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2호 | 2011.01.27
자본을 제어하지 않는 민주당 무상의료는 허구다
'민주당 견인'이라는 미망은 운동의 쇠퇴를 불러올 뿐이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과 비용 논쟁
민주당은 지난 1월 6일 “건강보험보장성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난 해 8월과 9월에 세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여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정책을 검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토론회에서는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의 주제발제와 지정토론을 맡았다. 마지막 토론회인 ‘건강보험 개혁과 향후 과제’에서 김윤 교수가 발표한 내용은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안의 기초가 되었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높이고(현행 61.7%), 본인부담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추어(현행 최고 400만원)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 간병·상병 등의 비용을 급여대상에 포함,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대상으로 재전환을 제시한다.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으로는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제시된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참여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에서 가입자의 권한을 확대하고, ‘민간의료보험법(가칭)’을 제정하여 민간의료보험과 역할을 분담시키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재원조달 방안으로는 정부지원금을 현 20%에서 30%로 확대하고, 부자,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수혜자 등이 우선적으로 추가소요재정을 부담하도록 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원마련 방안이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90%로 높이고,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낮추기 위해 12조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민들이 선제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은 같은 목표를 위해 8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고지원을 현 20%에서 30%로 늘리고,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을 연금소득, 금융소득, 종합소득으로 확대하고, 최후 방안으로 보험료 인상을 제시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의료수요의 증가로 현재보다 30조원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무상의료를 인기 영합주의로 비난하고 세금폭탄 혹은 재정적자를 발생시키는 정책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원과 비용 논쟁은 한국 보건의료의 핵심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보험료가 계속해서 인상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가 미약한 수준에 머물렀던 이유는 병원, 제약, 보험 등 의료자본의 이윤추구로 의료비가 급격히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대부분 민간에 맡겨 의료서비스가 공공적으로 제공되지 못하고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어왔던 역사와, 그에 따라 높은 의료비는 병원, 제약, 보험 자본의 이윤으로 새어나가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높아지지 않은 현실이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서 새어나가더라도 일시적으로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며, 한나라당은 계속해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민중 건강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민주당
무상의료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영유아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의 복지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무상의료는 민주당의 ‘좌클릭’, 정책기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인가?
민주당은 2010년 3월 자신의 앞날을 밝히는 포괄적인 보고서인 <뉴민주당플랜>을 발표했다. 뉴민주당플랜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는 제3의 발전모델의 핵심전략으로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제시한다. 포용적 성장은 인적 자원과 중소기업을 중시함으로써 지식산업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빈부격차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회의 복지는 약자에 대한 사후적 소득이전을 지양하고, 민간부문의 성장과 교육투자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전적 기회의 평등이 새로운 복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에서는 뉴민주당플랜이 민주당의 좌선회를 의미하기 때문에 진보세력과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라도 진보개혁 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민주당플랜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본 틀을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민주당의 지상과제다”라고 선언하면서도 실현 방안으로 ‘한국형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시한다. 즉 노동자 기술숙련 향상과 취업지원 서비스 확대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다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를 완화하고 교육, 의료, 주택 비용절감을 위한 공공정책을 병행해야 노동유연화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다만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확대하거나,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거나,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정책을 내세움으로써 노동자운동에서 주장하는 요구를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 부분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다른 교육, 사회복지, 보건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뉴민주당플랜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 설치한다거나 아동수당을 도입한다거나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계획은 이미 일부 지방자치체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거나 한나라당도 부분적, 단계적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정책 아이템이다. 결국 뉴민주당플랜은 전문가가 설계한 정책이나 사회운동의 요구를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차별성을 드러내려는 것뿐이다. 민중의 삶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이를 포섭하기 위해서 제시되는 일부 정책을 가지고 민주당의 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해석이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문제점: 자본 제어, 의료민영화 저지 없이는 무상의료 불가능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보건의료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건의료 공약으로 건강보험보장성 80%로 확대, 공공병상 30%까지 확대, 총액예산제, 본인부담금상한제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경우 2005년이 되어서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기관 수 기준 2002년 8.01%에서 2006년 6.6%로, 병상 수 기준 2002년 15.07%에서 2006년 12.32%로 감소했다. 