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1호 | 2009.05.07
신종 플루의 사회경제적 원인
근본적 대책은 존재하는가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는 멕시코와 미국에서 새로운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가 발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돼지에서 기원한 인플루엔자 H1N1이 북미 기원의 사람 인플루엔자와 조류 인플루엔자 그리고 북미, 유럽, 아시아 기원의 돼지 인플루엔자의 구성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인프루엔자 H1N1의 유전자 8개중 6개는 돼지에서 유래하며 2개는 사람과 새에서 유래한다. 관계자들은 새, 돼지, 사람 인플루엔자가 혼합된 형태를 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륙 간에 혼합된 형태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돼지인플루엔자는 미국, 멕시코를 시작으로 캐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홍콩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의 진원지인 멕시코는 차츰 안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신종 플루 확진 환자 1명도 5일간의 입원 치료 후 완치되어 퇴원하면서 이번 신종플루가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높지 않다는 낙관론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사스, 2005년 조류독감이 한국을 위협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4,000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H1N1) 대유행, 1957년 조류 인플루엔자 H2N2 대유행, 1968년 H3N2 대유행, 1976년 돼지 독감 발생, 1997년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H5N1 발병 이후에도 2001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2005년 이후로는 유라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지난 일세기 동안 인플루엔자의 발생 현황을 볼 때 이번 신종 플루는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인플루엔자 중의 하나다.
변종의 발생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C는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것이고 B는 매년 상당한 수의 사망자를 낳는 독감이기는 하나 대유행병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플루엔자 A는 매우 위험하다. 인플루엔자 A의 주요 보유숙주는 오리와 물새류이나 현재 다른 조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번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A H1N1이고 지난 2005년 유행했던 조류독감은 H5N1이었다. HxNy라는 공식은 헤마글루티닌(이하 HA)과 뉴라미니다아제(이하 NA)의 종류에 기초해 분류한 것이다. 인플루엔자A는 구형의 표면 위에 HA과 NA 단백질이 분포되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 침투할 때는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HA는 인체의 호흡기 점막 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인식하여 결합하면서 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즉 HA는 인체 세포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한편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려면 인체 세포 내에서 증식을 하고 다시 그 세포를 빠져나와서 또 다른 세포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때 세포에서 나오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NA이다. 이번 신종 플루의 치료제로 유명하게 된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는 항바이러스제로 NA의 역할을 막아버림으로써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여 증식을 막는 것이다.
인플루엔자A의 유행이 여러 지역에서 재발하는 이유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재배열과 재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변이를 하면서 종간 장벽을 뛰어넘고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로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A와 NA의 아미노산 서열이 바뀌면서 다른 종의 세포에 침입할 수 있게 된다. 최근의 연구는 조류 HA의 아미노산을 조금만 치환해도 인간 세포가 충분히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RNA로 RNA는 복제시 오류 발생률이 DNA보다 100만 배나 더 높다. 이로 인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고도의 변이 가능성 속에서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유행은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이해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숙주가 필요하고 많은 수의 숙주가 밀집해 있을수록 유리하며 서로 다른 종의 숙주가 모여 있을수록 다양한 진화가 가능하게 된다. 가난한 빈민들이 밀집된 거대 슬럼의 형성, 야생조류의 서식지 파괴, 거대축산업의 발달 등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멕시코의 사망자 집중: 빈곤 문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북미지역으로 특히 멕시코가 590명, 미국은 286명으로 현저하게 많았다. 멕시코와 미국에서 지금까지 26명이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했으며 이중 25명이 멕시코에서 숨졌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이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어떤 생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생물학적으로만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멕시코에 집중된 이유는 생물학적 원인도 있겠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 사회의 양극화와 만연한 빈곤, 거대 슬럼의 형성, 사회복지의 붕괴, 보건의료체계의 영리화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도 5월 5일 멕시코에서 유독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주요 원인은 가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멕시코의 감염환자들이 병원비를 아끼려 자가 치료에 의존한 점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국립 의학 및 영양학 연구소의 전염병 전문가 호세 시푸엔테스-오소리오에 따르면 많은 멕시코 국민이 발병 후 3~4일간 자가 치료에 의존하는 바람에 병을 치료할 중요한 시간을 잃었다. 또 멕시코 약국에 저렴한 약이 충분히 있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치료제는 팔지 않았고 판매하더라도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하기 어려웠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로 알려진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2천만 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2가량이 빈민층에 속한다. 지난달 30일까지 확인된 신종 플루 감염환자 397명 가운데 285명, 사망자 26명 중 20명이 멕시코시티 시민이다.
