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6호 | 2008.07.11
개헌선에 육박한 한나라당, 누가 그들을 막을 것인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기조 변경 논란에 부쳐
촛불을 꺼라?
지난 7월 5일(토) ‘국민 승리 선언을 위한 촛불 대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50만 명이 참가했다. 정부 고시가 강행되고 정부와 검찰이 ‘촛불 시위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선언한 뒤였지만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결코 사그라지지 않은 것이다. ‘고시철회, 협상무효’, ‘전면 재협상’과 각종 ‘친재벌/반민중 정책 중단’이라는 민중의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고 ‘대국민담화’, ‘추가협상’과 같은 촛불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기만적인 술책도 바닥을 드러내자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 탄압을 전면화했다. 7월 6일(일)부터는 시청광장 주변의 통행을 차단하고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시작했다. 광우병 대책회의 주요 간부 수배에 이어, 7월 2일 민주노총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총파업을 ‘근로조건 개선과 관계없는 불법 정치파업’으로 규정하고 이석행 위원장 및 금속노조 간부 34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심지어는 촛불집회 홍보 전단을 동네에 부착하던 시민을 연행, 구속영장을 청구하는가 하면, 검찰은 조중동 불매 광고를 주도했다며 네티즌 20명에게 출국금지명령을 내리고 수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와 더불어 이명박은 촛불시위가 물가상승을 부추긴다거나 촛불시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조원에 이른다는 둥의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동원하며 촛불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협상은 필요하지만 촛불집회는 줄여야?
상황이 이러한데 광우병 대책회의 소속 몇몇 시민단체들은 ‘촛불은 지속하되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식의 운동을 확산하자’고 주장하며 촛불시위의 기조와 방향을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7월 3일(목)에 열린 광우병 대책회의 운영위원회에서 몇몇 시민단체들은 ‣ 광우병 대책회의는 7월 12일과 7월 17일 촛불집회에 집중하고 나머지 날에는 각 참가단체가 자발적으로 촛불을 이어가도록 하고, ‣ 재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산쇠고기 불매운동을 중심 사업으로 전개하고, ‣ 정부가 재협상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민중의 의사를 표출하는 직접 행동의 장이 된 시청광장과 광화문에서의 거리 시위를 축소하고 일상적인 캠페인에 무게 중심을 싣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광우병 문제를 넘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이미 확대된 의제를 다시 축소하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단체들은 재협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촛불집회는 접을 때가 되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이런 여론을 반영해서 촛불집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이다.
광우병 대책회의는 중고등학생들과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가 열린 후 이를 지원하고 확대할 것을 표방하며 결성되었다.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와 행진에 관한 여러 실무를 지원하는 한 편 집회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들을 바탕으로 입장을 형성하여 발표하고, 함께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들을 제안/실행하고, 촛불집회의 진로를 둘러싼 논의의 공간을 여는 등의 활동을 통해 촛불집회가 지속되고 확대되는 데 기여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촛불시위의 지도부로서가 아니라 촛불시위의 적극적 참여자이자 지원부대로서 신뢰를 획득해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기구로서 출발한 대책회의는 촛불시위에서 쏟아져 나온 목소리를 반영하여 ‣한반도 대운하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물/공공부문 사유화 반대, ‣ 학교자율화 반대, ‣공영방송 사수를 포함하여 의제를 확대했다. 6월 10일 ‘100만 촛불 대행진’에서는 촛불의 의지를 반영하여 ‘이명박 정권이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정권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그 전부터 촛불집회에 참석한 대중은 이명박 정권을 통해 이런 요구를 실현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며 ‘이명박은 물러나라’, ‘이명박 Out’이라는 구호를 전면화했다. 대책회의는 6월 10일 대회를 통해 선포한 ‘정권 퇴진도 불사’한다는 방침과 확대된 의제를 바탕으로 한 운동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를 두고 두 차례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렇듯 그 동안의 촛불시위는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투쟁의 방식과 요구를 함께 모으면서 운동의 흐름을 일구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요구와 의제를 축소하고 정치적 방향을 전환하려는 몇몇 단체의 시도는 두 달간의 촛불시위에서 공동으로 형성해 온 촛불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불매운동으로 재협상을 실현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조의 전환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불매운동과 재협상 국민투표 요구 캠페인이 촛불시위를 대체하여 재협상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라고 주장한다.