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5호 | 2013.05.29
반복되는 민영화 시도, 변장술에 속을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추진에 제동을 걸자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추진했으되 통과시키지는 못했던 몇몇 민영화 사안들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에게로 넘어왔다. 영리병원 설립, 인천공항 민영화, 면세점 민영화, 수서발KTX민영화, 가스 직도입 허용 등이 그것이다. 당선 이후 상당히 신중한 행보를 보여 온 박근혜 정부는 최근 들어 공공부문 민영화를 위한 수순을 하나하나 밟으며 미뤄둔 ‘과제’들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뒤집어진 약속, 국민적 합의와 철도발전
지난 5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철도 산업 민간 검토 위원회’의 이름으로 현재 검토 중인 철도 산업 개편 계획을 언론에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하는 자회사가 수서발KTX의 운영권을 지니게 된다. 자회사의 지분은 코레일이 30% 미만으로 소유하고 나머지는 공공 연기금으로 채우는 안을 고려중이라 한다. 코레일의 지분이 30% 미만인 것은 공기업의 지분이 30% 이상일 경우 공공기관으로 지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안은 그 동안 검토해 왔던 ‘제 2공사 건설’이나 ‘민간으로의 지분 매각’에 관한 비판을 요리조리 피해가기 위한 미봉책 혹은 단계적 민영화 정책에 불과하다. 공공 연기금으로 채워져 있는 정부 기금은 언제든지 매각 가능하며,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수서발KTX뿐만 아니라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 등 기존 적자노선이나 신규로 건설하는 철도 노선들 역시 코레일과 분리된 자회사에 소속시키고 여기에는 민간 참여까지 가능하게 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모든 계획의 명분으로 들고 있는 것은 철도산업 독점 구조가 가져오는 폐해 극복을 위한 ‘경쟁 도입’이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허구적인 쟁점이다. 기본적으로 철도는 시민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재화이다.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가는 노선은 독과점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의 참여는 결국 ‘나눠먹기’가 된다. 철도는 건설비용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건설비용 부담이 없는 운영자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손쉽게 수익을 보장받는다. 예를 들어 보면, 건설비용이 19조에 매해 흑자가 3500억 선으로 예상되는 KTX의 운영권의 판매 금액은 현재 4500억 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민간사업자의 철도산업 참여에 재벌 특혜 논란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대체 경쟁은 어디에 도입되나? 새로운 사업자의 참여는 철도 산업 전반에서 임금 삭감, 인원 감축, 고용유연화를 통한 비용 절감 경쟁을 촉진할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사태에서처럼, 민영화 추진의 이면에는 반드시 ‘노동’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조건의 하락은 당장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 위험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속적인 인력 감축을 추진해 왔던 철도는 이로 인해 검수주기가 늘어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철도 정책 추진 이전에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을 먼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 돌아보면, 당시 언급했던 ‘국민적 합의’는 정부의 입맛에 맞게 구성된 ‘민간위원회’에서의 졸속·밀실 논의로 대체되었다. 민간위원회가 철저히 국토부의 거수기 역할을 위해 꾸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4명의 위원들이 ‘국토부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사퇴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 마련’이라는 과제는 철도산업을 갈기갈기 찢어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계획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자들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말을 하고 들으면서도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캠프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노동자서민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나라라는 사실이 다시금 분명해지는 시점이다.
에너지 재벌의 성장과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
가스, 전력 등의 에너지 분야는 90년대 중반 이후 민간 부문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직접 매각 방식의 민영화가 추진되지는 못했다. 거세게 일던 반대 여론 때문이다. 대신에 민간사업자들에 가스 직수입, 발전소 건설을 조금씩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공공 부문의 영향력을 상대화 해왔다. 현재 민간발전 4대 메이저 기업은 포스코, SK, GS, 엠피씨 등으로 이들은 전력 뿐 아니라 가스 직수입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내 천연가스 중 47%는 발전의 연료이기 때문에 발전회사와 가스 직수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현대와 삼성까지 천연가스 직수입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는 판이다.