멕시코는 NAFTA 체결 2년 만에 농촌사회의 붕괴, 치솟은 실업률, 빈곤층의 증가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멕시코는 지난 1994년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3국이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이래 GDP 성장률, 외국인 투자 및 교역량 등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득격차 심화에 따른 극빈층 증가, 불법이민자의 기하급수적 증가, 농촌사업의 붕괴로 인한 도시빈민 양산 등 서민사회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대유행병에 관한 모든 저술은 확실히 빈곤과 표준 이하의 주거환경, 불충분한 식사가 전염병의 발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의 연구자들은 한 해 평균 3만6,000명에서 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는데 이들 대다수가 노년층, 특히 빈민이다. 인플루엔자 감염은 근본적인 영양실조, 열대병, HIV로 인해 이미 합병증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인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에 상대적으로 훨씬 커다란 충격을 준다. 멕시코에 사망자가 집중된 것은 멕시코에 만연한 빈곤과 관련이 있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 멕시코 라글로리아: 거대 축산업의 영향
멕시코가 사태의 진원지가 된 이유로 공장형 축산업을 들 수 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최초로 발생한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라글로리아 지역의 주민들은 신종 플루가 지역의 거대 돼지 축산공장을 두고 있는 스미스필드푸드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스미스필드푸드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 축산 회사로 매년 1,400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며 2,700만 마리를 도살한다.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미국 26개 주와 9개국에 진출해있으며 스미스필드푸드사의 멕시코 하청업체인 그란자스캐롤사는 베라크루즈주에 72개의 농장을 두고 매년 95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란자스 캐롤의 축산공장은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8.5km 북쪽에 위치해있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이 지역으로 온다. 주민들은 수년 째 공장에서 나오는 돼지 배설물로 인한 악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가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을 발표하기 이전인 2월부터 라 글로리아 주민 3,000여명 중 500여명이 독감 증세를 호소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매년 찾아오는 일반적인 독감이라고 치부했고, 4월에는 마을에 만연한 파리 떼를 죽이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였다.
라글로리아의 축산공장이 신종 플루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 없지만 대규모 축산공장이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폐쇄동물사육시설(CAFO)이 일반화되었는데, 이러한 시설에서 많은 수의 동물을 사육하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토양, 대기, 강으로 배출된다. CAFO 시설로 인한 악취와 대기오염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메탄가스, 동물 항생제의 잔여물질 등으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의 돼지 CAFO 시설이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호흡기 질환을 더 많이 호소했다. 돼지 CAFO에 관한 연구는 CAFO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가 공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긴장, 우울, 분노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또 다른 연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CAFO로 인해 주민들이 두통, 콧물, 목의 통증, 지나친 기침, 설사, 눈의 따가움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함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저하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CAFO 지역주민들이 악취가 심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낮은 집중도를 보였으며 침샘에서 면역글로불린A의 분비가 저하됨을 보고한 바 있다. 즉 호흡기 증상의 호소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저하는 인플루엔자 감염에 더 취약하게 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CAFO 시설들이 사회경제적 지표가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에, 그리고 백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지역보다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인종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밀집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또한 건강 유해 요인들이 빈곤층에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멕시코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새로운 돼지 독감의 발생과 확산은 돼지 사육 규모의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 2003년 3월 7일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돼지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가 갑자기 폭발한 원인으로 사육 두수의 증가, 돼지들의 원거리 이동, 백신 접종을 지목했다. 1993년 이후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은 대규모로 산업화된 타이슨 사의 양계 모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불과 10년 만에 5,000두 이상을 사육하는 공장형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의 비율이 18%에서 53%로 증가했다. 