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4호 | 2008.09.20
또 하나의 대추리, 무건리 군사훈련장 확장 중단하라!
한미 군사동맹에 맞선 오현리 주민들의 저항
국방부와 경찰의 폭력만행
9월 16일 오후 3시경, 국방부는 토지공사의 직원들을 대동하여 파주시 오현리의 한 축사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경찰병력 1개 중대가 이미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몇 명의 주민들이 이들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7명의 주민을 연행했다. 다음날 오후, 주민 3명에게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또 파주경찰서 앞에서 촛불을 들고 항의하던 주민과 사회단체 회원 28명도 모조리 연행됐다. 이들 중 3명에게도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영장이 청구됐다. 그리고 다음날 18일부터 국방부는 다시 공권력을 대동하여 일방적인 감정평가를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4일 파주 직천리, 무건리 일대 370만평에 대한 훈련장 확장 ‘실시계획 승인 고시’가 경기도보에 게재된 이후, 국방부는 물적조사(감정평가)를 시작했다. 이는 훈련장 확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는 오현리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기 위한 첫 번째 절차이다.
오현리 150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은 이미 지난 7월에 국방부의 '토지강제수용에 대한 보상계획 공고'에 반대하며 이의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고, 8월 1일부터는 매일 저녁 훈련장 확장반대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국방부와 경찰은 감정평가 강행, 무더기 연행 및 구속 등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여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초기에 본보기를 보여주어 주민을 개별적으로 이탈시키겠다는 의도다. 또한 이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 공세와 맞물려 있다. 8월 주민촛불과 함께 결성된 <무건리 훈련장 확장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 핵심 활동가들을 미리부터 잡아들여, 초반에 사회운동이 결합한 저항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엄포다.
쫓겨난 주민들
1980년 파주에 350만평 규모의 무건리 훈련장이 설치되면서 그 곳에 살던 직천리 79세대 300여명, 무건리 150세대 550여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1986년, 1990년에 훈련장이 계속해서 확장되어 많은 주민들이 거주지에서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의 오현리 일대에 정착했다. 그러나 2006년 국방부는 이들에게 무건리와 오현리 일대까지 703만평의 땅을 매수하겠다고 발표하고 2009년 까지 부지매입을 완료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국방부는 실제 주민이 참가하지 않는 이른바 ‘민관군 협의체’를 만들어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오현리 주민들은 군사훈련에 의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다. 1993년 11월 밭에 포탄이 날아와 터졌고, 같은 해 12월에는 적성 종합고 운동장에 포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1996년 국방부가 권역화 훈련장 확장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각종 인허가 규제가 강제되면서 주민들은 주택이나 축사 수리 하나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 1년 중 훈련이 진행되는 180일은 파주시 파평면과 적성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통제되어 30분 이상 돌아가기 일쑤였고, 훈련 때마다 대규모 전차가 마을 도로로 이동함에도 제대로 된 인도가 없어 행인의 안전을 위협했다. 2002년 6월 13일에 발생한 故신효순, 심미선 장갑차 압사사건도 무건리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동 중이던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2005년 2월 26일에는 훈련 중인 미군 아파치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건이 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민들은 전차이동으로 인한 농지 훼손과 농작물 파손, 소음 피해, 가축유산 피해 등을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떠한 대책마련이나 보상이 없었다. 2007년에 들어 국방부는 되려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매수한 농지를 파괴하고 노골적으로 주민들의 영농을 방해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상수도까지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지난 30여년의 세월동안 주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며 군사훈련장을 확장해온 정부는 이제 주민들의 마지막 생존권마저 빼앗으려 한다. 오현리에서 쫓겨나게 되면 주민들은 평생을 바쳐온 생업인 축산업을 포기해야만 한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 나라 정부는 주민들을 내쫓고 있는가.
또 하나의 대추리
2006년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대추리, 도두리 마을을 초토화시킨 한-미 군사동맹의 칼날은 이제 경기도 파주를 향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에 이어 파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2004년 한-미간에 체결된 <연합 토지 관리계획(LPP)협정>(이하 LPP 협정)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LPP 협정으로 한국정부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전략인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에서 원활히 실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셈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미 군사동맹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핵심적인 용어다. 즉, 주한미군의 역할이 기존의 대북억제에서 동북아시아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신속 기동군’으로 확장되고, 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화력의 집중화, 효율화, 기동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LPP 협정이 명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한 안정적인 영구주둔기지 건설(평택과 오산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형 전투 기지와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는 병참기지 건설)과 첨단화된 군사 훈련시설 보장이다. 특히 미군의 신속기동능력과 타격력의 배양은 현대화된 군사훈련시설을 필요로 한다.
