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9호 | 2008.07.31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비판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
폭우와 태풍 등 기상이변이 빈발하는 여름이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가 주목을 받는다. 2002년 이후 꾸준히 인상되어온 원유가격도 여기에 한몫한다. 150달러를 위협하던 원유가격이 최근 많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현재 120달러대인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연초대비 30달러 이상 상승한 가격이다. 그런데 변변한 에너지 자원이 없는 한국은 석유 수입량 세계 4위, 석유 소비량 세계 6위다. 또 화석연료 연소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세계 9위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러한 현상 때문만이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모순에 주목하는 좌파라면 밀접이 연관되어 있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두 문제는 여타의 환경문제와 다른 특징이 있다. 오존층 파괴나 지역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환경문제는 정책 변화나 기술적인 조정으로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프레온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사회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하고 1989년 발효시켰다. 이 조치는 실효성을 거두어 프레온 가스 사용을 금지시켰고, 현재의 추세라면 60년 이내에 오존층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한국의 환경운동에게는 뼈아픈 실패의 사례이지만 새만금 간척과 같은 개발 사업으로 인한 지역생태계 파괴도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국제사회의 협력이나 일국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기술적인 조정의 효과도 미미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인력, 축력,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의 발견과 응용의 역사였다.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성립이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원 전환과 결부되어 있고,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석유와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의 이면이 200여 년 간 화석연료의 연소로 발생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다. 또 유한한 화석연료의 채굴로 자원고갈이 임박했고, 자원 확보 과정에서 지정학적인 긴장과 분쟁이 심화되어 에너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모순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책도 체제의 변혁과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 현황
에너지 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와 결부되어 있지만 지역적 조건과 자본주의 발전의 상이함으로 인해 지역별, 국가별 편차가 있다. 2007년 한국은 에너지 소비 규모 세계 9위로 전 세계 에너지의 2.1%를 사용했다.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석탄(세계 2위), 석유(세계 4위), 천연가스(세계 8위) 수입에 있어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에너지원별로 보자면 1차 에너지 소비 중 석유가 44.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이하 에너지원별 비중은 2005년 통계). 석탄 24.0%, 원자력 16.1%, 천연가스 13.3%, 신재생에너지 1.7%, 수력 0.6% 순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대수력을 합친다고 해도 2.3% 밖에 되지 않는다.(정부는 시설용량 10,000kW이하의 수력발전인 소수력만을 신재생에너지로 규정하다가 2003년부터는 대수력도 통계에 포함하고 있다.) 수력을 제외한다면 그나마도 폐기물 소각열이 신재생에너지의 91.3%를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의미의 재생에너지는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소비는 1981년에 4,670만TOE에서 2006년 2억3,340만TOE로 5.0배 증가했다. (TOE, 즉 석유환산톤(ton of oil equivalent)은 각 에너지원의 열량을 석유 1톤의 열량으로 환산한 것이다. 석유 1톤의 열량은 1,000만Kcal다.) 그 사이 GDP는 5.2배 늘어났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1.18TOE에서 2005년 4.73TOE로 4배 증가했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OECD평균 4.74TOE에 육박하는데, 세계평균에 비해서는 2.5배 높다. 1인당 GDP가 OECD평균의 76.7% 정도인 것에 비교한다면 GDP 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많다. 한국은 이미 1인당 석유 소비가 세계 5위이고,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독일(4.18TOE), 영국(3.88TOE), 일본(4.15TOE)보다 높은 상태다.
