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6호 | 2012.11.09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을 지지한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돌입!
바로 오늘,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가 파업에 돌입한다. 오늘 1차 파업을 시작으로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을 교섭자리로 끌어내어 호봉제, 정규직 채용 등을 쟁취하겠다는 것이다.
급식, 교무/행정, 도서관운영, 장애학생지원, 과학실험지원, 야간경비, 전산업무, 기숙사 생활지도, 학교부설 유치원 종일반, 전문상담, 빈곤학생상담 및 지원, 청소업무, 운전 등 40여 개가 넘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전국 15~20만 학교비정규직노동자(이하 학비노동자)들의 교섭요구와 파업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파업참가 노동자가 많고 범위가 전국적인 점,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학교 업무를 중단한다는 점, 공공기관 노동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학비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은 주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학비연대회의의 파업투쟁에 대한 관심도 높다. 보수언론은 학비노동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급식노동자들의 파업참여로 ‘급식대란’이 우려된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는가 하면, 시민들은 좋은 처우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파업배경에 대해 궁금해 한다.
호봉제와 교육감 직고용 요구, 그리고 노동자 선언
학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학교라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방향과 예산집행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러나 법 제도 상의 아무런 신분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시도교육청, 교과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노동조건은 계속 악화되어왔다. 교장이 군림하는 학교 안에서 숨죽이고 일할 수밖에 없던 세월이 근 20여 년이었다. 그렇게 20여 년간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적인 노동조합 가입으로 모아져 이번 파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임금과 일상적 고용불안을 겪는 학비노동자들은 △교과부·교육청과 노조 간 임단협 체결 △호봉제 도입 △교육공무직법안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학비노동자들은 교장과의 소모적인 싸움에서 벗어나 교육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수립하는 ‘진짜 사장’과의 실질적인 교섭권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똑같은 임금을 받아왔던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오랜 염원인 ‘호봉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보조 잡급’이라는 학교 내 신분제도에서 벗어나 교육공무직 채용이라는, 정규직이라는 시민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95% 이상이 여성인 학비노동자들이 여성이니까, 비정규직이니까, 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포기하고 감내해왔던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투쟁의 의지를 모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일정에 발맞춘 신생노조의 조직화·투쟁전략에 대한 우려
학비연대회의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교육공무직법 제정과 같은 입법활동과 교과부·교육청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 집회, 농성, 대규모 상경집회 등 교섭요구 투쟁을 병행해왔다. 정권창출을 위한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권력누수 상태인 행정기관의 복지부동이 맞물리는 정권교체기에 신생노조가 전방위에 걸쳐 공세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학비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은 초기부터 정치일정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학비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을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린 두 축인 전회련과 전국학비는 모두 지방선거가 있던 2010년을 전후해 조직을 결성하면서 친환경무상급식 및 진보교육감 선거, 다수의 신규조직대상(급식노동자) 조직, 체불임금 소송 및 공무원 전환 특별법 서명운동 등 사업을 통해 노조의 양적 확대를 이뤄왔다. 그리고 총대선이 집중된 올해를 노조의 질적 도약의 해로 삼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일상적 노조 활동의 중심을 교육감 선거, 총선, 대선 등 선거 일정에 맞춤으로써, ‘아무튼 투표는 잘 하고 볼 일이다’, ‘누구든 간에 우리 요구를 수용하게만 하자’라는 식의 인식을 조합원 내에 남기기도 한다. 가령, 11월 3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시청광장 주변에는 재능교육 농성장,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 전북버스 농성장이 있었지만 결의대회에서는 노동자의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발언, 연대발언, 문화공연이 없었다. 대신 대선주자나 교육공무직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의 발언, 대선주자를 연호하는 합창과 법안발의 의원에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여기에 통진당 사태와 분당이 전국학비 내부에서까지 갈등을 만들고, 학비노동자들 간의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봉합된 쟁점인 교육대산별 문제, 분열된 학교비정규직 노조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까지 고려하면, 신생노조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노동조합 운동의 기본과 원칙을 확인하는 파업투쟁을 만들어가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노조운동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교과부·교육청을 교섭자리로 끌어내고, 호봉제와 교육공무직법안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스스로 투쟁의 주체로 거듭나고, 노동자 단결을 확대해야 한다. 40여 개가 넘는 직종을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모아냈듯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이해를 넘어 민주노조 깃발 아래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성과 투쟁성, 변혁성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학교업무, 가사노동에 노동조합 활동까지 더해지는 3중의 고통에 허덕이지 않고 노조활동을 통해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평등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해방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자. 정치 일정에 발맞춘 사업은 필요하지만, 그 보다는 노동자 단결의 확대를 중심으로 노조 일상 사업을 전개하면서 다른 지역,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을 반기고 연대하자.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다. 오늘 1차 파업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작의 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