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70호 | 2012.06.15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을 취소하고 피임권을 보장하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책위원회
지난 6월 7일, 식품의약품안정청(이하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 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에티닐에스트라디올을 함유한 사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고, 레보노르게스트렐을 함유한 사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식약청은 이번 의약품 재분류 안을 의견제출 기간, 자문 등을 거쳐 이르면 7월 말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분류 안이 통과될 경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던 사후피임약은 약국에서 살 수 있게 되는 반면, 사전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게 된다.

사전피임약은 21일 복용, 7일 휴약을 반복하여 복용함으로써 계획적으로 임신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약이다. 사후피임약은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 72시간 이내에 1회 복용하여 긴급하게 임신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약이다. 두 가지 약은 모두 여성이 임신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피임약의 허가와 유통에 있어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 여성의 삶의 질에 대한 고려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있었다. 이번 재분류 계획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재분류 계획을 여성의 재생산 권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따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약사 이권 절충한 일관성없는 재분류 계획

이번 식약청의 재분류 계획은 일관성이 없다. 사전피임약의 경우 1960년대 산아제한정책 때 도입되어 40년이 넘게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어 왔다. 또한 사전피임약은 높은 피임율과 안전성으로 의사들도 복용을 권장해 왔을뿐 아니라 생리주기 조절, 여드름 치료에도 이용되고 있다. 새로운 위험이 보고된 바 없는 상태에서 이제 와서 사전피임약의 안전성 문제를 근거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도 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후피임약은 1996년에 수입이 시도되었으나 종교단체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2001년 현대약품이 다시 사후피임약 ‘노레보정’을 수입하려고 하자 식약청은 공청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보건복지부와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 등이 찬성 의견을 제시하면서 결국 전문의약품으로 도입되었다. 사후피임약은 고용량 호르몬을 일시에 복용하게 되므로, 저용량 호르몬을 꾸준히 복용하게 되는 사전피임약에 비해 안정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이번 재분류 계획은 변화된 의학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어떤 해명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피임약의 허가와 유통은 국가의 인구조절정책과 여성의 혼전순결, 낙태에 대한 사회적 여론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재분류 계획은 논리적 일관성과 의학적 근거에 기초했다기보다는, 의사와 약사의 이해를 절충한 것에 불과하다. 약사회는 그간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라는 주장을 해왔다. 반면 의사협회는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살 수 없게 하고 24시간 응급실에서 처방받거나 병원에서 처방받는 의약분업 예외품목으로 전환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식약청의 발표에 대해서도 산부인과의사회와 한국여자의사회는 안전성을 이유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반대했고, 대한약사회는 접근성을 이유로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익집단 간 갈등 속에서 정작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낮출 재분류 계획

2006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성인 여성의 사전피임약 복용률이 벨기에 45.0%, 뉴질랜드 40.59%, 프랑스 36.44% 등인 데 비해 한국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의약품인 사후피임약 복용률이 5.6%로 더 높은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피임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한국 여성들은 피임에 대한 정보와 의학적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낮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피임에 대한 질의응답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교육이 충분하지 못할뿐만아니라 산부인과에서의 진료 및 상담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사전피임약과 사후피임약 모두 접근하기가 어렵다. 미혼여성의 성관계 그리고 여성이 피임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그 중요한 배경이다.
이번 재분류안이 통과될 경우 진료비 부담이 늘고 동시에 기존 사전피임약 가격이 약 3배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산부인과 접근성이 매우 낮은 미혼여성들에게는 물론이고, 기혼여성들에게도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지우게 된다면,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성관계를 맺고,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이다. 이러한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위해서는 피임약에 대한 접근권이 높아야 하며, 한국의 현 상황에서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전피임약과 사후피임약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문의약품은 안전하지만 접근성이 낮고, 일반의약품은 접근하기 쉽지만 안전성이 낮다는 인식은 일면적이다. 의사가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이라도 여성 스스로 약품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남용할 수 있고, 따라서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산부인과의 문턱이 낮으면 전문의약품이라도 접근이 쉬울 수 있다. 일반의약품 역시 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가 제대로 담보된다면 안전성을 높일 수 있으나 사회적 인식이 담보되지 않으면 접근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전문의약품이냐 일반의약품이냐 라는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실제로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피임의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 미혼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많은 경우 성관계 여부에 대해 여성이 결정하지 못하고, 콘돔 사용 등 남성에게 피임을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성이 피임약을 복용하게끔 하기 때문에, 성관계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의약품 재분류 논란을 계기로 피임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높이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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