한편 부가가치 1,000달러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투입량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Energy Intensity)는 2005년 0.357TOE/1,00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 평균 0.195와 격차가 크다. 일본의 0.106과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것인데, 한국경제가 에너지 효율성의 측면에서 지극히 낙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최종 소비 부문에서는 2006년 현재 산업 부문이 최종 에너지의 56.0%를 소비하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송 부문이 21.0%, 가정 및 상업 부문이 20.8%로 비슷한 비중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구 에너지 절약 중심의 캠페인과 전기요금체계는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 최종 에너지 소비를 에너지원별로 살펴보면, 석유가 56.6%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16.7%를 차지한 전력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의 비중이 높아 비에너지용으로 쓰이는 석유 비중이 상당하다. 최종 에너지의 22.6%가 석유화학산업을 비롯해서 다양한 산업에 비에너지용으로 쓰이고 있다. 최종 에너지 소비 부문별로 에너지원 소비를 보면, 산업 부문은 2006년 석유의 52.5%, 전력의 50.7%를 소비했다. 2005년 현재 최종 에너지의 16.7%를 차지하는 전력은 화력발전으로 57.5%가, 원자력발전으로 40.3%가 생산된다. 원자력발전소는 2008년 현재 20기가 가동 중이고 4기가 건설 중이며 4기가 계획 중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추진 배경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저간의 사정을 파악해야한다. 2002년부터 환경시민단체들은 에너지 정책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고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둘러싼 국회나 정부 부처 간, 시민사회 간의 다양한 충돌을 거쳐 2006년 3월 진통 끝에 정부의 안을 토대로 하는 에너지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 발효되었다. 에너지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에너지 분야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기본법이 없이 수십 개에 이르는 개별 에너지 법안들이 난립했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중장기적인 에너지 계획도 부재했다. 1997년에 1차(1997~2006), 2002년에 2차(2002~2011)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이러한 이유로 기본계획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에너지 전반에 걸친 계획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도 계획기간이 10년으로 짧았다.
새로 재정된 에너지기본법 상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5년마다 20년 단위로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립, 시행하도록 되었다. 그러나 2006년 말 출범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초기부터 난항을 겪으며 에너지기본계획을 논의하지 못했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민관이 공동으로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국무총리, 주요 관계부처 장관, 민간에서 위촉된 위원까지 포괄하는 회의로 그 위상이 막대하다. 하지만 국가에너지위원회가 독립사무국의 설치를 거부하고, 주요 실무를 산자부(현재는 지식경제부)가 담당하게 되면서 현재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다양한 논의보다는 에너지 확보의 당위성만 주장하는 기존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란 가운데 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채 2007년 12월 공청회만 한차례 진행했다. 마침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 이양과 부처 통폐합이 겹쳐서 관련 논의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러나 2008년 6월 갑자기 에너지기본법에 명시되어있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 결과 발표의 형식으로 국가에너기지본계획안 2차 공청회가 열렸다. 에너지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국가에너지위원회 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내용을 검토, 심의하도록 되어있는데 관련 전문위원회에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공청회를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환경시민단체는 일방적인 계획 수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8월말로 시한을 정한 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일을 추진 중이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문제점 1
: 에너지 위기 시대에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겠다?
정부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지난 6월 4일 2차 공청회에 제출되었던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안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정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용역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왔던 전례를 볼 때 이것이 사실상 정부의 안이라고 봐야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6월 4일 <장기에너지 수요전망을 중심으로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과 <고유가/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원자력의 역할>,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성장 동력화>를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2030년까지 한국사회 에너지 체제의 장기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수요전망과 수요관리 분야'와 '에너지원 구성방안'으로 나눠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먼저 '수요전망과 수요관리 분야'를 살펴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GDP성장률 3.7%, 2030년 석유 1배럴당 100달러에 기반해 총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7%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요관리를 통한 목표 안은 에너지효율 45% 향상으로 에너지원단위를 0.347에서 0.190로 낮추어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1.2% 증가로 낮출 예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에너지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서 2030년 3억850만TOE로 2006년 대비 32%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2030년까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머문다는 전망은 기대에 불과할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가는 현재도 130달러를 넘나들고 있고 장기적으로 150달러나 200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석유생산량이 '허버트 곡선'이라는 종모양의 곡선을 그려 생산량이 정점에 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는 피크오일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유가격이 인상됨에 따라 오일샌드나 이판암으로부터 석유를 추출하는 비재래식 석유 개발 가능성이 높아져 가지만 이에 따르는 금전적, 환경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피크오일은 값싼 석유의 종말 신호다.
