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54호 | 2012.02.29

한미 FTA는 야권단일화를 위한 장식물이 될 수 없다!

한미 FTA폐기를 위한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정책위원회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일은 단순 법절차에 불과한 수순이라고 본다면, 문제는 발효 이후 그동안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중심의 한미 FTA 투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가 넘도록,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민주당의 대응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 곳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를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된 MB FTA를 반대할 따름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정부가 깼다는 근거다. 하지만 민주당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10여 개 항목들 중 MB가 추가한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비중의 사안이 아니다. 또한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역진방지 조항(래칫),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 등 핵심 독소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단일화 정당화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점과 이념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양당이 앞 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 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선거 여론조사 기관에서 흔히 말하는 대표적 ‘갈등이슈’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실제로 한미 FTA를 폐기시키겠다는 운동 전략이 아니라, 한미 FTA라는 갈등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 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공천기준에는 한미 FTA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 FTA 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지는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 간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잊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집회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으로 변질되었다.
올 초 범국본 내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진행된 이른바 ‘심판운동’은 야권연대 총선대응 사업기조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정당의 공천반대인사 명단발표 문제로 불거졌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국회의장, 부의장 2인, 민주당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협소하게 심판대상자를 선정한 안이었다.
범국본 내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명단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명단은 2월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범국본은 밀실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한미 FTA는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이다.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 간 국익의 균형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일단 한번 체결-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 경제,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가령 한미 FTA 폐기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근본적 전환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민주당의 진정성 없는 선거용 퍼포먼스 정치에 활용되고 범국본에 야권연대를 목표로 하는 사업기조가 삽입되면서, 한미 FTA 폐기운동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미 FTA 폐기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경제제도 전반의 근본적 전환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투쟁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해서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재벌들과의 투쟁은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추가적으로 민영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재벌이 참여하여 각종 규제와 노동권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 폐기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운동전선의 재건과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을 중심으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한다.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는 현재 범국본 촛불집회의 기조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로 기능할 뿐이다. 한미 FTA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투쟁과 민영화저지 운동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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