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이 아니라 빈곤을 철폐하자!
1017 빈곤철폐의 날에 부쳐
2013년 한국은 노인 자살률 10만 명당 평균 79.7명, 노인빈곤율 45.1%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또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전체국민의 상대빈곤율은 2010년 18.1%로, 국민 6명 중 1명은 빈곤한 상태이다. 암 발병 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16%에 불과하지만 치료비를 걱정하는 사람은 31%에 달한다. 죽음의 고통보다 가난의 고통을 더 염려하며 살아야하는 현실이 UN이 정한 빈곤철폐의 날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은OECD평균의 1/4에 불과한 GDP 대비1.7% 수준으로 꼴찌인 멕시코의 바로 뒤를 잇고 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는 140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 사각지대는 400만 명이 넘는다.
파기된 복지 공약
확산되는 빈곤과 불평등, 삶의 불안은 지난 해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의 유례없는 복지 경쟁으로 나타났다. 개발과 성장, 뉴타운만 걸고 나오면 비든 빗자루든 당선된다던 옛날과는 다른 세상이 온 듯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이 모든 공약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손에 맡겨지고, 복지공약은 나라사정상 어렵다는 말로 후퇴와 파기만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파기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 국면을 무마하려고 한다. 심지어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인생은 잘못 산 인생’이라며 가난에 처한 국민을 비하하고 낙인찍는 언사를 내뱉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비단 기초노령연금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복지공약 대부분이 ‘공수표’가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4대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은 가장 부담이 큰 3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해 그 실효성이 낮아졌다. 의료본인부담 상한 50만원은 최하계층 의료비 상한 120만원으로 변경되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폐지 공약은 파기되었다.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교실, 고등학교 무상교육, 학급당 학생 수 개선 등의 예산도 전무하다. 장애인 1대 공약이었던 장애등급제 폐지 역시 그 실현가능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의 개악과 빈곤층 복지 후퇴
박근혜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선을 통해 수급권자를 확대하고 사각지대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기초생활보장법은 도리어 개악될 전망이다. 그나마 부족한 수급권을 갈가리 쪼개 혜택의 수준을 낮추고 숫자만을 일부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사회안전망’이자 ‘전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법의 취지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고, 보장의 수준과 선정기준의 수준은 민주적인 절차 없이 각 부처 장관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 될 것이다. 이들의 입맛대로 잘리고 깎이는 빈곤층 지원은 앞으로도 축소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법 개정 취지는 크게 ‘탈수급률 진작’과 ‘근로연계강화’, ‘예산효율화’로 볼 수 있다. 현재 ‘탈수급하더라도 탈빈곤 할 수 없는’ 현실이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고, 수급자들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니 이를 해결하자는 식이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의 강화는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를 공격하고,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나 방종의 결과로 돌리는데 일조한다.
이미 이명박 정권 3년차부터 기초생활수급자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빈곤층이 줄어들어 수급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심사강화를 통해 이뤄낸 결과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정수급자를 적발’했고 예산을 ‘효율화’했다고 밝혔지만 기초생활수급권 탈락자의 연이은 죽음은 현실이 이와 다르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자꾸만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
2012년 수급자의 사망률은 전체 사망률에 비해 5배 높다. 그 중에서도 30대 수급자의 사망률은 11배 높고, 40대는 8배, 50대는 7배 높다. 무미건조한 숫자 속에 담겨 있는 끔찍한 삶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난 달 부산의 한 50대 남성 수급자가 번개탄을 피워둔 채 렌트카에서 자살했다. 그는 신장질환을 앓고 있어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으면 살 수 없는 환자였다. 이혼 후 요양병원에서 홀로 살던 그는 딸이 취직했기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매달 100만원의 병원비를 의지할 수 없었던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모든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왜 부양의무자기준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그 가족에게 떠맡기려 하는가? 국가는 왜 가난한 이들의 가족으로 하여금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가?
한국사회 빈곤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가난에 처하게 된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낮은 임금, 잦은 해고 등 불안정노동과 불충분한 사회안전망이 빈곤의 공통된 원인이다. 즉,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여윳돈 이상의 위기에 직면한다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전 국민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극소수를 제외한 이들이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이 되어, 집을 빼앗긴 철거민이 되어,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가 되어 ‘불법’ 인간으로 몰리고 있다. 죽음보다 가난이 무서워 죽음을 택한 이들이 하루 42.6명의 자살인구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가난을 만드는 모든 원인에 맞서 투쟁하면서, 커져가는 빈부격차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빈곤층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사회에서는 결국 아무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 이번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에 반빈곤 운동진영은 가난 때문에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빈곤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빈곤 장례식>을 벌인다. 빈민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멈추고 가난한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
그러나 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은OECD평균의 1/4에 불과한 GDP 대비1.7% 수준으로 꼴찌인 멕시코의 바로 뒤를 잇고 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는 140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 사각지대는 400만 명이 넘는다.
