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3호 | 2010.03.03
미국 금융규제안과 그리스 재정위기의 본질
2007-2009년 세계 금융위기는 치유되고 있는가?
2009년 말, 2010년 초 세계 주요 경제기관에서 제시한 표준적 전망은 미약한 회복으로 전환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경기부양 효과가 하반기로 갈수록 약화되고, 고용사정 개선도 지연되고, 가계부채 조정도 지속되겠지만 완만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다’, ‘세계경제는 금융기관 부실 확대나 과다채무국의 외환사정 악화, 달러 캐리트레이드 청산 가능성과 같은 위험요인이 존재하지만 이중침체(더블딥)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라는 분석이었다. 세계경제가 미약한 회복세로 전환된다는 것이 곧 2007-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낳은 요인들이 차차 해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2010년 미국 금융개혁 전망과 그리스 사태를 살펴보면서 위기 요인이 거의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시스템은 매우 위험하며 2007-2009년 위기 이후 오히려 더 위험해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이러한 위기를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상실했고, 더 큰 위험에 직면하여 임기응변, 미봉책으로 위기의 폭발을 봉합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규제안
2010년 1월 2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과도한 위험투자를 막고 대마불사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업무범위와 영업규모를 제한하는 금융개혁안을 발표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은 실업률이 10%대로 치솟고 2009년 미국 재정적자가 1조 4,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미국에서는 위기의 주원인을 제공했고 공적자금을 투입 받은 대형은행이 위기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번 금융규제안 발표 직전에도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손실 보전을 목적으로 시티그룹, 아메리카은행, JP 모건체이스, 웰스파고를 겨냥해 미국 50여 개 대형은행에 대한 ‘금융위기 책임세’라는 특별과세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은행들이 수십억 달러를 보너스로 줄 자금 여력이 있다면 납세자들에게 받은 돈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가 넘는 50대 대형 금융사에 최소 10년 동안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월에 발표한 금융규제안은 우선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가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보유하거나 그것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은행이 고객의 자금이 아닌 자체적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주식, 채권, 옵션, 원자재, 파생상품 등을 거래하는 자기계정거래(proprietary trading)를 금지하며 고객의 요청에 한해서만 이와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는 은행이 위험성이 높은 주택담보증권(MBS)을 활용한 자기계정거래가 대형은행 부실 확산의 주요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형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예금 규모의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현형 10%에서 하향조정하고 예금 이외에 자금조달도 규제한다.
이러한 규제안이 실행되면 시티그룹, 아메리카은행, JP 모건체이스, 웰스파고, 골드만삭스와 같이 자기계정거래 비중이 높은 대형은행의 사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예를 들어 JP 모건체이스는 운용자산 규모가 210억 달러에 이르는 헤지펀드 하이브리지캐피탈매니지먼트를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부문 운용자산의 약 40%가 자기계정거래로 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JP 모건체이스는 금융규제안이 2011년에 실행된다면 주요 은행의 주당순이익(당기 순이익을 발행 주식 총수로 나눈 값)이 최대 20%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안은 투자은행 유형의 금융회사가 수행하는 광범위한 업무에 비해 매우 협소한 범위에 가해지는 제한적인 규제라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또한 고객의 이익을 위한 투자 또는 고객의 이익을 위한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헷징(회피)하기 위한 투자와 자기계정거래를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즉 오바마 정부가 제안한 규제안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강제했던 글래스-스티걸법에 미달하는 미세조정안일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실현되기가 어렵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정치지형을 볼 때 원안대로 통과될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상실했다. 또한 민주당 내부에 있는 중도파 의원 모임인 신민주당연합은 월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9년 12월 하원을 통과한 ‘월가 개혁 및 소비자보호 법안’은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했다. 미국에서 입법 과정은 하원의 단일안 마련과 표결, 상원의 단일안 마련과 표결, 상하원 법안 통합과 표결, 대통령 최종서면이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변화의 여지가 상당히 크다. 또한 이런 규제안을 미국만 실행할 경우 미국계 은행만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반발이 상당히 클 것이다.