이런 대규모 사육으로 인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복제를 통해 역병으로 발전할 기회와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또 돼지들의 원거리 수송이 늘어나면서 감염 범위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산업적 축산은 인플루엔자의 위험을 높이기도 하지만 농민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거대 축산 자본들은 동물 사료 생산, 사육자, 농장, 육가공, 식품 생산 등은 모두 수평적,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저널리스트 이자벨 델포르주에 따르면 “그들은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병아리와 사료와 약을 팔고 생산물을 전부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수요가 적으면 회사는 적극적으로 닭을 구매하지 않는다. 계약 사육농은 생산과 관련된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세계 시장의 수요에 완전히 예속된다. 그들은 각자의 논밭에서 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결국 대다수 농민들에게 축산업 혁명은 부채의 증가와 자주성의 상실, 그리고 노동 착취를 의미한다. 이는 결국 빈곤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또한 돼지 독감의 발생에 있어 생태학적 측면들도 고려해야 한다. 인플루엔자의 출현과 확산 과정에 환경 문제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개입한다. 가금류의 고밀도 집적을 가져온 축산업 혁명과 더불어 전 세계적인 습지 파괴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관개농업을 위해 댐을 건설하고 습지의 물을 이용하면서 철새들도 관개 수로와 농지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방목되는 가금류, 특히 오리들이 야생 조류가 배설한 바이러스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된다는 것이다.
타미플루와 독점제약회사
세계보건기구(WHO)는 국경 폐쇄와 여행 제한이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동을 막는 데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권하지 않고 있으며, 돼지고기 섭취도 돼지인플루엔자 감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는 잠복기에도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검역보다는 손 씻기 등의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권고하고 있다. 독감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스 때처럼 격리 방침은 효과가 없다.
이종구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장은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인플루엔자 치료제 240만 명분을 인구의 10%인 500만 명분으로 늘려 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4월 29일 국회에서 이 치료제들을 추가로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은 인구의 20%로 이는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재 스위스의 로슈사가 독점 생산하는 타미플루가 전 세계적 수요량을 충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허권으로 인한 고비용 때문에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타미플루의 독점 판매권자인 로슈사의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2015년이 되어야 전 세계 인구의 20%에 투여할 수 있는 약제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제약회사들이 타미플루 생산능력이 있다는 것은 2005년 확인되었지만 로슈가 가진 특허권 때문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권 때문에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산량의 불평등한 분배도 문제이다. 2004년 9월 H5N1이 베트남에 다시 유행했을 때 베트남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유럽과 캐나다에 남아 있던 약간의 잉여분은 뉴욕과 미국의 다른 지역 보건당국들이 이미 싹쓸이한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12개에 불과했고 여기서 생산되는 양의 95%(2억 6,000만 명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소비된다.
어떤 약을 개발하는가도 문제가 되는데 약이 필요한 이들의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매력에 따라서 즉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이 개발 생산되기 때문이다. 2002년 포천500에 포함되는 10대 제약회사들이 나머지 490개 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냈다. 제약업계는 선거 기부금을 듬뿍 받은 의회의 묵인 속에서 당뇨병, 고혈압, 천식 등 만성 질병에 필요한 약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고, 비아그라 같은 생활 향상을 위한 약품을 판매하면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질병을 실질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하는 제품은 제약회사에게 외면을 당한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백신제품의 수입을 전부 합해도 화이자가 콜레스테롤 저하제 한 제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미치지 못한다. 병원 감염증으로 미국에서 매년 9만 명이 사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백신 개발에 관한 한 미국은 작은 나라 쿠바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전염병과 빈민층의 질병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쿠바는 수막염 B,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및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이 외면하는 기타 주요 감염증들을 치료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을 개발해왔다.
