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11호 | 2011.03.24

제국주의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 과연 실현 가능한가?

리비아 공격을 둘러싼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에 대한 우리의 시각

정책위원회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두고 국제좌파는 심각한 의견 분열을 겪고 있다. 질문은 간단하다. 리비아 공격은 카다피 정권이 가하고 있는 반정부세력에 대한 맹공을 중단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침략일 뿐이고 리비아 민중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인가. 연일 강도를 더해가는 서방 국가들의 군사작전 속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리비아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행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도 카다피 세력의 패배는 서방이 아니라 반드시 리비아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반정부 세력은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카다피는 공군력에서 월등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서방의 군사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서방의 군사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군사개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정부 세력의 핵심부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향후 서방의 군사개입을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쩔 수 없으니 점령만 막자

다음으로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지지하되 군사개입이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도 서방의 군사개입이 궁극적으로는 석유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것임을 인정한다. 또한 그것의 이중기준도 인정한다. 예를 들어 2008-20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습이나 최근 바레인 사례처럼 친서방 정부에 대해서는 끝없이 관대한 서방의 위선 말이다. 그리고 유엔결의안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의지를 제한하는 충분한 안전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카다피 군대에 의한 대량학살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 주장한다. 좌파가 추상적 원칙이나 혁명적 공문구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수많은 주민이 죽음의 위험에 닥쳐 있는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가 유엔결의와 리비아 공격이 민간인 보호라는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

후자의 입장은 현재 국제 좌파 중에서 4인터내셔널이 발행하는 <인터내셔널 뷰포인트>에서 가장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녹색당이 리비아의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승인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데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프랑스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신당도 동참했다.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닌 좌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좌파정당의 요구를 완수하기 위해 군사공격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즉 사르코지가 좌파의 대행자냐는 비판인 것이다.
반면 유럽좌파당은 ‘리비아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군사적 개입은 민중봉기에 도움이 되지도 시민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적·외교적 발의가 필요하다’, 카다피 군과 리비아 반정부군뿐만 아니라 연합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한다. 리비아에 국제 정치·외교 사절단과 시민 관찰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일보일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국의 진보신당은 3월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제사회가 이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반정부 시위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조속히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는 3월23일 반전평화연대가 주최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기자회견’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 과연 실현 가능한가?

하지만 대량학살을 막기 위한 군사개입은 불가피하고 점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즉각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일부 좌파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간절하지만 이룰 수 없는 부질없는 희망은 아닌가. 오히려 그것을 서방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한 과정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대응을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유엔결의안과 서방의 군사공격이 야기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핵심적 문제를 검토해보자.

1) 군사작전을 통제할 수 있나?
서방의 군사공격이 유엔이 명시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에 제한될지 여부는 반정부 세력도 심지어 UN 안보리도 결정할 수 없다. 군사작전의 목표물이나 궁극적 전쟁목적은 사실상 작전에 참여한 서방국가가 결정할 뿐이다. 반정부 세력은 군사작전의 유형, 범위, 수단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결국 이미 개시된 서방 강대국의 군사공격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정부 세력은 이미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2) 군사작전의 수준을 제한할 수 있나?
비행금지구역만으로는 수많은 무기를 지닌 카다피 군을 멈출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방국은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다음 단계를 고려하고 있다. 물론 이번 안보리 결의안은 리비아 점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도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3) 리비아의 민주적 변화를 담보하는가?
현재의 조건이라면 반정부 세력이 카다피를 몰아내든, 미국-영국-프랑스 트로이카가 직접 카다피에 치명타를 날리든 리비아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현재 반정부 세력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권 담당자로 부상할 것인가? 아마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 미국의 군사행동에 가장 깊이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집단이 부상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서방의 석유회사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리비아의 지하자원을 제공할 의지로 충만하지 않을까. (과거 리비아 왕가의 자손이나 카다피 정부 관료 출신이라면 가장 적격일 것이다.) 그렇다면 리비아의 미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자가 기대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일 수 없다. 그리고 서방과 리비아의 새로운 지배 세력이 리비아에 통일적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처럼 최근 현실을 보더라도 서방 강대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쟁을 치른 국가에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번영은커녕 최소한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능력조차 매우 빈곤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4) 실제로 서방의 군사공격이 민간인 살상을 막는 효과적 수단인가?
이는 가장 첨예한 쟁점일 수 있다. 1990년대 코소보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토의 코소보 작전은 스레브레니챠 지역의 보스니아인 거주 마을에서 벌어진 대량살상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1999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은 이러한 잔혹행위를 방지하고 밀로세비치 정권이 전복되도록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나토의 폭격은 마치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것처럼 치장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토의 작전이 이루어진 후 코소보에서 최악의 인종청소가 벌어졌다. 이는 주로 세르비아 민병대가 주도한 것이었고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도 휘말리게 되었다. 나토의 군사작전이 오히려 적개심이나 공포를 불러일으켜 최악의 상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기실 초기에는 반정부운동이 외부에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의 보수주의자, 신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개입 요청에 대해 운운했을 뿐이었다. 반정부 운동 세력은 서방의 개입이 오히려 카다피 세력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고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사적 경험은 그러한 우려가 전혀 개연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재 반정부 세력 중 국가과도위원회가 입장을 바꾸어 서방의 개입을 요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운동 초기의 낙관적 기대가 반전되면서 나타난 좌절감과 조바심의 표현일 것이다.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은 제국주의의 중동-북아프리카 지배를 위한 새로운 기회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된 이후에도 카다피 세력은 상당히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제는 지상군 투입이 실행되지 않을 경우 리비아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더 우세해지고 있다. 서방 강대국은 직접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든 반정부세력의 무장을 지원하든 반정부세력을 종속적 위치로 떨어뜨릴 것이고 결국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유엔결의안에 따른 제한적 군사개입을 지지하는 논자가 희망하는 리비아의 미래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리비아가 누구에 의해서도 통치되지 못하는 두 개나 그 이상의 지역으로 분할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반정부 세력은 더욱 더 서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앞으로 서방의 행태는 제국주의적 간섭, 지배라는 본질을 점점 더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서방의 군사행동의 궁극적 목적은 제국주의 지배의 일소를 목표로 삼는 운동의 형성을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리비아를 둘러싼 정세, 그 핵심 문제가 점차 변화할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서방 강대국은 민주주의, 자유라는 고귀한 명분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사태에 개입할 기회를 포착했다. 유엔결의안과 군사작전이 제국주의가 중동-북아프리카 지배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는 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우리는 운동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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