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3호 | 2011.04.07
야권연대는 만병통치약인가
민주노총의 야권연대와 공공운수노조(준)의 의정포럼 비판
민주노총의 야4당 연석회의
최근 민주노총은 야4당과 함께 노동법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2010년 1월 1일에 개악된 노동법의 재개정은 물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산별교섭 보장,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등 8개 항의 노동법 재개정 요구를 야4당과 협의하여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상태다. 그런데 민주당이 한국노총이 요구한 복수노조-전임자 관련 사안만 먼저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히면서 양 노총과 야4당이 함께 하는 공동 입장 발표는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야4당과의 공동 선언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이명박 정권의 탄압에서 주로 찾고 있다. 그러면서 최대의 조직적 목표로 2012년 정권교체를 상정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 구도가 개편되면 노동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전망에 따라 강력한 야권연대를 현실화시키려고 한다.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투쟁보다는 정치적 구도를 활용해 성과를 얻자는 식이다. 만일 정권교체가 현실화된다면 법 제도 개정을 위해 정권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보는 집행부를 장악한 특정 정파의 입장이 관철된 결과인가? 지난 2006년 당시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로 ‘사회적 합의주의’ 논란을 만들었던 정파가 민주노총의 주류이기 때문인가? 최근 노조 운동의 흐름을 보건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집행부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알려진 공공운수노조(준)도 민주노총과 비슷하게 야당과의 정치적 대응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의정포럼
공공운수노조(준)는 3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에 소속된 18개 국회의원실과 사회공공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 씽크탱크와 함께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의정포럼을 발족했다. 공공운수노조(준)는 의정포럼의 취지를 ▷공공기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에 대항하여 노동-시민사회가 ’수세적 대응’에서 ‘전면적 대응’으로 전환하고 ▷공공기관을 ‘권력의 도구’에서 ‘서민의 벗’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 제시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한 3대 과제로 ▷권력형 인사로 왜곡된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 ▷공공기관 운영의 투명성 확보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제시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은 강력한 국가 통제를 받고 있고 공공기관 노사관계도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개별사업장을 넘어 대정부 교섭과 투쟁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기관이 정부 예산에 의해 운영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의 개입도 중요하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계속된 패배와 마찬가지로, 공공기관노조의 투쟁도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다. 사업장 내의 투쟁은 정부 지침과 임금가이드라인에 묶여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만 거듭하고 있다. 대량해고 같은 탄압에 법적 대응이상의 위력적인 실천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을 감안할 때 현장투쟁을 우회하는 정치적 대응은 매력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함께하는 정치적 대응이라는 우회로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러한 정치적 우회에 적합한 파트너인가? 공공기관 운영에서 큰 문제로 지적되는 상업적 경영평가나 ‘효율성’을 지상논리로 하는 경영혁신 정책은 모두 노무현 정권 때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권 ‘공공기관 선진화’의 원조는 김대중 정권 ‘4대 부문 구조조정’이다. 즉 민주당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그 정책이 ‘이명박이 추진하는 것인 한에서’ 비판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동일하다.
이번 의정포럼에는 ‘씽크탱크’들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한겨레경제연구소, 야4당 정책연구소 등이다. 이들 연구소와 이들이 연계하는 시민단체 중 일부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공공기관 혁신을 주장했다. 이들은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받침하던 NGO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체제전환에 이런저런 수사를 붙인다고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추진해 온 공공기관 혁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들이 변했다고 인정하려면 이들이 지난 정권 때 자신들의 정책을 반성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의정포럼 출범행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검토해보면, ‘변화’한 것은 노조들일 뿐이다.
노조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환상
의정포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공공운수노조(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공공운수노조(준)는 이 사업이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공공운수노조(준)가 주도적으로 운영해왔다고 주장했다. 물론 구성 단계에서 공공운수노조(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정포럼 전체를 노동자계급이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정당 차원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10여명의 중진 국회의원의 참여가 단지 ‘개인자격’일 뿐이라고 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노조와 신자유주의 세력이 공동행보를 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정포럼을 추진하는 공공운수노조(준)는 기존의 노사관계와 다른 제3항, 즉 ‘시민사회’라는 영역에서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민사회를 대표한다는 씽크탱크들의 상당수가 신자유주의적 NGO들이다. 따라서 그 타협이라는 것 역시도 노조의 입장 변화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문제는 정치적 교환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야당과 NGO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혹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노조가 자신의 요구를 ‘비교적 무해한’ 것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의정포럼과 같은 구조가 노조의 임단투나 현장투쟁을 대체해간다면 이후에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노조의 파업이나, ‘세금부담을 늘이는’ 임금인상 요구는 점점 더 회피해야할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공공성’ 개념이 노동자계급의 양보나 타협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흔히 공공기관 노동조합이 국민적 지지와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공기관을 혁신해야 한다는 담론은 종종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담론은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처럼 ‘개혁’의 부담을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함께 질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노사관계의 ‘정치적 해결’?
