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2호 | 2012.09.27
확산되는 무슬림의 분노
침략과 점령을 끝내야한다
“이슬람에 대한 가장 악랄한 공격”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무슬림의 무지’라는 동영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반이슬람 동영상으로 촉발된 이슬람의 반미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금새 예멘, 튀니지, 수단, 모로코, 팔레스타인, 이라크,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미국 대사의 추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성난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캠프 피닉스 미군기지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지난 9월 21일 파키스탄에서는 금요기도회를 마친 무슬림들이 파키스탄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실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진압했고, 하루 동안 17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반미 시위는 아시아권 이슬람 국가로까지 확산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도 자카르타를 포함해 여러 도시에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규탄 대상 역시 미국을 넘어 서방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인다.
반미에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분노로
한국의 한 언론은 반 이슬람 동영상으로 시작된 반미시위가 프랑스의 만평을 기화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규탄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의 한 주간지에서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었는데, 이 사건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세계 전체가 무슬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보도였다. 들끓는 무슬림 여론을 프랑스가 자극해 전체 서방 세계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에는 프랑스 주간지의 만평 사건이 없었다면 무슬림의 시위가 ‘반미’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번 사태를 오로지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과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라는 틀에 가두어버린다. 때문에 이번 사태 초기에 수단의 무슬림들이 영국과 독일 대사관을 습격한 일은 ‘격앙된 시위대의 우발적 폭력 사태’ 정도로 치부된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러한 보도는 뿌리 깊은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연결된다. ‘거룩한 예언자를 모욕한 이를 자신들이 직접 처벌할 것’이라며 주먹을 흔드는 시위대의 인터뷰 장면은 무슬림 혐오에 생생하게 색을 입힌다. 표현의 자유는 종교적 인물에도 예외가 아닌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무슬림들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문제가 된 만평을 게재한 프랑스 주간지의 편집장이 ‘종교는 하나의 철학,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무함마드도 칼 마르크스도 만화로 그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서방 세계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을 도왔던 미국의 영사관을 습격해 대사를 살해한 리비아 무슬림들에게 ‘은혜를 모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그러나 이번 시위가 이렇게 단기간에 전체 이슬람 국가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 모두 독재자들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원하면서 이라크 침략과 점령,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예멘에서 지속되는 군사 공격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지난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미 시위들은 없었을 것이라 평가했다. 해외 언론이 예멘이나 다른 지역의 시위자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그들의 분노가 동영상 자체를 훌쩍 넘어 미국과 서방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배후 조종?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아에서 발생한 미국 대사 살해 사건은 이번 시위의 의미를 폄하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리비아 당국은 재빨리 이번 피습 사건은 성난 시위대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역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미 시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 테러리스트들의 개입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실제 리비아의 미국 영사관 피습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으로 보인다. 이슬람 그룹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미 시위를 호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동영상이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되었다거나, 미국 정부의 사전 심의를 거쳐 승인받은 영화라는 식의 거짓 주장을 퍼뜨린 정황도 포착된다.
그러나 시위가 시작된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 초기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얼마 후 무슬림 형제단은 동영상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지만, 9월 14일에 평화로운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른 이슬람 종교 학자와 그룹들도 동영상을 비난했지만 평화로운 저항을 호소했다. 이번 사태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기나긴 침략과 점령의 세월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를 가리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미완의 민주주의?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초기 상황을 분석하면서,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 중 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작년 ‘아랍의 봄’을 타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정부가 세워졌거나 그러한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 하에서 강력하게 유지되던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고, 아직 그러한 통제력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의 폭력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자칫 서방의 군사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 사회는 그동안 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을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타국의 개입은 주권에 우선한다는 이른 바 ‘보호책임’ 개념을 계발해 왔다.(이에 대한 신념은 작년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성공적인’ 개입을 계기로 한층 강화되었다.) 민주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치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인식은 결국 평화를 위해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가 그동안 유엔의 평화유지군이나 미국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경계해야 한다.
침략과 점령을 중단하라
반미시위의 급속한 확산은 그동안 지속된 침략과 전쟁에 대한 무슬림의 뿌리 깊은 분노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미국이나 서방 세계의 또 다른 개입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개입이 세계를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보호를 사활적인 이익으로 정의한 미국의 군사교리는, 세계화가 내세우는 담론과는 반대로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과 파괴, 점령과 전쟁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조응해 적극적으로 파병을 하면서 불안한 중동 정세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무슬림의 분노가 단지 동영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언제든지 미국의 패권 정책을 충실히 수행해 온 한국으로 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별다른 의문 없이 지속되고 있는 해외 파병을 중단하고, 중동에 대한 침략과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반전평화운동의 또 다른 한걸음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반이슬람 동영상으로 촉발된 이슬람의 반미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금새 예멘, 튀니지, 수단, 모로코, 팔레스타인, 이라크,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미국 대사의 추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성난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캠프 피닉스 미군기지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지난 9월 21일 파키스탄에서는 금요기도회를 마친 무슬림들이 파키스탄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실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진압했고, 하루 동안 17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반미 시위는 아시아권 이슬람 국가로까지 확산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도 자카르타를 포함해 여러 도시에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규탄 대상 역시 미국을 넘어 서방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인다.
