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4호 | 2010.11.12
한미 FTA, 초민족 자본을 위한 새로운 헌법?
투자자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
“많은 경우 양자 간 투자협정(BIT)은 자발적이고 강제되지 않은 거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받아들일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라는 입장으로 이해되었고,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그 상대국은 그에 애원하는 형태였다는 것이 진실이다. 양자 간 투자협정 협상은 평등한 주권국 간의 토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에 의하여 미국의 용어로 이루어진 강도 높은 훈련세미나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의 용어에 기초하여 미국의 초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호세 E. 알바레즈, 1992. (미국 국무부 양자 간 투자협정팀)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공방을 거듭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양국이 무역장벽(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조절하여 슬기롭게 ‘이익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속히 한미 FTA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 FTA의 가장 본질적인 어떤 측면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
현재 한미 FTA 논란은 자동차와 쇠고기 무역장벽을 둘러싼 양국 간 힘겨루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한미 FTA의 기본 이념이다. 즉 투자자, 곧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국 간의 관세철폐라는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정의되었고 투자 문제는 FTA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문제는 대개 양자 간 투자협정이란 형식으로 별도로 다루어졌다. 전통적인 투자협정은 투자의 설립 후 단계에서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산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투자보장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통에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는 투자보장협정에다 투자자유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의 설립 단계 이전에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유화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에 모든 투자 기회를 완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무역협정에 투자협정 모델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에 투자협정이 포함된 후 자유무역협정은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본이동과 투자의 자유화를 포괄하기 시작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NAFTA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초과하는 내용을 담은 ‘NAFTA 플러스’였다. 따라서 당연히 한미 FTA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식 투자협정 모델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헌법을 대체하는 자유무역협정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한국-유럽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둘러싼 논란은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개요를 간략히 살펴보자.
2010년 3월 14일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는 한국 의회가 추진 중인 SSM 규제가 한-EU FTA를 위반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초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와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협의회에서 SSM 규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EU FTA 체결 당시 유통업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SSM 규제 강화는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정당이 합의 하에 추진하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등록제를 SSM에도 적용하여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다는 것이었고, 상생법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사업조정이 신청되면 중소기업청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 이후 조정 및 협의를 거쳐 주위 상권이 지나친 타격을 입지 않도록 품목이나 영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그 후 김종훈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 SSM 관련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10월 25일 민주당 자유무역협정 특위에서도 ‘국회가 SSM 쌍둥이법을 모두 처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며 한국경제의 신인도 문제까지 운운했다.
어떻게 행정부 관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 관리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당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월 28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이 개최한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는 정당한 규제마저 어렵도록 한-EU FTA가 불리하게 체결된 것이 문제인데 그 책임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이 도리어 한-EU FTA 위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서 10월 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영국 테스코 한 회사의 로비로 그동안 상생법이 제지돼 왔다는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SSM 규제법안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무서운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군다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도입되어 있는 것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통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자가 제소 가능성을 언급만 하더라도 투자대상국은 감히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NAFTA의 경우에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방정부가 공공 자동차보험 도입을 준비했지만 자동차보험 회사가 소송을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도입을 포기한 사례가 유명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자유 또는 투자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초국적 기업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한국의 헌법보다 기업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의 헌법이 바뀌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SSM 관련법 논란은 사소한 사례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의 권리를 절대화화는 자유무역협정
1997년 세계무역기구 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단일 세계경제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헌법’이란 표현이 단지 은유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들이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어떤 권력과 법률도 투자자의 목표를 침해할 수 없도록 세계의 정치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른다. 왜 새로운 입헌주의인가. 과거의 입헌주의가 ‘인간․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치와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될 대상이 인간․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국가와 국제정치형태에 개입하여 법에 준하는 규칙과 징벌을 부과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가. 첫째, 국가장치의 재구조화. 새로운 국제협정에 대비하거나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족국가의 헌법형태가 변화되곤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남아공은 양자 간 투자협정 체결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해야 했다. 또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균형예산이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를 요구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헌법, 각종 법률, 제도, 정책의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막강한 국가장치를 새롭게 구축했다. 둘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의 구성과 확장. 대표적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생명과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지적 재산권의 제도화는 초국적 자본의 권리가 관철되는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초국적 자본의 새로운 창,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뿐만 아니라 투자가-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 더 정확히 말하자만 투자자(초국적 기업)가 투자국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내포한 치명적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198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따라 정부 규제가 기업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전면화되었다. 이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업이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규제는 법률적 용어로 ‘간접수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직접수용’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국유화와 보상)을 의미했다면 간접수용은 기업의 미래 소득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 규제도 기업 소유권(미래소득창출권)에 대한 규제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중재판정은 ‘균형성 심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경향을 다소 완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이 그 원인일 것이다.)