무건리 훈련장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바로 이 ‘군사훈련시설 보장’ 부분이다. 2011년까지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훈련장 일부를 반환하는 동시에 한국은 미군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훈련장 37개를 새롭게 조성하여 미군에게 제공해야 한다.
1980년대 550만평 규모였던 무건리 훈련장은 1996년 총 1,050만평의 권역화 훈련장으로 확장한다는 계획 아래 파주 오현리와 직천리, 갈곡리, 양주 비암리 일대의 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1997년 10월부터는 미국의 요청으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분과위 건의안-과제번호 3089>(1997.11.10)에 의해 연간 13주(91일)를 미군이 사용하게 됐다. 2004년 LPP 협정 이후, 2006년 국방부는 기존 부지를 포함해 총 703만평을 매수한다고 발표하였고, 2008년 5월 7일 직천리, 무건리 일대 370만평에 대해 강제수용재결신청 공고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제도를 한국정부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비용부담과 책임소재 논란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미 공동훈련장 조성의 비용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한국군 훈련장을 미군에게 공여하여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면 미국은 시설관리와 개조, 훈련장 접근 도로보수와 기반시설 정비, 훈련장 오염 정화, 확장부지 매입 등의 비용을 한국군에게 전가시키면서 훈련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오염, 소음 등 환경피해나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피해 등의 대한 민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LPP 협정에 따라 무건리 훈련장을 미군에게 공여하는 것 자체는 명백히 불법이다. 이 협정이 근거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유지에 따를 비용은 전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미군 재편과정은 그 비용과 책임문제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약 10조원이 넘는 미2사단의 이전비용, 평택 기지건설 비용을 한국 방위비 분담금으로 불법 전용하는 문제 그리고 비용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의 문제, 또한 현재의 무건리 훈련장 확장의 비용과 책임소재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한국정부는 이 모든 논란의 책임을 스스로 떠안으려는 형국이다. 국민의 땅과 집, 생존권을 팔아치우고, 국민의 혈세를 바가지로 퍼다 바치면서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선제공격을 위한 한미 공동 훈련
한편 주한미군의 전략적 재편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공격 능력을 미군의 그것에 필적할만하게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국방개혁 2020’(국방부 발행)에 따르면 한국군은 각 제대의 작전지역을 현재보다 4배로 확장하고 기계화여단 확대, 포 사거리 확장 및 장비증강, 공세적인 전투수행교리의 채택 등 대북 선제타격 능력과 원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강화하는 군 구조와 무기체계를 재편,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주한미군으로서는 한국군의 작전지역이 보다 확장되어 한미 공동작전 수행이 한층 더 용이해진다는 이점을 얻게 된다.