미국의 환경사회학자 존 벨라미 포스터에 따르면 피크오일 논쟁은 지난 10년 동안 첨예하게 벌어졌는데, 현재는 조기 정점론과 만기 정점론으로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조기 정점론은 2010~2012년경 피크오일에 도달할 것이며 2005~2006년에 이미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만기 정점론은 2020년 또는 2030년에서야 비로소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피크오일이 현실이거나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라는 데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인가, 이미 지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100달러 이상의 초고유가를 예상하고 에너지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주요 내용으로 담아야 한다. 특히 한국은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비슷한데 1인당 GDP가 세 배 정도 되는 독일과 일본보다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많다. 따라서 환경시민단체들은 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수요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합리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구조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며 효율기술, 효율정책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경제성장이 오히려 에너지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경제수준이 된 이후에는 경제성장이 오히려 에너지 수요를 감소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7%씩 증가한다는 안은 에너지 수요관리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목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쟁점이 있는데 고소득 국가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화학 공업의 입지 재조정이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1~2차 오일쇼크를 겪고 1970~80년대 중화학공업을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로 이전하고 금융화와 서비스산업 위주로 경제의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에너지 소비 증가 없는 '고부가가치' 창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고소득 국가에서 이전되는 중화학 공업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은 현재까지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화학 공업과 건설업의 비중이 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석유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성장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세계 4위의 석유 수입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 6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특히 최근에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 6월 수출액 중에서 석유제품이 4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달 석유 수입액이 82억5000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수입 원유의 절반가량을 재가공해 수출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부가 에너지 수요 증가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한 한국 경제구조의 특징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실질 GDP 대비 수출의 비율은 2008년 2/4분기에 64.9%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 197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 비율은 1970년 2분기 4.5%에 불과했으나 같은 분기 기준으로 1980년 13.8%, 1990년 17.1%, 2000년 40.5% 등으로 상승하다 2004년부터 50%를 돌파했다. 이어 2005년 52.5%, 2006년 57.6%, 2007년 60.9%로 빠르게 올라갔다. 따라서 2008년 6월 수출액 기준으로 볼 때 석유제품(1위 40억 달러), 정보통신기기(2위 39억4000만 달러), 승용차(3위 30억3000만달러), 선박(4위 28억2000만달러) 등 주로 중화학공업 생산물을 수출해 지탱되는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없으면 에너지 수요의 급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설사 환경시민단체의 요구대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더라도 이것이 제3세계로의 또 다른 산업입지 이전의 결과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한국도 이미 에너지 수요 증가율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므로 빠른 시일 내에 최고점을 지나 수요가 줄어드는 단계로 들어 갈 것을 예상하고,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섬세한 비판과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효율성 달성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산업 입지와 에너지 소비의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문제점 2
: 원자력은 확대하고 재생에너지는 최소화한다?
'에너지원 구성방안' 측면에서 보자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은 최종에너지 수요에서 연간 신재생에너지 증가율을 7.0%로 예상하고 있다. 전력 수요는 연간 1.7%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석유의 낮은 증가(0.2%), 석탄 증가율의 감소(-1.6~2.0%)를 원자력 발전으로 채울 계획이다. 결국 재생가능에너지는 1차 에너지 공급 비중에서 8.7%인 반면 원자력 발전은 현재 설비 비중 26%를 37~42%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발전량 비중으로는 원자력 발전을 현재 전력생산의 35.5%에서 6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현재 가동 중인 20기,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8기외에도 9~13기 더 건설하겠다는 안이다. 이미 한국은 원자력 발전 시설용량으로는 세계 6위, 전력 생산량 중 원자력 발전 비중에서는 세계 4위다. 또 국토 면적 대비 원자력 발전 시설용량은 압도적인 1위로 어느 국가보다 원전 밀집도가 높다. 한국은 1ha당 9.93kW의 원전 시설이 들어섰는데 밀집도 2위인 일본은 1ha당 1.73kW이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이 2위 일본보다 5.7배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네 개 지역에 원전이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실질적인 밀집도는 더 높다. 2016년까지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8기가 추가된다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9~13기를 어디에 더 지을 수 있을까. 이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기존에 입지했던 네 지역 이외에 추가적인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데 지역주민의 반발과 엄청난 온배수 유출로 인한 해양환경 파괴가 예상된다. 또 정부는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에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20여 년 만에 현금 3천억 원과 각종 특혜, 부정선거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하고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서조차 아무런 계획이 없는 상태다.