둘째. 궁극적인 문제는 투자국의 입법권, 본질적으로는 인민주권의 원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에 따르면 투자국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중재심판의 대상이 된다. 중재심판은 극소수의 중재심판관, 즉 누구도 그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는 자들이 각 국가의 법률이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격을 가하자
한국 헌법은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경우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민을 구속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는 한국의 헌법을 사실상 바꾸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보를 제소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1994년까지 국제중재 건수는 5건에 불과했으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건수는 245건에 이르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추구하는 최신형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먼저 ‘알아서 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논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노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규제가 기업 소유권의 침해이며 굳이 규제를 가하려면 기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미국식 소유권 개념의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적 비약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공방을 거듭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양국이 무역장벽(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조절하여 슬기롭게 ‘이익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속히 한미 FTA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 FTA의 가장 본질적인 어떤 측면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
현재 한미 FTA 논란은 자동차와 쇠고기 무역장벽을 둘러싼 양국 간 힘겨루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한미 FTA의 기본 이념이다. 즉 투자자, 곧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국 간의 관세철폐라는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정의되었고 투자 문제는 FTA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문제는 대개 양자 간 투자협정이란 형식으로 별도로 다루어졌다. 전통적인 투자협정은 투자의 설립 후 단계에서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산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투자보장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통에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는 투자보장협정에다 투자자유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의 설립 단계 이전에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유화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에 모든 투자 기회를 완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무역협정에 투자협정 모델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에 투자협정이 포함된 후 자유무역협정은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본이동과 투자의 자유화를 포괄하기 시작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NAFTA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초과하는 내용을 담은 ‘NAFTA 플러스’였다. 따라서 당연히 한미 FTA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식 투자협정 모델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헌법을 대체하는 자유무역협정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한국-유럽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둘러싼 논란은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개요를 간략히 살펴보자.
2010년 3월 14일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는 한국 의회가 추진 중인 SSM 규제가 한-EU FTA를 위반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초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와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협의회에서 SSM 규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EU FTA 체결 당시 유통업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SSM 규제 강화는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정당이 합의 하에 추진하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등록제를 SSM에도 적용하여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다는 것이었고, 상생법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사업조정이 신청되면 중소기업청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 이후 조정 및 협의를 거쳐 주위 상권이 지나친 타격을 입지 않도록 품목이나 영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그 후 김종훈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 SSM 관련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10월 25일 민주당 자유무역협정 특위에서도 ‘국회가 SSM 쌍둥이법을 모두 처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며 한국경제의 신인도 문제까지 운운했다.
어떻게 행정부 관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 관리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당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월 28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이 개최한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는 정당한 규제마저 어렵도록 한-EU FTA가 불리하게 체결된 것이 문제인데 그 책임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이 도리어 한-EU FTA 위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서 10월 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영국 테스코 한 회사의 로비로 그동안 상생법이 제지돼 왔다는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SSM 규제법안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무서운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군다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도입되어 있는 것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통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자가 제소 가능성을 언급만 하더라도 투자대상국은 감히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NAFTA의 경우에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방정부가 공공 자동차보험 도입을 준비했지만 자동차보험 회사가 소송을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도입을 포기한 사례가 유명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자유 또는 투자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초국적 기업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한국의 헌법보다 기업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의 헌법이 바뀌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SSM 관련법 논란은 사소한 사례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의 권리를 절대화화는 자유무역협정
1997년 세계무역기구 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단일 세계경제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헌법’이란 표현이 단지 은유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들이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어떤 권력과 법률도 투자자의 목표를 침해할 수 없도록 세계의 정치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른다. 왜 새로운 입헌주의인가. 과거의 입헌주의가 ‘인간․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치와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될 대상이 인간․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국가와 국제정치형태에 개입하여 법에 준하는 규칙과 징벌을 부과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가. 첫째, 국가장치의 재구조화. 새로운 국제협정에 대비하거나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족국가의 헌법형태가 변화되곤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남아공은 양자 간 투자협정 체결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해야 했다. 또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균형예산이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를 요구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헌법, 각종 법률, 제도, 정책의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막강한 국가장치를 새롭게 구축했다. 둘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의 구성과 확장. 대표적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생명과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지적 재산권의 제도화는 초국적 자본의 권리가 관철되는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초국적 자본의 새로운 창,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뿐만 아니라 투자가-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 더 정확히 말하자만 투자자(초국적 기업)가 투자국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내포한 치명적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198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따라 정부 규제가 기업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전면화되었다. 이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업이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규제는 법률적 용어로 ‘간접수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직접수용’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국유화와 보상)을 의미했다면 간접수용은 기업의 미래 소득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 규제도 기업 소유권(미래소득창출권)에 대한 규제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중재판정은 ‘균형성 심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경향을 다소 완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이 그 원인일 것이다.)
둘째. 궁극적인 문제는 투자국의 입법권, 본질적으로는 인민주권의 원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에 따르면 투자국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중재심판의 대상이 된다. 중재심판은 극소수의 중재심판관, 즉 누구도 그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는 자들이 각 국가의 법률이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격을 가하자
한국 헌법은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경우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민을 구속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는 한국의 헌법을 사실상 바꾸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보를 제소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1994년까지 국제중재 건수는 5건에 불과했으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건수는 245건에 이르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추구하는 최신형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먼저 ‘알아서 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논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노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규제가 기업 소유권의 침해이며 굳이 규제를 가하려면 기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미국식 소유권 개념의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적 비약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