무건리 훈련장이 확장되면 한국군은 현재의 여단 작전지역(7×15Km)을 넘어서는 기갑훈련과 포사격훈련이 가능해진다. 훈련장을 확장(남북 길이 약 18Km)함으로써 현재 약 4Km 정도인 포 사격 훈련 거리를 대폭 확장하여 사거리 18Km의 K-55와 같은 야포의 실 사거리 훈련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전차의 기동훈련 지역을 확대하고 포 사격 훈련 사거리를 연장하는 것은 한국군의 작전지역 확대에 따른 보다 넓은 훈련장을 마련한다는 뜻으로 결국 한미가 공동의 훈련을 통해 대북 선제, 종심 타격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확장된 무건리 훈련장에서는 주한미군의 핵심 실사격 훈련장인 스토리 사격장(215만 평, 파주 파평면, 진동면 일대)과 미 2사단 기갑부대의 전차훈련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그마 노스 훈련장(175만 평, 파주 적성면)과 함께 임진강 도하, 휴전선 돌파, 개성 진격을 상정한 기갑훈련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역, 개성-문선 축선은 북한군의 최단 서울 공격로이기도 하지만 한미연합군의 선제공격과 군사분계선 돌파, 개성과 평양 점령을 향한 최단 공격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훈련장 확장과 대북 선제공격을 가정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훈련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하고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에 맞선 오현리의 저항
계속되는 6자회담의 난항과 북의 테러지원국 해제요구가 미국에 의해 여전히 묵살되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미는 지난 8월 18∼22일,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해 (한미연합사가 주도한 기존의 을지포커스훈련(UFL) 대신) 한미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형태의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 가디언(UFG)> 연습을 실시했다. 훈련 직후 한국합참은 “한국이 주도하는 전시작전계획이 새로운 지휘구조 하에 C4ISR(지휘통제감시정찰)체계를 시험했으며 전쟁 수행 기능별로 보완할 요소를 도출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군사령관은 훈련 도중에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에서 파견될 증원군인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 -9만여 명의 병력과 함정 160여 척, 항공기 1천600여 대 등으로 구성됨->의 신속한 파견을 위해 절차를 보다 간소화할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또한 얼마 전 열린 한미간의 정책안보구상회의(SPI)에서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에 대비하여 한미연합사 해체이후 새로 구성될 미군 한국사령부(US KOCOM)나 유엔사를 통하여 위기관리나 전시 전환 및 전쟁 확대 등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핵심 권한을 장악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완비하였고 한국군을 영구 지배하고 유사시 북에 대한 점령 통치를 합법화하려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했다.
이에 더해 최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를 계기로 북한 내부 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한미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다시 한 번 한-미 군사동맹이 여과 없이 그 침략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2008년 가을이다. 이 시간에도 파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또 다시 국민의 눈을 기만하고, 주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그어내며 가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의 철저히 조응하는 정부의 이 야만적 행위는 필경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드리운 군사경쟁을 한층 더 고조시킬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오현리 주민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다. 땅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권리를, 6년 전 잔혹하게 죽어간 두 여중생의 원한을, 그리고 평택 대추리-도두리 투쟁이 남긴 평화와 정의의 의미를, 오늘 이 시간에도 오현리 주민들은 굳건히 이어나가고 있다. 한-미 군사동맹이 조장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에 맞서, 작지만 환한 평화의 촛불을 밝히고 있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 투쟁에 사회운동은 힘차게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9월 16일 오후 3시경, 국방부는 토지공사의 직원들을 대동하여 파주시 오현리의 한 축사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경찰병력 1개 중대가 이미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몇 명의 주민들이 이들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7명의 주민을 연행했다. 다음날 오후, 주민 3명에게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또 파주경찰서 앞에서 촛불을 들고 항의하던 주민과 사회단체 회원 28명도 모조리 연행됐다. 이들 중 3명에게도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영장이 청구됐다. 그리고 다음날 18일부터 국방부는 다시 공권력을 대동하여 일방적인 감정평가를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4일 파주 직천리, 무건리 일대 370만평에 대한 훈련장 확장 ‘실시계획 승인 고시’가 경기도보에 게재된 이후, 국방부는 물적조사(감정평가)를 시작했다. 이는 훈련장 확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는 오현리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기 위한 첫 번째 절차이다.
오현리 150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은 이미 지난 7월에 국방부의 '토지강제수용에 대한 보상계획 공고'에 반대하며 이의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고, 8월 1일부터는 매일 저녁 훈련장 확장반대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국방부와 경찰은 감정평가 강행, 무더기 연행 및 구속 등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여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초기에 본보기를 보여주어 주민을 개별적으로 이탈시키겠다는 의도다. 또한 이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 공세와 맞물려 있다. 8월 주민촛불과 함께 결성된 <무건리 훈련장 확장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 핵심 활동가들을 미리부터 잡아들여, 초반에 사회운동이 결합한 저항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엄포다.
