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0호 | 2012.11.29
정치쇄신론과 단일화 정치, 어떻게 볼 것인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비판
11월 한 달 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11월 6일 후보등록 이전 단일화 합의 후 협상개시, 14일 단일화 협상 중단, 18일 민주통합당 이해찬-박지원 지도부 사퇴 선언과 새정치 공동선언 합의, 19일부터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싼 마라톤 협상과 갈등 등 단일화 과정은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23일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갑작스럽게 후보직을 사퇴함에 따라 지난했던 단일화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단일화가 필요했던 이유
애초 민주당이 주도하는 야권연대는 민주당 스스로의 힘만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2011년 민주당 지지율은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였고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 유력 야권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의 지지율 보다 낮았다. 그러던 중 2011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통 큰 양보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열세는 올해 4.11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총선 전 대부분의 미디어와 여론조사 기관에서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당명을 개정한 새누리당은 복지담론을 일부 수용하면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이제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참신한 이미지와 폭넓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인식된다.
안철수 후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선 명분인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야권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새정치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를 줄곧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내 기득권 세력이라 불리는 지도부의 사퇴라는 가시적 성과도 만들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이후 후보 단일화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끝내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게 된다.
소통과 협치, 왜 안될까
단일화 이후에도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와 함께 약속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반드시 실천해 나가겠다”며 “민주화 세력과 미래 세력이 힘을 합치고, 나아가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통합의 선거 진용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새정치 공동선언은 이명박-박근혜의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구태정치와 단절하고자 하는 모든 미래 지향적 세력이 연대해야할 근거가 된다.
새정치 공동선언은 △새로운 국정운영,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안들은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뿐더러 정치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선언문이 제안하는 새로운 국정운영이란 여야정 국정협의회 상설화, 노사정 협약 등 다양한 사회적 협의 구조 등을 통해 협치의 시대를 열자는 내용이다. 소통과 협의를 위해 애쓰겠다는 상식적인 말이다.
많은 국민들이 서로 헐뜯고 싸움만 하는 국회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서 협치라는 말은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국회가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 핵심 이유가 대통령과 의원들의 소통의지 부족은 아니다. 여야 모두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큰 틀에서 정책적인 차별성이 사라진 것이 그 원인이다. 여야 공히 민생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비생산적인 폭로전과 꼬투리잡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핵심 원인은 소통 부족이 아니라 무능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사정 협의 역시 마찬가지다. IMF 이후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 막대한 정부지원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원하청 구조 속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받아왔다. 또 최근 창조컨설팅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동조합 활동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된다며 공격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 협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노사정 협의란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 대통령
둘째, 새정치 공동선언은 국무위원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 국무총리의 권한 보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및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국회의원 연금제도 폐지,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및 지역구 의원정수 조정 등 정치혁신을 주장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막대한 권력을 분산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국회의원 의원정수 문제였다.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다가, 문재인 후보와의 조율을 거쳐 최종 선언문에는 “의원정수 조정”이라고 표현되었다. 안철수 후보가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반정치 정서를 자신에 대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살펴본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 및 책임총리제부터 살펴보자. 한국의 대통령은 정부 영역은 물론이고, 공기업, 금융기관, 대기업 인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또 지역주의와 결합해 국책사업 등을 매개로 연고지역에 배타적으로 이익을 집중시켜왔다. 이러한 1인 정점의 권력구조, 승자독식 구조인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나눠갖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나 책임총리제 등은 말의 성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1998년 대선에서 호남지역 기반의 김대중과 충청지역 기반의 김종필이 연합하여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으나 권력분점은 이루어지진 않았다. 게다가 이처럼 책임총리제 자체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권력안배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치혁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뒷받침하는 검찰과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제어장치들 역시 실질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정부든 통치에 권력기관을 이용해왔고 비판세력을 제거해왔다. 검찰, 경찰, 정보기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감사원 등 대표적 권력기관과 방송사 및 언론사에서 기존 사람들을 퇴출하고 자파세력을 배치해 장악했다. 검찰의 권한 축소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문제가 정략적 갈등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한편,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관련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통된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단임으로 자기 임기 동안 권력을 남용하다가 무책임하게 물러나버리는 현상을 개선하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선거주기를 조정하기 위한 개헌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개헌 자체가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 정략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원포인트 개헌안이 낳은 정치권 내 분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선거 주기 조정을 위해서 자신의 임기를 축소하자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나설 가능성도 그리 높아보이진 않는다.
