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5호 | 2012.03.08
여성조합원대회를 전국 곳곳에서 개최하자!
2012년, 여성의 미래는 투쟁하는 여성의 힘으로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봉기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쉼 없이 일하고도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달력에 표기될 정도의 보편적인 ‘여성기념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104년 전의 여성들이 투쟁한 역사를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게 꽃 한 송이 건네며 가사노동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 몇몇 정치인들에게 여성의 삶과 미래를 맡기는 것도 아니다. 현재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구조에 맞서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복잡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며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가 되었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 돈도 좀 벌어오고’라는 인식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러 나선 여성의 60% 이상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때문이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라 불리는 직종들은 그 동안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해온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연장에 있는 일이다. 여성이 무급으로, 집에서 쉽게 해 온 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게다가 여성노동자에게는 숙련과 전문성 외에 추가로 사랑과 희생, 봉사와 인내가 요구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특수교육보조교사, 전화상담원, 간병인,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는 노동권을 입에 담는 것마저 금기시 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부당한 인격적 대우로 연결된다. 민주노총이 지난 해 실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비정규직 일수록 더 많이, 더 강도 높은 성희롱을 당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나이와 상관없이 사장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사례나 작년 투쟁에서 승리한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여성의 존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주목하자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6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최저임금을 돌파하고자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는 동시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폐해에 맞선 투쟁으로 의미가 있다. 원청인 대학당국과 하청 용역업체는 어용노조를 세운 뒤 개악된 노조법을 활용해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교섭을 회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3월 한 달 동안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 운동이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계기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통한 자본의 전략을 현장에서부터 깨는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보육교사의 투쟁에도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아온 보육교사들은 ‘교사의 소명’만으로 참으며 일 해왔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된 실질임금 동결,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육교사 임금동결안은 보육교사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보육교사들의 투쟁을 계기로 간병, 요양 등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보수세력 마저 무상보육 정책을 수용하면서 보육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보육노동을 제공하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 분야의 여성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 정책이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열악한 여성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청소, 보육노동자 외에도, 매년 봄을 해고와 함께 맞게 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또 장시간 노동 외에도 감정노동을 제공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마트 노동자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거리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재능학습지 교사들, 노조탄압과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KEC 노동자의 투쟁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 저임금과 해고위협에 맞서, 생계를 위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성적 폭력에 대항하여, 전쟁과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투쟁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역시 1920년대 고무공장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1970년대 민주노조 사수 투쟁으로, 그리고 지금 신자유주의와 빈곤에 맞서는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한 첫 출발임을 기억해야 한다.
2012년 총대선 국면을 여성노동자 투쟁의 시기로
올해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다시 얻기 위해 정당 통합, 인적 쇄신 등 선거 이벤트를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다. 일부 운동세력은 유권자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권 정치 안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을 위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세력과 연합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은 노동유연화를, 특히 여성에게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오히려 불안정한 파트타임 일자리 양산에 기여했던 점, 사회서비스 확충이 결국 돌봄서비스를 시장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밀어 넣은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몇 후보에게 실행이 불확실한 약속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연대로 정치인들이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표몰이가 필요한 시즌에서는 사탕발림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개선된 것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104년 전부터 투쟁해 온 여성들의 의지와 행동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서로를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자
민주노총에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낮다.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에 더 많이 가입하고,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노동조합이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모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 과제기도 하다.
