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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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84호 | 200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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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방어망인가, 완벽한 위험인가

부시정부 NMD·TMD 구상의 의미

편집부

부시 텍사스주지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의 NMD(미국본토 미사일방어망) 및 TMD(전쟁지역미사일방어망) 구상이 급한 물살을 타고 있다. 1996년 클린턴정부 당시 발표된 NMD 관련 <3+3계획>은 1999년까지 NMD 체계를 개발하고, 요격실험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 2003년까지 1단계 배치를 완료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9∼2000년 기간에 시행된 세 차례의 요결실험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실패로 끝났고, 클린턴정부는 애초 계획을 번복해 그 결정권을 차기 정부로 넘기고 말았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게 될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시대통령은 대선에 나서면서부터, 그 실험결과에도 불구하고 NMD 배치를 최대한 이른 시기에 마무리한다고 공약을 이미 내걸었고, 현재는 국방외교 분야의 주요 고위관리 자리에 NMD 프로그램의 신봉자들을 앉히고 있다. 또한 최근 부시정부는 중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만에 TMD 프로그램과 관련된 구축함 판매를 강행할 것이며, 한국에도 패트리어트 미사일 추가 도입을 종용하는 등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일본-한국-대만을 잇는 범지역적 차원의 TMD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해주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NMD·TMD 체계는 직접적으로는 북한, 이라크, 이란 등의 지역강국(regional powers) ― 이는 과거 소련과 같은 세계강국(global powers)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 들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동시에 잠재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가까운 미래의 적국으로 상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미국이 여전히 과거 냉전 시기의 전략구도에 기초하여 전쟁전략과 무기체계를 발전·강화시키고 있음을 암시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전략은 자연스럽게도 다양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핵무기 감축 노력의 위기를 낳고 있다. 1972년 소련과 체결된 ABM 협정(탄도미사일방어망제한협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각국의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킴으로써, 다시금 핵무기 경쟁을 자극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사일방어망 구상은 핵전쟁을 위한 무기 체계를 우주 공간 수준으로 확대함으로써 군비경쟁이 '우주의 군사화'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NMD·TMD 체계를 신속히 추진해야 될 근거로 제시하는 이른바 '북한 위협론'은 한반도 정세와 직결되고 있다. 최근 부시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 유지를 위해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될 것이라고 '솔직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NMD·TMD 추진이 안착될 때까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할 개연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NMD 체계가 부딪힌 현실적 장애

하지만 NMD 계획이 강행되면서, 미국내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먼저 NMD 체계를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엄청난 액수의 국방 예산이 문제이다. 2000년 4월 미 의회예산국(CBO)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까지 3단계로 구성된 NMD 체계를 배치 완료하는 데에는 최소한 600억 달러가 투입될 전망이다(1달러를 1300원으로 잡으면 약 80조원). 그러나 이 역시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배치하는 데에 통용되는 전통적인 방식, 즉 '일단 들이밀고 보기' 식이라면 앞으로 실제 비용은 훨씬 늘어날 수 있다.
또 하나 현실적인 이유는 미사일 요격 실험의 거듭된 실패이다. 실전 배치 결정과 관련된 1999∼2000년 기간의 몇 차례의 미사일 요격 실험은 큰 관심을 모았다(한 차례의 실험에만도 무려 1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일부에서 예견한 바대로, 실험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1년 1월의 2차 실험은 시속 25,000㎞로 돌진해오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태평양 카와잘렌 섬의 요격통제본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이었으나, '적' 미사일을 20km 앞둔 시점에서(요격 6초전) 열감지장치가 오작동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2000년 7월의 3차 실험의 경우에는 요격탄두가 아예 로켓에서 분리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3차 요격실험마저 실패로 끝난 후,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미국정부는 위협, 기술, 비용, 미국 안보에 끼칠 영향 등 네가지 판단기준에 따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하지만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시급히 NMD를 배치해야 할 정도로 '악당국가'들의 (핵)탄도미사일 공격능력 보유가 임박했는가. 둘째, NMD의 기술적 난제들이 해결되었는가. 셋째, NMD 배치에 투여될 막대한 비용 보다 더 적은 돈으로 악당국가들의 미사일 공격 능력 보유를 막을 수 있는 다른 (외교적) 방법은 없는가. 넷째, NMD 배치에 따른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올브라이트가 제시한 NMD실전배치의 판단기준이였다.