원자력이 고유가나 기후변화의 대안이 된다는 정부와 산업계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원자력 에너지를 자가 동력원으로 하는 공장이나 핵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전력 부문뿐이다. 그런데 전기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고작 17%를 차지한다. 한국은 수입한 석유의 55%를 석유화학, 섬유제품으로 소비하고 있으며, 36%를 수송부문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총 석유 소비에서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석유는 3.5%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유가의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을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기후변화의 대책으로 원자력을 내세울 수도 없다. 원자력 발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50년 정도만 쓸 수 있다. 원자력 발전으로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전 세계적으로 2,000~3,00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의 기술과 자원량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고, 인간의 실수로 인한 안전상의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동안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는 핵 산업계와 일부 국가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낮게 설정했다. 중국조차도 2030년이면 전체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9%에 미달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더군다나 그 내용을 보면 기존 화석연료의 효율을 높이는 석탄액화가스화나, 에너지 투입이 더 필요해서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폐기물 소각열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1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5%로 확대할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후 19년간 4%를 더 늘리겠다는 목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해서 정책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해야
정부가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기존의 공급위주 에너지 정책을 지속하려는 목적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안에서 에너지 수요관리는 효율성 제고에 맞춰져 있고, 그 구체적인 방안은 사유화 확대와 시장기제 활용이다. 이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보편성을 해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안이다. 또 국가에너지기본계획 5대 비전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사회 구현'의 실내용인 자주개발률을 2005년 4.1%에서 2030년 40%로 높이겠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자주개발률 제고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함께 석유 자원을 확보를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중동을 재편했다. 최근에는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에너지 제국주의가 오늘날 세계의 현실임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광구개발이나 채굴권확보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겠다는 한국정부의 방안은 이러한 에너지 제국주의에 동참해서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수급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례를 이라크 파병에서 경험했다. 국익론의 지지를 받은 참전과 뒤이은 자원 확보 경쟁은 쿠르드 유전 개발권 논란에서 보듯이 중동의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문제를 발생시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하는 한 해결할 수 없다. 화석연료보다 위험하고 파괴적인 원자력은 문제를 지연시키거나 심지어 악화시키는 방책일 뿐이다. 유일하게 가능한 기술적인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와 다르다. 한국정부가 산업 육성과 통계치 확대를 위해 포함시킨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 신에너지는 재생가능성과 환경친화성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소수력이 포함될 수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 위기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태양광, 태양열, 풍력과 같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소규모로 분산된 재생에너지가 현재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지가 하나의 쟁점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설령 그러한 에너지 체제와 사회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러한 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후자의 문제에 주목하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화석 에너지 사회, 자연의 지속가능성에 발맞춘 생태사회가 보편적으로 가능한가?
분명한 것은 에너지 부문만의 변화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설명했듯이 현재의 에너지 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에너지 소비 구조는 한국경제의 발전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에너지 부문만의 분리된 계획으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 한국정부의 일국적인 정책변화로도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설령 한국사회가 에너지 체제의 효율화를 달성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세계의 폭력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 할 수는 없겠지만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의 진정한 대안을 사고하면서 간과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러한 현상 때문만이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모순에 주목하는 좌파라면 밀접이 연관되어 있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두 문제는 여타의 환경문제와 다른 특징이 있다. 오존층 파괴나 지역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환경문제는 정책 변화나 기술적인 조정으로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프레온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제사회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하고 1989년 발효시켰다. 이 조치는 실효성을 거두어 프레온 가스 사용을 금지시켰고, 현재의 추세라면 60년 이내에 오존층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한국의 환경운동에게는 뼈아픈 실패의 사례이지만 새만금 간척과 같은 개발 사업으로 인한 지역생태계 파괴도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국제사회의 협력이나 일국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기술적인 조정의 효과도 미미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인력, 축력,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의 발견과 응용의 역사였다.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성립이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원 전환과 결부되어 있고,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석유와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의 이면이 200여 년 간 화석연료의 연소로 발생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다. 또 유한한 화석연료의 채굴로 자원고갈이 임박했고, 자원 확보 과정에서 지정학적인 긴장과 분쟁이 심화되어 에너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모순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책도 체제의 변혁과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 현황
에너지 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와 결부되어 있지만 지역적 조건과 자본주의 발전의 상이함으로 인해 지역별, 국가별 편차가 있다. 2007년 한국은 에너지 소비 규모 세계 9위로 전 세계 에너지의 2.1%를 사용했다.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석탄(세계 2위), 석유(세계 4위), 천연가스(세계 8위) 수입에 있어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에너지원별로 보자면 1차 에너지 소비 중 석유가 44.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이하 에너지원별 비중은 2005년 통계). 석탄 24.0%, 원자력 16.1%, 천연가스 13.3%, 신재생에너지 1.7%, 수력 0.6% 순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대수력을 합친다고 해도 2.3% 밖에 되지 않는다.(정부는 시설용량 10,000kW이하의 수력발전인 소수력만을 신재생에너지로 규정하다가 2003년부터는 대수력도 통계에 포함하고 있다.) 수력을 제외한다면 그나마도 폐기물 소각열이 신재생에너지의 91.3%를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의미의 재생에너지는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소비는 1981년에 4,670만TOE에서 2006년 2억3,340만TOE로 5.0배 증가했다. (TOE, 즉 석유환산톤(ton of oil equivalent)은 각 에너지원의 열량을 석유 1톤의 열량으로 환산한 것이다. 석유 1톤의 열량은 1,000만Kcal다.) 그 사이 GDP는 5.2배 늘어났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1.18TOE에서 2005년 4.73TOE로 4배 증가했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OECD평균 4.74TOE에 육박하는데, 세계평균에 비해서는 2.5배 높다. 1인당 GDP가 OECD평균의 76.7% 정도인 것에 비교한다면 GDP 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많다. 한국은 이미 1인당 석유 소비가 세계 5위이고,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독일(4.18TOE), 영국(3.88TOE), 일본(4.15TOE)보다 높은 상태다.