쫓겨난 주민들
1980년 파주에 350만평 규모의 무건리 훈련장이 설치되면서 그 곳에 살던 직천리 79세대 300여명, 무건리 150세대 550여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1986년, 1990년에 훈련장이 계속해서 확장되어 많은 주민들이 거주지에서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의 오현리 일대에 정착했다. 그러나 2006년 국방부는 이들에게 무건리와 오현리 일대까지 703만평의 땅을 매수하겠다고 발표하고 2009년 까지 부지매입을 완료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국방부는 실제 주민이 참가하지 않는 이른바 ‘민관군 협의체’를 만들어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오현리 주민들은 군사훈련에 의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다. 1993년 11월 밭에 포탄이 날아와 터졌고, 같은 해 12월에는 적성 종합고 운동장에 포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1996년 국방부가 권역화 훈련장 확장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각종 인허가 규제가 강제되면서 주민들은 주택이나 축사 수리 하나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 1년 중 훈련이 진행되는 180일은 파주시 파평면과 적성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통제되어 30분 이상 돌아가기 일쑤였고, 훈련 때마다 대규모 전차가 마을 도로로 이동함에도 제대로 된 인도가 없어 행인의 안전을 위협했다. 2002년 6월 13일에 발생한 故신효순, 심미선 장갑차 압사사건도 무건리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동 중이던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2005년 2월 26일에는 훈련 중인 미군 아파치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건이 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민들은 전차이동으로 인한 농지 훼손과 농작물 파손, 소음 피해, 가축유산 피해 등을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떠한 대책마련이나 보상이 없었다. 2007년에 들어 국방부는 되려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매수한 농지를 파괴하고 노골적으로 주민들의 영농을 방해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상수도까지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지난 30여년의 세월동안 주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며 군사훈련장을 확장해온 정부는 이제 주민들의 마지막 생존권마저 빼앗으려 한다. 오현리에서 쫓겨나게 되면 주민들은 평생을 바쳐온 생업인 축산업을 포기해야만 한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 나라 정부는 주민들을 내쫓고 있는가.
또 하나의 대추리
2006년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대추리, 도두리 마을을 초토화시킨 한-미 군사동맹의 칼날은 이제 경기도 파주를 향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에 이어 파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2004년 한-미간에 체결된 <연합 토지 관리계획(LPP)협정>(이하 LPP 협정)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LPP 협정으로 한국정부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전략인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에서 원활히 실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셈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미 군사동맹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핵심적인 용어다. 즉, 주한미군의 역할이 기존의 대북억제에서 동북아시아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신속 기동군’으로 확장되고, 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화력의 집중화, 효율화, 기동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LPP 협정이 명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한 안정적인 영구주둔기지 건설(평택과 오산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형 전투 기지와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는 병참기지 건설)과 첨단화된 군사 훈련시설 보장이다. 특히 미군의 신속기동능력과 타격력의 배양은 현대화된 군사훈련시설을 필요로 한다.
무건리 훈련장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바로 이 ‘군사훈련시설 보장’ 부분이다. 2011년까지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훈련장 일부를 반환하는 동시에 한국은 미군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훈련장 37개를 새롭게 조성하여 미군에게 제공해야 한다.
1980년대 550만평 규모였던 무건리 훈련장은 1996년 총 1,050만평의 권역화 훈련장으로 확장한다는 계획 아래 파주 오현리와 직천리, 갈곡리, 양주 비암리 일대의 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1997년 10월부터는 미국의 요청으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시설 및 구역 분과위 건의안-과제번호 3089>(1997.11.10)에 의해 연간 13주(91일)를 미군이 사용하게 됐다. 2004년 LPP 협정 이후, 2006년 국방부는 기존 부지를 포함해 총 703만평을 매수한다고 발표하였고, 2008년 5월 7일 직천리, 무건리 일대 370만평에 대해 강제수용재결신청 공고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제도를 한국정부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비용부담과 책임소재 논란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미 공동훈련장 조성의 비용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한국군 훈련장을 미군에게 공여하여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면 미국은 시설관리와 개조, 훈련장 접근 도로보수와 기반시설 정비, 훈련장 오염 정화, 확장부지 매입 등의 비용을 한국군에게 전가시키면서 훈련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오염, 소음 등 환경피해나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피해 등의 대한 민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LPP 협정에 따라 무건리 훈련장을 미군에게 공여하는 것 자체는 명백히 불법이다. 이 협정이 근거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유지에 따를 비용은 전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미군 재편과정은 그 비용과 책임문제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약 10조원이 넘는 미2사단의 이전비용, 평택 기지건설 비용을 한국 방위비 분담금으로 불법 전용하는 문제 그리고 비용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의 문제, 또한 현재의 무건리 훈련장 확장의 비용과 책임소재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한국정부는 이 모든 논란의 책임을 스스로 떠안으려는 형국이다. 국민의 땅과 집, 생존권을 팔아치우고, 국민의 혈세를 바가지로 퍼다 바치면서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선제공격을 위한 한미 공동 훈련
한편 주한미군의 전략적 재편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공격 능력을 미군의 그것에 필적할만하게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국방개혁 2020’(국방부 발행)에 따르면 한국군은 각 제대의 작전지역을 현재보다 4배로 확장하고 기계화여단 확대, 포 사거리 확장 및 장비증강, 공세적인 전투수행교리의 채택 등 대북 선제타격 능력과 원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강화하는 군 구조와 무기체계를 재편,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주한미군으로서는 한국군의 작전지역이 보다 확장되어 한미 공동작전 수행이 한층 더 용이해진다는 이점을 얻게 된다.
