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2호 | 1999.11.09

자료 읽기 -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편집부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브라임 와르드(Ibrahim Warde)**

*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브라임 와르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앵글로-색슨 모델」(Le Modele anglo -saxon en question), Economica, 파리, 1997.의 공저자(리샤르 파르네띠 Richard Farnetti와 함께)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97년도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의 재정운용은 "부러워할 만하다"고, 태국의 거시경제 정책은 "건전하다"고,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이 나라의 "현명한 거시경제 정책, 높은 투자율과 저축률 및 자신의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개혁들"을 찬양하기까지 했었다.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용"들은 승천을 계속해 나갈 운명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이 나라들의 부채에 대해서 계속해서 좋은 평점을 매겨 왔고, 외국은행들은 차입자를 찾고자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1997년 7월 2일, 이같은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태국의 바트화는 붕괴되었다. 구제금융 계획에도 불구하고 초국적 금융자본들은 줄줄이 보따리를 쌌고, 결국 파국에 이르렀다. 이 폭풍은 점차 확산되었다.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 필리핀의 페소화,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로, 싱가포르의 싱가포르-달러! 이 지역의 증권거래소들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태국이 제일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의 문을 두드렸다. 자그마치 17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이 계획되었다. 그러나 이 구제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파국이 초래되었다. 이 계획은 이에 동감을 표시했던 미국조차 돈을 내놓기를 거부했던, 이상한 계획이었다. 다음은 인도네시아였고, 430억 달러의 구제자금을 받기로 되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이 금융위기는 "작은 접촉사고"일 뿐이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심지어 이 위기를 "득이 될 유익한 대사건"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에 미치는 충격효과는 보잘 것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통화가치 붕괴는 한편으로는 반-인플레이션적인(긍정적인) 효과를 낳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나라들의 고도성장을 정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미국 금융계는 심술에 가득찬, 악의성 낙관주의를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시아의 기적은 신기루라고 하면서...
그런데 97년 11월, 외환 지불정지 직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걸을 시작하면서 사태는 일변했다. 미국 대통령은의 어조조차 바뀌었다. "이 위기는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신뢰가 재확립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모든 나라들에서 발전이 재개되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 위기는 우리들에게 파급될 것이다"
세계 11번째의 경제대국인 한국경제의 붕괴는 지구촌의 곳곳에 소용돌이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한국의 대외부채는 2,000억 달러로, 그 중 35%가 이미 부실채권 투성이 상태로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채는 일본 경제를 뒤흔들 위험을 내포한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 재무성 공채의 거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이 흔들린다면 미국에까지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수출업체들은 아시아 고객들이 붕괴됨으로써 초래된 부정적 효과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시아의 용들을 올라타는데 가장 성공했던 사람들이 이제 얼이 빠져 버린 것이다.