한편 부가가치 1,000달러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투입량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Energy Intensity)는 2005년 0.357TOE/1,00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 평균 0.195와 격차가 크다. 일본의 0.106과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것인데, 한국경제가 에너지 효율성의 측면에서 지극히 낙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최종 소비 부문에서는 2006년 현재 산업 부문이 최종 에너지의 56.0%를 소비하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송 부문이 21.0%, 가정 및 상업 부문이 20.8%로 비슷한 비중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구 에너지 절약 중심의 캠페인과 전기요금체계는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 최종 에너지 소비를 에너지원별로 살펴보면, 석유가 56.6%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16.7%를 차지한 전력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의 비중이 높아 비에너지용으로 쓰이는 석유 비중이 상당하다. 최종 에너지의 22.6%가 석유화학산업을 비롯해서 다양한 산업에 비에너지용으로 쓰이고 있다. 최종 에너지 소비 부문별로 에너지원 소비를 보면, 산업 부문은 2006년 석유의 52.5%, 전력의 50.7%를 소비했다. 2005년 현재 최종 에너지의 16.7%를 차지하는 전력은 화력발전으로 57.5%가, 원자력발전으로 40.3%가 생산된다. 원자력발전소는 2008년 현재 20기가 가동 중이고 4기가 건설 중이며 4기가 계획 중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추진 배경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저간의 사정을 파악해야한다. 2002년부터 환경시민단체들은 에너지 정책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고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둘러싼 국회나 정부 부처 간, 시민사회 간의 다양한 충돌을 거쳐 2006년 3월 진통 끝에 정부의 안을 토대로 하는 에너지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 발효되었다. 에너지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에너지 분야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기본법이 없이 수십 개에 이르는 개별 에너지 법안들이 난립했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중장기적인 에너지 계획도 부재했다. 1997년에 1차(1997~2006), 2002년에 2차(2002~2011)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이러한 이유로 기본계획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국가에너지 전반에 걸친 계획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도 계획기간이 10년으로 짧았다.
새로 재정된 에너지기본법 상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5년마다 20년 단위로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립, 시행하도록 되었다. 그러나 2006년 말 출범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초기부터 난항을 겪으며 에너지기본계획을 논의하지 못했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민관이 공동으로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국무총리, 주요 관계부처 장관, 민간에서 위촉된 위원까지 포괄하는 회의로 그 위상이 막대하다. 하지만 국가에너지위원회가 독립사무국의 설치를 거부하고, 주요 실무를 산자부(현재는 지식경제부)가 담당하게 되면서 현재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다양한 논의보다는 에너지 확보의 당위성만 주장하는 기존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란 가운데 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채 2007년 12월 공청회만 한차례 진행했다. 마침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 이양과 부처 통폐합이 겹쳐서 관련 논의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러나 2008년 6월 갑자기 에너지기본법에 명시되어있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 결과 발표의 형식으로 국가에너기지본계획안 2차 공청회가 열렸다. 에너지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국가에너지위원회 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내용을 검토, 심의하도록 되어있는데 관련 전문위원회에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공청회를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환경시민단체는 일방적인 계획 수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8월말로 시한을 정한 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일을 추진 중이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문제점 1
: 에너지 위기 시대에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리겠다?