정부가 민간사업자들에게 천연가스 직수입의 길을 열어준 것에 더해 물량의 교환, 판매까지를 보장해주는 법 개정이 6월 임시 국회에 상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10명의 국회의원이 지난 4월 9일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천연가스 직수입기업은 “수급 안정 및 일정사유 발생 시 직수입자간, 해외, 가스도매사업자에게 판매 가능”해진다. 개정 법안이 업자 간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는 하나, ‘일정 사유 발생 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실제로는 에너지 재벌에게 천연가스 시장을 좌지우지할 공급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민간자본은 철저히 수익의 논리에 맞추어 움직인다. 가스 가격이 싸면 대량으로 구입하지만, 비싸면 구입 양을 대폭 줄여 리스크를 모면한다. 반면 가스공사는 부족한 물량을 채워주고, 남는 물량을 처리해주며 국내 천연가스 전반의 수급안정 담당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2007년 국제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GS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GS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가스공사는 단기 스팟시장에서 비싼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당시 SK는 아예 3개월 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 버렸다. SK의 발전중단으로 인해 다른 발전소는 가동률을 높여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발전용 수요가 높아지자 도시가스 수요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천연가스 직수입제도 개정안은 가스 공급을 철저히 재벌지배에 귀속되게 한다. 천연가스의 공공적 정책운용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가스공사가 천연가스 수급 불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기계약보다 단기계약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스공사가 공급하는 가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수요가 민간 수입자 쪽으로 이탈하면 가스공사는 영업이익 유지를 위해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가스민영화가 추진되어 30여개 종합상사, 10여개 발전회사 및 도시가스회사가 가스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일본의 도시가스 요금은 평방미터당 2199원이다. 847원의 한국 도시가스 요금과 비교했을 때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치솟는 가스비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에 떨어야 하는 저소득층일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양상의 민영화 정책 추진에 맞서자
민영화 반대 운동이 성장하면서 정부는 점점 더 우회적, 단계적인 방식으로 공공부문에 민간사업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민간사업자의 가스 직수입을 허용해주었던 것, 외국인 학교, 영리병원 건설을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허용해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정권 초 한꺼번에 밀어붙였던 민영화 시도가 좌절된 이후에는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 등으로 법안 개정 없이 교묘히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선진화’, ‘경쟁체제 도입’과 같은 말장난이 시작된 것도 이 때이다.
박근혜 정부도 비슷한 전략을 택하고 있다. 분야별로 경쟁 도입, 위탁 운영, 규제 완화, 단계적 매각 등의 우회적인 방식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것이다. 이명박이 일으켰던 것과 같은 소란을 최대한 피하며 조용히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임무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철도, 가스뿐만 아니라 의료, 상수도, 공항, 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화 정책이 선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복잡해보일지라도 이들 사안의 본질은 정확히 같다. 증세 없는 복지재정 확대로 인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공적인 영역들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은 경쟁과 수익성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노동자 서민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109개 단체로 구성된 ‘민영화 반대 공동행동’은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를 집중투쟁주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공공운수노조를 포함한 공동행동의 단체들은 출근 선전전, 주·야간 선전전, 촛불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다. 민영화 저지 투쟁은 박근혜 정권과의 첫 싸움이다. 우리에게는 철도/가스/발전 노동조합의 공동 파업으로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계획에 제동을 걸었던 2002년의 기억, 몇 달간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어 집권 초의 이명박 정부를 식물 정부로 전락시켰던 2008년의 기억이 있다. 우회적, 기만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 정책들에 맞서는 투쟁은 분야별로 고립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투쟁의 논리와 계기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중운동 전체가 이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
뒤집어진 약속, 국민적 합의와 철도발전
지난 5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철도 산업 민간 검토 위원회’의 이름으로 현재 검토 중인 철도 산업 개편 계획을 언론에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하는 자회사가 수서발KTX의 운영권을 지니게 된다. 자회사의 지분은 코레일이 30% 미만으로 소유하고 나머지는 공공 연기금으로 채우는 안을 고려중이라 한다. 코레일의 지분이 30% 미만인 것은 공기업의 지분이 30% 이상일 경우 공공기관으로 지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안은 그 동안 검토해 왔던 ‘제 2공사 건설’이나 ‘민간으로의 지분 매각’에 관한 비판을 요리조리 피해가기 위한 미봉책 혹은 단계적 민영화 정책에 불과하다. 공공 연기금으로 채워져 있는 정부 기금은 언제든지 매각 가능하며,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수서발KTX뿐만 아니라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 등 기존 적자노선이나 신규로 건설하는 철도 노선들 역시 코레일과 분리된 자회사에 소속시키고 여기에는 민간 참여까지 가능하게 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모든 계획의 명분으로 들고 있는 것은 철도산업 독점 구조가 가져오는 폐해 극복을 위한 ‘경쟁 도입’이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허구적인 쟁점이다. 기본적으로 철도는 시민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재화이다.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가는 노선은 독과점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의 참여는 결국 ‘나눠먹기’가 된다. 철도는 건설비용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건설비용 부담이 없는 운영자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손쉽게 수익을 보장받는다. 예를 들어 보면, 건설비용이 19조에 매해 흑자가 3500억 선으로 예상되는 KTX의 운영권의 판매 금액은 현재 4500억 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민간사업자의 철도산업 참여에 재벌 특혜 논란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대체 경쟁은 어디에 도입되나? 새로운 사업자의 참여는 철도 산업 전반에서 임금 삭감, 인원 감축, 고용유연화를 통한 비용 절감 경쟁을 촉진할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사태에서처럼, 민영화 추진의 이면에는 반드시 ‘노동’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조건의 하락은 당장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 위험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속적인 인력 감축을 추진해 왔던 철도는 이로 인해 검수주기가 늘어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철도 정책 추진 이전에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을 먼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 돌아보면, 당시 언급했던 ‘국민적 합의’는 정부의 입맛에 맞게 구성된 ‘민간위원회’에서의 졸속·밀실 논의로 대체되었다. 민간위원회가 철저히 국토부의 거수기 역할을 위해 꾸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4명의 위원들이 ‘국토부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사퇴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 마련’이라는 과제는 철도산업을 갈기갈기 찢어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계획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자들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말을 하고 들으면서도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캠프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노동자서민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나라라는 사실이 다시금 분명해지는 시점이다.