무건리 훈련장이 확장되면 한국군은 현재의 여단 작전지역(7×15Km)을 넘어서는 기갑훈련과 포사격훈련이 가능해진다. 훈련장을 확장(남북 길이 약 18Km)함으로써 현재 약 4Km 정도인 포 사격 훈련 거리를 대폭 확장하여 사거리 18Km의 K-55와 같은 야포의 실 사거리 훈련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전차의 기동훈련 지역을 확대하고 포 사격 훈련 사거리를 연장하는 것은 한국군의 작전지역 확대에 따른 보다 넓은 훈련장을 마련한다는 뜻으로 결국 한미가 공동의 훈련을 통해 대북 선제, 종심 타격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확장된 무건리 훈련장에서는 주한미군의 핵심 실사격 훈련장인 스토리 사격장(215만 평, 파주 파평면, 진동면 일대)과 미 2사단 기갑부대의 전차훈련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그마 노스 훈련장(175만 평, 파주 적성면)과 함께 임진강 도하, 휴전선 돌파, 개성 진격을 상정한 기갑훈련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역, 개성-문선 축선은 북한군의 최단 서울 공격로이기도 하지만 한미연합군의 선제공격과 군사분계선 돌파, 개성과 평양 점령을 향한 최단 공격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훈련장 확장과 대북 선제공격을 가정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훈련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하고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에 맞선 오현리의 저항
계속되는 6자회담의 난항과 북의 테러지원국 해제요구가 미국에 의해 여전히 묵살되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미는 지난 8월 18∼22일,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해 (한미연합사가 주도한 기존의 을지포커스훈련(UFL) 대신) 한미동맹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형태의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 가디언(UFG)> 연습을 실시했다. 훈련 직후 한국합참은 “한국이 주도하는 전시작전계획이 새로운 지휘구조 하에 C4ISR(지휘통제감시정찰)체계를 시험했으며 전쟁 수행 기능별로 보완할 요소를 도출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군사령관은 훈련 도중에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에서 파견될 증원군인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 -9만여 명의 병력과 함정 160여 척, 항공기 1천600여 대 등으로 구성됨->의 신속한 파견을 위해 절차를 보다 간소화할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또한 얼마 전 열린 한미간의 정책안보구상회의(SPI)에서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에 대비하여 한미연합사 해체이후 새로 구성될 미군 한국사령부(US KOCOM)나 유엔사를 통하여 위기관리나 전시 전환 및 전쟁 확대 등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핵심 권한을 장악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완비하였고 한국군을 영구 지배하고 유사시 북에 대한 점령 통치를 합법화하려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했다.
이에 더해 최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를 계기로 북한 내부 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한미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다시 한 번 한-미 군사동맹이 여과 없이 그 침략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2008년 가을이다. 이 시간에도 파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또 다시 국민의 눈을 기만하고, 주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그어내며 가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의 철저히 조응하는 정부의 이 야만적 행위는 필경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드리운 군사경쟁을 한층 더 고조시킬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오현리 주민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다. 땅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권리를, 6년 전 잔혹하게 죽어간 두 여중생의 원한을, 그리고 평택 대추리-도두리 투쟁이 남긴 평화와 정의의 의미를, 오늘 이 시간에도 오현리 주민들은 굳건히 이어나가고 있다. 한-미 군사동맹이 조장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에 맞서, 작지만 환한 평화의 촛불을 밝히고 있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 투쟁에 사회운동은 힘차게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