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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14호 | 200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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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붕괴와 미국의 중동지배

미 아프칸 침공 8주차, 원한과 갈등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아프칸

편집팀


약 2주전, 북부동맹에 의해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밀려나자마자, 국내외의 모든 방송과 신문들은 일제히 "탈레반의 이슬람 원리주의적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아프간 민중들의 모습"을 내보냈다.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히잡(혹은 차도르)를 벗어던진 여성들의 웃는 표정 등등.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로 악랄한 군주의 지배로부터 힘없는 민중들을 구해내는 정의의 기사처럼 북부동맹을 묘사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이러한 환호는 단지 언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공습을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서도 뚜렷한 전과가 없어 고심하던 미국은 카불 함락 소식에 마찬가지의 축배를 들었다. 탈레반을 축출한 지금, 이제 미국은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제거하는 것만 남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나서 이번 공습을 반테러전쟁으로 스스로 묘사했듯이 아프간에 진정한 안정적인 정부수립과 아프간 인민들의 인권 및 생활수준의 향상을 돕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치 영화가 이렇게 끝나면 재미없다는 듯) 며칠전 부시 미대통령 왈,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감안하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며 […] 빈 라덴을 체포하는데 3년에서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연합뉴스 11/26) 한편, 부시는 북한과 이라크에게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즉각 중단할 것, 그리고 만약 이것을 계속할 경우 북한과 이라크 역시도 테러조직이나 다름없다"라면서 이번 전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기간과 대상/범위를) 확전할 뜻을 계속 내비치고 있다.
아프간 전역을 자신의 영향력하에 두게 된 미국이, 갑자기 이런 황당한 소리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갑자기 빈 라덴을 잡는데 시간이 그렇게나 오래걸린다는 것일까? 왜 보복전쟁을 대테러전쟁으로, 아니 '불량국가'들에 대한 전쟁으로 확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인가? 혹시 이번 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세계적인 '공안정국'을 '3년에서 10년정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무언가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포스트-아프간' 구상: 미국의 '공안정국'의 항구화 시도

아프간의 지형적 특수성과 정보의 부족함이라는 조건을 고려해 보더라도, 부시 대통령이 빈 라덴의 체포를 '일부러' 미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빈 라덴이 당장 잡히거나 제거된다면 사실 미국이 지난 9·11 테러사건 이후 취해온 행보들의 도덕적·정치적 근거들 역시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이 지역에 (정치적·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들이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동안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숨죽이고 있던 영국 및 유럽국가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랍국가들의 숨통이 트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즉, 미뤄왔던 불만들이 전부 미국으로 향할 수 있고, 그 정치적 부담은 전부 미국이 져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로서는 어찌되었든 빈 라덴의 체포/제거를 연기하고, (차라리) 보다 적극적으로 현재의 '공안정국'을 '3년에서 10년' 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국면을 장기간 연장함을 통해, 즉 '이번 기회에' 문제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중동지역에서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물론 언제나 그 명분은 주로 테러조직의 섬멸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응징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은 간간히 이번 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흘리거나 내비쳐왔는데,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확전의 대상이 이라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미국내 각종 이데올로그들은 걸프전 10년 평가에 들어갔고, 당시 왜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다).
즉, 이라크가 테러지원국이라는 점을 다시금 부각시킴을 통해, 이라크의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동시에 침묵속에 갈등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명시적으로는 이라크를 제외한 나머지 아랍국가들을 존중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하면서 동시에 암묵적인 경고("까불면 다친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아랍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는 미국에 대한 입장을 두고 내부분열하고 있고, 이는 더욱 미국으로 하여금 어떤 '일벌백계'가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실제로 사우디에 대한 공습론 마져도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들을 실제 공습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통해 당장 중동에서의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재구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즉, 실제로 확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인데, 전쟁을 확전하는 것에 대한 미국내에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과 전쟁수행에서 오는 여러 가지 부담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미국은 확전이라는 카드를 통해 개전 초기와 마찬가지로 아랍국가들이 계속 그리고 항상 침묵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하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당장, 아랍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차별 테러라는 사적 폭력을 제외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미국내 아랍인들에 대한 무영장 체포와 불법구금이 3천여건에 달하였다(이에 대한 항의와 반발이 빗발치자, 미국 정부의 반응은 그저 '지금은 위기상황이다'라는 것, 그 과정에서 아랍인 피의자들에 대해 일어난 일이니(기타 미국인들은) 이해해 달라는 것(!)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틈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떳떳이 자행하고 있다(일례로, 며칠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였고, 또다시 어린 소년이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하지만 아랍국가들과 PLO는 그저 침묵할 뿐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글을 편집하는 도중에 미국의 이라크 공습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정기적인 순찰기들에 대한 이라크의 공격에 대한 방어의 차원이었다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은 애써 이것이 확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이 단순한 방어의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 미국의 경고와 협박이 그저 말뿐이 아닐 것이다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파이프라인'의 정치학: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아프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

