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34호 | 2011.09.29

야권 단일화 속에 표류하는 민중운동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를 비판한다

정책위원회
민주노동당 최규엽, 민주당 박영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이 9월 28일 최종 타결되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크고 하나된 힘으로 이명박-오세훈 체제를 심판한다’는 취지다. 이제 세 후보는 10월 1-2일 서울시민 1천명 여론조사 30%, 후보들 간의 TV 토론을 심사하는 2천명 배심원 평가 30%, 3일 국민참여경선 3만 선거인단 투표 40%를 합산하여 단일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또 10월 2일까지 2차 정책합의와 공동지방정부 수립을 위한 세부방안도 마련하게 된다. 이날 ‘야권단일후보 협약식’ 합의문에는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도 함께 서명했다. 특히 국민참여경선 승리를 위해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선거인단을 조직적으로 모집하게 되는데, ‘국민의 명령’이나 민주노총도 여기에 적극 참가한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이로써 한나라당을 제외한 제 정당 및 이와 관련된 시민사회·민중운동은 야권 단일후보를 공동으로 선출·지지하고,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공동지방정부를 구성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진보신당 노회찬 전 서울시장 후보조차 얼마 전 ‘작년에 후보단일화가 필요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한 마디로 그 누구도 범야권 단일화를 부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범야권 후보단일화 경과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사퇴한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대선의 전초전으로 인식되었다. 오세훈 시장 사퇴에 연이어 곽노현 교육감 불법선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국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이 와중에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언론은 ‘안철수 신드롬’의 원인을 여야 간 이전투구에 대한 불신과 안철수라는 개인이 지닌 매력에서 찾았다. 그런데 얼마 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박원순 이사는 순식간에 여론의 과반 지지율을 확보했다. ‘양보의 미덕’이 더해지며, 박원순 이사는 현 정부·여당에 비판적이면서도 민주당·국참당과 같은 기성 정당에 독립적인 시민사회의 대표주자로 추대되었다.
박원순 이사가 반한나라당 후보로 확고한 입지를 점하자 민주당은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기 후보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내부 경선 끝에 박영선 후보를 선출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야권 단일화를 전제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무소속이라는 한계로 인해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박원순 후보도 야권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당 내외곽에서 범야권 통합을 주창해온 ‘혁신과 통합’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반한나라당 주도권을 상실한 민주당으로서는 단일화를 통해 야권 통합과 총대선 승리의 추동력을 이어나가고, 정당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비민주당·시민사회 진영으로서는 당선을 통해 새로운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동안 국민참여당과의 정당통합과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적극 추진해온 민주노동당 역시 최규엽 후보 선출 이후 야권 단일화에 즉각 합의했다. 단일화 타결 직후 최규엽 후보 측은 ‘지난해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들이 정책연대와 범야권 단일후보에 적극 나서도록 견인해왔던 것처럼 경선과정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야권 단일화와 정당의 위기

이번 야권 단일화를 주도한 이들은 ‘후보 등록일 전에 단일화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고 감동을 주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내년 총대선에서도 선거연합을 통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과 같은 기존 정당이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정당에 대한 광범한 불신과 이반이 퍼진 상황에서,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정되는 것이 장차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야권연대의 기본틀로 정형화된 후보 단일화는 이념·노선·정강을 초월하여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고안된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때로 ‘감동의 정치’로 표현되기도 하는 후보 단일화 기법은 사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에 이뤄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국민적 지지와 정치적 흥행을 목적으로 도입된 개방형 예비경선 방식의 후보 선출제도는 특히 정당체계의 위기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사회 제도의 해체 속에서 정당의 위기도 심화한다. 정당의 위기는 정당 일체감의 감소, 당원 수의 감소, 전통적 지지층의 축소, 정당에 대한 신뢰 추락, 투표율의 하락으로 그 증후가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들은 미디어 캠페인과 인물 중심 선거 또는 단기 이슈 중심의 선거를 펼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당들은 당원 중심적 대중정당, 또는 이념 지향적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현안과 민심을 좇는 선거 중심적 정당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처럼 이념이나 당원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 구조가 안착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명망가 중심의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고 선거 시기에 명망가들 간 합의로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현대 인민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들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성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이사의 급부상은 이러한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정당의 위기 속에서 인민주의는 고유한 이념이나 정책 대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선호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박원순 이사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같은 정치선동가적 이미지보다는 NGO 출신 정책전문가 이미지가 더 강한 듯하다. 이처럼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형성되는 선거 카르텔은 결국 ‘전문가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보완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그에 참여하는 정당도 그러한 경향성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그에 편승하는 사회운동의 전략 역시 더욱 궁지에 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공동정부 노선의 문제점

