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3호 | 2011.06.16
기초법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하고 반빈곤연대운동을 강화하자
6월 임시국회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진입장벽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진일보한 공공부조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수급 당사자를 '생활보호대상'이라 칭했던 것에서 '수급권자'로 명명하여 권리성을 부여하고, 연령/성별/노동 유무에 관계없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소득보장제도의 획기적 전환이라 일컬어졌다. 또한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 7개의 현금/현물 급여를 보장하여 빈곤층에 대한 종합적 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를 지극히 낮게 책정해 1차적인 진입장벽을 만들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해 2차 진입장벽을 두었다. 또한 수급자가 된 후에는 수급 조건으로 자활노동을 강요하는 조건부 수급조항을 두고 노동능력을 자의적으로 판정하는 근로능력평가기준 도입, 빡빡한 금융자산조회 등을 통한 수급자 걸러내기가 이루어져 법의 취지에 걸맞지 않은 운영이 이어져 왔다.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자 기준
전반적으로 복지 수준이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기초법은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로 인해 사각지대 인구가 410만 명에 달해 전체 수급자 수(약 157만 명)의 2.5배가 넘는다. 이 사각지대 인구 중 103만 명이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복지지원금 26만원(기초노령연금 9만원 포함)으로 생활하고 있는 서울 종로의 한 할아버지(91세)는 한 평짜리 쪽방 월세로 23만원을 지출한다. 딸 셋이 있지만 몇 년째 연락이 두절되었고, 딸들 역시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딸들이 할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하려면 딸들의 소득을 파악해야 한다.
기초법은 빈곤한 국민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생계를 달리 하는 1촌 이내의 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부양능력이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최저생계비보다 낮아 수급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부양의무자 제도
어린 시절 생활시설에 버려지다시피 한 장애인이 수십년 세월을 견디다 이제는 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중증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소득보장의 유일한 수단은 기초생활 수급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은 작용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가 죽기를 기다려야 하고, 자녀가 더욱 가난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10월 장애인 아이를 둔 한 아버지가 자살했다.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 자그마한 소득 때문에 아이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나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내가 없어져 아들이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라는 것이 유서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부양의무자 제도가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적용 기준이 가혹하다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자존감과 빈곤으로 인해 취약해진 가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절망적인 진입장벽이라는 점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하는 것만이 답이다.
일시적인 조사와 구제조치로 일관하는 정부
지난달 TV에 방영된 '공중화장실 삼남매'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명박 대통령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직후 보건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에 착수했다. 복지제도의 허점과 지역 복지 연계망의 취약함이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낳고 있기에 이러한 조사와 구제조치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각지대 해결 없는 '복지'와 '친서민'은 있을 수 없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10년이 넘도록 방치해둔 사각지대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 시설에 갇혀 인간다운 삶을 꿈꿀 기회조차 못 갖는 장애인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는 전사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최소한의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예산 책정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나 기초법은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너도 나도 '복지' 타령 중인 한국사회에서 기초법은 복지 포퓰리즘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며, 복지의 기본이다.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에 함께 나서자!
2009년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 구성되었던 기초생활권리찾기행동과, 2010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민중생활보장위원회의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이 구성되었다.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반빈곤운동단체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운동단체, 복지운동단체, 진보정당, 민주노총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이자 여성, 그리고 노점상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명동성당 농성에 나섰던 최옥란 열사의 죽음 이후 10년간 반빈곤운동의 주요 의제로서 기초법 개정운동과 수급권자 권리운동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주체 형성과 사회적 의제화는 쉽지 않았다. 여러 독소조항 때문에 생긴 진입장벽은 장애인과 노인 및 소위 '취약계층' 일부만이 제도 내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타의 복지제도 및 다른 계층과의 차단막을 형성해 기초법이 빈곤층 일부의 문제로 치부되어 모두의 권리와는 무관한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진입장벽을 힘겹게 넘어 제도 내로 들어온 수급자들은 소득활동을 할 수도 없고, 차별과 멸시 속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쥐꼬리만한 수급비로 연명하며 빈곤의 감옥에 갇혀 지내왔다. 아흔살 노인의 삶을 모른 체하고, 복지 수급이 절실한 아이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이 야만적인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며 '복지'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사회운동은 절망의 빈곤에 놓인 이들이 권리의 주체로 나서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는 데 함께 해야 한다.