더 큰 문제는 조합원의 권리 보장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마치 노동자계급의 일반적 투쟁과는 다른 영역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노조가 이런 타협에 몰두할수록 정치적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현장 조합원들의 참여는 상대화되고, 노조의 기초인 현장조직력은 침식된다.
조합원의 힘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사업은 현장 조직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어떤 ‘외부적 보증’을 조직하는 것으로 노조의 역할을 변경시킨다. 이렇게 될 경우 이를 추진하는 이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노조는 점차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조직이 아니라 (체제에) ‘대체로 무해한’ 요구를 제기하는 로비스트 단체로 전락해갈 것이다.
의정포럼과 같은 활동은 이렇게 ‘외부적 보증’을 확보하려는 것이지만, 이러한 보증은 노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보증의 당사자가 민주당을 포함한 국회의원과 신자유주의적 NGO들이라면 그 대가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 정권 교체가 노동자계급의 지상목표인가?
노조운동의 패배가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명박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따라서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이념이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현재 노조운동 내에서는 정파를 막론하고 이러한 사고가 상당히 넓게 퍼져있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된 민주노조 운동의 패배를 전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이명박 정권이 교체된다면 노동운동은 다시 좋은 시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총의 야4당 연석회의나, 공공부문에서 유사한 형태로 추진되는 의정포럼은 패배의 원인을 모두 ‘이명박 정권’에 돌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패배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부터 반복되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96-1997년 ‘미완의’ 총파업과 1998년 노사정 합의의 아픈 기억을 떠올려 보라. 노조의 패배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과감히 투쟁할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수용할 때 발생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념과 투쟁의 부재야말로 노조운동 위기의 원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조운동의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성공은커녕 돌이킬 수 없는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은 야4당과 함께 노동법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2010년 1월 1일에 개악된 노동법의 재개정은 물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산별교섭 보장,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 등 8개 항의 노동법 재개정 요구를 야4당과 협의하여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상태다. 그런데 민주당이 한국노총이 요구한 복수노조-전임자 관련 사안만 먼저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히면서 양 노총과 야4당이 함께 하는 공동 입장 발표는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야4당과의 공동 선언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이명박 정권의 탄압에서 주로 찾고 있다. 그러면서 최대의 조직적 목표로 2012년 정권교체를 상정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 구도가 개편되면 노동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전망에 따라 강력한 야권연대를 현실화시키려고 한다.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투쟁보다는 정치적 구도를 활용해 성과를 얻자는 식이다. 만일 정권교체가 현실화된다면 법 제도 개정을 위해 정권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보는 집행부를 장악한 특정 정파의 입장이 관철된 결과인가? 지난 2006년 당시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로 ‘사회적 합의주의’ 논란을 만들었던 정파가 민주노총의 주류이기 때문인가? 최근 노조 운동의 흐름을 보건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집행부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알려진 공공운수노조(준)도 민주노총과 비슷하게 야당과의 정치적 대응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의정포럼
공공운수노조(준)는 3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에 소속된 18개 국회의원실과 사회공공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 씽크탱크와 함께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의정포럼을 발족했다. 공공운수노조(준)는 의정포럼의 취지를 ▷공공기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에 대항하여 노동-시민사회가 ’수세적 대응’에서 ‘전면적 대응’으로 전환하고 ▷공공기관을 ‘권력의 도구’에서 ‘서민의 벗’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 제시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한 3대 과제로 ▷권력형 인사로 왜곡된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 ▷공공기관 운영의 투명성 확보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제시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은 강력한 국가 통제를 받고 있고 공공기관 노사관계도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개별사업장을 넘어 대정부 교섭과 투쟁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기관이 정부 예산에 의해 운영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의 개입도 중요하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계속된 패배와 마찬가지로, 공공기관노조의 투쟁도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다. 사업장 내의 투쟁은 정부 지침과 임금가이드라인에 묶여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만 거듭하고 있다. 대량해고 같은 탄압에 법적 대응이상의 위력적인 실천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을 감안할 때 현장투쟁을 우회하는 정치적 대응은 매력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함께하는 정치적 대응이라는 우회로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러한 정치적 우회에 적합한 파트너인가? 공공기관 운영에서 큰 문제로 지적되는 상업적 경영평가나 ‘효율성’을 지상논리로 하는 경영혁신 정책은 모두 노무현 정권 때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권 ‘공공기관 선진화’의 원조는 김대중 정권 ‘4대 부문 구조조정’이다. 즉 민주당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그 정책이 ‘이명박이 추진하는 것인 한에서’ 비판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동일하다.