일반적인 정당의 위기에 조응하여 민주노동당도 최근 수년간 ‘집권 전략’으로 상징되는 탈이념화의 길을 걸어왔다. 민주노동당은 핵심 지지층의 결집과 동원보다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선 변화를 시도했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서는 당의 조직적 토대를 이루는 노동자·농민·빈민 대중운동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정당 역시 현실의 선거정치에 치중하면서 정치공학이나 여론조작에 유연하게 적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를 도입한 데에 이어 올해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강도 높게 추진하였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선거에서 독자 출마하여 완주 패배하기보다는 야권 단일화로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일정한 지분을 갖고 공동지방정부에 참여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비민주당 개혁세력이 당선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주도권을 무력화하고 향후 선거연합의 협상력을 제고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최규엽 후보 개인도 ‘질 높은 야권 단일화’를 언급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동정부가 잘 될 경우 내년 대선에서 연립정부도 구성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상태다.
이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실현된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공동정부 노선이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화로 당선된 경상남도, 인천시, 강원도, 서울·경기 기초단체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공동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상남도에서 민주노동당은 강병기 후보가 김두관 후보와 단일화한 대가로 정무부지사를 맡고 있고 공동지방정부 성격으로 구성된 민주도정협의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유연한 선거·정책연합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여타 지역의 경우 아직 공동정부 구성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지역이 많고 구성된다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공약 실행이 좌지우지되어 선거용으로 그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정부 참여와 견제를 통해 실리를 획득했다는 식의 평가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후보 단일화와 이를 대가로 한 공동정부 지분 참여 보장을 실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동지방정부는 연립정부의 예시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일 연립정부 구성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노동당과 그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야권 단일화를 주도하는 민주당·국참당이나 그 외곽에 포진한 ‘혁신과 통합’, 또는 이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시민단체 등 전 집권세력은 정권 탈환을 위해 민중운동을 포섭하려고 시도해왔다. 이들은 평상시 독자적인 정당 체계로 존재하던 세력들을 선거 시기에 정치협상을 통해 선거 카르텔을 형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안하는 ‘빅 텐트론’이나 ‘혁신과 통합’이 제안하는 ‘백지신당론’은 그 속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쥘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을 자신의 좌익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형식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선거 카르텔이 반복된다는 것은 범야권이라는 큰 우산을 공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의 후보 단일화 참여에 우려를 표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빈민·청년·학생 등 각급 대중조직이 개별적으로 야권 후보들과 정책협약을 맺을 경우 의제가 분산되고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하여 일단 최규엽 후보를 지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서울지역본부는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5만 이상의 조직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을 수립한 상황이다. 후보 단일화 정책 합의문 중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노정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며, 서울시 등에 노동복지센터를 설립하여 고용안정과 노동복지를 실현한다’는 조항이 그 근거다. 서울본부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여타 후보들에 대해 노동정책 협약을 관철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서울본부는 박원순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 속에, 그와 마찬가지로 무소속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된 경상남도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인천시가 공동정부 구성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고 유관기관 노동조합 해고자를 복직시킨 사례도 참고한 듯하다.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방침은 진보정당 간 통합이 무산되고 또 민주노동당 이외의 진보정당에서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야권 단일화 과정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 주어진 경선 틀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노동당의 야권 단일화를 추인하는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이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수립된 민주노총 정치방침, 즉 ‘야권 단일화 후보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한다’는 정치방침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방침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일순간 개혁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로 둔갑시킨다. 특히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박원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노총은 지방정부에 대한 개입과 의존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점점 더 당면한 실리적 쟁점에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잠시, 미국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보자. 미국노총(AFL-CIO)과 민주당의 제휴가 야기한 가장 심원한 효과는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한다는 것, 또는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정당 정치인에 대한 로비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합원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조합원의 일차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 스스로가 협소한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게 만든다. 민주당 의존적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조합의 성격 그 자체를 협소한 이해관계 집단으로 변모시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국민참여경선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민주노총의 결정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시와 유관기관 노동조합의 해고자 원직 복직 문제가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본 원칙을 후퇴시키면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수의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무관하게 각자의 개별적 이해에 따라 지지 정당 및 후보를 선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인 선거 대응으로 정치방침을 국한하는 것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령을 다잡으며 현장을 교육하고 조직하려는 장기적 안목을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는 중장기적으로 정당 통합에 준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또 민주노총서울본부의 후보 단일화 경선 참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애초 취지를 대폭 후퇴시키는 선택이 될 것이다. 민중운동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초심과 원칙을 지키며 운동의 전진을 위한 방안을 다 같이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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