반복되는 발병,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는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조류 및 포유동물 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지난 조류독감 H5N1을 지나오고 이번 신종 H1N1을 피해간다 할지라도 곧 또 다른 치명적인 독감 아형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삼림 벌채나 야생 조류의 서식지의 파괴, 거대 기업형 축산, 거대 슬럼 등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문명을 숙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는 백신 개발의 속도를 훨씬 넘어선다. 게다가 적절한 백신 개발과 생산에 충분한 자원이 투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조건에 변화가 가해지지 않는 한 인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위협을 피해갈 수 없다.
돼지인플루엔자는 미국, 멕시코를 시작으로 캐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홍콩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의 진원지인 멕시코는 차츰 안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신종 플루 확진 환자 1명도 5일간의 입원 치료 후 완치되어 퇴원하면서 이번 신종플루가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높지 않다는 낙관론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사스, 2005년 조류독감이 한국을 위협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4,000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H1N1) 대유행, 1957년 조류 인플루엔자 H2N2 대유행, 1968년 H3N2 대유행, 1976년 돼지 독감 발생, 1997년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H5N1 발병 이후에도 2001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2005년 이후로는 유라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지난 일세기 동안 인플루엔자의 발생 현황을 볼 때 이번 신종 플루는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인플루엔자 중의 하나다.
변종의 발생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C는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것이고 B는 매년 상당한 수의 사망자를 낳는 독감이기는 하나 대유행병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플루엔자 A는 매우 위험하다. 인플루엔자 A의 주요 보유숙주는 오리와 물새류이나 현재 다른 조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번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A H1N1이고 지난 2005년 유행했던 조류독감은 H5N1이었다. HxNy라는 공식은 헤마글루티닌(이하 HA)과 뉴라미니다아제(이하 NA)의 종류에 기초해 분류한 것이다. 인플루엔자A는 구형의 표면 위에 HA과 NA 단백질이 분포되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 침투할 때는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HA는 인체의 호흡기 점막 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인식하여 결합하면서 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즉 HA는 인체 세포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한편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려면 인체 세포 내에서 증식을 하고 다시 그 세포를 빠져나와서 또 다른 세포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때 세포에서 나오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NA이다. 이번 신종 플루의 치료제로 유명하게 된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는 항바이러스제로 NA의 역할을 막아버림으로써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여 증식을 막는 것이다.
인플루엔자A의 유행이 여러 지역에서 재발하는 이유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재배열과 재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변이를 하면서 종간 장벽을 뛰어넘고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로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A와 NA의 아미노산 서열이 바뀌면서 다른 종의 세포에 침입할 수 있게 된다. 최근의 연구는 조류 HA의 아미노산을 조금만 치환해도 인간 세포가 충분히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RNA로 RNA는 복제시 오류 발생률이 DNA보다 100만 배나 더 높다. 이로 인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고도의 변이 가능성 속에서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유행은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이해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숙주가 필요하고 많은 수의 숙주가 밀집해 있을수록 유리하며 서로 다른 종의 숙주가 모여 있을수록 다양한 진화가 가능하게 된다. 가난한 빈민들이 밀집된 거대 슬럼의 형성, 야생조류의 서식지 파괴, 거대축산업의 발달 등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멕시코의 사망자 집중: 빈곤 문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북미지역으로 특히 멕시코가 590명, 미국은 286명으로 현저하게 많았다. 멕시코와 미국에서 지금까지 26명이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했으며 이중 25명이 멕시코에서 숨졌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이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어떤 생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생물학적으로만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멕시코에 집중된 이유는 생물학적 원인도 있겠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 사회의 양극화와 만연한 빈곤, 거대 슬럼의 형성, 사회복지의 붕괴, 보건의료체계의 영리화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도 5월 5일 멕시코에서 유독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주요 원인은 가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멕시코의 감염환자들이 병원비를 아끼려 자가 치료에 의존한 점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국립 의학 및 영양학 연구소의 전염병 전문가 호세 시푸엔테스-오소리오에 따르면 많은 멕시코 국민이 발병 후 3~4일간 자가 치료에 의존하는 바람에 병을 치료할 중요한 시간을 잃었다. 또 멕시코 약국에 저렴한 약이 충분히 있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치료제는 팔지 않았고 판매하더라도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하기 어려웠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로 알려진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2천만 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2가량이 빈민층에 속한다. 지난달 30일까지 확인된 신종 플루 감염환자 397명 가운데 285명, 사망자 26명 중 20명이 멕시코시티 시민이다.