파기된 복지 공약
확산되는 빈곤과 불평등, 삶의 불안은 지난 해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의 유례없는 복지 경쟁으로 나타났다. 개발과 성장, 뉴타운만 걸고 나오면 비든 빗자루든 당선된다던 옛날과는 다른 세상이 온 듯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이 모든 공약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손에 맡겨지고, 복지공약은 나라사정상 어렵다는 말로 후퇴와 파기만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파기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 국면을 무마하려고 한다. 심지어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인생은 잘못 산 인생’이라며 가난에 처한 국민을 비하하고 낙인찍는 언사를 내뱉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비단 기초노령연금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복지공약 대부분이 ‘공수표’가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4대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은 가장 부담이 큰 3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해 그 실효성이 낮아졌다. 의료본인부담 상한 50만원은 최하계층 의료비 상한 120만원으로 변경되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폐지 공약은 파기되었다.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교실, 고등학교 무상교육, 학급당 학생 수 개선 등의 예산도 전무하다. 장애인 1대 공약이었던 장애등급제 폐지 역시 그 실현가능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의 개악과 빈곤층 복지 후퇴
박근혜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선을 통해 수급권자를 확대하고 사각지대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기초생활보장법은 도리어 개악될 전망이다. 그나마 부족한 수급권을 갈가리 쪼개 혜택의 수준을 낮추고 숫자만을 일부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사회안전망’이자 ‘전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법의 취지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고, 보장의 수준과 선정기준의 수준은 민주적인 절차 없이 각 부처 장관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 될 것이다. 이들의 입맛대로 잘리고 깎이는 빈곤층 지원은 앞으로도 축소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법 개정 취지는 크게 ‘탈수급률 진작’과 ‘근로연계강화’, ‘예산효율화’로 볼 수 있다. 현재 ‘탈수급하더라도 탈빈곤 할 수 없는’ 현실이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고, 수급자들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니 이를 해결하자는 식이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의 강화는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를 공격하고,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나 방종의 결과로 돌리는데 일조한다.
이미 이명박 정권 3년차부터 기초생활수급자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빈곤층이 줄어들어 수급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심사강화를 통해 이뤄낸 결과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정수급자를 적발’했고 예산을 ‘효율화’했다고 밝혔지만 기초생활수급권 탈락자의 연이은 죽음은 현실이 이와 다르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자꾸만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
2012년 수급자의 사망률은 전체 사망률에 비해 5배 높다. 그 중에서도 30대 수급자의 사망률은 11배 높고, 40대는 8배, 50대는 7배 높다. 무미건조한 숫자 속에 담겨 있는 끔찍한 삶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난 달 부산의 한 50대 남성 수급자가 번개탄을 피워둔 채 렌트카에서 자살했다. 그는 신장질환을 앓고 있어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으면 살 수 없는 환자였다. 이혼 후 요양병원에서 홀로 살던 그는 딸이 취직했기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매달 100만원의 병원비를 의지할 수 없었던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모든 국민의 기초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왜 부양의무자기준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그 가족에게 떠맡기려 하는가? 국가는 왜 가난한 이들의 가족으로 하여금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가?
한국사회 빈곤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가난에 처하게 된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낮은 임금, 잦은 해고 등 불안정노동과 불충분한 사회안전망이 빈곤의 공통된 원인이다. 즉,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여윳돈 이상의 위기에 직면한다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전 국민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극소수를 제외한 이들이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이 되어, 집을 빼앗긴 철거민이 되어,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가 되어 ‘불법’ 인간으로 몰리고 있다. 죽음보다 가난이 무서워 죽음을 택한 이들이 하루 42.6명의 자살인구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가난을 만드는 모든 원인에 맞서 투쟁하면서, 커져가는 빈부격차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빈곤층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사회에서는 결국 아무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 이번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에 반빈곤 운동진영은 가난 때문에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빈곤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빈곤 장례식>을 벌인다. 빈민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멈추고 가난한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