한편, 미국이 조성하고 있는 공안정국은 아프간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취자원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다른 주변국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현재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국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형성해 놓겠다는 미국의 의도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 아프간 전쟁의 직접적인 이유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들기에 무리가 따르지만, 이 아프간 및 그 주변지역에 대한 이후 장기적인 미국의 정책을 이해하는 것에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즉, 이 지역의 천연자원에 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서 거의 영구불변의 구성요소가 될 것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현재 이 지역 원유의 51%인 1,950만 배럴을 매일 수입하고 있다. 미 에너지 정보국은 2020년에 가면 미국은 원유의 64%인 2,580만 배럴을 이 지역에서 매일 수입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카스피해 지역의 원유 보유량은 세계에서 세번째(서부 시베리아와 페르시아만 다음으로)이고, 그리고 앞으로 15년에서 20년 안에는 페르시아 걸프만의 석유를 앞지를 만큼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확실하게 이 지역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을 가질 것이다. 만약 미국의 구상이 성공한다면, 발틱 해와 동유럽을 포함하는 서쪽은 나토에 편입하고, 파이프 라인이 가로지나는 아프간에 미군이 주둔하고, 카스피해를 원점으로 삼아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이란을 밀어내고 서쪽으로는 유럽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구상은 최소한 아프간에(미국의 말을 잘 듣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게는) 오히려 매우 '안정적인' 정권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일례로, 미국의 한 기업은 탈레반과 협상해 1997년 컨소시엄 계약을 맺었는데, 약 20억 달러 규모의 컨소시엄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까지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 라인 부설 공사였다. 그러나 이 미국기업은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컨소시엄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미국내 경제저널들의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상반된 단어들로 도배되었었다. 즉, 이 지역의 천연자원은 "엄청나며", "거대하고",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전혀 개발되지 않았으며", "고립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하다."


지속되는 아프간의 불안정성과 북부동맹의 통치불가능성

따라서, 미국의 '포스트 탈레반 구상'의 핵심은 바로 정권의 안정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종족들과 정파들로 분열되어 있는 아프간의 현재 정치지형에서 정권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이후 구성될 정부가 어떻한 양상을 가질 것인가, 즉 어떤 종족과 정파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컨대, 현재 카불을 점령하고 벌써 통치에 들어간 북부동맹이 어찌되었든 간에 그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프간의 그동안의 역사와 정치지형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안정적인 정권을 구성한다는 것이 가능할까라, 그리고 과연 북부동맹이 아프간을 통치함에 있어서 (탈레반에 비해) 정통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즉, 미국이 공언하는 것처럼 북부동맹의 카불입성이 지난 23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킨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 지점에서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첫째, 아프간은 전통적으로 중심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지지 않았다. 따라서 수도 카불을 점령하는 것이 아프간 전체를 수중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 즉, 카불을 제외한 나머지 전영토는 아직도 종족들간의 전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둘째, 북부동맹이 카불에 입성한 것은 1992년을 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북부동맹(혹은 연합전선)은 아프간의 각종 게릴라들인 '무자히딘' 군대들로 구성된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반탈레반 저항연합이며, 무자히딘은 1992년 소련군을 국외로 몰아내고 나지불라 정권 뿐만 아니라 이 정권의 종족중심으로 편성된 몇몇 군대를 무너뜨렸다. 이 종족분파 및 군벌들의 연합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즉 가을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시점부터 탈레반에게 (무자히딘이) 패배할때까지 아프간을 지배해왔다. 이들이 지배하던 시기는 엄청난 혼란과 살인적인 폭력으로 특징지어진다(당시 수도 카불의 1/3이 붕괴되었다). 카불시 전체에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였고, 그동안 강도들과 마약왕들이 나라의 전체를 통제하게 되었다. 탈레반은 1996년 대부분의 권력을 접수하게 되었으며 이는 아프간인들의 안정과 질서에 대한 갈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프간인들은 안정과 질서만 주어질 수 있다면 이슬람 원리주의적 체제의 지배라는 위험(예컨대, 여성들에 대한 억압, 세속적인 모든 것에 대한 금지 등등)마져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북부동맹은 엄청난 인권침해를 범해왔다. 한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북부동맹은 고의적으로 시민들을 겨냥하여 사격을 행하였으며, 즉결처형(즉, 재판없는 사형집행)을 자행하였으며, 민가를 불태우고 부수었으며, 어린아이들을 징병하였고, 결코 어떤 명령권자도 이러한 인권침해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북부동맹의 운영은 마약거래로부터 자금이 조달되어 이루어졌다.
셋째, 미국과 UN이 안정적인 "연합" 정권을 구성한다고 할 지라도, 마치 1992년과 1996년 사이와 같은 갈등이 또다시 벌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프간 종족들과 정파들이 미국이 주도권을 준 특정 종족 및 분파와 새로운 권력쟁투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왕인 샤(Shah)중심의 연합정부 구상은 이미 무자히딘이 소련군을 몰아내고 연합정부를 구성했던 1992년 당시에 제기하였지만 무참히 실패했던 구상이다. 게다가 현재 이러한 연합정부 구성안이 여전히 군벌들과 종족대표들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커다란 문제이다. 언론은 성급하게 '여성해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미 대다수의 여성들과 여성조직들은 연합정부 구상에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배제되었다.
주제어
평화 국제
태그
촛불 fta 괴담 야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