정부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지난 6월 4일 2차 공청회에 제출되었던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안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정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용역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왔던 전례를 볼 때 이것이 사실상 정부의 안이라고 봐야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6월 4일 <장기에너지 수요전망을 중심으로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과 <고유가/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원자력의 역할>,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성장 동력화>를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2030년까지 한국사회 에너지 체제의 장기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수요전망과 수요관리 분야'와 '에너지원 구성방안'으로 나눠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먼저 '수요전망과 수요관리 분야'를 살펴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GDP성장률 3.7%, 2030년 석유 1배럴당 100달러에 기반해 총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7%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요관리를 통한 목표 안은 에너지효율 45% 향상으로 에너지원단위를 0.347에서 0.190로 낮추어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1.2% 증가로 낮출 예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에너지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서 2030년 3억850만TOE로 2006년 대비 32%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2030년까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머문다는 전망은 기대에 불과할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가는 현재도 130달러를 넘나들고 있고 장기적으로 150달러나 200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석유생산량이 '허버트 곡선'이라는 종모양의 곡선을 그려 생산량이 정점에 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는 피크오일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유가격이 인상됨에 따라 오일샌드나 이판암으로부터 석유를 추출하는 비재래식 석유 개발 가능성이 높아져 가지만 이에 따르는 금전적, 환경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피크오일은 값싼 석유의 종말 신호다.
미국의 환경사회학자 존 벨라미 포스터에 따르면 피크오일 논쟁은 지난 10년 동안 첨예하게 벌어졌는데, 현재는 조기 정점론과 만기 정점론으로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조기 정점론은 2010~2012년경 피크오일에 도달할 것이며 2005~2006년에 이미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만기 정점론은 2020년 또는 2030년에서야 비로소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피크오일이 현실이거나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라는 데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인가, 이미 지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100달러 이상의 초고유가를 예상하고 에너지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주요 내용으로 담아야 한다. 특히 한국은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비슷한데 1인당 GDP가 세 배 정도 되는 독일과 일본보다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많다. 따라서 환경시민단체들은 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수요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합리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구조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며 효율기술, 효율정책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경제성장이 오히려 에너지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경제수준이 된 이후에는 경제성장이 오히려 에너지 수요를 감소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7%씩 증가한다는 안은 에너지 수요관리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목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쟁점이 있는데 고소득 국가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화학 공업의 입지 재조정이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1~2차 오일쇼크를 겪고 1970~80년대 중화학공업을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로 이전하고 금융화와 서비스산업 위주로 경제의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에너지 소비 증가 없는 '고부가가치' 창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고소득 국가에서 이전되는 중화학 공업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은 현재까지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화학 공업과 건설업의 비중이 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석유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성장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세계 4위의 석유 수입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 6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특히 최근에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 6월 수출액 중에서 석유제품이 4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달 석유 수입액이 82억5000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수입 원유의 절반가량을 재가공해 수출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부가 에너지 수요 증가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한 한국 경제구조의 특징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실질 GDP 대비 수출의 비율은 2008년 2/4분기에 64.9%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 197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 비율은 1970년 2분기 4.5%에 불과했으나 같은 분기 기준으로 1980년 13.8%, 1990년 17.1%, 2000년 40.5% 등으로 상승하다 2004년부터 50%를 돌파했다. 이어 2005년 52.5%, 2006년 57.6%, 2007년 60.9%로 빠르게 올라갔다. 따라서 2008년 6월 수출액 기준으로 볼 때 석유제품(1위 40억 달러), 정보통신기기(2위 39억4000만 달러), 승용차(3위 30억3000만달러), 선박(4위 28억2000만달러) 등 주로 중화학공업 생산물을 수출해 지탱되는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없으면 에너지 수요의 급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설사 환경시민단체의 요구대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더라도 이것이 제3세계로의 또 다른 산업입지 이전의 결과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한국도 이미 에너지 수요 증가율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므로 빠른 시일 내에 최고점을 지나 수요가 줄어드는 단계로 들어 갈 것을 예상하고, 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섬세한 비판과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효율성 달성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산업 입지와 에너지 소비의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문제점 2
: 원자력은 확대하고 재생에너지는 최소화한다?