반미에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분노로
한국의 한 언론은 반 이슬람 동영상으로 시작된 반미시위가 프랑스의 만평을 기화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규탄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의 한 주간지에서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었는데, 이 사건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세계 전체가 무슬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보도였다. 들끓는 무슬림 여론을 프랑스가 자극해 전체 서방 세계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에는 프랑스 주간지의 만평 사건이 없었다면 무슬림의 시위가 ‘반미’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번 사태를 오로지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과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라는 틀에 가두어버린다. 때문에 이번 사태 초기에 수단의 무슬림들이 영국과 독일 대사관을 습격한 일은 ‘격앙된 시위대의 우발적 폭력 사태’ 정도로 치부된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러한 보도는 뿌리 깊은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연결된다. ‘거룩한 예언자를 모욕한 이를 자신들이 직접 처벌할 것’이라며 주먹을 흔드는 시위대의 인터뷰 장면은 무슬림 혐오에 생생하게 색을 입힌다. 표현의 자유는 종교적 인물에도 예외가 아닌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무슬림들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문제가 된 만평을 게재한 프랑스 주간지의 편집장이 ‘종교는 하나의 철학,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무함마드도 칼 마르크스도 만화로 그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서방 세계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을 도왔던 미국의 영사관을 습격해 대사를 살해한 리비아 무슬림들에게 ‘은혜를 모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그러나 이번 시위가 이렇게 단기간에 전체 이슬람 국가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 모두 독재자들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원하면서 이라크 침략과 점령,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예멘에서 지속되는 군사 공격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지난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미 시위들은 없었을 것이라 평가했다. 해외 언론이 예멘이나 다른 지역의 시위자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그들의 분노가 동영상 자체를 훌쩍 넘어 미국과 서방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배후 조종?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아에서 발생한 미국 대사 살해 사건은 이번 시위의 의미를 폄하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리비아 당국은 재빨리 이번 피습 사건은 성난 시위대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역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미 시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 테러리스트들의 개입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실제 리비아의 미국 영사관 피습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으로 보인다. 이슬람 그룹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미 시위를 호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동영상이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되었다거나, 미국 정부의 사전 심의를 거쳐 승인받은 영화라는 식의 거짓 주장을 퍼뜨린 정황도 포착된다.
그러나 시위가 시작된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 초기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얼마 후 무슬림 형제단은 동영상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지만, 9월 14일에 평화로운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른 이슬람 종교 학자와 그룹들도 동영상을 비난했지만 평화로운 저항을 호소했다. 이번 사태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기나긴 침략과 점령의 세월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를 가리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미완의 민주주의?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초기 상황을 분석하면서,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 중 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작년 ‘아랍의 봄’을 타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정부가 세워졌거나 그러한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 하에서 강력하게 유지되던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고, 아직 그러한 통제력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의 폭력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자칫 서방의 군사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 사회는 그동안 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을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타국의 개입은 주권에 우선한다는 이른 바 ‘보호책임’ 개념을 계발해 왔다.(이에 대한 신념은 작년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성공적인’ 개입을 계기로 한층 강화되었다.) 민주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치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인식은 결국 평화를 위해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가 그동안 유엔의 평화유지군이나 미국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경계해야 한다.
침략과 점령을 중단하라
반미시위의 급속한 확산은 그동안 지속된 침략과 전쟁에 대한 무슬림의 뿌리 깊은 분노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미국이나 서방 세계의 또 다른 개입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개입이 세계를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보호를 사활적인 이익으로 정의한 미국의 군사교리는, 세계화가 내세우는 담론과는 반대로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과 파괴, 점령과 전쟁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조응해 적극적으로 파병을 하면서 불안한 중동 정세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무슬림의 분노가 단지 동영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언제든지 미국의 패권 정책을 충실히 수행해 온 한국으로 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별다른 의문 없이 지속되고 있는 해외 파병을 중단하고, 중동에 대한 침략과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반전평화운동의 또 다른 한걸음을 준비해야 할 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