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1호 | 2012.02.16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시그나(Cigna)와 국내의료기관이 체결한 진료비 직불계약의 경과와 의미
지난 1월 31일 글로벌 보험사인 시그나(Cigna International Corporation)가 11개 국내 의료기관과 진료비 직불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서 시그나의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외국인환자들이 한국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며, 의료기관은 환자의 진료비를 시그나로부터 직접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계약에 참여한 병원은 서울대병원, 가천의대길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대치과병원, 세종병원, 인하대병원, 청심국제병원, 한양대의료원, 화순전남대병원으로 대부분 수도권 대형의료기관이다.
2009년 1월 국내 병원이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된 후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시도가 활발한데, 주로 정부기관 주도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계를 대상으로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워크숍과 설명회를 열고 해외 보험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는 ‘한국병원 체험행사’를 개최하는 등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 2011년 2월에는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정보포털’을 개설하여 유치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번 계약 역시 2011년 3월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과 시그나 총수와의 면담이 중요한 계기였으며 보건산업진흥원이 나서서 MOU 체결, 표준직불계약서 공동작성 등을 진행한 후 의료기관을 모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간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왔음에도 지지부진하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이번 계약을 계기로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국 보험회사와 국내 병원간 진료비 직불계약 체결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미국시장 점유율 10위권의 대형 민간보험회사와 국내 주요 의료기관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와는 구별된다.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번 계약이 보건의료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시그나의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외국인 환자의 진료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의 이해관계, 그리고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추진되는 맥락을 고려해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현재 의료법에는 ‘보험업법 제2조에 따른 보험회사, 상조회사, 보험설계사, 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는 외국인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는 민간보험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 보험회사들은 여기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향후 비슷한 형태의 협약들이 이루어지고 외국인환자를 상대로 한 시장이 커지면 국내 보험회사들은 자신들도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한 사업을 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한편 ‘진료비 직불계약’이라는 형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을 통해서 민간보험회사는 의료기관에 진료비를 지불하는 ‘갑’의 입장이 되어 진료 내용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진료비 지급심사라는 명분으로 환자의 건강정보 및 의료기록에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직불계약이 체결된 병원에서만 진료가 이루어지므로 보험회사는 피보험자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은 의료시장에서 민간보험자본의 우위를 확보하고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확대하는 핵심적 장치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이 결합될 경우 보건의료체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보험회사들도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면 의료기관과 직불계약을 체결하여 환자를 끌어들일 것이고, 외국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민간보험회사와 의료기관 사이의 직불계약이 일반화되면 이는 곧 직불계약의 전면적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자본이 의료시장을 장악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험가입에서 배제하는 등 대중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험료 대비 지급율도 공적보험에 비해 훨씬 낮다.
보다 심각한 것은 민간보험자본과 의료기관과의 직접적 연계망 형성이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 허용은 민간보험자본의 오랜 숙원이다. 삼성생명은 내부보고서에서 직불계약 허용을 건강보험 해체로 가는 중간단계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병원자본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것이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하는 등(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최한 ‘한국의료의 국제화 그 현황과 전망’ 토론회, 2009년 6월)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해왔다.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호응하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이 국부를 창출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신성장동력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삼성생명과 삼성병원 등 의료자본의 이해를 반영하여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해서는 영리병원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는 대형병원, 민간보험회사의 배를 불려줄지언정 민중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관광산업 추진 과정에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고 국민건강이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 국민건강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산업화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적인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이다.
2009년 1월 국내 병원이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된 후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시도가 활발한데, 주로 정부기관 주도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계를 대상으로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워크숍과 설명회를 열고 해외 보험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는 ‘한국병원 체험행사’를 개최하는 등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 2011년 2월에는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정보포털’을 개설하여 유치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번 계약 역시 2011년 3월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과 시그나 총수와의 면담이 중요한 계기였으며 보건산업진흥원이 나서서 MOU 체결, 표준직불계약서 공동작성 등을 진행한 후 의료기관을 모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간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왔음에도 지지부진하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이번 계약을 계기로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국 보험회사와 국내 병원간 진료비 직불계약 체결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미국시장 점유율 10위권의 대형 민간보험회사와 국내 주요 의료기관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와는 구별된다.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번 계약이 보건의료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시그나의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외국인 환자의 진료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의 이해관계, 그리고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이 추진되는 맥락을 고려해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현재 의료법에는 ‘보험업법 제2조에 따른 보험회사, 상조회사, 보험설계사, 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는 외국인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는 민간보험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국내 보험회사들은 여기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향후 비슷한 형태의 협약들이 이루어지고 외국인환자를 상대로 한 시장이 커지면 국내 보험회사들은 자신들도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한 사업을 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한편 ‘진료비 직불계약’이라는 형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을 통해서 민간보험회사는 의료기관에 진료비를 지불하는 ‘갑’의 입장이 되어 진료 내용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진료비 지급심사라는 명분으로 환자의 건강정보 및 의료기록에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더불어 직불계약이 체결된 병원에서만 진료가 이루어지므로 보험회사는 피보험자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은 의료시장에서 민간보험자본의 우위를 확보하고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확대하는 핵심적 장치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가능성이 결합될 경우 보건의료체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보험회사들도 외국인환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면 의료기관과 직불계약을 체결하여 환자를 끌어들일 것이고, 외국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민간보험회사와 의료기관 사이의 직불계약이 일반화되면 이는 곧 직불계약의 전면적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자본이 의료시장을 장악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험가입에서 배제하는 등 대중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험료 대비 지급율도 공적보험에 비해 훨씬 낮다.
보다 심각한 것은 민간보험자본과 의료기관과의 직접적 연계망 형성이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관과의 직불계약 허용은 민간보험자본의 오랜 숙원이다. 삼성생명은 내부보고서에서 직불계약 허용을 건강보험 해체로 가는 중간단계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병원자본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것이 외국인환자 유치 활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하는 등(한나라당 심재철 의원과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최한 ‘한국의료의 국제화 그 현황과 전망’ 토론회, 2009년 6월)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해왔다.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호응하여 외국인환자 유치 사업이 국부를 창출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신성장동력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삼성생명과 삼성병원 등 의료자본의 이해를 반영하여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해서는 영리병원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는 대형병원, 민간보험회사의 배를 불려줄지언정 민중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관광산업 추진 과정에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고 국민건강이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 국민건강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산업화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적인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