총액예산제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2004년 상반기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대한의사협회 등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최초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병원비 중 비급여의 비율이 높아서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보장성이 강화될 리 없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1인당 보험료가 79%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59%에서 64%로 겨우 5% 증가했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신 추진한 것이 의료민영화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신성장동력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그 일환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던 것을 이어받아,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길을 열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설립, 인수합병, 환자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들을 거의 망라한 법안이었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민영화 추진은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대형병원, 민간보험, 제약회사의 이윤추구행위를 억제하여 의료비 상승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를 억제할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무상의료를 제시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제시하고 있는 무상의료 정책에 자본을 제어하는 전략이 부족한 이유이다. 필수 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하자고 하지만 병원이 이윤추구를 위해 부당하게 취하고 있거나 무한정 확대되고 있는 비급여를 통제하는 방안은 없다. 건강보험 지출 중 약제비 비율이 30%에 이르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의 폭리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다. 심지어 민간보험회사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 동반자로 인식한다. 재원 마련 방안에 있어서는 국고지원 확충 외에 기업의 부담 강화, 현재 역진적인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누진적으로 바꾸는 것, 건강보험료 상한제 폐지 방안이 빠져 있다. 자본을 통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권이 과연 병원자본과 한판 전쟁을 필요로 하는 총액계약제, 공공병상확충, 병상총량제 등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역사와 뉴민주당플랜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 견인'이라는 미망은 운동의 쇠퇴를 불러올 뿐이다
의료비는 계속 상승하지만 민중의 건강이 나아지지 않는 ‘보건의료의 위기’가 나타나는 근본 이유는 자본주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야기하는 건강 악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질병의 원인이 아닌 결과만을 사후적으로 관리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민간 보험자본, 초국적 제약자본, 거대 병원자본의 폭리를 보장하고, 보건의료의 민영화를 통해 의료비를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불변의 현실로 인정했던 노무현 정권이 약속했던 보건의료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의 무상의료는 노무현 정권 보건의료 공약의 확대판이다. 의료비는 계속 오르고, 실업과 저임금을 오가는 노동자가 증가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청사진을 하나 제시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의료자본 통제와 의료민영화 저지가 없다면 무상의료는 결코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을 현실화시키려면 자본을 포함하는 보건의료 기득권 세력과의 강력한 한판 싸움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투쟁을 통해 형성된 힘을 바탕으로 ‘질병의 사회경제적 원인’으로서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해결하는 길로도 나아가야 한다.
누가 민주당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건의료운동의 일부는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이 운동의 요구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지지 및 참여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대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질적인 힘, 즉 자기 계급이나 강력한 운동이 없으면 매우 취약하다. 정책연합에 참가했다가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거나 변질될 경우, 자주적인 힘을 형성하지 못한 운동은 분열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운동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참여해서 겪은 뼈아픈 교훈이 있다. ‘민주당 견인’이라는 미망을 버려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1월 6일 “건강보험보장성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난 해 8월과 9월에 세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여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정책을 검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토론회에서는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의 주제발제와 지정토론을 맡았다. 마지막 토론회인 ‘건강보험 개혁과 향후 과제’에서 김윤 교수가 발표한 내용은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안의 기초가 되었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높이고(현행 61.7%), 본인부담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추어(현행 최고 400만원)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 간병·상병 등의 비용을 급여대상에 포함,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대상으로 재전환을 제시한다.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으로는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제시된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참여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에서 가입자의 권한을 확대하고, ‘민간의료보험법(가칭)’을 제정하여 민간의료보험과 역할을 분담시키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재원조달 방안으로는 정부지원금을 현 20%에서 30%로 확대하고, 부자,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수혜자 등이 우선적으로 추가소요재정을 부담하도록 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원마련 방안이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90%로 높이고,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낮추기 위해 12조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민들이 선제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은 같은 목표를 위해 8조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고지원을 현 20%에서 30%로 늘리고,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을 연금소득, 금융소득, 종합소득으로 확대하고, 최후 방안으로 보험료 인상을 제시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의료수요의 증가로 현재보다 30조원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무상의료를 인기 영합주의로 비난하고 세금폭탄 혹은 재정적자를 발생시키는 정책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원과 비용 논쟁은 한국 보건의료의 핵심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보험료가 계속해서 인상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가 미약한 수준에 머물렀던 이유는 병원, 제약, 보험 등 의료자본의 이윤추구로 의료비가 급격히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대부분 민간에 맡겨 의료서비스가 공공적으로 제공되지 못하고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어왔던 역사와, 그에 따라 높은 의료비는 병원, 제약, 보험 자본의 이윤으로 새어나가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높아지지 않은 현실이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서 새어나가더라도 일시적으로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며, 한나라당은 계속해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민중 건강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민주당
무상의료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영유아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의 복지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무상의료는 민주당의 ‘좌클릭’, 정책기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인가?
