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22호 | 200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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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말 가스, 발전, 철도 3사 연대파업을 앞두고

편집부
발전/철도/가스/지역난방/고속철도/전력기술 노조가 참가하고 있는 6사 공동투쟁본부와 사회보험노조는 지난 3-4개월 간의 진통을 마치고 이제 새로운 산고에 돌입하고 있다. 사실 2001년 12월까지의 상황은 지난 수년간의 투쟁에서 경험했듯이, 쟁점/투쟁의 양상/연대의 수위 등에서 ‘공동’투쟁본부라는 이름과 별반 어울리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철도관련 법안의 상정 여부, 상정 시기에 따른 파업의 가능성, 철도와 가스의 분리타격이라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대한 대처 방안을 둘러싼 공방이 논의의 주축을 이루었다. 즉, 철도와 가스산업 사유화 법안처리의 일자, 그것의 가능성 여부가 투쟁의 시점과 수위를 끊임없이 억압했던 것이다. 또한 철도노동자들의 대응 양상 자체가 소위 투쟁의 ‘판’을 짜나가는 형국이었다. 이것은 50년 어용의 굴레를 벗어 던진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기대, 사유화 저지를 둘러싼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전선의 발전가능성, 그리고 투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현실적 상황 등이 어우러져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의 짧지만 탄력적이었던, 탄력적인 만큼 불안정했던 그간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볼 때, 주체들에게 지워지는 하중은 그만큼 컸다. 오느정도의 혼란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법안 처리가 2002년으로 유보되고, 공투본 소속 사업장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각 사가 자신의 조직력을 정비하고, 투쟁의 쟁점을 예각화시켜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특히 철도■발전 나아가 가스 노조 공히 노조 민주화와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지난한 역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운영의 측면에서 그야말로 신생노동조합이라는 점, 대중장악력의 면에서 지역적■직종별 불균등성 내지는 취약함을 여전히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사유화 저지라는 거대 쟁점이 조합원 개개인의 생존권 쟁취■노동환경 보장 문제와 아직까지도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다는 점 등의 비슷한 조건에 처해 있다. 이것은 해당 주체들이 실질적 투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물적 근거가 여전히 취약한 상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12월을 넘기면서 각 사업장은 조직력 정비와 투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 질주하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산개되어 있는 사업장이 가지는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고, 무척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1월 27일, 발전노조 대의원대회에서 2말 3초 투쟁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주체들은 결단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어져온 과정에서 각 사의 고민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철도의 경우, 사유화라는 사안의 중차대성이 주체들을 끊임없이 압박해 들어왔다. 이것은 사유화 대상 사업장이 단사의 투쟁으로 맞서나가는 조건에서 처하는 공통적인 분모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유화 저지 투쟁의 중압감은 오히려 사유화 저지의 실내용인 노동환경 보장, 노동시간 단축, 인원충원, 해고자 복직 등의 사안을 부차화시키거나 혹은 종속시켜버리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사유화 관련 법안 저지 투쟁에서 국회일정 따라가기 식 투쟁 양상을 극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몇 년여의 투쟁의 경험속에서 그러한 투쟁방식은 현실적이기는커녕 줄곳 반복된 패배로 귀결되왔기 때문이다. 그중 발전의 경우, 2000년 관련 법 상정을 막아내지 못하고 후퇴해야만 했던 패배의 경험이 아직까지도 현장에 짙게 깔려 있는 사업장이다. 이것은 노동조합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조건이며, 조합원들의 투쟁력을 급속히 충전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 원천적으로 불신하거나 외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더욱이 5개의 발전소로 이미 분사의 절차가 진행되어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의 건설부터 발전 산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투쟁의 축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매각의 시기에 따라 투쟁 전술과 시점이 분산되고, 결국 일정에 ‘딸려가는’ 식의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 직면하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5개 사 매각 시기의 분산과 분산에 따른 5사 공동의 투쟁의 어려움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이미 패배를 경험한 국회 일정따라가기 식 투쟁 양상과 별반 차별성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발전노조는 2말 3초로 투쟁 시기를 어렵사리, 아니 무리하게 당길 것을 결의했다. 공투본의 ‘공동’ 투쟁의 정신을 살려야 하며, 이 공동투쟁을 통해서만이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주체의 결단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가스노조는 99년부터 시작된 사유화 저지 투쟁전선에 지속적으로 결합해온 사업장이다. 그러나 가스산업 매각이라는 사안에 비해 노동조합의 덩치(?), 노동조합이 처한 조직적■정치적 환경은 가스공사 노동자들의 투쟁이 별다른 쟁점을 형성하는 것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기치를 세우며 출발한 노동조합은 3년 연속 투쟁을 결의하고도 투쟁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그야말로 진퇴양란의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건 혹은 나빴건 밀리고 밀려왔던 투쟁의 설욕을 씻을 수 있는, 그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전노조의 투쟁 결의로 각 사의 긴장력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국회 일정이 여전히 유동적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투쟁의 시기 자체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이미 지배적인 정서였다. 이에 따라 가스■발전■철도 3사, 나아가 사회보험을 포함한 7사에서는 투쟁의 적기를 놓칠 수 없다는 결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유화 저지라는 거대 담론이 이제는 노동조건 개선, 임단협 쟁취라는 현장의 구체적 생존권 요구와 서서히 결합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에게 주요한 화두였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요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도가 파업을 할 것인가, 발전이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스는 어떠할 것인가. 