'에너지원 구성방안' 측면에서 보자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은 최종에너지 수요에서 연간 신재생에너지 증가율을 7.0%로 예상하고 있다. 전력 수요는 연간 1.7%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석유의 낮은 증가(0.2%), 석탄 증가율의 감소(-1.6~2.0%)를 원자력 발전으로 채울 계획이다. 결국 재생가능에너지는 1차 에너지 공급 비중에서 8.7%인 반면 원자력 발전은 현재 설비 비중 26%를 37~42%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발전량 비중으로는 원자력 발전을 현재 전력생산의 35.5%에서 6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현재 가동 중인 20기,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8기외에도 9~13기 더 건설하겠다는 안이다. 이미 한국은 원자력 발전 시설용량으로는 세계 6위, 전력 생산량 중 원자력 발전 비중에서는 세계 4위다. 또 국토 면적 대비 원자력 발전 시설용량은 압도적인 1위로 어느 국가보다 원전 밀집도가 높다. 한국은 1ha당 9.93kW의 원전 시설이 들어섰는데 밀집도 2위인 일본은 1ha당 1.73kW이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이 2위 일본보다 5.7배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네 개 지역에 원전이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실질적인 밀집도는 더 높다. 2016년까지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8기가 추가된다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9~13기를 어디에 더 지을 수 있을까. 이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기존에 입지했던 네 지역 이외에 추가적인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데 지역주민의 반발과 엄청난 온배수 유출로 인한 해양환경 파괴가 예상된다. 또 정부는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에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20여 년 만에 현금 3천억 원과 각종 특혜, 부정선거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하고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서조차 아무런 계획이 없는 상태다.
원자력이 고유가나 기후변화의 대안이 된다는 정부와 산업계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원자력 에너지를 자가 동력원으로 하는 공장이나 핵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전력 부문뿐이다. 그런데 전기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고작 17%를 차지한다. 한국은 수입한 석유의 55%를 석유화학, 섬유제품으로 소비하고 있으며, 36%를 수송부문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총 석유 소비에서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석유는 3.5%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유가의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을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기후변화의 대책으로 원자력을 내세울 수도 없다. 원자력 발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50년 정도만 쓸 수 있다. 원자력 발전으로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전 세계적으로 2,000~3,00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의 기술과 자원량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고, 인간의 실수로 인한 안전상의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동안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는 핵 산업계와 일부 국가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낮게 설정했다. 중국조차도 2030년이면 전체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9%에 미달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더군다나 그 내용을 보면 기존 화석연료의 효율을 높이는 석탄액화가스화나, 에너지 투입이 더 필요해서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폐기물 소각열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1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5%로 확대할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후 19년간 4%를 더 늘리겠다는 목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해서 정책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해야
정부가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기존의 공급위주 에너지 정책을 지속하려는 목적이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안에서 에너지 수요관리는 효율성 제고에 맞춰져 있고, 그 구체적인 방안은 사유화 확대와 시장기제 활용이다. 이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보편성을 해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안이다. 또 국가에너지기본계획 5대 비전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사회 구현'의 실내용인 자주개발률을 2005년 4.1%에서 2030년 40%로 높이겠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자주개발률 제고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함께 석유 자원을 확보를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중동을 재편했다. 최근에는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에너지 제국주의가 오늘날 세계의 현실임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광구개발이나 채굴권확보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겠다는 한국정부의 방안은 이러한 에너지 제국주의에 동참해서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수급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례를 이라크 파병에서 경험했다. 국익론의 지지를 받은 참전과 뒤이은 자원 확보 경쟁은 쿠르드 유전 개발권 논란에서 보듯이 중동의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문제를 발생시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하는 한 해결할 수 없다. 화석연료보다 위험하고 파괴적인 원자력은 문제를 지연시키거나 심지어 악화시키는 방책일 뿐이다. 유일하게 가능한 기술적인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와 다르다. 한국정부가 산업 육성과 통계치 확대를 위해 포함시킨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 신에너지는 재생가능성과 환경친화성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소수력이 포함될 수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 위기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태양광, 태양열, 풍력과 같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소규모로 분산된 재생에너지가 현재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지가 하나의 쟁점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설령 그러한 에너지 체제와 사회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러한 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후자의 문제에 주목하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화석 에너지 사회, 자연의 지속가능성에 발맞춘 생태사회가 보편적으로 가능한가?
분명한 것은 에너지 부문만의 변화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설명했듯이 현재의 에너지 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에너지 소비 구조는 한국경제의 발전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에너지 부문만의 분리된 계획으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 한국정부의 일국적인 정책변화로도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설령 한국사회가 에너지 체제의 효율화를 달성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세계의 폭력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 할 수는 없겠지만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의 진정한 대안을 사고하면서 간과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