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5호 | 2012.11.07
이제 탈핵 말고는 대안이 없다
핵발전소 부품 품질보증서 위조 사건과 핵발전의 숨은 비용
11월 5일 오전 지식경제부(지경부)는 긴급 브리핑을 열어 국내 핵발전소에 납품되는 부품의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브리핑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핵발전소 부품 납품업체로부터 제출받은 해외 검증기관의 검증서 10년 치를 전수조사한 결과 8개 업체에서 총 60건의 검증서 위조 사례가 적발되었다. 지경부는 검증서 위조가 밝혀진 부품은 총 7,682개에 달하며, 이 부품들이 사용된 핵발전소는 영광 3, 4, 5, 6호기와 울진 3호기라고 발표했다. 검증서 위조 부품이 대부분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영광 5, 6호기는 이날 오전 가동이 정지되었으며, 연말까지 부품을 교체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은폐와 축소
그러나 발표 하루 만에 거짓말이 들통 났다. 지경부는 한수원이 국내 핵발전소에 납품하는 모든 업체의 10년 치 검증서를 전수조사 했다고 밝혔지만, 8개 업체가 제출한 검증서 300여 건만 샘플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10년 간 한수원과 거래 실적이 있는 업체는 30곳으로, 나머지 22개 업체까지 조사범위가 확대되면 검증서 위조 부품의 수량이나 부실 부품이 들어간 핵발전소 수도 훨씬 많아질 수 있다. 한수원이 조사한 검증서 300여 건 중 위조 비율이 20%에 달했던 것에 비춰보면, 부실 부품이 수만 개에 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 안전을 우선에 두어야할 정부 부처가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발표했거나, 핵발전 반대 여론을 의식해 사건 규모를 은폐하려 한 것이다.
무지, 혹은 거짓말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이번에 확인된 부품은 핵심 설비에 사용될 수 없는 부품’이라며 핵발전소 안전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부실 부품이 원자로나 증기발생기에 사용된 것은 아니며, 원자로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보조 설비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핵발전소 사고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는 핵심 설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자. 문제는 격납용기 내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전원이 끊기고, 비상 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격납용기의 내부 온도가 상승한 것이다. 핵발전의 핵심인 핵분열은 격납용기 안에서 진행되지만, 전원 공급, 냉각기 관련 기기 운전 등 모든 제어는 격납용기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번에 적발된 부실 부품은 대부분 이 제어 계통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관계부처 장관이 핵발전소 운영 원리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제 안전 신화는 없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한수원이나 정부가 주장해 온 핵발전소 안전 신화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전 세계가 핵발전의 위험을 인식하고 대안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유독 핵발전 확대 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핵발전소 안전 설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그것을 제어하는 부품들이 부실해서는 결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최근 고리 1호기 정전 사고 은폐, 납품 비리, 내부 직원의 마약 투여 사건 등 핵발전의 기술 외적 문제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데 더해, 핵발전 기술에 있어 핵심적인 부품 사용의 총체적 부실마저 드러난 셈이다.
더구나 이런 문제를 감독해야하는 정부 기관은 이번 건과 같은 부품 검증서를 점검할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최근 조직개편에서 ‘품질보증실’조차 폐지했다. 주무 감독 기관은 전혀 손을 댈 수 없고, 핵발전을 하는 주체인 한수원의 말만 믿어야 하는 실정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통째로 맡겼다가는 패가망신할 수밖에 없다.
핵발전의 숨은 비용
지속되는 핵발전소 관련 사건, 사고들은 핵발전이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찬핵론자들은 발전 단가만 계산해 핵발전이 다른 발전에 비해 훨씬 저렴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고발생 위험 비용이나 환경 복구 비용, 핵폐기물 처리 비용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또한 고장난 부품의 교체 비용이나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 개선은 전혀 계산되지 않는다. 한수원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부품 고장으로 정지한 핵발전소의 부품 교체 비용에만 125억 원이 넘게 들어갔으며, 지난 10년 간 고장으로 가동 정지된 핵발전소를 대신해 발전 수요량을 맞추기 위해 4412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고리 1호기의 수명 연장을 위해 2007년에는 559억 원, 지금까지 213억 원의 설비 교체가 이루어졌고, 내년에는 1929억 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핵발전의 원료인 우라늄도 부존량이 얼마 되지 않는 광물이고, 핵발전과 관련된 전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도 천문학적인 핵발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다.
탈핵 말고는 대안이 없다
영광 지역 주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지자체에 이주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을 생각할 때 이번 사건은 결코 영광 지역에 한정될 수 없는 문제다. 후쿠시마의 참사에 이어 한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핵발전 관련 사건, 사고들은 우리가 결코 핵발전과 함께는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핵발전이 자랑하던 다중 보호체계의 안전 신화는 후쿠시마 사고로 이미 깨어졌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실수나 비리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지난 납품 비리 문제처럼 일부 관계자들의 처벌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핵발전과 관련된 전체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부품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요구해야 하며, 관리 감독은 팽개친 채 핵발전 확대에만 열을 올리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한다. 핵발전은 결코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탈핵의 길을 적극 모색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