정당축소가 정당쇄신인가
셋째, 새정치 선언은 정당혁신을 위해 중앙당 권한과 기구 축소, 당의 분권화 및 정책정당화 추진, 강제적 당론 지양, 현행 국고보조금제 합리적 정비 및 축소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 안철수 후보는 중앙당의 폐지를 주장했었는데 이 역시 문구 상의 조정이 있었다. 어쨌든 선언문에는 기존 정당은 국민과 소통하는데 실패했으므로 정당의 기능과 권한을 대폭 축소하자는 방향이 대폭 반영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진 것은 정치와 정치인들이 민생문제 해결에 무능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정치이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도 없이 지역주의와 외부인사 수혈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온 한국 정당정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능한 정치인 집단의 규모가 크고 그들에게 많은 세금이 지급된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지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을 줄이고 지원을 축소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주장하면서 무능한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대중의 반정치 정서에 힘입어 자신의 지지를 끌어올리는 인민주의적 정치에 의존했다. 이러한 정치는 단기간에는 ‘그래! 변화가 필요해!’라는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대안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금세 실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개혁에 대한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을 반복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안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정치 전반이 개혁과 위기의 악순환을 만들어왔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크고 지역주의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 유동적 중도층이 늘어나자, 정당들은 이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변모해왔다. 즉, 정당들은 대중의 선호를 빠르게 파악하는 시스템을 당 내에 구축하고, 의원들은 파악된 여론을 바탕으로 미디어 정치를 펼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되면 당원들의 이념적 지향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스타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의 인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 선언이 주장하는 중앙당 축소 및 그 정책적 기능의 강화, 당론보다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는 정당정치가 지역적, 이념적 존립기반을 잃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러한 정당의 변모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된다.
반복되는 단일화 드라마
새정치 공동선언이라는 단일화의 내용도 문제지만, 단일화라는 형식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P 연합이 이루어졌고,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두 차례 대선에서 단일화한 후보가 모두 승리하면서, 당선가능성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가 당연하게 인식되곤 한다. 최근에도 작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박영선 단일화가 이루어진 바 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정치판에서 당선을 목표로 한 단일화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선거 때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는 그만큼 정당정치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자기 노선에 따라 일관된 활동을 수행하여 성과를 내고 이를 통해 검증받기보다는 오직 당선을 위해 뭉치고 그 내부에서 권력을 배분받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또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을 두고 단일화 협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양측 간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지난한 갈등이 지속된다. 이번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 측은 본선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를 주장했고, 이 문항을 50% 반영하기로 합의하기까지 며칠 간 갈등을 빚었다. 협상 막바지에는 나머지 50%에 대해 적합도 조사를 할 것인지, 지지도 조사를 할 것인지를 두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문재인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고 묻는 적합도 조사를 주장한 반면, 안철수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 지지도 조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비슷했는데, 노무현 측은 “적합”, 정몽준 측은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난항 끝에 양측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타협했다. 2011년 서울시 재보궐 선거 단일화 과정에서는 여론조사, 배심원단, 국민경선을 각각 몇 % 반영할지 문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동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지난한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있는 단일화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2002년 단일화가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해 그만큼 새롭고 획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화 이벤트가 반복될수록 그 흥행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이번 안철수 후보의 사퇴 역시 지루한 단일화 드라마를 계속 끌었다가는 지지층이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는 구태정치 대 새정치라는 대결구도를 유지하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동적 중도층을 붙잡고자 한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안철수 측의 지원사격이 필요한데, 안철수 후보의 사퇴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권력배분에 대해 합의한 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 캠프 재구성 및 향후 권력 배분과 관련된 많은 쟁점이 잠복해있다. 단일화 드라마는 싱겁게 끝났지만 또다시 지루한 후속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단일화가 필요했던 이유
애초 민주당이 주도하는 야권연대는 민주당 스스로의 힘만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2011년 민주당 지지율은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한나라당에 비해 열세였고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 유력 야권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의 지지율 보다 낮았다. 그러던 중 2011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통 큰 양보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열세는 올해 4.11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총선 전 대부분의 미디어와 여론조사 기관에서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당명을 개정한 새누리당은 복지담론을 일부 수용하면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이제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참신한 이미지와 폭넓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인식된다.