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위해 철저하게 미국 축산업계의 입장에 서서 졸속적으로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한 후, 촛불시위를 통해 표출된 민중의 건강권에 대한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정부 고시를 강행함으로써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도록 만든 이명박 정부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행동을 축소하고서는 결코 재협상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매운동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대책회의 활동을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단체들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3불운동(안 먹고, 안사고, 안 팔기) 및 원산지 표시 실시 감시 등을 제시한다. 이는 협상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전가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이 내세웠던 논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이런 방식의 운동으로는 재협상 요구를 관철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는 효과만 낳을 뿐이다.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고 민중의 고통을 심화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한미 FTA를 통해 대미 무역을 확대하고 외자유치를 촉진하는 것 말고는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벗어날 별다른 대안이 없는 이명박 정권의 현실이 바로 ‘졸속협상’의 원인이다. 이를 끊임없이 문제 삼지 않고서는 재협상은 없다.
촛불을 배신한 민주당
한 편 7월 5일 촛불집회에 거당적으로 참석했던 민주당은 가축전염예방법 개정을 한나라당과 합의한 뒤 등원했다. 민주당은 촛불 시위가 활발하게 전개되던 5월에는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다가 6월에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요구하더니 결국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명분삼아 촛불을 배신하고 등원한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의한 내용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을 “추가협상 내용과 국민적 요구 및 국익을 고려해 개정”한다는 것뿐이다. 한나라당은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특정위험물질(SRM) 수입금지와 검역주권 확보 관련 내용을 개정안에 넣자는 민주당의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의 등원과 이어 진행될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은 촛불시위를 무마하기 위한 이명박의 술책이었던 ‘추가협상’의 내용을 다시한 번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촛불 민심에 기대어 인기를 회복하려던 것에 불과했다는 민주당의 본심이 등원을 통해 분명해진 셈이다.
물러섬 없는 투쟁을 전개해야
현재 촛불시위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그동안 촛불시위가 제기해 온 쟁점은 미국산 쇠고기를 식탁에 올릴지 여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유포하여 당선된 후 물가인상, 고용불안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무대책으로 일관하며 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달성하는데 혈안이 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힌 한미 FTA 국회비준과 ‘공기업 선진화’로 이름을 바꾼 공공부문 사유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촛불시위를 철저하게 짓밟겠다고 나섰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의 상황에서 민중의 불안과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한 채 재벌이 살 길만 찾아나서는 이명박 정부에게 분명 두 달여 동안 지속되어온 촛불시위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만약 현재 촛불집회가 여기서 무력하게 꺾이고 만다면 촛불집회로 촉발된 국면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나아가 더욱 나쁜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명박이 대선에서 여유 있게 당선되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 이명박 정부의 독주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누가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7월 10일(목)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의원들의 일괄복당을 허용했다. 그들이 모두 복당한다면 한나라당 의석은 152석에서 177석으로 늘게 되며, 이미 입당 의사를 밝힌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최대 182석이 될 전망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개헌 선(재적 의원 2/3, 200석)에 이르는 거대 여당이 출현하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여기서 무력하게 꺾이고 만다면 이명박 정부는 공안탄압이 실효성을 거둔 것으로 여기며 자신감을 얻을 것이며 한나라당은 결국 자신이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빠질 것이다. 두 달간 촛불시위로 터져 나온 대중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체 이미 더 이상 국민의 대표가 아님을 선언해버린 이명박 정부, 개헌선에 육박한 한나라당.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