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87호 | 200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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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소액금융자본가로 만드는 정권의 둔갑술

기업연금제와 종업원지주제 확대를 막아야 한다

편집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은 5월 4일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노·사·정위원회 협의를 통해 올 상반기 중 퇴직금 제도를 개편하여 기업 연금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연금제란 연봉의 8.4%를 적립하여 퇴직시 지불하는 퇴직금제도와는 달리 기업이 단독, 또는 노동자와 공동으로 지불한 돈을 재테크 하여 만든 돈을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불로 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또한, 기업연금제 상반기 도입 발표가 있은 이틀 뒤, 5월 6일 진념 부총리는 "우리사주조합기금을 설치한 기업이나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세제혜택등 가능한 최대의 인센티브를 줄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기업연금 제도와 함께 종업원지주제를 확대하여 노동자기금(이는 곧 퇴직금의 적립금이다)을 통한 자사주 매집을 적극 권장, 확대할 방침이다.
기업연금제 도입과 종업원지주제의 확대. 바야흐로 40여년의 세월동안 암울한 노동현실에서 그나마 한가닥 위안이 되었던 법정퇴직금제도는 폐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기업연금제, 노동자의 미래를 주식시장의 운명에 맡겨라

자본과 정권이 퇴직금제도를 변화시키려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1월 14일 전경련은 "국민연금제도 평가와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기업이 근로자 월평균소득의 4.5%인 국민연금 부담과 월평균 소득의 8.33% 이상인 퇴직적립금 부담을 합해 월평균소득의 12.83% 이상을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위해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을 합쳐 평균임금의 최소 17.73%를 부담하여 노동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쟁력 약화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한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 1일 건국대 김원식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국민연금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퇴직금을 기업연금화하고 국민연금 보험료의 추가적인 인상분을 기업연금으로 대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노동비용이 너무 높으니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국민연금과 통합시키라는 주문이다. 결국,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은 자본의 이러한
아우성에 화답한 셈인데, 여기에는 현실론도 한 몫하고 있다. 즉, 기업 도산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망하지 않은 기업에서도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정퇴직금의 수급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기업연금제를 도입하여 한 푼이라도 건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는가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러한 아우성과는 달리 자본가가 부담하는 연금 및 보험부담금은 연봉제와 같은 임금체계를 도입해 이미 보험 부담금이 삭감된 형태의 임금을 지급하거나 수당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자본가 입장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문제가 바로 퇴직금이었다. 기업연금의 도입은 퇴직금에 대한 자본가의 완전부담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부담을 반반 또는 그 이하로 한다. 그 결과 자본가 부담은 낮추고 노동자 개인부담은 높이는 방향으로 개악시키게 된다. 따라서 기업연금제 도입으로 이미 퇴장하고 있는 법정퇴직금제를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업연금제 도입시도는 노동자의 통상임금의 일부를 퇴직금으로 전환하여 자본가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현실의 위험을 빌미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식의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며, 한푼이라도 더 건지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연금제는 그 자금의 운용이라는 것이 주식시장과 투기적 금융시장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자본가 부담의 축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2월 8일 증시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등 4대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현재 8조원규모에서 2-3년내 25조원대로 끌어올리고, 기업연금제도를 신설해 동일하게 운영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손실액의 상당부분이 증시 및 펀드운영의 실패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주식시장에 노동자들의 미래를 맡기는 것을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연금과 기금의 운영이 침체된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총알'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업연금제하의 퇴직금 불안정 문제는 보수정치권 내부에서 조차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하물며 그에 따른 연, 기금과 퇴직금의 재정파탄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이를 주식시장의 기관투자자로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최후의 생계대책마저도 주식시장과 그리고 파탄난 연, 기금과 운명을 같이 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종업원지주제의 칼 끝이 겨누는 곳은