많은 의구심이 분출했고, 그리고 수많은 변수가 남발했다. 그러나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혹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그 동안의 고민은, 불건전한 고민은 일소되어야 했다. 적어도 3사 공동의 투쟁,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대의를 부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각 사 노동조합 지도부와 조합원 개개인은 이 정신을 이제부터라도 만들어나가야만 했다. 단사 중심의 사고를 몰아내고, 자본과 정권에 맞선 실질적 연대 투쟁을, 실질적인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엄청난 힘에 단사의 외롭고 고립된 투쟁으로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했으며, 도전해볼 만큼의 역량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정을 넘기고서야 3사 공동투쟁, 공동파업이 결의되었다. 공투본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요구안을 발표했다. 3사의 요구안이 공히 관철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3사의 요구안 중 어느 하나라도 관철되지 않을 시, 그리고 공권력의 투입이라는 자본과 정권의 물리적 탄압이 돌발했을 시, 즉각적인 연대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힘겨운 과정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주체들의 소중한 결의를 넘어서는, 그 결의가 실제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짧지만 너무나도 지난한 과정만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3사 공동투쟁의 정신이 깨어져나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은 아직도 살아 있다. 투쟁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단사 이기주의는 부풀 것이며, 교섭에 대한 기대감은 3사 투쟁을 깨어버리고자 하는 정권과 자본의 치밀한 공세에 의해 부추겨질 것이다. 그리고 한 사업장의 이탈은 남은 사업장을 엄청난 힘으로 파괴시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연대투쟁 패배의 파괴력이다.

총파업 투쟁이 이제 선언식 공문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공공부문만을 살펴보면, 99년부터 이어진 연대투쟁의 경험이 오히려 연대투쟁에 존재하는 ‘위험한 관계’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조건을 만들기도 했다. 연대의 필연성이 연대투쟁의 전선을 확장시켜 왔으나, 결국 ‘커버린’ 전선에서 이탈한 한 사업장의 판단에 의해 전체 전선이 일순간에 얼어붙게 되는 그 차디찬 경험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 ‘발목을 잡힐 것인가, 잡을 것인가’라는 ‘산수’가 노동자들의 계급적 판단을 흐리게 했으며, 투쟁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단사 이기주의에서 비롯해 단사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경향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공공부문처럼 대규모, 전국단위, 혹은 파업의 파괴력을 자신하는 사업장이라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어떻게 총 연맹, 상급연맹의 지도력이 관철되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연대의 두려움, 단사 이기주의가 발동하는 순간,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상급단체는 서서히 자신의 지도력을 관철하는 수단과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급기야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지도력과 아래로부터의 투쟁력이 결합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동요구안을 내걸고, 생사고락을 결의한 3사의 결단은 그 자체로 주목할만 하다. 이 투쟁의 승리는 연대 투쟁의 가능성을 새로이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에서의 노력과 계획, 실행과 집행이 무엇일 것인가를 평가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그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채 현재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94년 전지협 투쟁, 96년 공공 5사 투쟁, 그리고 99년 이후부터 불거진 사유화■해외매각 투쟁의 정치적■조직적 맥을 잇는 투쟁이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과거와의 절연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게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94년 투쟁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정치적 파급력과 힘에 있어, 노동자 투쟁의 주체로 등단했음을 보여준 투쟁이었다. 공동 요구와 시기, 전술을 내걸고 시작했던 96년의 투쟁은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발전의 역사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99년부터 발전되어온 사유화 저지 투쟁 전선은 사유화의 문제점, 공공성 쟁취 투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는 했으나, 오히려 투쟁이 분화의 경향성을 그리게 된 한 계기였다 할 것이다. 99년 이후 전개된 사유화 저지 투쟁은 해당 사업장 간의 자발적 연대로 시작해, 공공부문의 객관적 조건 상 양노총의 연대로 이어졌고, 범대위라는 사회적 연대의 틀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전선 자체의 ‘외형적’ 확장을 이루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사유화 저지, 신자유주의 반대의 실내용은 매우 취약했으며, 주체의 계급적 인식이 편차를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의 질적 확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투쟁은 정치적 일정에 의해 좌우되어 파탄나거나, 성과물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적 타협만으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나아가 정부와 자본의 무차별적■공세적 탄압에 노출되어 각개격파당하는 양상으로 치달아온 것이다. 아직까지도 사유화 저지 투쟁은 해당 노동자들의 생존권 쟁취 투쟁과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의 실내용을 온전하게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자생적, 그리고 필연적으로 생존권 쟁취 투쟁의 요구가 발전되어 나가고 있다. 이것은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발전 가능성을 의미한다. 철도/발전/가스노조 공히 사유화 법안 저지, 사유화 정책 철회의 실내용을 노동조건 개선, 생존권 쟁취 투쟁에서 찾아가고 있는 상황은 한 단면을 보여준다. 현실의 투쟁은 이미 공공부문 노동자, 공투본 소속 노동자, 연대파업의 주체인 3사 노동자들의 투쟁, 그 이상을 의미한다. 공공부문으로만 본다면, 그 동안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신자유주의 반대/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막혀가는 돌파구를 뚫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주제어
정치
태그
경제성장 박근혜 창조경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