에너지 재벌의 성장과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
가스, 전력 등의 에너지 분야는 90년대 중반 이후 민간 부문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직접 매각 방식의 민영화가 추진되지는 못했다. 거세게 일던 반대 여론 때문이다. 대신에 민간사업자들에 가스 직수입, 발전소 건설을 조금씩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공공 부문의 영향력을 상대화 해왔다. 현재 민간발전 4대 메이저 기업은 포스코, SK, GS, 엠피씨 등으로 이들은 전력 뿐 아니라 가스 직수입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내 천연가스 중 47%는 발전의 연료이기 때문에 발전회사와 가스 직수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현대와 삼성까지 천연가스 직수입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는 판이다.
정부가 민간사업자들에게 천연가스 직수입의 길을 열어준 것에 더해 물량의 교환, 판매까지를 보장해주는 법 개정이 6월 임시 국회에 상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10명의 국회의원이 지난 4월 9일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천연가스 직수입기업은 “수급 안정 및 일정사유 발생 시 직수입자간, 해외, 가스도매사업자에게 판매 가능”해진다. 개정 법안이 업자 간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는 하나, ‘일정 사유 발생 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실제로는 에너지 재벌에게 천연가스 시장을 좌지우지할 공급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민간자본은 철저히 수익의 논리에 맞추어 움직인다. 가스 가격이 싸면 대량으로 구입하지만, 비싸면 구입 양을 대폭 줄여 리스크를 모면한다. 반면 가스공사는 부족한 물량을 채워주고, 남는 물량을 처리해주며 국내 천연가스 전반의 수급안정 담당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2007년 국제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GS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GS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가스공사는 단기 스팟시장에서 비싼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당시 SK는 아예 3개월 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 버렸다. SK의 발전중단으로 인해 다른 발전소는 가동률을 높여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발전용 수요가 높아지자 도시가스 수요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천연가스 직수입제도 개정안은 가스 공급을 철저히 재벌지배에 귀속되게 한다. 천연가스의 공공적 정책운용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가스공사가 천연가스 수급 불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기계약보다 단기계약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스공사가 공급하는 가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수요가 민간 수입자 쪽으로 이탈하면 가스공사는 영업이익 유지를 위해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가스민영화가 추진되어 30여개 종합상사, 10여개 발전회사 및 도시가스회사가 가스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일본의 도시가스 요금은 평방미터당 2199원이다. 847원의 한국 도시가스 요금과 비교했을 때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치솟는 가스비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에 떨어야 하는 저소득층일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양상의 민영화 정책 추진에 맞서자
민영화 반대 운동이 성장하면서 정부는 점점 더 우회적, 단계적인 방식으로 공공부문에 민간사업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민간사업자의 가스 직수입을 허용해주었던 것, 외국인 학교, 영리병원 건설을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허용해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정권 초 한꺼번에 밀어붙였던 민영화 시도가 좌절된 이후에는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 등으로 법안 개정 없이 교묘히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선진화’, ‘경쟁체제 도입’과 같은 말장난이 시작된 것도 이 때이다.
박근혜 정부도 비슷한 전략을 택하고 있다. 분야별로 경쟁 도입, 위탁 운영, 규제 완화, 단계적 매각 등의 우회적인 방식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것이다. 이명박이 일으켰던 것과 같은 소란을 최대한 피하며 조용히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임무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철도, 가스뿐만 아니라 의료, 상수도, 공항, 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화 정책이 선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복잡해보일지라도 이들 사안의 본질은 정확히 같다. 증세 없는 복지재정 확대로 인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공적인 영역들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은 경쟁과 수익성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노동자 서민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109개 단체로 구성된 ‘민영화 반대 공동행동’은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를 집중투쟁주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공공운수노조를 포함한 공동행동의 단체들은 출근 선전전, 주·야간 선전전, 촛불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다. 민영화 저지 투쟁은 박근혜 정권과의 첫 싸움이다. 우리에게는 철도/가스/발전 노동조합의 공동 파업으로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계획에 제동을 걸었던 2002년의 기억, 몇 달간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어 집권 초의 이명박 정부를 식물 정부로 전락시켰던 2008년의 기억이 있다. 우회적, 기만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 정책들에 맞서는 투쟁은 분야별로 고립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투쟁의 논리와 계기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중운동 전체가 이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