19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사수 투쟁의 주역이었지만, 그녀들은 결혼과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의 주역들 대부분은 현재 노동자운동 내부에 남아있지 않다. 이후 1987년을 전후하여 전국적 투쟁을 만들었던 대공장 남성노동자가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성이 상징이 돼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여성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지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없다면, 민주노총은 ‘여성권’없는 반쪽짜리 노동권만 외치는 노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또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털어놓으며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결하고 연대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나 마트노동자가 있지만 밤늦게까지 어린이집과 대형마트가 열려있길 원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간병노동자가 있지만 간병비 때문에 버거워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같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안정된 여성일자리와 생활임금 보장, 여성노동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권 보장 등 공동으로 자본과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내용을 만들 수 있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여성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여성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 여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 다른 투쟁 사업장이나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특히 필요한 것은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다. 작년과 재작년 서울에서 치러진 여성조합원대회와 같이 여성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공간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 공동의 요구를 만들고, 연대의 폭을 넓혀보자. 각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여성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우리가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하자.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단결과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봉기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쉼 없이 일하고도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달력에 표기될 정도의 보편적인 ‘여성기념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104년 전의 여성들이 투쟁한 역사를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게 꽃 한 송이 건네며 가사노동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 몇몇 정치인들에게 여성의 삶과 미래를 맡기는 것도 아니다. 현재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구조에 맞서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복잡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며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가 되었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 돈도 좀 벌어오고’라는 인식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러 나선 여성의 60% 이상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때문이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라 불리는 직종들은 그 동안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해온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연장에 있는 일이다. 여성이 무급으로, 집에서 쉽게 해 온 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게다가 여성노동자에게는 숙련과 전문성 외에 추가로 사랑과 희생, 봉사와 인내가 요구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특수교육보조교사, 전화상담원, 간병인,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는 노동권을 입에 담는 것마저 금기시 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부당한 인격적 대우로 연결된다. 민주노총이 지난 해 실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비정규직 일수록 더 많이, 더 강도 높은 성희롱을 당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나이와 상관없이 사장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사례나 작년 투쟁에서 승리한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여성의 존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주목하자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6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최저임금을 돌파하고자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는 동시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폐해에 맞선 투쟁으로 의미가 있다. 원청인 대학당국과 하청 용역업체는 어용노조를 세운 뒤 개악된 노조법을 활용해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교섭을 회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3월 한 달 동안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 운동이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계기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통한 자본의 전략을 현장에서부터 깨는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보육교사의 투쟁에도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아온 보육교사들은 ‘교사의 소명’만으로 참으며 일 해왔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된 실질임금 동결,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육교사 임금동결안은 보육교사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보육교사들의 투쟁을 계기로 간병, 요양 등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보수세력 마저 무상보육 정책을 수용하면서 보육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보육노동을 제공하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 분야의 여성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 정책이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열악한 여성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청소, 보육노동자 외에도, 매년 봄을 해고와 함께 맞게 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또 장시간 노동 외에도 감정노동을 제공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마트 노동자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거리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재능학습지 교사들, 노조탄압과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KEC 노동자의 투쟁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 저임금과 해고위협에 맞서, 생계를 위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성적 폭력에 대항하여, 전쟁과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투쟁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역시 1920년대 고무공장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1970년대 민주노조 사수 투쟁으로, 그리고 지금 신자유주의와 빈곤에 맞서는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한 첫 출발임을 기억해야 한다.
2012년 총대선 국면을 여성노동자 투쟁의 시기로
올해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다시 얻기 위해 정당 통합, 인적 쇄신 등 선거 이벤트를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다. 일부 운동세력은 유권자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권 정치 안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을 위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세력과 연합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은 노동유연화를, 특히 여성에게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오히려 불안정한 파트타임 일자리 양산에 기여했던 점, 사회서비스 확충이 결국 돌봄서비스를 시장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밀어 넣은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몇 후보에게 실행이 불확실한 약속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연대로 정치인들이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표몰이가 필요한 시즌에서는 사탕발림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개선된 것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104년 전부터 투쟁해 온 여성들의 의지와 행동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서로를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자
민주노총에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낮다.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에 더 많이 가입하고,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노동조합이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모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 과제기도 하다.
19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사수 투쟁의 주역이었지만, 그녀들은 결혼과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의 주역들 대부분은 현재 노동자운동 내부에 남아있지 않다. 이후 1987년을 전후하여 전국적 투쟁을 만들었던 대공장 남성노동자가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성이 상징이 돼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여성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지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없다면, 민주노총은 ‘여성권’없는 반쪽짜리 노동권만 외치는 노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또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털어놓으며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결하고 연대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나 마트노동자가 있지만 밤늦게까지 어린이집과 대형마트가 열려있길 원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간병노동자가 있지만 간병비 때문에 버거워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같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안정된 여성일자리와 생활임금 보장, 여성노동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권 보장 등 공동으로 자본과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내용을 만들 수 있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여성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여성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 여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 다른 투쟁 사업장이나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특히 필요한 것은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다. 작년과 재작년 서울에서 치러진 여성조합원대회와 같이 여성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공간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 공동의 요구를 만들고, 연대의 폭을 넓혀보자. 각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여성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우리가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하자.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단결과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