NMD 실전배치의 판단 기준들

이 각각에 대해 미국내 NMD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른바 '악당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의 위협은 지금까지 크게 과장되었다. 설사 특정 국가가 초보적인 수준의 핵-미사일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1∼2개의 미사일 공격에 의한 피해를 마치 과거 냉전시기 소련과의 핵 대결 당시의 위험과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하도록 암시하는 것은 명백히 그릇되었다.(냉전시기에 처한 핵전쟁의 위험은 북반구의 모든 인류의 절멸과 핵겨울을 초래할 수준이었다.) 설령 특정 국가가 초보적인 수준의 핵공격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목표물을 제대로 파괴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미국이 충분히 보복할 수 있는 재래식 전력은 결정적인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미사일 위협은 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둘째, NMD는 비싼 고물덩어리일 뿐이다. 실제 미국 국방부가 위촉한 특별위원회도 NMD 계획이, 진짜 미사일과 레이더 교란용 물체간의 식별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제기하였다(워싱턴포스트, 2000.6.18). 또한 미사일 요격 실험들은 실전 상황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주간 타임 2000.7.3) 예컨대 NMD 운영요원들이 요격대상 미사일의 발사와 출처, 성능에 관한 정보를 먼저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실험이 실시되었고, 또한 NMD 방어 개념에는 내습하는 적 미사일이 10여기로 설정돼 있으나 시험발사는 1기의 미사일만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목표 미사일의 비행속도도 실전 보다 느리게 설정되었다.
셋째, NMD 개발 노력은 중동 및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상대화시킨다. 이는 오히려 NMD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의 긴장을 유지하도록 미국의 대외정책을 역규정하고 있다. NMD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노력보다, 더 직접적으로 각 지역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외교적 수단들이 강구될 수 있다.
넷째, 미국의 NMD 개발 노력은 어떤 궤변에도 불구하고 1972년 소련과 체결된 방공망제한협정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러시아와 중국은 실전 배치될 NMD 체계에 상응하거나 혹은 능가하도록 대륙간 핵탄도미사일 보유량을 유지하거나 그 능력 개량에 나설 것이다. 이는 냉전 이후 세계적인 핵감축 노력을 수포로 만들 것이다.

NMD·TMD 프로그램과 핵전쟁의 미래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적 장애들과 미국 내의 반대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가 NMD 프로그램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현실적으로 엄존하는 최첨단 군수산업체들의 이해관계와 강력한 로비 활동, 정치계-군부-군수산업체-군사기술연구소-군사전략연구소-대학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인맥은 매우 핵심적인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예컨대 퇴역하는 고위군인들은 종종 군수산업체의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겨 고액의 연봉을 받고 고급 로비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발전에 내재되어 있는 끊임없는 자기완성과 진화의 논리라는 것에도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미국 본토에 가해질 수 있는 핵공격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 구축 계획은, 미국 자신이 세계 최강의 핵강국으로 부상한 바로 그 시점부터 미국 군부의 최고의 희망사항 중 하나였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세계 최강의 핵보유 국가이지만. 핵무기의 절대적 파괴력을 고려할 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완벽한 對핵무기 방어능력을 보유할 때 비로소 자신의 핵전략이 완성된다는 논리를 좇아 왔다. 물론 최근 NMD·TMD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능력에 대한 집착이 새삼 문제시되고 있지만,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은 미사일방어망 개발에 골몰하여 왔다. 1960∼70년대의 핵무기를 이용한 핵무기 요격 시스템 개발(Nike 계획), 1980년대 非핵파괴 방식으로 전폭적 방향전환을 긴한 SDI 구상(레이저 빔, 레일건, 미사일 충돌 요격) 등의 지속된 노력의 결과가 단편적으로 드러난 게 현재의 NMD·TMD 체계이다. (현재 레이저 빔을 이용한 요격 기술도 계속 실험중에 있다.)
따라서 현재 NMD·TMD가 순전히 방어수단이라는 미국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공격적인 핵전략의 일부로서 계획되고 추진된 것이라는 사실은 은폐될 수 없다. 그러한 선전은 미국의 실제 의도가 '선제 핵공격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또한 핵무기의 실질적인 감축 없이도 세계의 군사적 균형과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만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볼 때 기만적일뿐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하는 극히 위험천만한 주장인 셈이다.

NMD·TMD와 한반도 평화

마지막으로 미국 내 반대 여론들이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맹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즉 '악당국가들의 핵공격 위협'이라는 전제를 아무런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한반도를 비추어 보았을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과거 수십년 동안 한반도에 수백 내지 수천 기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해왔고, 또 현재에도 동북아 군사기지들에 배치되어 있는 핵무기를 통해 유사시 대북 '핵선제공격' 옵션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미국의 역사적 존재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NMD·TMD 개발계획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직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먼저, 북한이 '악당국가'라는 인식을 심화시킴으로써, 대북 대결정책을 부추길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TMD 구상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가일층 높일 것이다. 미국이 개발하는 TMD관련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이지스함등을 도입할 때 소요되는 국방비도 막대한 규모가 될 것이다. 게다가 현재 김대중정부는 미국의 NMD·TMD 구상을 소극적으로 승인함으로써 미국이 규정하는 정책적 틀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는 ABM조약을 둘러싼 한러 공동성명 해프닝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났다.)
세계최강의 핵강국이면서도 가장 '완벽한' 방어체계를 통해 핵전쟁전략을 완성하고자 하는 미국, 북한을 '악당국가'로 지목하면서 NMD·TMD를 가속화하려는 부시정부, 한미일 군사동맹과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미국의 핵선제공격 옵션,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는 것보다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지형을 더욱 '완벽한' 위협에 빠뜨리는 것은 아마도 당분간 없을 것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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