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9호 | 2013.04.17
‘한반도 비핵화,’ 말잔치 이상이 필요하다
고조되는 한반도 핵 위기와 사회운동의 대응 방향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두 달간 전개된 한미연합전력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적 충돌은 물론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실존함을 보여주었다. 3월 한미연합전력의 무력시위에 전략폭격기 B-52와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앤이 동원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을 가시화했다. 북한도 지난 12월 은하3호 로켓 발사와 2월 3차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소형화·경량화된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평가된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한미연합전력과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미사일 능력 제고를 통해 미국과 일괄타결을 도모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북한에 대한 선제 핵공격 옵션을 유지하면서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를 구사 중인 미국의 기본 대결 구도가 단시일 내 해소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오히려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비핵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고 절실한 현실적 요구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전쟁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기 엇갈린 해답을 갖고 있다.
현재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하 반전평화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최근 일련의 군사적 대결에 대해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이념·노선의 맹점과 정세인식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반전평화국민행동은 민주노총이 참여 조건으로 제시한 의견을 감안하여 ‘긴장 고조 관련국’에 북한을 포함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기조에 반영하였지만, 이것이 사업계획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반전평화국민행동 주요 참가단체들의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데 이어 최근 3월 말 4월 초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과 핵보유국 및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크다. 남한의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남한의 한미동맹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군사적 대결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올해가 평화협정 체결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이들의 정세인식에도 문제가 많다. 여기에는 ‘북미 군사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양측의 협상이 더욱 중요해지고 고위급회담으로 격상될 여지도 높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현재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해서 이를 미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에 성공적으로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는지 여부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에게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핵·미사일 능력을 이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 증강시키는 선택지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은 물론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다.
전략가들은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주저 없이 미국을 꼽는다. 단적으로 미국이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미사일방어(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번 국면을 기회로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등 군사전략적으로 파격적인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이번 국면을 계기로 탄력을 받고 있다. 또 그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도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말 무기수출금지 3원칙을 수정해서 무기의 공동개발 및 수출 제한을 완화함으로써 미국과의 차세대전투기 개발 등 군수물자의 공동생산과 수출판매가 용이하게 되었다. 2012년 6월 우주관련법 개정에서도 평화적 이용에 한정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군사목적의 우주개발을 허용해서, 위성을 이용한 미사일방어 시스템 구축 등 우주무기의 연구개발 및 수출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를 갖췄다. 아베 내각은 2013년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선언했고 3월에는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가하기로 발표했으며 4월 초에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했다.
남한은 어떤가? 남한의 전략가들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을 발효한 상태다. 또 미국의 방위공약을 기존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강화·명문화하는 한편, 신설되는 확장억지정책위원회를 정례화하여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진행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조만간 진행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동아시아 핵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현실의 요구다
우리는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는 점,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요인이라는 점을 거듭 주장했다.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는 수사가 아니라 현실의 절박한 요구다. 다시 한 번 주장하지만,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한미연합전력과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미사일 능력 제고를 통해 미국과 일괄타결을 도모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북한에 대한 선제 핵공격 옵션을 유지하면서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를 구사 중인 미국의 기본 대결 구도가 단시일 내 해소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오히려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비핵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고 절실한 현실적 요구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전쟁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기 엇갈린 해답을 갖고 있다.
현재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하 반전평화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최근 일련의 군사적 대결에 대해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이념·노선의 맹점과 정세인식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반전평화국민행동은 민주노총이 참여 조건으로 제시한 의견을 감안하여 ‘긴장 고조 관련국’에 북한을 포함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기조에 반영하였지만, 이것이 사업계획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반전평화국민행동 주요 참가단체들의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데 이어 최근 3월 말 4월 초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과 핵보유국 및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크다. 남한의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남한의 한미동맹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군사적 대결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올해가 평화협정 체결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이들의 정세인식에도 문제가 많다. 여기에는 ‘북미 군사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양측의 협상이 더욱 중요해지고 고위급회담으로 격상될 여지도 높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현재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해서 이를 미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에 성공적으로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는지 여부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에게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핵·미사일 능력을 이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 증강시키는 선택지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은 물론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다.
전략가들은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주저 없이 미국을 꼽는다. 단적으로 미국이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미사일방어(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번 국면을 기회로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등 군사전략적으로 파격적인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이번 국면을 계기로 탄력을 받고 있다. 또 그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도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말 무기수출금지 3원칙을 수정해서 무기의 공동개발 및 수출 제한을 완화함으로써 미국과의 차세대전투기 개발 등 군수물자의 공동생산과 수출판매가 용이하게 되었다. 2012년 6월 우주관련법 개정에서도 평화적 이용에 한정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군사목적의 우주개발을 허용해서, 위성을 이용한 미사일방어 시스템 구축 등 우주무기의 연구개발 및 수출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를 갖췄다. 아베 내각은 2013년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선언했고 3월에는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가하기로 발표했으며 4월 초에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했다.
남한은 어떤가? 남한의 전략가들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을 발효한 상태다. 또 미국의 방위공약을 기존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강화·명문화하는 한편, 신설되는 확장억지정책위원회를 정례화하여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진행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조만간 진행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동아시아 핵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현실의 요구다
우리는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는 점,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요인이라는 점을 거듭 주장했다.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는 수사가 아니라 현실의 절박한 요구다. 다시 한 번 주장하지만,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