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1호 | 2012.06.20
투쟁은 계속된다
그리스 2차 총선의 의미와 전망
6월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이 긴축찬성 우파 신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시리자를 비롯한 긴축반대 좌파를 ‘인민주의’로 매도하며 이들이 집권할 경우 당장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가 발생할 것처럼 공포를 자극한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와 우파의 공조가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1당 신민주당의 주도로 3당 사회당, 6당 민주좌파당이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이 신정부는 조만간 트로이카와 긴축안 재협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 정부들과 자본가들은 신민주당의 승리에 일단 안도감을 표하며 그리스 불안이 다소 진정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연 신민주당 연정은 그리스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리자의 한계와 기회는 무엇인가. 유럽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지고 있는 재정위기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유럽의 좌파는 구제금융-긴축재정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안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나.
그리스 2차 총선 결과의 의미
[표] 그리스 총선 결과. 출처: Parties and Elections in Europe
6월 17일 총선에서 시리자는 신민당에 근소한 차이로 패해 2당이 되었다. 시리자의 당선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이지만, 이것이 시리자의 영향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자는 5월 1차 총선과 비교할 때 득표율이 10% 가량 상승하며 71석을 얻어 제1 야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층, 중장년층, 그리고 주로 노동자 거주지에서 득표율이 크게 상승하며 이러한 인구계층에서 명백한 1당이 되었다. 시리자가 앞으로 중대한 정치세력으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또한 치프라스 대표는 시리자가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연정을 구성할 신민주당과 민주좌파당, 그리고 2010년 집권 정당 시절 긴축정책 조건을 받아들이고 추진한 사회당까지 모두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축반대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확실한 성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5월 총선에서 긴축반대를 선언한 정당이 60% 가량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긴축반대 세력의 득표율은 45%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는 보수 세력의 악선전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외 주류 언론이 구제금융-긴축재정의 부정은 유로존의 강제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압도적인 담론을 형성했고, 이러한 지형에서 많은 그리스 국민들은 위협을 느껴 시리자를 찍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시리자의 메시지는 많은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차 총선 이후에 시리자는 ‘긴축정책의 철폐나 대폭 수정 입장을 취해도 유로존 잔류가 가능할 것이며 정권 교체라는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서 대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변화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유권자가 이러한 주장에서 희망을 느꼈던 반면 또 다른 많은 유권자들이 설득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좌파의 한계와 기회
선거연합체인 시리자에 참여하는 급진 좌파 세력들은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가 거둔 분명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시리자가 보인 한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트로이카와 자본가들의 공격이 거셀 것이며 그리스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을 시리자가 분명히 인식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과 현장 수준에서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교육하며 투표를 조직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리자는 선거 시기에 트로이카와의 갈등을 축소하려고 애썼고, 지역과 현장 수준이 아니라 매스컴을 주요한 활동 무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시리자가 총선에서 1당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러한 활동을 펼칠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1당이라는 위치가 시리자의 행보에 많은 제약을 가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사실 신민주당·사회당·민주좌파당 연정의 앞길은 매우 어두워 보인다. 유럽연합 기구의 주요 인사들 내에서 구제금융 조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독일이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정부가 긴축정책을 집행하려고 한다면 대대적인 반발과 투쟁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연정이 올해 안에 무너질 것을 전망하는 언론이나 학자가 적지 않다.