멕시코는 NAFTA 체결 2년 만에 농촌사회의 붕괴, 치솟은 실업률, 빈곤층의 증가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멕시코는 지난 1994년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3국이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이래 GDP 성장률, 외국인 투자 및 교역량 등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득격차 심화에 따른 극빈층 증가, 불법이민자의 기하급수적 증가, 농촌사업의 붕괴로 인한 도시빈민 양산 등 서민사회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대유행병에 관한 모든 저술은 확실히 빈곤과 표준 이하의 주거환경, 불충분한 식사가 전염병의 발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의 연구자들은 한 해 평균 3만6,000명에서 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는데 이들 대다수가 노년층, 특히 빈민이다. 인플루엔자 감염은 근본적인 영양실조, 열대병, HIV로 인해 이미 합병증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인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에 상대적으로 훨씬 커다란 충격을 준다. 멕시코에 사망자가 집중된 것은 멕시코에 만연한 빈곤과 관련이 있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 멕시코 라글로리아: 거대 축산업의 영향
멕시코가 사태의 진원지가 된 이유로 공장형 축산업을 들 수 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최초로 발생한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라글로리아 지역의 주민들은 신종 플루가 지역의 거대 돼지 축산공장을 두고 있는 스미스필드푸드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스미스필드푸드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 축산 회사로 매년 1,400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며 2,700만 마리를 도살한다.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미국 26개 주와 9개국에 진출해있으며 스미스필드푸드사의 멕시코 하청업체인 그란자스캐롤사는 베라크루즈주에 72개의 농장을 두고 매년 95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란자스 캐롤의 축산공장은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8.5km 북쪽에 위치해있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이 지역으로 온다. 주민들은 수년 째 공장에서 나오는 돼지 배설물로 인한 악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가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을 발표하기 이전인 2월부터 라 글로리아 주민 3,000여명 중 500여명이 독감 증세를 호소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매년 찾아오는 일반적인 독감이라고 치부했고, 4월에는 마을에 만연한 파리 떼를 죽이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였다.
라글로리아의 축산공장이 신종 플루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 없지만 대규모 축산공장이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폐쇄동물사육시설(CAFO)이 일반화되었는데, 이러한 시설에서 많은 수의 동물을 사육하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토양, 대기, 강으로 배출된다. CAFO 시설로 인한 악취와 대기오염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메탄가스, 동물 항생제의 잔여물질 등으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의 돼지 CAFO 시설이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호흡기 질환을 더 많이 호소했다. 돼지 CAFO에 관한 연구는 CAFO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가 공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긴장, 우울, 분노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또 다른 연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CAFO로 인해 주민들이 두통, 콧물, 목의 통증, 지나친 기침, 설사, 눈의 따가움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함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저하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CAFO 지역주민들이 악취가 심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낮은 집중도를 보였으며 침샘에서 면역글로불린A의 분비가 저하됨을 보고한 바 있다. 즉 호흡기 증상의 호소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저하는 인플루엔자 감염에 더 취약하게 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CAFO 시설들이 사회경제적 지표가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에, 그리고 백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지역보다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인종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밀집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또한 건강 유해 요인들이 빈곤층에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멕시코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새로운 돼지 독감의 발생과 확산은 돼지 사육 규모의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 2003년 3월 7일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돼지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가 갑자기 폭발한 원인으로 사육 두수의 증가, 돼지들의 원거리 이동, 백신 접종을 지목했다. 1993년 이후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은 대규모로 산업화된 타이슨 사의 양계 모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불과 10년 만에 5,000두 이상을 사육하는 공장형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의 비율이 18%에서 53%로 증가했다. 이런 대규모 사육으로 인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복제를 통해 역병으로 발전할 기회와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또 돼지들의 원거리 수송이 늘어나면서 감염 범위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산업적 축산은 인플루엔자의 위험을 높이기도 하지만 농민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거대 축산 자본들은 동물 사료 생산, 사육자, 농장, 육가공, 식품 생산 등은 모두 수평적,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저널리스트 이자벨 델포르주에 따르면 “그들은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병아리와 사료와 약을 팔고 생산물을 전부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수요가 적으면 회사는 적극적으로 닭을 구매하지 않는다. 계약 사육농은 생산과 관련된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세계 시장의 수요에 완전히 예속된다. 그들은 각자의 논밭에서 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결국 대다수 농민들에게 축산업 혁명은 부채의 증가와 자주성의 상실, 그리고 노동 착취를 의미한다. 이는 결국 빈곤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또한 돼지 독감의 발생에 있어 생태학적 측면들도 고려해야 한다. 인플루엔자의 출현과 확산 과정에 환경 문제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개입한다. 가금류의 고밀도 집적을 가져온 축산업 혁명과 더불어 전 세계적인 습지 파괴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관개농업을 위해 댐을 건설하고 습지의 물을 이용하면서 철새들도 관개 수로와 농지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방목되는 가금류, 특히 오리들이 야생 조류가 배설한 바이러스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된다는 것이다.