안철수 후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선 명분인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야권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새정치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를 줄곧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내 기득권 세력이라 불리는 지도부의 사퇴라는 가시적 성과도 만들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이후 후보 단일화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끝내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게 된다.
소통과 협치, 왜 안될까
단일화 이후에도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와 함께 약속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반드시 실천해 나가겠다”며 “민주화 세력과 미래 세력이 힘을 합치고, 나아가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통합의 선거 진용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새정치 공동선언은 이명박-박근혜의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구태정치와 단절하고자 하는 모든 미래 지향적 세력이 연대해야할 근거가 된다.
새정치 공동선언은 △새로운 국정운영,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안들은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뿐더러 정치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선언문이 제안하는 새로운 국정운영이란 여야정 국정협의회 상설화, 노사정 협약 등 다양한 사회적 협의 구조 등을 통해 협치의 시대를 열자는 내용이다. 소통과 협의를 위해 애쓰겠다는 상식적인 말이다.
많은 국민들이 서로 헐뜯고 싸움만 하는 국회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서 협치라는 말은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국회가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 핵심 이유가 대통령과 의원들의 소통의지 부족은 아니다. 여야 모두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큰 틀에서 정책적인 차별성이 사라진 것이 그 원인이다. 여야 공히 민생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비생산적인 폭로전과 꼬투리잡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핵심 원인은 소통 부족이 아니라 무능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사정 협의 역시 마찬가지다. IMF 이후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 막대한 정부지원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원하청 구조 속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받아왔다. 또 최근 창조컨설팅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동조합 활동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된다며 공격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 협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노사정 협의란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 대통령
둘째, 새정치 공동선언은 국무위원 인사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 국무총리의 권한 보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및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국회의원 연금제도 폐지,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및 지역구 의원정수 조정 등 정치혁신을 주장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막대한 권력을 분산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국회의원 의원정수 문제였다.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다가, 문재인 후보와의 조율을 거쳐 최종 선언문에는 “의원정수 조정”이라고 표현되었다. 안철수 후보가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반정치 정서를 자신에 대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살펴본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 및 책임총리제부터 살펴보자. 한국의 대통령은 정부 영역은 물론이고, 공기업, 금융기관, 대기업 인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또 지역주의와 결합해 국책사업 등을 매개로 연고지역에 배타적으로 이익을 집중시켜왔다. 이러한 1인 정점의 권력구조, 승자독식 구조인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나눠갖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이나 책임총리제 등은 말의 성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1998년 대선에서 호남지역 기반의 김대중과 충청지역 기반의 김종필이 연합하여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으나 권력분점은 이루어지진 않았다. 게다가 이처럼 책임총리제 자체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권력안배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치혁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뒷받침하는 검찰과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제어장치들 역시 실질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정부든 통치에 권력기관을 이용해왔고 비판세력을 제거해왔다. 검찰, 경찰, 정보기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감사원 등 대표적 권력기관과 방송사 및 언론사에서 기존 사람들을 퇴출하고 자파세력을 배치해 장악했다. 검찰의 권한 축소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문제가 정략적 갈등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한편,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관련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통된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단임으로 자기 임기 동안 권력을 남용하다가 무책임하게 물러나버리는 현상을 개선하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선거주기를 조정하기 위한 개헌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개헌 자체가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 정략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원포인트 개헌안이 낳은 정치권 내 분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선거 주기 조정을 위해서 자신의 임기를 축소하자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나설 가능성도 그리 높아보이진 않는다.