시리자가 1당이 되었다 하더라도, 트로이카의 압박 속에서 완화된 긴축정책을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었다면 시리자의 정당성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크게 상실됐을 것이다. 차라리 2당의 위치에서 보다 확고한 노선을 수립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지원하면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를 벌이며 세력을 강화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시리자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총선 직후에 치프라스의 몇 가지 발언을 통해 시리자의 계획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치프라스는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책임있는 야당’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또는 당분간 투쟁을 동원하는 것보다 긴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최하층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조직화와 투쟁 중심의 활동보다는 의회 중심의 전략을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세에서 의회 안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시리자는 ‘약한 긴축’(austerity light), 즉 긴축 정책을 일부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중의 권리와 생존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대책과 전망
신민주당이 주도하는 그리스 신정부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긴축정책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신민주당은 향후 지급될 구제금융에 대한 금리 인하와 상환 기간 연장,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한 추가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자력으로 채무를 상환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데다가 올해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욱 악화하여 예정대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과도한 긴축에 대한 그리스 민중의 반발을 감안하면,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지원조건 일부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일 메르켈 총리나 라가르드 IMF 총재 등 트로이카의 주요 인사들은 구제금융국의 ‘도덕적 해이’를 빌미로 재협상 요구에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그리스 신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부 조건이 완화된 새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트로이카의 강력한 압력으로 그 내용은 현재의 긴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잔류와 구제금융 지원을 대가로 그리스 민중들은 다시 한 번 처절한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개혁’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제금융이 현재 그리스의 위기를 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스페인의 전면적인 구제금융 신청 예상, 유럽 은행들의 자본확충 시한(6월 30일) 만료 및 신용등급 조정 예상 등으로 유럽의 위기는 ‘시계 제로’ 상황에 처해 있다. 6월 18-19일 개최된 주요20개국정상회의(G20)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공조 방안을 논의했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며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은 6월 21-22일 EU 재무장관회의, 28-29일 EU 정상회의에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유럽금융안정화기금(EFSF) 및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과 같은 위기관리기구의 역할 강화 ▲‘유일한 방화벽’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융 안정 기능 수행 ▲재정규율 강화를 요체로 하는 신재정협약을 보완하기 위한 성장협약의 체결 ▲유로본드 발행 ▲유럽채무상환협약 체결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과도적 대책으로서 금융동맹(banking union) 결성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들은 유로존의 구조적 제약 및 회원국간 정치적·경제적 이질성으로 인해 실행가능성이 낮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단기간 내 합의되기 어려울뿐더러, 근본적 해법이 부재한 가운데 일부 개선 조치가 도입되더라도 그 실효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신정부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재정위기 극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또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위기가 파급되면서 유럽의 위기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서 대안 세력을 형성해야
지금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긴축정책과 트로이카의 독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유럽 통합에 대한 대안을 현실화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이 공포를 극복하여 현재 체제가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이미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되고 있다. 가령 그리스 노동자들은 점점 전투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의 노동조합, 정당, 사회운동단체들은 국제회의(Joint Social Meeting)를 개최하여 긴축에 반대하는 유럽 차원의 투쟁을 조직할 방안과 민중적 부채 감사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대안들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또 대안 세력들이 충분이 성장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의 2년간의 투쟁을 보면 분명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시리자는 이러한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을 자처하며 의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유럽 차원의 대안 논의에 적극 동참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 좌파들은 유럽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과 모순을 폭로하면서 대중 교육과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할 때 그리스와 유럽 민중들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신민주당 연정은 그리스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리자의 한계와 기회는 무엇인가. 유럽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지고 있는 재정위기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유럽의 좌파는 구제금융-긴축재정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안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나.
그리스 2차 총선 결과의 의미
6월 17일 총선에서 시리자는 신민당에 근소한 차이로 패해 2당이 되었다. 시리자의 당선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이지만, 이것이 시리자의 영향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자는 5월 1차 총선과 비교할 때 득표율이 10% 가량 상승하며 71석을 얻어 제1 야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층, 중장년층, 그리고 주로 노동자 거주지에서 득표율이 크게 상승하며 이러한 인구계층에서 명백한 1당이 되었다. 시리자가 앞으로 중대한 정치세력으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또한 치프라스 대표는 시리자가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연정을 구성할 신민주당과 민주좌파당, 그리고 2010년 집권 정당 시절 긴축정책 조건을 받아들이고 추진한 사회당까지 모두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축반대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확실한 성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5월 총선에서 긴축반대를 선언한 정당이 60% 가량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긴축반대 세력의 득표율은 45%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는 보수 세력의 악선전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외 주류 언론이 구제금융-긴축재정의 부정은 유로존의 강제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압도적인 담론을 형성했고, 이러한 지형에서 많은 그리스 국민들은 위협을 느껴 시리자를 찍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시리자의 메시지는 많은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차 총선 이후에 시리자는 ‘긴축정책의 철폐나 대폭 수정 입장을 취해도 유로존 잔류가 가능할 것이며 정권 교체라는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서 대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변화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유권자가 이러한 주장에서 희망을 느꼈던 반면 또 다른 많은 유권자들이 설득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좌파의 한계와 기회
선거연합체인 시리자에 참여하는 급진 좌파 세력들은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가 거둔 분명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시리자가 보인 한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트로이카와 자본가들의 공격이 거셀 것이며 그리스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을 시리자가 분명히 인식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과 현장 수준에서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교육하며 투표를 조직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리자는 선거 시기에 트로이카와의 갈등을 축소하려고 애썼고, 지역과 현장 수준이 아니라 매스컴을 주요한 활동 무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시리자가 총선에서 1당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러한 활동을 펼칠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1당이라는 위치가 시리자의 행보에 많은 제약을 가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사실 신민주당·사회당·민주좌파당 연정의 앞길은 매우 어두워 보인다. 유럽연합 기구의 주요 인사들 내에서 구제금융 조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독일이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정부가 긴축정책을 집행하려고 한다면 대대적인 반발과 투쟁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연정이 올해 안에 무너질 것을 전망하는 언론이나 학자가 적지 않다.