민주당은 2010년 3월 자신의 앞날을 밝히는 포괄적인 보고서인 <뉴민주당플랜>을 발표했다. 뉴민주당플랜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는 제3의 발전모델의 핵심전략으로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제시한다. 포용적 성장은 인적 자원과 중소기업을 중시함으로써 지식산업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빈부격차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회의 복지는 약자에 대한 사후적 소득이전을 지양하고, 민간부문의 성장과 교육투자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전적 기회의 평등이 새로운 복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에서는 뉴민주당플랜이 민주당의 좌선회를 의미하기 때문에 진보세력과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라도 진보개혁 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민주당플랜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본 틀을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민주당의 지상과제다”라고 선언하면서도 실현 방안으로 ‘한국형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시한다. 즉 노동자 기술숙련 향상과 취업지원 서비스 확대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다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를 완화하고 교육, 의료, 주택 비용절감을 위한 공공정책을 병행해야 노동유연화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다만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확대하거나,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거나,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정책을 내세움으로써 노동자운동에서 주장하는 요구를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 부분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다른 교육, 사회복지, 보건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뉴민주당플랜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 설치한다거나 아동수당을 도입한다거나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계획은 이미 일부 지방자치체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거나 한나라당도 부분적, 단계적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정책 아이템이다. 결국 뉴민주당플랜은 전문가가 설계한 정책이나 사회운동의 요구를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차별성을 드러내려는 것뿐이다. 민중의 삶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이를 포섭하기 위해서 제시되는 일부 정책을 가지고 민주당의 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해석이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문제점: 자본 제어, 의료민영화 저지 없이는 무상의료 불가능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보건의료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건의료 공약으로 건강보험보장성 80%로 확대, 공공병상 30%까지 확대, 총액예산제, 본인부담금상한제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경우 2005년이 되어서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기관 수 기준 2002년 8.01%에서 2006년 6.6%로, 병상 수 기준 2002년 15.07%에서 2006년 12.32%로 감소했다. 총액예산제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2004년 상반기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대한의사협회 등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최초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병원비 중 비급여의 비율이 높아서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보장성이 강화될 리 없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1인당 보험료가 79%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59%에서 64%로 겨우 5% 증가했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신 추진한 것이 의료민영화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신성장동력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그 일환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던 것을 이어받아,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길을 열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설립, 인수합병, 환자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들을 거의 망라한 법안이었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민영화 추진은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대형병원, 민간보험, 제약회사의 이윤추구행위를 억제하여 의료비 상승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를 억제할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무상의료를 제시하고 있는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제시하고 있는 무상의료 정책에 자본을 제어하는 전략이 부족한 이유이다. 필수 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하자고 하지만 병원이 이윤추구를 위해 부당하게 취하고 있거나 무한정 확대되고 있는 비급여를 통제하는 방안은 없다. 건강보험 지출 중 약제비 비율이 30%에 이르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의 폭리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다. 심지어 민간보험회사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 동반자로 인식한다. 재원 마련 방안에 있어서는 국고지원 확충 외에 기업의 부담 강화, 현재 역진적인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누진적으로 바꾸는 것, 건강보험료 상한제 폐지 방안이 빠져 있다. 자본을 통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권이 과연 병원자본과 한판 전쟁을 필요로 하는 총액계약제, 공공병상확충, 병상총량제 등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역사와 뉴민주당플랜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 견인'이라는 미망은 운동의 쇠퇴를 불러올 뿐이다
의료비는 계속 상승하지만 민중의 건강이 나아지지 않는 ‘보건의료의 위기’가 나타나는 근본 이유는 자본주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야기하는 건강 악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질병의 원인이 아닌 결과만을 사후적으로 관리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민간 보험자본, 초국적 제약자본, 거대 병원자본의 폭리를 보장하고, 보건의료의 민영화를 통해 의료비를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불변의 현실로 인정했던 노무현 정권이 약속했던 보건의료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의 무상의료는 노무현 정권 보건의료 공약의 확대판이다. 의료비는 계속 오르고, 실업과 저임금을 오가는 노동자가 증가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청사진을 하나 제시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의료자본 통제와 의료민영화 저지가 없다면 무상의료는 결코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을 현실화시키려면 자본을 포함하는 보건의료 기득권 세력과의 강력한 한판 싸움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투쟁을 통해 형성된 힘을 바탕으로 ‘질병의 사회경제적 원인’으로서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해결하는 길로도 나아가야 한다.
누가 민주당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건의료운동의 일부는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이 운동의 요구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지지 및 참여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대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질적인 힘, 즉 자기 계급이나 강력한 운동이 없으면 매우 취약하다. 정책연합에 참가했다가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거나 변질될 경우, 자주적인 힘을 형성하지 못한 운동은 분열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운동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참여해서 겪은 뼈아픈 교훈이 있다. ‘민주당 견인’이라는 미망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