정당축소가 정당쇄신인가
셋째, 새정치 선언은 정당혁신을 위해 중앙당 권한과 기구 축소, 당의 분권화 및 정책정당화 추진, 강제적 당론 지양, 현행 국고보조금제 합리적 정비 및 축소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 안철수 후보는 중앙당의 폐지를 주장했었는데 이 역시 문구 상의 조정이 있었다. 어쨌든 선언문에는 기존 정당은 국민과 소통하는데 실패했으므로 정당의 기능과 권한을 대폭 축소하자는 방향이 대폭 반영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진 것은 정치와 정치인들이 민생문제 해결에 무능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정치이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도 없이 지역주의와 외부인사 수혈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온 한국 정당정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능한 정치인 집단의 규모가 크고 그들에게 많은 세금이 지급된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지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을 줄이고 지원을 축소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정치혁신, 정당혁신을 주장하면서 무능한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대중의 반정치 정서에 힘입어 자신의 지지를 끌어올리는 인민주의적 정치에 의존했다. 이러한 정치는 단기간에는 ‘그래! 변화가 필요해!’라는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대안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금세 실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개혁에 대한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을 반복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안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정치 전반이 개혁과 위기의 악순환을 만들어왔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크고 지역주의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 유동적 중도층이 늘어나자, 정당들은 이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변모해왔다. 즉, 정당들은 대중의 선호를 빠르게 파악하는 시스템을 당 내에 구축하고, 의원들은 파악된 여론을 바탕으로 미디어 정치를 펼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되면 당원들의 이념적 지향이 당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스타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의 인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 선언이 주장하는 중앙당 축소 및 그 정책적 기능의 강화, 당론보다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는 정당정치가 지역적, 이념적 존립기반을 잃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러한 정당의 변모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된다.
반복되는 단일화 드라마
새정치 공동선언이라는 단일화의 내용도 문제지만, 단일화라는 형식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P 연합이 이루어졌고,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두 차례 대선에서 단일화한 후보가 모두 승리하면서, 당선가능성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가 당연하게 인식되곤 한다. 최근에도 작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박영선 단일화가 이루어진 바 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정치판에서 당선을 목표로 한 단일화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매 선거 때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는 그만큼 정당정치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자기 노선에 따라 일관된 활동을 수행하여 성과를 내고 이를 통해 검증받기보다는 오직 당선을 위해 뭉치고 그 내부에서 권력을 배분받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또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권력을 두고 단일화 협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양측 간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지난한 갈등이 지속된다. 이번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 측은 본선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를 주장했고, 이 문항을 50% 반영하기로 합의하기까지 며칠 간 갈등을 빚었다. 협상 막바지에는 나머지 50%에 대해 적합도 조사를 할 것인지, 지지도 조사를 할 것인지를 두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문재인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고 묻는 적합도 조사를 주장한 반면, 안철수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 지지도 조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비슷했는데, 노무현 측은 “적합”, 정몽준 측은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난항 끝에 양측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타협했다. 2011년 서울시 재보궐 선거 단일화 과정에서는 여론조사, 배심원단, 국민경선을 각각 몇 % 반영할지 문제,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동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지난한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있는 단일화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2002년 단일화가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해 그만큼 새롭고 획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화 이벤트가 반복될수록 그 흥행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이번 안철수 후보의 사퇴 역시 지루한 단일화 드라마를 계속 끌었다가는 지지층이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는 구태정치 대 새정치라는 대결구도를 유지하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동적 중도층을 붙잡고자 한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안철수 측의 지원사격이 필요한데, 안철수 후보의 사퇴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권력배분에 대해 합의한 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 캠프 재구성 및 향후 권력 배분과 관련된 많은 쟁점이 잠복해있다. 단일화 드라마는 싱겁게 끝났지만 또다시 지루한 후속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