속죄양을 찾아서
사상 최대규모인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 제공 협약이 1997년 12월 3일 체결되었다. 구제금융 제공의 주역들은 세 부류다. 첫째는 국제기구들, 둘째는 부(富)국의 정부들, 그리고 셋째는 채권은행들이다. 방어전의 최 일선은 국제통화기금(210억 달러), 세계은행(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40억 달러)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 돈은 한국이 국제금융기구가 요구하는 개혁에 착수해야만 제공된다. 방어전의 제2선은 일곱 나라들(미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220억 달러)이 맡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각각 한국 정부와 교섭을 벌인다. 이들은 지불유예, 부채의 만기연장, 단기부채의 장기부채로의 전환 등을 놓고 어떤 방식을 택할지, 장차 한국 금융구조내에서 자신들이 어떠한 위치를 점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제금융이 제공되는 대신, 한국은 경제성장, 실업, 인플레이션 등 거시경제지표에 관해서 그들과 협상을 맺어야 한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일정한 수의 종금사들을 폐쇄할 것을 약속했고, 외국투자가들이 은행과 재벌의 소유지분 참여를 허용할 것을 약속했다. 이 밖에도 재벌기업들이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고, 회계법인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며, 회계체계를 보다 투명하게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 선거 직전의 세 후보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계획의 결정사항들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정책담당자들과 정부고문들도 교체해야 했다. 인도네시아는 위죠조 니치사스트로(Widjojo Nitisasstr o)라는, "버클리의 마피아"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경제학자를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부 장관을 감독하는 자리에 앉혔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ker)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부고문"이 되었다. 태국은 국무회의가 외국의 물주들이 신임할 만한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한국은 물주들과의 교섭에 도움이 될(?), 미국계 실업은행인 살로몬 브라더스(Salomon Brothers)와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사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해결하는데는 불충분했다. 이 위기는 말레이시아, 러시아, 브라질을 언제 강타할지 모른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돈이 없다. 181개의 회원국들에게 갹출금(분담금)을 증액하라고 간청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기구의 자금운용 메커니즘을 이해해봐야 할 것이다. 회원국가들의 분담금은 1,9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500억 달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나라들에게 빌려주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국제통화시스템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G7 국가들과 스위스 및 사우디 아라비아가 제공하는 250억 달러 상당을 사용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 액수를 각각 2,750.73억 달러와 500억 달러로 늘이고자 한다. 이 증액의 인정 여부는 미국에게 있다. 투표권과 비례하는 미국의 분담금은 전체의 18%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도부와 글렌스 서머스 미재무부 부장관은 자본금의 증가는 "세계경제의 운행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필요불가결하다고 설변한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여론과 재정권을 쥐고 있는 의회를 설득하지는 못하고 있다.
극우 세력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로취 페어클로스(Lauch Faircloth)는"국제적인 구제금융 조치는 금융 분야의 시장기능을 훼손하고 있다. 지금 이윤은 사유화하면서 손실은 사회화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붕괴되어 패주하는 경제에 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야기시키고 무책임한 행위와 고위험도의 투자를 조장하는 것이다. 좌파 쪽에서도 정부가 금융투자가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는 것을 비난한다. 사회복지와 교육 등에 지출되어야 재정이 외국정부를 구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반대중에게는 인기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정치인들은 아예 없애버려야 할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장으로부터 확고하게 지지받고 있는 기관의 정당성은 언제나 확보되기 마련이다. 현재 예일대학의 경영학부 학장인 제프리 가튼(Jeffrey Garten)은, "국제통화기금은 시장이 얻어내고자 하는 것, 즉 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규율과 계획을 가져다주는 시장의 대용물이다."고 주장한다.
1994년 12월 멕시코 사태에서 미 재무부는 자유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금에서 120억 달러를 인출하여 투입했다. 미 행정부는 의회의 거부를 비켜갔고, 이 조처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평가한다. 수년 동안 멕시코는 정해진 기일안에 부채를 상환했고, 워싱턴 당국에는 이익이 되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5억 달러 이상의 이자 수익을 미 재무부에 안겨줬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 멕시코 민중들의 구매력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빈곤층의 비율은 30%에서 50%로 높아졌다. 구제를 받는 나라들에게 강요된 처방들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의 해답은 투입된 자금의 엄청난 규모와 엄청난 이자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처방을 라틴아메리카에 적용했고, 그리고 아시아에 고스란히 적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신뢰"하고 있는 조직인 세계은행의 수석경제학자 죠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조차도 이번 동아시아 사태와 관련하여 충격을 받고 자신의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 나라들을 심각한 침체의 늪으로 떼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제학자들 모두는 경기후퇴의 시기에는 균형예산의 원칙을 거부한다. (이치상으로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 역자) 그런데도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게 자문을 할 때에는 이러한 이치를 알고도 모르는 체 해야 하는 것인가?"
다른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비밀보고서는 자신들이 제공한 물약(처방) 가운데 몇몇 가지가 아시아의 위기를 사실상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해 주고 있다. 즉 국제통화기금(IMF)은 태국, 인도네시아 및 한국에 대해 재정상태가 극히 취약한 금융기관들을 폐쇄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렇게 해야만 이 나라들이 신뢰(해외 투자가들의 : 역자)를 회복하게 된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런데 이 조치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건강하고 잘 굴러가던 금융기관들까지도 대대적으로 수축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대파국의 원인에 관하여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혼동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경제와 금융에 관한 정통이론에서는 '지난날의 경험으로 볼 때 "금융경제"에 의해 "실물경제"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견해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는 자본의 이동이 난폭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또 이것이 증폭효과(over-shooting)를 내고 있으며, 도미노-효과도 있고 , 투기도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정통이론에서는 이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나라들의 경우 : 역자) 경제의 고전적 "기초"(인플레이션, 생산성, 대외무역)라고 불리는 것들의 상태가 건전하므로―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그같이 말하고 있다―대파국의 원인을 지목하려면 다른 데에서 새 희생양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 나라들의 금융 시스템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구름 위로 붕붕 떠받쳐 올리던 제도들(아시아 모델 : 역주) 내지 심지어 "문화적 특성"까지도 오늘날에 와서는 피고석에 끌려나오게 되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저축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너무 심하게 저축을 한다. 한국의 저축률은 35%인데,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 CD)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반면에 주민 한 사람당 소비는 일본의 절반이고 미국의 3분의 1이다."(소득의 격차가 몇 배인지는 살펴보지도 않고서 이렇게 억지논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 역주) 이 전문가들은 어떤 사태가 도래할지 예견하지 못했고 또 틀리는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러한 자들에게 향후 동남 아시아 경제를 재가공하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지고 있는 것이다.
주제어
경제
태그