2009년 봄 미국이 대형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평가)는 사실상 매우 관용적이었다. 미국 은행은 추가 손실을 견딜 만큼 충분한 자본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정확한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금융규제가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 미국 은행은 더블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재정 위기와 유럽통화동맹의 모순
2월 11일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정상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금융지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은 왜 회원국 지원에 대해 그렇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나? 그것은 유럽연합과 유럽통화연맹(EMU)이 위기에 대비한 비상수단이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연방은행이나 영국정부는 회원국이 국가부도를 우려한다면 구제금융 제공과 구조조정 경험이 많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유럽연합이 체결한 <안정성장협약>, 즉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제한하고 정부부채를 GDP의 60% 이하로 제한하는 협약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에 유럽통화동맹 회원국의 구제와 구조조정을 위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럽화폐동맹 결함을 자인하고 유로화의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연합 차원의 구제금융 제공도 선택하기 어렵다. 유럽연합은 규정상 회원국 정부가 발행한 부채를 다른 정부가 인수할 수 없으나(구제금융금지 조항)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정부 간 지원이 가능하다는 유보조항이 있어 구제금융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정부가 다른 정부로부터 부채를 인수한다면, 자국 국민 세금으로 타국의 부실을 떠안는 셈이기 때문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동반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연합은 그리스 정부에게 계속 추가적 긴축안을 요구하면서도 지원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위기는 어떻게 나타났나? 여기에도 유럽통화동맹의 모순이 결정적으로 작동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통화동맹은 단일환율이 적용되었다. 유럽 경제가 그럭저럭 잘 돌아갈 때는 환리스크가 소멸되면서 자본이동도 자유로워지고 교역도 확대되면서 유로화 도입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럽통화동맹이 출범한 후 자국 산업의 경쟁력이 낮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실질환율이 고평가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반면, 산업 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실질환율이 저평가되어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유로화가 출범한 1999년 이후로 회원국별로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 사이 경계가 분명히 나타났고, 특히 적자국은 상품수지 적자액 중 역내 적자액이 90%에 육박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원화 가치가 대폭 하락해서 수출 확대를 꾀할 수 있었으나 그리스는 유로존에 속해 있는 한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를 시도할 수 없다.) 또한 유로존 국가는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확장정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한다면 확장정책 실행을 위한 수단이 재정정책의 팽창 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즉 유로존 국가는 독자적으로 금리인하와 유동성 확대정책을 실행할 수단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정책이 지극히 제한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통화동맹에 속한 주변국은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과 정부 재정적자의 팽창이라는 경향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결국 유럽통화동맹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통화안정성 즉 환리스크를 제거하는 무역조건이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원국의 경제정책이 중심국, 특히 독일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통화정책은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중앙은행에 완전히 종속되었고, 재정정책에는 심각한 제한이 가해졌다.) 경쟁력이 뒤쳐진 국가는 유럽통화동맹에 가입함으로써 확장정책이나 평가절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국가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것만 남는다. 유럽통화동맹은 중심국 자본에게 항구적 이익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는 노동자가 치러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조건에서 그리스나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 재정긴축, 임금동결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계획하거나, 이미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의 대응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규제안
2010년 1월 2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과도한 위험투자를 막고 대마불사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업무범위와 영업규모를 제한하는 금융개혁안을 발표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은 실업률이 10%대로 치솟고 2009년 미국 재정적자가 1조 4,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미국에서는 위기의 주원인을 제공했고 공적자금을 투입 받은 대형은행이 위기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번 금융규제안 발표 직전에도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손실 보전을 목적으로 시티그룹, 아메리카은행, JP 모건체이스, 웰스파고를 겨냥해 미국 50여 개 대형은행에 대한 ‘금융위기 책임세’라는 특별과세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은행들이 수십억 달러를 보너스로 줄 자금 여력이 있다면 납세자들에게 받은 돈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가 넘는 50대 대형 금융사에 최소 10년 동안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월에 발표한 금융규제안은 우선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가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보유하거나 그것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은행이 고객의 자금이 아닌 자체적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주식, 채권, 옵션, 원자재, 파생상품 등을 거래하는 자기계정거래(proprietary trading)를 금지하며 고객의 요청에 한해서만 이와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는 은행이 위험성이 높은 주택담보증권(MBS)을 활용한 자기계정거래가 대형은행 부실 확산의 주요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형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예금 규모의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현형 10%에서 하향조정하고 예금 이외에 자금조달도 규제한다.