이번 의정포럼에는 ‘씽크탱크’들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한겨레경제연구소, 야4당 정책연구소 등이다. 이들 연구소와 이들이 연계하는 시민단체 중 일부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공공기관 혁신을 주장했다. 이들은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받침하던 NGO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체제전환에 이런저런 수사를 붙인다고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추진해 온 공공기관 혁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들이 변했다고 인정하려면 이들이 지난 정권 때 자신들의 정책을 반성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의정포럼 출범행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검토해보면, ‘변화’한 것은 노조들일 뿐이다.
노조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환상
의정포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공공운수노조(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공공운수노조(준)는 이 사업이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공공운수노조(준)가 주도적으로 운영해왔다고 주장했다. 물론 구성 단계에서 공공운수노조(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정포럼 전체를 노동자계급이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정당 차원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10여명의 중진 국회의원의 참여가 단지 ‘개인자격’일 뿐이라고 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노조와 신자유주의 세력이 공동행보를 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정포럼을 추진하는 공공운수노조(준)는 기존의 노사관계와 다른 제3항, 즉 ‘시민사회’라는 영역에서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민사회를 대표한다는 씽크탱크들의 상당수가 신자유주의적 NGO들이다. 따라서 그 타협이라는 것 역시도 노조의 입장 변화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문제는 정치적 교환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야당과 NGO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혹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노조가 자신의 요구를 ‘비교적 무해한’ 것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의정포럼과 같은 구조가 노조의 임단투나 현장투쟁을 대체해간다면 이후에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노조의 파업이나, ‘세금부담을 늘이는’ 임금인상 요구는 점점 더 회피해야할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공공성’ 개념이 노동자계급의 양보나 타협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흔히 공공기관 노동조합이 국민적 지지와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공기관을 혁신해야 한다는 담론은 종종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담론은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처럼 ‘개혁’의 부담을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함께 질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노사관계의 ‘정치적 해결’?
더 큰 문제는 조합원의 권리 보장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마치 노동자계급의 일반적 투쟁과는 다른 영역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노조가 이런 타협에 몰두할수록 정치적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현장 조합원들의 참여는 상대화되고, 노조의 기초인 현장조직력은 침식된다.
조합원의 힘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사업은 현장 조직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어떤 ‘외부적 보증’을 조직하는 것으로 노조의 역할을 변경시킨다. 이렇게 될 경우 이를 추진하는 이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노조는 점차 노동자의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조직이 아니라 (체제에) ‘대체로 무해한’ 요구를 제기하는 로비스트 단체로 전락해갈 것이다.
의정포럼과 같은 활동은 이렇게 ‘외부적 보증’을 확보하려는 것이지만, 이러한 보증은 노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보증의 당사자가 민주당을 포함한 국회의원과 신자유주의적 NGO들이라면 그 대가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 정권 교체가 노동자계급의 지상목표인가?
노조운동의 패배가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명박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따라서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이념이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현재 노조운동 내에서는 정파를 막론하고 이러한 사고가 상당히 넓게 퍼져있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된 민주노조 운동의 패배를 전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이명박 정권이 교체된다면 노동운동은 다시 좋은 시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총의 야4당 연석회의나, 공공부문에서 유사한 형태로 추진되는 의정포럼은 패배의 원인을 모두 ‘이명박 정권’에 돌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패배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부터 반복되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96-1997년 ‘미완의’ 총파업과 1998년 노사정 합의의 아픈 기억을 떠올려 보라. 노조의 패배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과감히 투쟁할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수용할 때 발생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념과 투쟁의 부재야말로 노조운동 위기의 원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조운동의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성공은커녕 돌이킬 수 없는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