현재 기초법 의제는 탈시설 장애인, 중증 장애를 가진 대중들을 조직할 중요한 계기이며, 넘쳐나는 복지담론의 홍수 속에서 복지의 기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으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이야기하자. 6월 국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총체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진입장벽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진일보한 공공부조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수급 당사자를 '생활보호대상'이라 칭했던 것에서 '수급권자'로 명명하여 권리성을 부여하고, 연령/성별/노동 유무에 관계없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소득보장제도의 획기적 전환이라 일컬어졌다. 또한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 7개의 현금/현물 급여를 보장하여 빈곤층에 대한 종합적 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를 지극히 낮게 책정해 1차적인 진입장벽을 만들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해 2차 진입장벽을 두었다. 또한 수급자가 된 후에는 수급 조건으로 자활노동을 강요하는 조건부 수급조항을 두고 노동능력을 자의적으로 판정하는 근로능력평가기준 도입, 빡빡한 금융자산조회 등을 통한 수급자 걸러내기가 이루어져 법의 취지에 걸맞지 않은 운영이 이어져 왔다.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자 기준
전반적으로 복지 수준이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기초법은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로 인해 사각지대 인구가 410만 명에 달해 전체 수급자 수(약 157만 명)의 2.5배가 넘는다. 이 사각지대 인구 중 103만 명이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복지지원금 26만원(기초노령연금 9만원 포함)으로 생활하고 있는 서울 종로의 한 할아버지(91세)는 한 평짜리 쪽방 월세로 23만원을 지출한다. 딸 셋이 있지만 몇 년째 연락이 두절되었고, 딸들 역시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딸들이 할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하려면 딸들의 소득을 파악해야 한다.
기초법은 빈곤한 국민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생계를 달리 하는 1촌 이내의 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부양능력이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최저생계비보다 낮아 수급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부양의무자 제도
어린 시절 생활시설에 버려지다시피 한 장애인이 수십년 세월을 견디다 이제는 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중증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소득보장의 유일한 수단은 기초생활 수급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은 작용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가 죽기를 기다려야 하고, 자녀가 더욱 가난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10월 장애인 아이를 둔 한 아버지가 자살했다.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 자그마한 소득 때문에 아이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나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내가 없어져 아들이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라는 것이 유서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부양의무자 제도가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적용 기준이 가혹하다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자존감과 빈곤으로 인해 취약해진 가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절망적인 진입장벽이라는 점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하는 것만이 답이다.
일시적인 조사와 구제조치로 일관하는 정부
지난달 TV에 방영된 '공중화장실 삼남매'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명박 대통령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직후 보건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에 착수했다. 복지제도의 허점과 지역 복지 연계망의 취약함이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낳고 있기에 이러한 조사와 구제조치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각지대 해결 없는 '복지'와 '친서민'은 있을 수 없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10년이 넘도록 방치해둔 사각지대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 시설에 갇혀 인간다운 삶을 꿈꿀 기회조차 못 갖는 장애인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는 전사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최소한의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예산 책정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나 기초법은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너도 나도 '복지' 타령 중인 한국사회에서 기초법은 복지 포퓰리즘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며, 복지의 기본이다.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에 함께 나서자!
2009년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 구성되었던 기초생활권리찾기행동과, 2010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민중생활보장위원회의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이 구성되었다.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반빈곤운동단체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운동단체, 복지운동단체, 진보정당, 민주노총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이자 여성, 그리고 노점상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명동성당 농성에 나섰던 최옥란 열사의 죽음 이후 10년간 반빈곤운동의 주요 의제로서 기초법 개정운동과 수급권자 권리운동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주체 형성과 사회적 의제화는 쉽지 않았다. 여러 독소조항 때문에 생긴 진입장벽은 장애인과 노인 및 소위 '취약계층' 일부만이 제도 내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타의 복지제도 및 다른 계층과의 차단막을 형성해 기초법이 빈곤층 일부의 문제로 치부되어 모두의 권리와는 무관한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진입장벽을 힘겹게 넘어 제도 내로 들어온 수급자들은 소득활동을 할 수도 없고, 차별과 멸시 속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쥐꼬리만한 수급비로 연명하며 빈곤의 감옥에 갇혀 지내왔다. 아흔살 노인의 삶을 모른 체하고, 복지 수급이 절실한 아이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이 야만적인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며 '복지'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사회운동은 절망의 빈곤에 놓인 이들이 권리의 주체로 나서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는 데 함께 해야 한다.
현재 기초법 의제는 탈시설 장애인, 중증 장애를 가진 대중들을 조직할 중요한 계기이며, 넘쳐나는 복지담론의 홍수 속에서 복지의 기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으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이야기하자. 6월 국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총체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