한편, 퇴직금의 기업연금화를 위해 김대중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현행 법정퇴직금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우리사주제도의 확대 적용하기 위한 근로자복지기본법(안)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근로자복지기본법(안)은 지난 74년 도입된 미국의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LISA법)처럼 종업원지주제의 뿌리를 이루는 법이다. 이에 따라 기업과 노동조합은 상호 합의에 의해 현행 법정퇴직금제도 대신에 종업원지주제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김대중정권이 근로기준법을 개정, 새로운 정책까지 제정하면서까지 서둘러 '종업원지주제'를 추진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핵심 '종업원지주제'가 주식시장을 부양할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집단적 이해를 노동자 스스로 방관하는 효과를 낳아 노동조합이 무력화된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종업원지주제의 모범으로 삼는 미국의 종업원 지주기업들-특히 유나이티드 항공-은 '자본주의의 한 획을 긋기'는 켜녕 노동계급의 이해가 극심한 자기분열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수차례의 유나이티드 항공의 직장태 및 파업의 이유를 노동자들의 '주인의식' 결여의 문제로 지적한 바 있듯이, 종업원지주제가 노동자의 이해를 주주로서 자본가의 이해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종업원지주제도를 도입한 미국 1만1000여개 기업의 노조 가입비율이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2001.3.15일자 매일경제)
무엇보다도 현재 종업원지주제의 확대는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자본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부는 워크아웃기업 처리를 위해 기업구조조정전문투자회사(CRV, 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와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를 설립하고 M&A시장활성화 및 정크본드(투기등급채권)시장육성은 물론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을 상시구조조정체제를 위한 올해의 핵심추진과제로 삼고 있다. 또한, 기업 투명성 강화를 위해 기업소유지배구조를 개편하는데, 사외이사제와 소액주주권의 강화에 맞춰져 있다.
여기에 바로 퇴직금의 기업연금제 전환 및 종업원지주제의 확대의 또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사실상 종업원지주제와 기업연금제의 경우 기관투자가의 형태로 주식에 개입하게 된다. 특히, 종업원지주제의 경우 대부분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어 있어 이와 같은 기업소유지배구조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이 경우 노동자들이 자사의 소액주주가 되거나 특수한 경우 사외이사까지 파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누차에 걸쳐 사외이사제와 소액주주권 강화를 요체로하는 투명 책임경영제는 경제민주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금융화된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의 정착에 다름아님을 지적, 비판해왔다. 이는 또한 노동자의 단결에 기초한 운동을 파괴하고, 그대신 자본시장 활성화와 경제의 투기화를 지탱해주는 주주행동주의로 운동을 대체함으로써 '성공한 노동자'는 있어도 '노동자의 성공'은 없는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고용, 노동조건을 구조화시키는데 일조하게 될 위험을 지닌다.
또한, 이번에 도입될 '퇴직금의 기업연금화 방안'으로서 종업원 지주제는 퇴직금을 투기 자본화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즉,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가하고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명목하에 민간연금기관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 때 연금급여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수익에 따라 결정되는 형식으로 전환됨으로써 연기금의 자본화에 적합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의 연금제도 변화(확정급여형->확정갹출형)는 '연금제도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고 있다. 확정갹출형으로의 제도변화는 노동자에게 주식소유자로서의 역할을 강력히 부여하여 구조조정의 추진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스스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구조조정이 주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이기에, 종업원지주제는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불행한 시나리오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노동자가 퇴직하여 획득하게 되는 연금수령액이 현직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착취강도에 의해 결정된다면 말이다.

퇴직금제도의 개악에 맞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도입 및 복수노조 금지철폐 유예 그리고 모성보호법 재정 유보에 이어 임금과 퇴직금제도로까지 노동법 개악은 확대일로를 치닫고 있다. 임종룡 재경부 증권제도과장은 "기업연금제도를 채택하면 연금의 자산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금 액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운용성과가 좋지 않으면 최종 수령금액이 법정 퇴직금보다 적을 수 있다"면서 "따라서 기업연금제를 도입하려면 현행 법정퇴직금제도를 먼저 수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법정퇴직금제도의 폐지를 뜻한다. 이처럼 기업연금제의 도입과 종업원지주제도의 확대는 노동법 개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퇴직금 지급에 있어서 자본가 부담을 줄이는 대신, 롤러코스트처럼 요동치는 주식시장의 운명에 노동자의 미래의 생존을 걸고 한판 도박을 하라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는 주주행동주의를 강화시켜 노동자의 이해를 자본가의 이해에 수렴시켜 노동자 단결을 파괴하는 자본과 정권의 치밀한 기도이다.
새롭게 맞이하고 있는 노동법 개악국면에 대한 노동진영의 긴급한 대응을 촉구한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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