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65호 | 2014.04.18

사회운동에 대한 TPP의 반격

오바마 방한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정책선전위원회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TPP에 관심을 표명한 한국 정부는 TPP에 참여한 12개국과 1차 예비양자협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현재 2차 예비양자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TPP 참여 입장료

그 동안 미국은 한국의 TPP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현 시점에서’ 한국의 참여는 어렵다는 것이다.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한국은 TPP 가입에 앞서 한미 FTA 이행과 관련한 우려 사항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며 △원산지 검증 완화 △금융회사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 공유 △자동차분야의 비관세 장벽 완화 △유기농 제품의 인증시스템 등을 지목한 바 있다. TPP에 참여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무역․투자 자유화라는 입장료(선결조건)를 내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의 일환으로 4월 25일부터 1박 2일간 한국을 방문한다.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TPP 협상 조기타결에 가속도를 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방한 시 박근혜 대통령이 TPP 참여에 대한 일정한 승인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일종의 입장료 협상이 이뤄지는 셈이다. 정부는 4월 말까지 TPP 2차 예비양자협의를 마무리한다는 협상 스케줄을 정해놓고 있는데, 여기에도 오바마 방한 시점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철저한 비밀주의

그런데 TPP 협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의제를 다루는지, 그것이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다. 한미 FTA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추구한다는 TPP 협상은 너무나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
그 이유는 TPP 협상이 철저한 비밀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TPP 협상은 참여국 간 협상 텍스트, 각 국별 제안서 등 협상 관련 정보의 외부 공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처럼 아직 TPP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TPP 참여국 시민들에게도 협상 내용이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협상 내용이 부분적으로 알려지고 있고, 그나마 지난 해 위키리크스에 의해 협상 내용이 일부 폭로되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의 초국적기업 로비스트들은 자문단 명목으로 협정문에 접근할 수 있다.
비밀주의는 자유무역협정에 개입하려는 사회운동에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TPP에 참여하고 있는 12개국 노동조합들은 TPP 협정문의 노동 장(Chapter)에 개입함으로써 국제적인 노동기준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비밀주의의 장벽에 부딪혔다. 결국 지난 12월 국제노총은 “TPP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의 노력은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 여러 가맹조직들은 이미 TPP에 반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최종 문안이 나올 때까지 노동조합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며, 그 후 의회에 비준 거부를 요청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제 자유무역협정은 시민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정부 관료와 초국적 자본의 대리인들 간의 조용한 협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1999년 시애틀, 2003년 칸쿤, 2005년 홍콩 등으로 이어진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 나아가 양자간 FTA에 저항해 온 전 세계 시민들의 투쟁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다. 철저한 비밀주의를 통해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이 촉발될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TPP의 반격

TPP는 내용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이 확산되면서 각국 사회운동들은 자유무역협정의 한계 속에서도 시민들의 권리를 지켜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TPP 협상은 이러한 시도를 무력화하고자 한다.
대표적 사례로 지식재산권 문제를 살펴보자. 지식재산권 문제는 특히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과 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이 크게 충돌하는 쟁점이다. 그 동안 각국 사회운동은 지식재산권에 관한 국제규범인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체제 하에서도 의약품 접근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해왔다. 2013년 인도 법원이 인도특허법을 근거로 노바티스사의 항암제 ‘글리벡’에 특허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의 의약품에 변화를 주었더라도 임상적 효과가 상당히 나아졌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특허를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동안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기존 약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이에 계속 특허를 걸어 독점기간을 연장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또한 하나의 약에 하나의 특허만 거는 것이 아니라 염, 이성질체, 용량, 용법, 용도 등에 각각 특허를 건다. 각 특허기간이 20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막고 독점기간을 계속 늘릴 수 있다. 인도의 사례는 특허를 통한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고 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인도특허법 사례가 알려지면서 아르헨티나, 필리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인도특허법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런데 TPP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제시한 안은 기존 약이 새로운 증상이나 질병에 적용될 수 있거나, 제형, 용량, 조성을 바꾸었을 경우에도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여기에 더해 “효과의 향상이 없을지라도” 특허를 주도록 확실히 못을 박고 있다. TPP 협상이 사회운동의 대안적 시도가 확산되는 것을 조속히 차단하고, 자본의 이윤추구 기회를 완전히 보장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TPP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힘을 모아내자

미국에게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농업, 서비스, 금융 부문의 개방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금융세계화를 지속하는 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미국 의회는 환율조작, 국유기업이나 국가후원기업의 경쟁중립성 등의 문제도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TPP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항해왔던 전 세계 사회운동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 노동권, 건강 등 시민들의 보편적 권리를 공격한다. 동시에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 증대를 동반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순방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한일 간 민족갈등을 완화하여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도는 미중 간 군사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역내 국지전의 가능성을 더욱 고조시켜 평화를 위협한다.
평화와 시민들의 보편적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이 강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오바마 방한을 계기로 TPP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힘을 모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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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TPP 오바마 방한 초국적 제약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