시리자가 1당이 되었다 하더라도, 트로이카의 압박 속에서 완화된 긴축정책을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었다면 시리자의 정당성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크게 상실됐을 것이다. 차라리 2당의 위치에서 보다 확고한 노선을 수립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지원하면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를 벌이며 세력을 강화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시리자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총선 직후에 치프라스의 몇 가지 발언을 통해 시리자의 계획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치프라스는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책임있는 야당’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또는 당분간 투쟁을 동원하는 것보다 긴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최하층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조직화와 투쟁 중심의 활동보다는 의회 중심의 전략을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세에서 의회 안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시리자는 ‘약한 긴축’(austerity light), 즉 긴축 정책을 일부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중의 권리와 생존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대책과 전망
신민주당이 주도하는 그리스 신정부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긴축정책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신민주당은 향후 지급될 구제금융에 대한 금리 인하와 상환 기간 연장,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한 추가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자력으로 채무를 상환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데다가 올해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욱 악화하여 예정대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과도한 긴축에 대한 그리스 민중의 반발을 감안하면,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지원조건 일부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일 메르켈 총리나 라가르드 IMF 총재 등 트로이카의 주요 인사들은 구제금융국의 ‘도덕적 해이’를 빌미로 재협상 요구에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그리스 신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부 조건이 완화된 새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트로이카의 강력한 압력으로 그 내용은 현재의 긴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잔류와 구제금융 지원을 대가로 그리스 민중들은 다시 한 번 처절한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개혁’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제금융이 현재 그리스의 위기를 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스페인의 전면적인 구제금융 신청 예상, 유럽 은행들의 자본확충 시한(6월 30일) 만료 및 신용등급 조정 예상 등으로 유럽의 위기는 ‘시계 제로’ 상황에 처해 있다. 6월 18-19일 개최된 주요20개국정상회의(G20)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공조 방안을 논의했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며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은 6월 21-22일 EU 재무장관회의, 28-29일 EU 정상회의에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유럽금융안정화기금(EFSF) 및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과 같은 위기관리기구의 역할 강화 ▲‘유일한 방화벽’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융 안정 기능 수행 ▲재정규율 강화를 요체로 하는 신재정협약을 보완하기 위한 성장협약의 체결 ▲유로본드 발행 ▲유럽채무상환협약 체결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과도적 대책으로서 금융동맹(banking union) 결성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들은 유로존의 구조적 제약 및 회원국간 정치적·경제적 이질성으로 인해 실행가능성이 낮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단기간 내 합의되기 어려울뿐더러, 근본적 해법이 부재한 가운데 일부 개선 조치가 도입되더라도 그 실효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신정부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재정위기 극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또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위기가 파급되면서 유럽의 위기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서 대안 세력을 형성해야
지금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긴축정책과 트로이카의 독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유럽 통합에 대한 대안을 현실화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이 공포를 극복하여 현재 체제가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이미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되고 있다. 가령 그리스 노동자들은 점점 전투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의 노동조합, 정당, 사회운동단체들은 국제회의(Joint Social Meeting)를 개최하여 긴축에 반대하는 유럽 차원의 투쟁을 조직할 방안과 민중적 부채 감사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대안들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또 대안 세력들이 충분이 성장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의 2년간의 투쟁을 보면 분명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시리자는 이러한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을 자처하며 의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유럽 차원의 대안 논의에 적극 동참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 좌파들은 유럽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과 모순을 폭로하면서 대중 교육과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할 때 그리스와 유럽 민중들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