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7호 | 2014.05.14
무너진 안전 시스템,
노동운동이 대안을 만들자
추모 방식, 바뀌고 있다
시민들의 추모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제 슬픔과 미안함을 넘어, 또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상을 바꿔야만 한다는 행동이 되고 있다. 5월 8일엔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했고, 그 다음 날엔 안산의 고등학생들이 친구들을 잊지 말아 달라며 촛불집회를 열었으며, 5월 10일엔 2만이 넘는 시민들이 안산과 서울에 모였다.
시민들의 요구는 우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우리가 한 달 넘게 보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는 사고 원인부터 사고 후 구조과정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투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정권은 선원들과 유병언 회장 일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부실대응과 미심쩍은 행동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살릴 수도 있었던 승객들을 정부가 결국 죽게 만든 것이 아닌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한편, “이게 국가냐”라는 탄식처럼 시민들의 분노는 이미 정권에 대한 규탄을 넘어서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도 여러 대형 안전사고가 있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이어서 그랬다고 여겼다. 하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글로벌 기업이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향해 가는 지금 예전보다 더 참혹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이건 국가가 덜 발전한 탓이 아니라 잘못 발전한 탓이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적당한 생색내기식 제도 개선이 아니라 국가 발전 방향의 근본적 전환이다.
노동운동이 앞장서야
시민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 무능한 국가, 억압된 사회운동, 그리고 무책임한 정권이 참사의 구조적 배경이다. 수익을 위해 안전을 무시해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자본이 사고를 냈다. 시민의 안전은 뒷전이고 기업 지원에는 열과 성을 다해온 무능한 국가 시스템이 사고를 참사로 키웠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억압되어온 사회운동은 사회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견제자 역할을 하지 못했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가능했던 구조 활동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사태를 최악으로 몰았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또다른 참사를 막기 위한 중장기적 과제를 제시하는 대안적 목소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제 최전선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워온 노동운동이 앞장서야 한다. 민주노총만큼 참사의 진실,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가 어떤 안전문제를 만들어 냈는지 잘 아는 집단은 한국에 없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안전 점검부터 실제 운영까지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해 온 안전 전문가다. 건설노조의 조합원들은 건축물 안전에 대해,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공장 안팎 안전에 대해, 민간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은 상업시설 안전에 대해,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정부 안전 규제 실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과 무능한 국가 시스템, 그리고 정부와 자본의 노조 탄압이 어떻게 위험을 만들어 내는지 민주노총 조합원만큼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세월호 참사는 어떤 점에서 노동자들이 매일 매일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고의 결집체다.
현장에서부터 대안을 만들자
몇 번의 집회로 노동운동의 실천을 제한하지는 말자. 박근혜 규탄의 목소리를 거리에서 모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운동이 스스로 시민 안전에 관한 대안이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 총연맹, 산별, 지역을 거쳐 지침을 통해 하향식으로 동원되는 집회 몇 번으로 변할 것은 별로 없다. 우리 민주노조가 산업안전에 관한 기준들을 현장에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떠올려보자. 쟁대위 지침으로 현장의 질서를 만들었었나? 전문가가 만든 기준을 가져와 관리자를 설득했나? 아니다. 스스로 일하며 현장에서 깨달은 안전 기준을 관리자들과 머리 터져가며 싸워 현장에 정착시켜 온 것이 노동안전 개선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정부가 몇 가지 부처를 더 만들고, 급조한 법률 몇 개를 가져다 놓는다고 변할 건 없다.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 시민안전에 관한 대중운동을 현장에서부터 조직해보자. 민주노총 전 조합원이 자신의 현장과 생산품을 대상으로 안전 문제를 일제 점검하고, 현장에서부터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안전사고 노동자 조사위원회’와 같은 특별 기구를 만들어 이 대안들을 모으고, 대국민 안전 보고서를 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매년 만드는 사안별 투쟁본부나 산별노조, 연맹들이 필요에 따라 조직하는 대책기구 등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다. 수개월이 걸린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세상을 진짜로 바꾸기 위해 우리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실천이고, 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대중운동이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반박근혜 투쟁과 함께 민주노조 운동은 생산의 현장에서 시민 안전에 관한 대안을 만들자. 이것이 세월호 참사를 민주노조 운동이 가슴에 새기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