 신고서 검증을 둘러싼 가장 중대한 쟁점의 하나는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이 북한이 신고한 것처럼 44kg이냐, 아니면 미국의 추정치의 최대치인 60kg이냐는 것이다. 최대 약 15kg의 격차를 둘러싼 검증 문제는 향후 6자회담 합의의 심각한 쟁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시야를 돌려본다면, 현재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약 45톤에 이른다. 추정치의 최대 격차 약 15kg의 3000배에 이르는 플루토늄을 일본은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미국, 러시아, 중국은 핵보유국이며, 일본은 잠재적 핵보유국인 셈이며, 한국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서 핵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플루토늄 재처리시설 확보를 장기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세계평화 척도로 연결시키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가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를 북한의 체제전환과 연결시키려 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조정을 받는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미국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원조 제공시 미국식 시장경제체제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로 인해 원조를 받는 나라들은 금융자유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 압력에 굴복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금융재난을 면치 못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미 세계경제는 미국 금융위기, 석유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심각한 위기국면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경제의 대안적 모델로 언급되던 베트남은 물가폭등, 부동산 거품 심화, 상품수지 적자, 주가 폭락으로 인해 외국자본의 이탈과 IMF 구제금융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으로 인해 북한 민중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나 세계 경제위기의 직격탄이라는 가능성 역시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