타미플루와 독점제약회사
세계보건기구(WHO)는 국경 폐쇄와 여행 제한이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동을 막는 데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권하지 않고 있으며, 돼지고기 섭취도 돼지인플루엔자 감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는 잠복기에도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검역보다는 손 씻기 등의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권고하고 있다. 독감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스 때처럼 격리 방침은 효과가 없다.
이종구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장은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인플루엔자 치료제 240만 명분을 인구의 10%인 500만 명분으로 늘려 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4월 29일 국회에서 이 치료제들을 추가로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은 인구의 20%로 이는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재 스위스의 로슈사가 독점 생산하는 타미플루가 전 세계적 수요량을 충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허권으로 인한 고비용 때문에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타미플루의 독점 판매권자인 로슈사의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2015년이 되어야 전 세계 인구의 20%에 투여할 수 있는 약제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제약회사들이 타미플루 생산능력이 있다는 것은 2005년 확인되었지만 로슈가 가진 특허권 때문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권 때문에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산량의 불평등한 분배도 문제이다. 2004년 9월 H5N1이 베트남에 다시 유행했을 때 베트남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유럽과 캐나다에 남아 있던 약간의 잉여분은 뉴욕과 미국의 다른 지역 보건당국들이 이미 싹쓸이한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12개에 불과했고 여기서 생산되는 양의 95%(2억 6,000만 명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소비된다.
어떤 약을 개발하는가도 문제가 되는데 약이 필요한 이들의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매력에 따라서 즉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이 개발 생산되기 때문이다. 2002년 포천500에 포함되는 10대 제약회사들이 나머지 490개 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냈다. 제약업계는 선거 기부금을 듬뿍 받은 의회의 묵인 속에서 당뇨병, 고혈압, 천식 등 만성 질병에 필요한 약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고, 비아그라 같은 생활 향상을 위한 약품을 판매하면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질병을 실질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하는 제품은 제약회사에게 외면을 당한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백신제품의 수입을 전부 합해도 화이자가 콜레스테롤 저하제 한 제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미치지 못한다. 병원 감염증으로 미국에서 매년 9만 명이 사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백신 개발에 관한 한 미국은 작은 나라 쿠바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전염병과 빈민층의 질병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쿠바는 수막염 B,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및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이 외면하는 기타 주요 감염증들을 치료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을 개발해왔다.
반복되는 발병,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는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조류 및 포유동물 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지난 조류독감 H5N1을 지나오고 이번 신종 H1N1을 피해간다 할지라도 곧 또 다른 치명적인 독감 아형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삼림 벌채나 야생 조류의 서식지의 파괴, 거대 기업형 축산, 거대 슬럼 등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문명을 숙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는 백신 개발의 속도를 훨씬 넘어선다. 게다가 적절한 백신 개발과 생산에 충분한 자원이 투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조건에 변화가 가해지지 않는 한 인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위협을 피해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