이러한 규제안이 실행되면 시티그룹, 아메리카은행, JP 모건체이스, 웰스파고, 골드만삭스와 같이 자기계정거래 비중이 높은 대형은행의 사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예를 들어 JP 모건체이스는 운용자산 규모가 210억 달러에 이르는 헤지펀드 하이브리지캐피탈매니지먼트를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시티그룹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부문 운용자산의 약 40%가 자기계정거래로 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JP 모건체이스는 금융규제안이 2011년에 실행된다면 주요 은행의 주당순이익(당기 순이익을 발행 주식 총수로 나눈 값)이 최대 20%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안은 투자은행 유형의 금융회사가 수행하는 광범위한 업무에 비해 매우 협소한 범위에 가해지는 제한적인 규제라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또한 고객의 이익을 위한 투자 또는 고객의 이익을 위한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헷징(회피)하기 위한 투자와 자기계정거래를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즉 오바마 정부가 제안한 규제안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강제했던 글래스-스티걸법에 미달하는 미세조정안일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실현되기가 어렵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정치지형을 볼 때 원안대로 통과될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상실했다. 또한 민주당 내부에 있는 중도파 의원 모임인 신민주당연합은 월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9년 12월 하원을 통과한 ‘월가 개혁 및 소비자보호 법안’은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했다. 미국에서 입법 과정은 하원의 단일안 마련과 표결, 상원의 단일안 마련과 표결, 상하원 법안 통합과 표결, 대통령 최종서면이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변화의 여지가 상당히 크다. 또한 이런 규제안을 미국만 실행할 경우 미국계 은행만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반발이 상당히 클 것이다.
2009년 봄 미국이 대형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평가)는 사실상 매우 관용적이었다. 미국 은행은 추가 손실을 견딜 만큼 충분한 자본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정확한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금융규제가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 미국 은행은 더블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재정 위기와 유럽통화동맹의 모순
2월 11일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정상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금융지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은 왜 회원국 지원에 대해 그렇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나? 그것은 유럽연합과 유럽통화연맹(EMU)이 위기에 대비한 비상수단이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연방은행이나 영국정부는 회원국이 국가부도를 우려한다면 구제금융 제공과 구조조정 경험이 많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유럽연합이 체결한 <안정성장협약>, 즉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제한하고 정부부채를 GDP의 60% 이하로 제한하는 협약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에 유럽통화동맹 회원국의 구제와 구조조정을 위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럽화폐동맹 결함을 자인하고 유로화의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연합 차원의 구제금융 제공도 선택하기 어렵다. 유럽연합은 규정상 회원국 정부가 발행한 부채를 다른 정부가 인수할 수 없으나(구제금융금지 조항)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정부 간 지원이 가능하다는 유보조항이 있어 구제금융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정부가 다른 정부로부터 부채를 인수한다면, 자국 국민 세금으로 타국의 부실을 떠안는 셈이기 때문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동반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연합은 그리스 정부에게 계속 추가적 긴축안을 요구하면서도 지원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위기는 어떻게 나타났나? 여기에도 유럽통화동맹의 모순이 결정적으로 작동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통화동맹은 단일환율이 적용되었다. 유럽 경제가 그럭저럭 잘 돌아갈 때는 환리스크가 소멸되면서 자본이동도 자유로워지고 교역도 확대되면서 유로화 도입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럽통화동맹이 출범한 후 자국 산업의 경쟁력이 낮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실질환율이 고평가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반면, 산업 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실질환율이 저평가되어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유로화가 출범한 1999년 이후로 회원국별로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 사이 경계가 분명히 나타났고, 특히 적자국은 상품수지 적자액 중 역내 적자액이 90%에 육박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원화 가치가 대폭 하락해서 수출 확대를 꾀할 수 있었으나 그리스는 유로존에 속해 있는 한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를 시도할 수 없다.) 또한 유로존 국가는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확장정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한다면 확장정책 실행을 위한 수단이 재정정책의 팽창 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즉 유로존 국가는 독자적으로 금리인하와 유동성 확대정책을 실행할 수단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정책이 지극히 제한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통화동맹에 속한 주변국은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과 정부 재정적자의 팽창이라는 경향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결국 유럽통화동맹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통화안정성 즉 환리스크를 제거하는 무역조건이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원국의 경제정책이 중심국, 특히 독일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통화정책은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중앙은행에 완전히 종속되었고, 재정정책에는 심각한 제한이 가해졌다.) 경쟁력이 뒤쳐진 국가는 유럽통화동맹에 가입함으로써 확장정책이나 평가절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국가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것만 남는다. 유럽통화동맹은 중심국 자본에게 항구적 이익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는 노동자가 치러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조건에서 그리스나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 재정긴축, 임금동결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계획하거나, 이미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의 대응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